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을 한지 8년차입니다. 그리고 아이는 숲 유치원을 보내고 있고 또 큰아이는 혁신 초등학교를 선택해서 지금 1학년을 다니고 있는데 나의 인생의 선택은 그랬는데 내가 하는 선택이 나중에 아이의 미래를 어떻게 제한하는 결과를 가지고 올까봐 그게 약간 고민스럽습니다.//
어떻게 제한하는데?
자기 지금 좋은 대학이고, 좋은 일자리 이런 거, 별로 인생에 중요하지 않다고 그래서 농촌에 내려왔잖아요.
그런 걱정이 되면 지금부터 초등학교 과외를 시켜야지. 그런 걱정이 되면. 자기는 이렇게 농촌생활도 하고, 전원생활도 하고, 환경적 가치도 중요하지만, 또 내 아들은 특목고 가서 서울대학교 가고, 그것은 내가 중이 되어서 존경도 받고, 또 결혼해서 또 예쁜 여자하고도 살고, 또 돈도 많이 벌고, 인기도 있고, 그러면 좋지. 그런데 여기 똑똑한 사람이 그렇게 나를 하도록 해주나?
“여자 하고 살려면 여자 선택해라. 너, 존경 받으려면 너 혼자 살아라.” 이렇게 얼마나 똑똑한 사람들인데. 그러니까 자기가 그것을 두 개다 먹으려면 안 되지.
그것은 자기인생이지 무슨 내 인생이 아니야. 아이의 인생이 자기 인생이지. 아이의 인생이 엄마가 낳아서 밥 먹여 줬으면 되었지, 네가 특목고 가고 싶으면 네가 알아서 가라 그러면 되는 거지.
없으면 그만이지 뭐. 그러면 내가 대한민국에서 태어나서 우리 아들은 영어를 못해서 하버드대 못 보냈다. 그럼 우리 아들이 하버드대 들어갈 수 있는데, 엄마가 한국에 살아서 우리 아들이 영어를 못해서 하버드 못 갔다. 그러면 엄마가 책임져야 되나? 그럼 자기가 어릴 때부터 애 데리고 보스턴에 가서 살아야지.
그래, 하고 있는 것은 아는데, 그러니까 엄마들은 자기처럼 시골에 내려와서 그렇게 안하지.
그러면 가면 돼. 나도 내 친구들, 나보다 공부도 못한 애들이 다 장가가고 시집가고 아이 낳아 장가 시집보내는 거 보면, “내가 뭐 했노? 여태까지.” 이러면 가면 되지. “너희야 가든지 말든지 나는 내 길이고” 그렇지. 진짜 웃긴다.
그러니, 내가 이해를 못해서 하는 얘기가 아니라, 그러니까 자기는 시골에 내려와서 살 수준이 안 된다. 이 얘기에요. 내가 아까처럼, “난 장가도 못하고, 애도 없고, 친구들은 벌써 애가 다 컸는데” 이런 생각하면 중 될 수준이 안 되듯이. 그러니까 자기가 천하가 다 그렇게 가더라도.
그러면 독립운동 했던 사람들은 어떻게 되나? 그 사람이 독립운동해서 자식 놈 문제가 아니라, 부모님, 집안 유산 다 버리고, 아이들은 다 죽기도하고 다 버려져서 거지되고 이랬잖아. 김좌진 장군부터 시작해서. 그럼 부모로서 독립운동하면 되나? 안 되지. 또 그런 협박 때문에 독립운동 포기한 사람들도 많이 있잖아.
민주화 운동 했던 사람도 또 부모가 그 고생해서 서울대학 넣어놓으니까, 학교 그만두고 공장에 가고, 그럼 부모나 동네사람이 볼 때 미쳤다 그랬잖아. 부모 생각하면 그 길을 어떻게 가? 그러나 그 길을 갔기 때문에 민주화도 되었고, 그런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나라가 독립이 된 거란 말이야. 그런 것처럼 자기가 미래에 적어도 이런 지나친 소비주의는 인류 문명의 미래가 아니다. 그러기 때문에 나는 이렇게 간다하면 내 자식도 그리로 가야지.
