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유독 친구욕심이 많습니다
어릴 때부터 모든 걸 함께해줄 단 한 명의 바라곤 했는데요
그러다보니까 어릴 때는 친구가 저 말고 다른 친구와 노는게 싫어서 이간질해서 떼어놓아 괴롭히기도 했었습니다.
현재는 그 습관이 남아있어서 아무 노력하지 않아도 친구들이 나를 사랑해줬으면 좋겠고 언제나 이야기의 중심이 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올라옵니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수행을 해야 친구관계에서 그런 욕심이 들지 않고 편안해 질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러니까 사람과 사람이 서로 만나는데 사람마다 다 선호도가 달라요. 예를 든다면 고양이에 대해서 어떤 사람은 너무너무 예뻐하는데, 어떤 사람은 고양이 소리도 듣기 싫어하고 고양이 털도 싫어하고, 아예 기겁을 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얘기에요.
다수 사람들이 뱀을 싫어하잖아. 그죠? 그런데 서양에 가보면 뱀을 애완용 동물로 키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백화점에 가면, 백화점이라고 보기보다는 우리말로 할인마트 같은데 가면 애완용 뱀을 팝니다. 우리 쥐, 다 싫어하잖아. 그죠? 쥐를 호주머니에 넣어 애완용으로 갖고 다니는 사람이 있거든요. 그러니 이렇게 사람이 서로 다르다는 거요.
그런데 우리는 자기 성향에 안 맞으면
“저 사람 미쳤다”든지,
“왜 저 짓하냐?”라든지
이런 경우가 많다는 거요.
그래서 이 세상에서 갈등이 생기는 거요.
사람과 사람사이도 마찬가지에요.
그러니까 제가 이렇게 여러분과 인생 상담을 하는 이것을 두고, 여러분들은 스님이 오히려 우리 사는데 가까이 와서 이렇게 내 어려운 고민을 얘기 들어주고, 대화를 해주니 좋다. 이렇게 생각하는 분도 있죠. 그런데 다 그렇게 생각할까? 아니에요.
일부 스님들은 스님이 되었으면 좀 법문을 해야지, 공이 뭐냐? 화두가 뭐냐? 이런 것을 해야지 중이 되어서 속인들, 무슨 부부관계니 뭐니 그런 얘기나 하고 있다. 좀 중 체면을 깎는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는 거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댓글에 올라오는 것도 보면 열렬히 찬성하는 사람도 있고, 극단적으로 비난하는 사람도 있지 않습니까? 그죠? 그러니까 사람의 성향이 이렇게 다르다는 거요. 취향이 다르기도 하고, 생각이 다르기도 하고, 가치관이 다르기도 하고. 그러니까 사람이 서로 다르다, 이것을 우리가 인정을 해야 되요.
그런데 우리는 다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내 생각처럼, 내 취향처럼 되는 게 옳은 거요.
그게 다른 거는 틀린 게 되는 거요.
그래서 짜증이 나고 화가 나고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거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다름을 인정해야 된다는 거요. 다름을 인정해라. 갈등을 하지 않는 첫 번째가 다름을 인정해라. 두 번째, “아, 그 사람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구나.” 그게 옳다 그르다가 아니라. 두 번째는 “아, 저 사람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 이것을 뭐라고 그래요? 이해라고 그래요.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면
이 세상에 갈등이 생길 일이 없어요.
여러분들의 부부관계도 나와 다른, 다른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남편하고 나하고는 식성도 다르고, 취향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고, 많이 다른 게 있는데 내 생각하고 틀린다고, 내 원하는 대로 안 된다고 여러분들은 짜증을 내잖아요. 남편도 마찬가지고. 애들하고도 관계도 마찬가지에요.
그러니까 우리 자랄 때를 기준으로 보면 우리자랄 때는 공부를 하고 싶어도 조건이 안 되어서 공부를 못했어요. 그런데 요즘 애들은 아니 학교도 보내줘, 학원도 보내줘, 자기 방도 줘. 책상도 줘. 그런데도 공부 안하니까 이해가 안 되죠.
제가 며칠 전에 전주에 가서 학교 선생님 상대로 강연을 했는데, 문제아라고 하는 그것 때문에 굉장히 선생님들이 힘들어요. 그래서 제가 그런 얘기 했어요. 이사장님도 계셨기 때문에. 선생님을 뽑을 때, 과거 학생 때 중고등학생 때, 뭘 사고를 쳐서 정학을 먹었거나 이런 사람 중에 생각을 크게 뉘우치고 착실히 공부해서 사범대를 간사람, 이런 사람을 채용하면 좋다. 그러면 아이들이 이렇게 농땡이를 쳐도 이해가 되요. “나도 그만할 때 그랬지. 그리고 나도 그랬지만 지금 생각을 바꿔서 이 자리에 왔으니까, 쟤도 그렇게 좋아질 수 있다.” 이렇게 되는데,
이 선생님이 우리나라는 어떤 분이 선생님이 됩니까? 착실한 사람이 선생님이 되죠. 학교 다닐때 공부 잘하고, 절대로 모범적이고, 그러니까 사고 안치는 요런 사람들이 주로 사범대가서 선생님이 되니까, 학생들이 공부를 안 하고 딴 짓하는 게 이해가 안 되는 거요. “어떻게 학생이 이럴 수가 있냐?” 이렇게 되는 거요. 그러니까 스트레스를 받고 본인도 힘들고, 아이들 교화를 제대로 할 수가 없어요. 화부터 나고. 혼내줘야 된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이게 세대가 달라졌다. 처지가 달라졌다. 그러면 “저 처지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구나.” 남북한도 마찬가지에요. “북한 입장에서는 불안하니까 저럴 수가 있겠구나. 북한 사람들도 남한의 입장에서 볼 때 자기들 한 행동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일본사람 입장에서는 그래, 그럴 수도 있겠다.” 이렇게 되어야 되는데, “어떻게 저럴 수가 있어?” 우리 입에만 서서. 그러니까 이게 나라사이에도 갈등이 생기는 거요. 여야 사이에도 갈등이 생기고, 여당 안에도 친박 비박, 야당 안에도 친노 비노. 이래서 지금 분열의 분열의 분열을 거듭하지 않습니까? 그죠.
