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이 사람들을 출가시킨 목표는 무엇이었나요?
최근에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후
많은 사람들이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족을 떠나 출가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일단 수행자가 된 사람들은
가르침을 전파하고 명상하는 데에만 집중하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사람들로부터 보시를 받는데
솔직히 제가 보기에 그들은 사회를 위해 생산적인 일을 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저는 수행자들이 오늘날의 정토회처럼 자립하며
사회에 기여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제가 궁금한 것은
부처님이 구상한 이상적인 사회는 무엇이며
모든 사람들을 출가시켜서 이루려고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런 궁금함이 생길 수 있겠다 싶습니다.
부처님이 출가라는 것을 독자적으로 창안해 낸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도 이미 존재했던 출가라는 사회적인 조류에 참가한 것입니다.
부처님이 태어날 당시 인도의 전통사회를
브라만 문명의 사회 또는 아리안 문명의 사회라고 말합니다.
브라만이라고 하는 사제 계급이
그 사회의 최고 지도층을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중국을 비롯한 일반적인 사회에서는
종교 지도자와 정치 지도자가 처음에는 하나로 있다가 분리되면서
주로 정치 지도자가 더 우위에 서게 되는데
인도에서는 반대로 종교 지도자가
정치 지도자보다 더 우위에 서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계급이 사제 계급인 브라만
두 번째 계급이 정치 지도자인 크샤트리아
세 번째 계급이 경제력을 갖고 있는 바이샤였습니다.
그리고 아리안족이 원주민인 드라비다족을 정복해
그들을 네 번째 계급인 노예 계급 수드라로 편제하면서
인도 사회의 카스트 제도가 만들어졌습니다.
아리안족이 드라비다족을 정복하려던 시대에서는
브라만 신의 힘이 승리를 가져왔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드라비다족이 다 정복된 시대에서는
모두 같은 브라만을 믿는 나라들 간의 경쟁이었기 때문에
경쟁의 우위를 점유하는 것은
신의 힘이 아니라 바로 경제력이나 군사력이었습니다.
이렇게 되자 크샤트리아 계급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면서
브라만의 영향력을 능가하는 사회로 변했습니다.
또 정치적으로는 나라별로 독립되어 경쟁했지만
경제적으로는 나라를 초월하는 무역이 행해지면서
거대한 부를 형성한 거부장자인 바이샤 계급의 지위도 향상되었습니다.
오늘날 사회와 비유해서 살펴본다면
종교적인 영향보다는 정치적인 영향이 커지고
세계적인 다국적 기업을 경영하는 기업가의 영향력이
정치적 지도자 못지않은 사회로 변해갔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래서 전통적인 계급 질서가 붕괴되기 시작하면서
변화된 사회를 설명하려는 새로운 사상가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전통적인 주류 사상가들인 브라만은
태어난 것만으로도 권위 있는 신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신흥 사상가들은
본인들이 브라만 출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 권위를 가질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의 선택을 통해
대중의 지지를 기반으로 한 권위를 얻고자 했습니다.
전통사회에서도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집을 떠나는 풍습이 있긴 했지만,
이들 신흥사상가들도 본인의 선택으로 가족과 집을 떠났습니다.
걸식을 하고 아주 검소하게 생활하면서
세상에 대해 자기 나름의 사상을 설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브라만이 아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그들의 주장이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지는 못했지만
사회가 점점 변하면서
그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지기 시작했습니다.
신흥사상가들은
모두 브라만교를 반대하고 부정하긴 했지만
‘이 세상은 이렇다’ 하고 설명하는 사상적 측면에서는
그 내용이 너무나 다양해서
하나의 공통점을 갖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그들의 한 가지 공통점은
집을 떠나 머리를 깎고, 옷은 떨어진 것을 입고
밥은 얻어먹고, 아주 검소하게 생활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부류들을 통칭해서 ‘사마나(Samana)’라고 불렀습니다.
붓다는 이 그룹에 참가했기 때문에
그도 집을 떠나 머리를 깎고 걸식하며 생활한 것입니다.
즉 부처님이 출가하기 전에는
주류인 브라만교의 믿음과 사상을 갖고 있었지만
출가한 이후에는 사마나(Samana)의 여러 사상들에 심취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을 때는
양쪽의 극단을 모두 뛰어넘어 새로운 길을 찾았습니다.
그래서 그 깨달음을 ‘중도’라고 표현합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볼 때 그는 브라만이 아니기 때문에
사마나 그룹에 속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제자들도 다 사마나 그룹에 편제가 되었고
그 전통에 따라서 출가를 했던 것입니다.
붓다는 사람들에게 출가하라고 직접 말한 적이 딱 두 번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자기 아들을 출가시킬 때, 출가하라고 얘기했습니다.