그런데 자식에게 반드시 가라고는 할 수 없단 말이야. 자기가 나중에 이런 자란 속에서도 자기는 그냥 세속으로 돌아갈 수도 있고, 독립운동가 자식 중에도 아들은 친일 한 사람도 있잖아. 그러니까 그것은 알아서 나중에 하는 것은 자기 선택이지만, 그러나 지금은 이렇게 가는 게 내가 좋다고 생각하면 내 아들부터 이렇게 가야지. 자긴 그럼 자기 아들은 빼 놓고 이 길로 갈래?
자식이 부모의 소유는 아니지만, 소유니까 내 맘대로 네가 예를 든다면 지금 의사 안 되겠다는 거 “의사 되라.” 변호 안 되겠다는 데 “변호사 되라.” 이것은 잘못된 거지. 내가 자식한테 “너도 이렇게 살아라.” 이렇게 강제하는 것은 아니잖아. 내가 이렇게 살면 애도 그렇게 따라 사는 거고, 자기가 커서 마음에 안 들면 자기는 딴 길을 가면 되는 거지.
그러니까 미래, 현재 우리의 교육시스템은 이것은 따라 배우기 시스템이에요. 이미 우리가 목표로 하는 선진국이 있고, 그것을 우리가 고대로 모방해서 간단 말이오. 모방을 얼마나 잘하느냐? 이게 암기란 말이오. 암기.
그러니까 암기력을 가지고 계산력을 가지고 성적을 매기고 순서를 매겨서 간단 말이오. 모방하는 것은 실수를 안 할 수 있지. 그래서 실수하면 이건 다 낙오가 되는 거요. 이렇게 해서 우리가 백년을 왔다는 거요. 그러나 우리가 실패한 것이 아니라 모방에는 성공을 한 거요. 일반 발표하는데 보면 미국의 기술수준을 100이라고 보면 유럽은 93, 일본은 90, 한국은 83까지 왔다는 거요. 일부 전자 같은 경우는 98 이렇게 온 것도 있고, 항공 우주 같은 것은 60, 평균적으로 이정도 와서 거의 근접했다. 이런 얘기에요.
그러면 여기에서 이제 정체가 될 수밖에 없는 거요. 이게 성장 동력의 소진하고도 관계있습니다. 인구 구성이라든지 이런 것도 있지만, 그러니까 이것을 돌파를 하려면 창조력이 있어야 되는데, 우리는 창조훈련을 아무도 안 배웠어. 창조적인 인간이 되려면. 창조라는 것은 집중력이 있어야 창조가 됩니다. 여러분들이 뭔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려면 엄청나게 집중을 해야 되요. 그래서 에디슨같이 과학 발견하는 사람들은 집중력이 굉장히 높잖아. “밥 먹어라.” 그래도 못 알아 듣고, 밥 먹고 난 뒤에 또 “밥 먹어라.” 그래도 또 가서 먹는다잖아. 아무 관심이 없으니까.
그런데 그 집중력이라는 것은 집중하라고 해서 집중이 안 돼. 자기가 좋으면 집중이 되요. 애가 만화 볼 때 집중력이 엄청나게 높습니다. 엄마가 불러도 귀에 안 들려. 그러니까 아이들에게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거기에 엄마가 의사가 좋다, 변호사가 좋다, 이러지 말고, 뭐든지 농사가 좋으면 농사를 하고, 장난감 만드는 것을 좋아하면 장난감 만들고, 뭐든지 좋아하는 것을 하도록 하고, 또 좋아하는 것을 찾는다고 강요하면 안 돼요. 좋아하는 게 없으면 아무거나 하면 되고, 좋아하는 게 있으면 그것을 하도록 하고,
그리고 정답을 주면 안 돼요. 선생님이 창조력을 키우려면 유치원 때부터 이거 어떻게 하면 좋아요? 하면 “이렇게요?” 하면 “오, 그것도 한 방법이다.” “이렇게요?” “그것도 방법이다.” “이렇게요?” “야, 그 생각은 선생님도 못해봤는데 그 생각도 괜찮네.” 정답이 없어요. 오엑스는 안 돼. 모든 생각을 할 수 있어야 돼.