이게 지역갈등이 생기고, 종교 간에 갈등이 생기고, 부부간에 갈등이 생기고, 부모 자식 간에 갈등이 생기고, 이 원인은 우리는 서로 다를 수밖에 없는 존재인데, 다 자기 식으로 사물을 보기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첫째 다르다. 이게 진실이에요. 다르다는 게 진실이다. 이것을 인정하자. 두 번째 그 사람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구나. 이해하자. 이해하자는 말은 옳다 그 얘기가 아니에요. 그러면 내가 뭐가 안 생긴다? 화가 안나요. 스트레스를 안 받는다. 스트레스를 안 받는 그런 상태 하에서 우리는 “그러면 어떻게 할래?” 이렇게 대화를 할 수가 있다.
그러면 지금 질문하신 분으로 돌아가서 정리를 하면, 내가 그 친구를 좋아하지만, 그 친구는 다른 친구도 좋아할 수가 있는 거요. 세상이 다 내 입맛대로 될 수가 없는 거요. 그러니까 그것을 자기가 인정해야 된다는 거요. 이 세상에서 보면 나는 저 사람을 좋아하는데 저 사람은 또 다른 사람을 좋아하고, 또 다른 사람을 좋아하고 그러잖아. 이성간에도 그래요. 난 저 사람 보기만 해도 흥분이 되고 죽고 못 사는데, 그 사람은 아무 관심이 없어요. 그런데도 또 그 사람은 또 딴 사람한테 그런 경우가 있어요. 그게 서로 다르다는 거요.
나는 고양이를 좋아하는데, 어떤 사람은 고양이 싫어하듯이. 그것을 자기가 지금 이해하는 게 필요하다. 이런 인간의 삶의 원리를. 이것을 이해하면 “아, 쟤는 저렇구나. 쟤는 저렇구나. 쟤는 저렇구나.”
내가 질투심을 느끼면 “내가 내 중심으로 생각하구나.” 이렇게.
이것을 “고쳐야 되겠다.” 하면 안 고쳐져요.
나도 이게 안 고쳐진단 말이오.
그러면 나를 학대하는 거요. “넌 안 돼.” 이렇게 된단 말이오.
고치려고 하지 말고.
“아, 내가 또 내 중심으로 보구나.”
“또 내식대로 하려고 그러구나.”
“아, 저 사람은 저래서 그렇구나.” 이렇게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자세로
안 되면 또 “아, 내가 놓쳤구나.” 이런 자세로 해 나가면 되요.
이미 지나가버린 거는 어때요?
신경 쓸 필요가 없어요.
그때는 내가 어리고 어리석어서
이 이치를 이해 못해서
질투도 하고, 짜증도 내고, 남을 해코지도 했는데,
이제 돌이켜보면 바보 같은 짓을 했구나.
앞으로는 안 그래야지.
이게 중요하지,
“아이고 옛날에 내가 왜 그랬노. 바보같이.” 이렇게 하는 것은 아무 도움이 안 돼요.
그거 찾아서 사과하러 다닐 필요도 없고,
만약에 우연히 만나서 그 사람이 그 얘기하면,
“아, 그때 내가 어리석어서 그랬다. 죄송하다.” 이렇게 하면 되는 거요.
그 사람은 어쩌면 잊어버리고 기억도 못할 수도 있어요.
어쩌면 내가 생각한 것 보다 더 상처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고.
그것은 지금 내가 알 수도 없고.
그것은 신경 쓰지 말고
앞으로 안 그래야 되는 쪽으로 가는 게 필요하다.
그럼 지나간 것은 그런 일에 부딪히면,
그런 문제가 생길 때, 고집하지 말고
“아이고, 죄송합니다. 그때 내가 바보 같아서 그랬어. 미안해.”
이렇게 하고 지나가면 되요.
용서 받으려고도 하지 말고,
용서 받으려는 것도 내 욕심이에요.
용서 하고 안하고는 누가 하는 거다?
그 사람이 하는 건데,
“내가 사과를 했는데, 네가 어떻게 용서를 안 해줄 수가 있어?” 이래서 또 싸워요.
그러면 안 돼.
“죄송합니다.”하는 것은 나고,
그것을 받고 안 받고는 그 사람의 영역이니까
그 사람한테 남겨 줘야 된다.
그러니 지나간 과거는 내려놓고,
앞으로는 이것을 이런 이치를 이해하면서 놓치면 “놓쳤구나.” “안 놓쳐야지.”
또 놓치면 “아이고 또 놓쳤구나.” 다만 이렇게 알아차리고 알아차릴 뿐이지,
“고쳐야지.” 이렇게 너무 결심해도 안 돼요.
왜? 쉽게 안 고쳐지기 때문에.
질문 더 있으면 하세요? 됐어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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