두 번째는 자기 동생을 출가시킬 때, 출가하는 게 좋다고 설득했습니다.
그 외에는 붓다가 출가하라고 말한 적은 거의 없습니다.
사람들이 ‘저도 출가하겠습니다. 저를 승단에 받아주세요’ 하고 요청하면
‘오라, 비구여!’ 하고 환영했습니다.
붓다의 가르침을 듣고 깨달은 사람들은
두 가지 길을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는 속세에 있으면서 해탈의 길을 추구하는 재가 수행자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집을 떠나서 해탈의 길로 나아가는 출가 수행자의 길이었습니다.
집에 있으면서 수행하겠다는 사람에게는
특별히 다섯 가지 주의를 주었습니다.
첫째, 살아있는 생명을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된다.
둘째, 남의 물건을 함부로 가져가서는 안 된다.
셋째, 강제성을 갖는 성적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넷째, 욕설하거나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
다섯째, 삿된 소견을 가져서는 안 된다.
삿된 소견이라는 것은
술을 마시고 흥분해서 즐거움을 추구하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해탈을 즐거움이라고 이해하고
즐거움을 행복으로 삼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나중에는 ‘술을 먹고 취하지 마라’ 이렇게 정리가 됩니다.
세상에 살면 이렇게 될 위험이 크니,
적어도 수행자라면
이런 것은 경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출가한 사람은 애초에 이럴 가능성이 없어서
처음에는 계율이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는 충분히 자기를 내려놓지 않고
형식적으로 출가하는 사람들이 생기면서
수행적인 관점을 놓쳤기 때문에
출가수행자에게도 계율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질문자의 말처럼
‘세상 사람이 다 출가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하는 이런 걱정은 안 해도 됩니다.
왜냐하면 붓다는 출가하라고 말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출가 또는 재가를 원하는 대로 하라고 했습니다.
‘재가에서 수행한다면 적어도 이런 원칙은 지켜야 한다’,
‘출가해서 수행한다면 이런 것은 지켜야 한다’
이런 것만 있지
어떤 것을 하라고 한 적은 없습니다.
당시에 만연했던 성차별이나 계급 차별에 대해서도
출가한 사람이 모인 상가 안에서는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정토회도 이런 상가의 모습을 본받았기 때문에
개인이 어떤 직업을 갖고 월급을 받아서 생활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에 맡기지만
공동체 안에 들어올 때는
월급을 주고 받는 시스템을 갖지 않는 것입니다.
보통 조직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어떤 경제적인 기반이 있어야 하는데
부처님 당시에 출가하는 방식은
아무런 경제적인 기반 없이도 확산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생활이
다른 사람이 사용할 재화를 사용하지 않고
내가 노동하지 않는 대신에
사람의 노동으로 생산한 어떤 생산물도
사용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갖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음식도 남이 먹다 남은 것을 얻어먹고
옷은 아무도 입지 않는 버려진 천을 입었습니다.
인도 당시에는 아무리 가난해도
시신을 덮었던 천은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몸에 걸치면
내 몸이 더러워지고 부정 탄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출가하면 시신을 덮었던 천으로 몸을 가렸습니다.
그리고 잠은 나무 아래나 동굴에서 잤습니다.
사람이 살지 않는 버려진 집이 있다면
그 집의 처마 밑에서 자는 것은 허용이 되었습니다.
질문자가 이야기하듯이
사람이 생산해서 다른 사람이 쓸 수 있는 것은
그 어느 것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출가 수행자가 아무리 많아진다고 하더라도
세상 사람들에게 피해가 없었고
상가의 기반 유지를 위한
어떤 경제적인 노력도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붓다가 열반하고 나서 500년이 지나면서
수행자들의 생활 방식이 좀 바뀌었습니다.
그들이 살 수 있는 건물인 절을 지었고,
버려진 천이 아니라 보시를 받아서 좋은 천으로 옷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음식도 좋은 음식을 받아서 먹었습니다.
이런 생활은 당시에
왕이나 부유층이 대부분 기부를 해주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이렇게 되면서 지금처럼 생산은 하지 않고
소비만 하는 하나의 계층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출가 수행자들에게
‘누군가가 생산한 것을 갖고 사용한다면
당신도 어떤 생산활동에 참여해야 하지 않나요?’ 하고
충분히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붓다가
‘생산활동에 참여하지 말라’ 하고 말한 뜻은
어떤 이익을 추구하지 말라는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농사를 짓든 어떤 노동을 하든
그 노동의 대가를 받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즉,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 것이 제일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정토회에서는 어떤 활동을 하더라도
대가를 받지 않는 시스템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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