요즘 재벌기업이나 외국에서는 엉뚱한 생각 하는 사람이 지금 필요로 하다잖아. 엉뚱한 사람. 약간 좀 정신병자같이 엉뚱한 사람. 그러니까 그렇게 해야 창조력이 나오지, 지금 같이 이런 것은 소위 말하면 따라 배우기 하는 추종의 문명, 모방의 문명에서 나오는 교육 시스템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제조업을 중심으로 하는데 따르는 노동자 훈련용 교육 시스템이라는 거요.
그런데 지금은 제조업 시대가 갔잖아. 다른 시대로 가요. 그 아이가 커서 30대가 될 앞으로 20년 후에는 지금 있는 직업이 얼마나 없어질지 몰라요. 전혀 다른 시대가 지금 도래 하고 있다니까. 그러니까 자기가 그런 저런 것을 생각해서 시작을 했으면 그냥 밀고 가야지.
아니라하면 자기가 빨리 보따리를 싸고 도시로 나오든지, 자기는 시골에 살더라도 애를 과외를 시키든지 그것은 자기 선택이에요. 그런데 지금 걱정한다고 될 일이 아니잖아. 자기가 무슨 애의 미래를 막는 것은 아니에요.
그러면 여기 있는 사람들 나중에 보면 여기 지금 애 학원 보내고, 뭐 보내서 지금 특목고 보내고 서울대 보내는 이 사람들 한 시대를 지나놓고 보면, 전부 아이들 장래를 망친 부모가 됩니다. 다시 말하면 조선조 말엽에 신학문이 들어올 때 상놈들만 신학문에 가고, 양반들은 전부 서당 가서 과거했잖아. 과거 한 게 조선왕조 무너지니까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요? 그런 것처럼 지금 학교 교육이 이런 마지막 단계에 지금 와 있다니까. 학교 교육이.
그런데 대안을 찾을 수가 없죠. 왜? 아무도 경험 안 해 본 미래니까. 그리고 특히 학부형이 자기 경험위에서 자기가 살아온 세계에서 어떤 게 “유명한 대학이 좋더라, 뭐가 좋더라.” 이것을 가지고 자식에게 지금 요구하고 있는데 여기에 30년 차이가 난단 말이오. 30년 후가 어떤 사회인지도 모르면서. 선생도 다 그런 사고방식을 가지고 지금 하고 있기 때문에 사회가 교육이, 제일 늦는 게 법률, 제도고, 그 다음이 교육이에요. 교육이 엄청나게 보수적이에요.
왜냐하면 이것은 미래를 예측할 수 없으니까 애들 보고 교육을 자기 마음대로 하라고 하면 애들은 잘 할 거요. 요즘 학교 부적응이 생기는 아이들은 단순히 아이들 문제가 아니라, 시대의 변화에 기성세대가 부응을 못하기 때문에 지금 엄청난 부적응 자를 만든단 말이오. 그 부적응 자가 어쩌면 천재인지도 몰라요. 그런데 아이들은 아직 모르지. 그래서 조선조 말엽에도 농사짓고 살라는 데, 돈 갖고 도망가서 도시로 가서 이래서 재벌 되고 그러잖아. 그럼 부모가 그 당시에 볼 때는 불효막심한 놈이고 미친놈 취급을 한단 말이오.
그러니까 지금 변화기에 놓여있다. 그래서 아이에게 부모가 기회를 줄 수가 없어요. 지금 기회를 준다고 하는 사람들은 자기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스님이 요만큼이라도 여러분과 대화를 하는 것은 학교를 덜 다녀서 그래요. 두 번째는 요만큼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승려의 권위 질서에 덜 편재되어있기 때문에 이게 가능한 거요. 거기 편재되었으면 그 질서 속에서 승진한다는데 몰두되었으면 이런 얘기를 여러분과 자유롭게 할 수가 없어지지.
그러니까 이것은 실패, 새로운 길을 가는 것은 길이 없으니까 이리로 갔다가 안 되면 저리로 가고, 저리로 갔다 안 되면 이리로 가니까 실패가 일상화 되는 거요. 그러니까 이
모방시스템에서의 실패는 곧 좌절이지만,
이 창조에서의 실패는 그저 일상이에요. 일상.
이래도 안 되면 저리해보고, 저래도 안 되면 이리해보고 이러는 거요. 그런데 부모는 자식이 그런 가는 길을 막지. 부처님이 출가할 때 부모가 반대했고 이런 것처럼, 왜냐하면 불확실한 미래니까.
