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제가 이랬으면 좋겠다는 이상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저의 모습은 이상향과 거리가 좀 멉니다.
그래서 이 괴리감이 있을 때 마다 너무 괴로워가지고
스님께 여쭤보러 왔습니다.//
자기도 지금 횡설수설하고 있어.
말이 지금 안 된다.
내가 원하는 게 있다. 누가나 다 원하는 게 있어.
그런데 원하는 게 안 이루어진다 이거야?
그러면 이런 모습이고 싶은 게 실상일까,
지금 하는 꼬라지가 실상일까?
그래.
실상을 봐야지 허상을 보니까 문제가 생기지.
지금 하는 꼬라지가 실상이란 말이야.
그런데 여기 있는 사람들이 다 자기가 잘난 줄 알고, 자기가 뭐 되는 줄 알고 허상에 사로잡히니까, 자학이 생기는 거야.
내 꼬라지가 보기 싫단 말이오.
나는 이러고 싶은데 현실이 그렇지 않을 때,
이 허상을 중심에 두면
꼬라지가 초라해 보이니까
자살하는 원인도 다 이런데서 생기는 거요.
허상을 버려야 돼.
자기가 되고 싶은 모습(허상)에 너무 집착을 하면
현실의 내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허상을 따라갈 수가 없어.
예를 들어서 내가 달리기를 한다.
그런데 내 실력은 체크 안하고 올림픽게임을 보니까 100미터를 10초에 뛰는 사람이 있어.
“그래, 나도 10초에 뛰어야지. 너만 되나? 나도 될 수 있다.”
이래서 10초를 목표를 해놓고 내가 3년 노력해도 될까? 안 될까?
안되겠지.
그러면 “하아, 난 안된다.” 이런 게 생긴단 말이야.
그렇게 하지 말고
내가 직접 먼저 한번 뛰어보는 거야. 뛰어보니까 25초 나왔다.
25초는 빠르나? 하하하.
25초 나왔다. 이게 실상이란 말이오.
22초에 기준을 두고 ‘야, 23초를 한번 뛰어봐야 되겠다’
이렇게 목표를 세우면 석달 노력하면 25초에서 23초 달성 가능해요 안 해요?
달성할 확률인 높지, 가능하다고 말할 수는 없고, 맞습니까?
확률이 높아.
그럼 23초를 뛴 뒤에
‘야, 되네. 나도. 그러면 내가 22초 한번 해볼까’
이래서 3개월 연습하면 1초 당겨질까? 안 당겨질까?
그럼 이 작은 성공이 하나, 둘, 셋, 넷 쌓이면
“나도 괜찮네.” 이런 생각이 드는 거요.
그래서 자부심이 생기는 거요.
욕심이 많으면 자학증세가 심해지는 거요.
그래서 욕심을 버리라는 거요.
100미터 뛰겠다는 거는 욕심이라는 거요.
현실 위에서 세운 게 아니라는 거요.
그러나 현실 위에서 ‘23초 뛰겠다’하는 것은
원한다고 다 욕심이라고 말 안 해요.
안되면 다시 한 번 더 하면 되고,
그래도 안 되면 그만두면 되요.
자기가 지금 너무 높이
목표를 잡고 있기 때문에
지금 자기가 힘드는 거요.
항상 현실에서부터 출발하자!
하늘에서부터 자꾸 내려오지 말고
지금 내 건강, 내 나이, 내 체질, 내 취향
요 현실에서 되는 거,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에 출발해서 조금 더 개선하겠다
목표를 이렇게 세워야 되겠다.
아까 저기 화 버럭버럭 내는 사람,
“내가 다시는 화 안내겠다. 앞으로 화내면 이혼하겠다”
이러면 그건 100% 약속 못 지킵니다.
내가 화는 내는 건 내가 어쩌지 못하더라도 화를 낸 뒤에라도
“아이고, 여보 내가 미안해. 내가 화를 냈어.
아니고 내 성질 이런 거 살아준다고 힘들지. 미안해.”
이렇게 얘기했으면, 화 벌럭벌럭 내는 인간하고도 살까 안 살까? 살겠지.
사실을 사실대로 인정하면 되는데
화를 벌컥 내놓고, 지 성질 때문에 내놓고는
아내한테 문제를 “네가 그러니까 화가 나지.”
이렇게 문제제기하고 집어던지고 깨고 이러니까 못살지 어떻게 살겠어.
한두 번도 아니고 10년을 어떻게 살겠어. 못살지.
이거 안 살아본 사람은 몰라요.
이런 사람하고 살아보면 진절머리가, 정이 딱 떨어져버려요.
“그래도 10년 살아준 거 고맙다.”
이렇게 마음을 내야 내가 마음이 편하다.
자기도 너무 이상을 쫒지 말고, 이상이 세우지 말라는 게 아니라
목표를 크게 정해졌다.
그럼 미국하고 요번에 북한이 왜 협상이 안 되었을까?
목표를 너무 크게 정해서 그래.
미국은 주는 건 없이 “다 없애라.”
북한은 내 놓는 거 없이 “다 풀어라.” 이러니까 되겠어? 안 돼지.
내건 좀 많이 내놓고
상대 건 조금씩 요구하면 협상이 금방 되지.
욕심을 내기 때문에 안 되는 거요.
알았지?
--
자기 몇 살이오?
그래. 그러면 자기는 화를 벌럭버럭 내고 직장도 없는 22살이 났겠어?
이렇게 많이 알고, 인기도 있는데 67세인 사람이 낫겠어?
둘 중에 하라면 어느 걸 하겠어?
거봐.
그러니까 자기는 지금 나이 하나만 갖고도 나를 능가한다 이 말이오.
아시겠어요?
법륜스님도 이렇게 웃으면서 잘 사는데, 자기가 못살 이유가 뭐가 있어?
알았지?
내가 뭘 하고 싶다는 것이 나쁜 게 아니에요.
도달할 수 없도록 목표를 정하면
결국 욕심은 누구에게 상처를 남긴다?
자기에게 상처를 남기고 괴로움이 생긴다.
그래서 그 수준을 실현 가능하게 조금 낮춰서
달성하면서 가라는 것이다.
그래야 자신감을 갖고 꾸준히 갈 수 있다.
요렇게 살면, 살아있는 것만 해도 행복하다.
아침에 눈 딱 뜨면
‘감사합니다. 오늘도 살았네.’
요런 마음을 내면 하루가 아주 좋아져요.
그렇게 생활하시기 바랍니다.
'법륜스님 > 즉문즉설(2019)'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제 1503회] 중년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0) | 2019.06.12 |
---|---|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제 1500회] 상황에 따른 차별 (0) | 2019.06.11 |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제 1502회] 어떤 마음가짐으로 절하고 아이들을 보살펴야 할까요 (0) | 2019.06.07 |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제 1501회] 감정적 반응과 이성적 판단 (0) | 2019.06.04 |
법륜스님의 희망세상만들기_알콜중독 남편과 사춘기 아들 (0) | 2019.05.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