- 사람은 누구나 자기 합리화를 하며 살아갑니다. 스스로를 괜찮다고 여기며 합리화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적인 자기 방어 작용입니다. [09:12]
- 자신이 좋을 대로 생각하는 것은 괜찮지만, 그 결과에 따라 손해를 감수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10:21]
- "그래도 아이들이 살아 있으니 다행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아이의 버릇이 나빠졌다면 힘들더라도 고쳐야 합니다. [10:31]
- 고칠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는 것이 좋으며, 괴로움은 대개 고치려다가 생깁니다. [10:41]
- 우리는 상황에 맞춰 바꾸는 것과 적응하는 것을 적절히 병행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모든 것을 자기 마음대로 바꾸려 하면 힘들 수 있습니다. [11:13]
- 중도를 지켜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꾸되, 힘든 일은 감당할 수 있으면 바꾸고 안 되면 받아들여야 합니다.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괴로움이 생기는 것입니다. [11:31]
- 무위로 돌아간다는 것은 자신의 의도를 내려놓고 일어나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삶입니다. [11:41]
- 인류가 문명을 이루려면 세상을 조금은 바꿔야 하지만, 너무 집착하면 뜻대로 안 될 때 괴로움이 생깁니다. [11:51]
- 지혜로운 삶은 적응과 개척 두 가지를 조화롭게 해 나가는 것입니다. [12:13]
저는 아동 학대 생존자로, 법륜스님의 바른 가르침으로
부처님 법을 만나 지금은 잘 살고 있습니다.
정토불교대학에서 괴로움이 없는 사람을 목표로 공부하면서
많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생각이 금세 바뀌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이가 둘 있는데,
말을 안 듣거나 제 생각과 다르게 행동할 때도
‘그래도 아이들이 살아 있으니까 됐어!’ 하고 바로 한 생각을 바꿉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제가 제 편한 대로 자기 합리화를 하는 건 아닌지,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지금 수행을 잘 하고 있는지
스님께 중간 점검을 받고 싶어 질문 드립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합리화를 하며 살아갑니다.
사람이 별것 아니고, 사실 특별한 사람도 없어요.
누구나 ‘괜찮아, 원래 사람이 다 그래.’ 하며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도 있는 거예요.
인간에게는 본래 자기방어 본능이 있습니다.
생물학적으로도 그렇고, 정신 작용인 까르마 역시
늘 자신을 보호하려는 성향을 지니고 있습니다.
내가 잘못했을 때도
숨기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되면 숨기고,
들통날 것 같으면
차라리 드러내는 편이 낫다고 판단해 고백하는 겁니다.
진실해서 사실을 털어 놓는 경우는 드물어요.
‘숨길까?' '드러낼까?’ 이렇게 눈치를 보다가
반성하는 듯한 태도를 보여야 상대가 받아줄 것 같고,
괜히 거짓말했다가 미움받을까 싶어서 차라리 드러내는 거예요.
인간 심리가 본래 그런 식으로 작동합니다.
심지어 솔직함마저도 솔직한 게 유리한지,
약간 숨기는 게 유리한지 따져 보며
잔머리를 굴려서 나오는 행동입니다.
그래서 질문자도 자신이 좋을 대로 하면 됩니다.
다만 그 결과에 따라 때로는 손해를 감수해야 할 수도 있어요.
질문한 것처럼 ‘그래도 아이들이 살아 있으니 다행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말을 안 듣는 걸 그대로 두다가
아이가 정말로 버릇이 나빠졌다면
이제는 조금 힘들더라도 버릇을 고쳐야겠지요.
그런데 우리는 대개 고칠 수 없는 걸 고치려다가
괴로움을 키웁니다.
고칠 수 없는 건 그냥 받아들이는 게 나아요.
괴로움은 괜히 고치려다가 생기는 거니까요.
산에 가서도 길을 낼 수 있으면 내고
길을 낼 수 없으면 밧줄을 타든가 해야 하잖아요.
세상살이도 마찬가지예요.
어떤 상황에서는 개척하고
어떤 상황에서는 거기에 적응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늘 나한테 맞게 바꾸는 일과
그 상황에 내가 적응해 가는 일을 적절히 겸해 가면서 살아가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사람들은 대개 모든 걸 다 자기 마음대로 바꾸려고 하니까
세상일이 쉽지 않은 거예요.
그래서 힘든 겁니다.
모든 상황에 다 적응해 버리면 쉬울 것 같지만
그렇게만 살면 사람이라고 하긴 좀 어렵겠죠.
그래서 중도를 지켜야 합니다.
바꿀 수 있으면 바꾸면 됩니다.
그런데 그건 힘이 들어요.
힘든 걸 감당할 수 있으면 바꾸면 되고
감당이 안 되면 받아들여야 합니다.
안 받아들이니까 괴로움이 생기는 거예요.
무위(無爲)로 돌아간다는 건
아예 의도를 내려놓고,
일어나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삶입니다.
그러나 인류가 문명을 이루고 살아가려면
자기에게 맞게 세상을 조금은 바꿔야 합니다.
그렇다고 여기에 너무 집착하면 안 됩니다.
뜻대로 안 될 때 괴로움이 생기거든요.
농사도 마찬가지예요.
비가 안 오면 댐을 막든지 지하수를 파면 되고
그것도 안 되면
건조한 곳에서도 잘 자라는 메밀 같은 구황 작물을 심으면 됩니다.
이렇게 적응과 개척, 두 가지를
언제나 적절히 조화롭게 해 나가는 것이
지혜로운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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