자기는 한쪽으로는 이렇게 생각하면서 또 자식은 자기 경험에 기초해서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혼란이 오는 거요. 그러니까 저는 어떤 길이 좋다. 지금 미래가 어떻다고 누구도 말은 못하니까. 그러나 적어도 30년 후에는 지금 같은 우리가 갔던 경험, 좋은 대학의 학벌이 중요한 가치가 되겠느냐? 그렇지 않아요. 이제는 재능이 가치가 되지, 학벌이 학위가 중요한 가치가 안 되는 시대로 접어들어 온다.
제가 가진 재능 중에 여러 가지가 있는데, 하나가 지리를 잘 안다는 거요. 그런데 미국에 가도 지도 딱 보고, “야 차 이리로 몰아라. 저리로 몰아라.” 이렇게 간섭할 정도요. 그런데 이 엄청난 재능이 무용지물이 되어버렸어요. 내비게이션이 나오므로서. 아무 쓸모가 없어져버렸어요. 이런 식이 된다니까요. 엄청난 재능이 순식간에 무용지물화 된다니까.
우리 어릴 때 암산 잘하고 주산 잘하고 부기 잘하고 이게 엄청난 재능이에요. 그런데 지금 그게 무용지물이잖아. 그냥 물리 터치만 할 줄 알면 되는데.
그러니까 부모의 심정은 나도 이해가 되요. 그러나 지금은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는 시대이기 때문에 아이가 심리적 안정, 그래서 심리적 불안정이 문제요.
그러니까 심리적으로 안정되고,
정신적으로 건강하게만 키우면
다음은 아이들이 선택해가지
엄마가 간섭할 일은 아니다.
육체적으로 건강하게 좀 키우고,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키우는 게 중요해요.
대부분 지금 강요에 의해서 심리상태가 대부분 억압이 되어있고,
그다음 두 번째는
너무 종속적으로, 말 잘 듣도록만 훈련되어 있기 때문에
한편은 저항을 하고, 한편으로는 자기가 어떻게 해야 될지도 모르는
이런 젊은이를 지금 계속 양산하고 있다니까.
이게 전통적인 질서로 갈 때는 괜찮은데,
변화된 질서 속에는 이런 사람들은 뭘 어이해야 될지 몰라요.
직장을 그만두고 딴 거 할, 뭘 해야 될지 모르는 거요.
자기 전공한 분야, 선생이면 선생하거나, 변호사면 변호사 하는데, 그거 안 해버리면 딴 거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니까.
승려가 가서 목탁치고 염불하고 재 지내는 이것만 배웠는데, 만약 승려생활 20년 하다가 머리 기르고 밖에 나오면, 자기 절에서 배운 것 온갖 재능이 세상에 쓸모가 없어요. 이 교육은 이제 끝났다는 거요. 이것은 죽은 사람 재지내고 거기에만 쓸모가 있지, 옷 입고 있을 때만 쓸모가 있지, 옷 벗고 나오면 그건 아무 쓸모가 없는 교육이란 말이오. 그러니까
실제로 머리가 길었든 짧았든
옷을 이렇게 입었든 저렇게 입었든
어디든지 가면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는
이런 재능이 필요로 하는 시대가 도래를 하고 있는 거요.
변화 시기에.
양반은 떡 앉아서 천자문을 외워도, 삶이 유지되는 시대가 그 18세기 말에 변화되면서 다 몰락했잖아. 지금 그런 변화가 빠르게 도래하고 있어. 그런데 옛날에는 서양에 가보면 우리가 가야할 사회가 있으니까 “아, 10년 후에 저렇게 가겠다. 50년 후에 저렇게 가겠다.”는 게 있는데, 이제는 전 지구가 새로운 변화로 가니까 우리가 딴 저 별세계에 가서 선진문명을 보고 “아, 우리 지구도 이렇게 가겠다.” 이런 예측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거요. 이제 어디로 튈지도 모르고 있다는 거요.
그러니까 문제는
어떤 상황이 벌어져도
적응할 수 있는 정신력을 갖도록 애를 키우는 게
부모가 해야 할 가장 큰 책임이고
그것은 특별히 노력 안 해도
엄마가 인생을 재미있게 살면,
정신적은 저절로 건강해 지는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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