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지 뭐.
이렇게 생각해요. 자기가 지금 몇 살이오? 36세 된 엄마도 애하고 저렇게 성질내어서 싸우는 것 하나 못 고치면, 7살짜리는 어떻게 그걸 고치겠어. 그러니까 자기 자식은 자기 보다 더 못해진다. 이렇게 생각을 하면 되고. 자기가 자식이 있는 엄마가 아니라면 그래도 괜찮아요. 그런데 자기가 그렇게
안 좋은 것을 안 좋다고 알고 그렇게 하면
앞으로 내 자식도
안 좋은 줄 알면서도 못 고치고
계속 무슨 짓이든 앞으로 그렇게 할 가능성이 거의 90%지.
그것은 자식 키우는 부모로서는
어마어마한 과보를 짓는 거 아니오.
앞으로 애가 커 나가는데, 애가 공부해야 되기는 되는데 하면서 공부를 안 하고, 나쁜 짓 안해야 되는데 하면서 그것을 못 끊는 거요. 왜? 엄마가 그렇게 했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그 까르마를 받았기 때문에.
그것도 결국은 화내서 애를 바꿀까? 그러니 지금 어느 정도냐 하면 말로 해서 안 바꿔지니까 화내서 바꾸겠다. 이 말 아니오. 화를 내도 안 바뀌니까 나한테 묻는 거 아니오. 그러니까 내가 뭐라고 그랬어. 바꿀 생각 하지 마라 그러잖아.
바꿀 생각을 안 하면 이런 고민 하나도 안 되지. 자기가 지금 바꿀 생각을 하니까 이것을 때려서 바꿀까? 화내서 바꿀까? 지금 말로해서 바꿀까? 제일 좋기는 말로 해서 바꾸는 게 제일 좋은데, 말로 하니 꼼짝도 안하고, 화를 내도 화를 내서 바뀌었으면 나한테 묻지도 않았을 거요. 요새는 그게 중독이 되어 화를 내도 안 바뀌니까 여기 와서 아마 물을 거요. 그럼 뭐든지
매를 때리면 처음에는 듣는데,
시간이 일정하게 지나면
매에 타성이 붙거든요.
때린다 해도 별로 겁이 안나요.
그래서 사회적으로도 엄벌에 처한다. 하는데
엄벌에 처하면 초기에는 좀 효과가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엄벌에 처하는 것도 뭐가 된다?
하나의 현실이 되기 때문에
효과가 없어져 버려요.
그래서 더 극한, 더 극한으로 가거든요.
사회 형벌도 그래요.
그러면 나중에 지도자가 정말 극악무도한 인간이 되지 않습니까. 우리 가끔 역사에 보면 지도자가 백성들을 진짜 극악무도하게 했다. 왜 그럴까?
그 전에 엄벌에 처하고, 엄벌을 처하고, 엄벌을 처한 게 누적 되도 안 들으니까 그때 가서 극악무도하게 되면 자기 인생 버리는 거지. 엄마가 완전히 나쁜 사람이 되는 거죠. 그래서
자꾸 아이를 내 맘대로 하려고 하지 마.
그것을 먼저 버려야 내 화가 없어져.
내 의견을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하는 의견을 말해야 돼.
뭘 갖고 하느냐?
5가지만 조금 더 엄격하게 해야 되는 것,
*남을 때리거나 죽이는 것. 이럴 때는 그게 왜냐하면 그 사람한테 앞으로 남을 죽이는 게 만약에 나중에 커서라도 되면 자기 인생 망치는 거 아니오. 타인을 위해서도 자기를 위해서도 그것은 안해야 돼.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뺏는 것,
*성추행하거나 성폭행 하는 것,
*거짓말 하거나 욕설 하는 것,
*어른이 되면 술 먹고 취하는 것. 먹는 것을 탓하는 게 아니라 취하면 4가지를 다 어기기 때문에.
그게 아니면 가능하면 대화를 해야지, 그렇게 하면 좋고, 안 해도 그만이어야지, 야단을 치거나 하면 안 돼. 야단은 나쁠 때 야단을 치는 거거든요. 그러면 애가 성적이 떨어졌다. 하는 것은 나쁜 짓 한 거요? 이 4가지에 속해요? 안 속해요? 야단치면 안 돼요. 어쩌면 좋은 일 했어요. 다른 애 성적을 올려줬기 때문에.
수업시간에 잔다. 이것은 4가지에 들어가요? 안 들어가요? 안 들어가요. 그러니까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자는 애를 야단치면 안 돼요.
수업시간에 떠든다, 이것은 다른 애에게 방해가 되죠. 이것은 타이르고 안 되면 격리시켜야 되요.
그러니까 이 가치관이 딱 잡혀야지 자기가 애보고 밥 안 먹는다고 야단을 친다. 그것은 전혀 자기 욕구지 애하고는 관계가 없어요. 애는 그냥 먹기 싫어서 안 먹는 거요. 밥 먹어라 해서 안 먹으면 정리해놓고 나중에 달라면 주든지, 달라할 때 “네가 찾아먹어라.” 이러면 되는 거지. “엄마는 딱 하루에 3끼 차려주는 것 이상 바빠서 못한다. 제 시간에 먹던지 네가 알아서 먹든지 굶든지.” 이렇게 원칙을 정해주면 되요.
그것은 자기가 아이한테 집착하기 때문에 아이를 더 나쁘게 만드는 거요. 아이를 바꾸겠다. 이런 생각하지 마. 4가지만 딱 정신을 차려요. 남을 때리는 것, 죽이는 것은 아직 없으니까, 두 번째 뭐라고? 물건을 뺏거나 훔치는 것, 성추행하거나 성폭행 하는 것, 그 다음에 욕설하거나 거짓말 하는 것, 빼놓고는 간섭하지 마라.
애가 부모가 주로 엄마를 속이는 것은 애가 그냥 속이는 잘못이 있지만, 공부하기 싫은 애를 계속 공부하라 그러고, 약속을 억지로 잡으면 엄마 없을 때 공부를 안 하고, 엄마 왔을 때 공부 했나 안했나 하면 뭐라고 대답할까? 했다고 대답하겠죠. 거짓말이오? 거짓말 아니오? 거짓말인데, 이런 거짓말은 아이 잘못에서 오는 거 아니오. 엄마가 지나친 요구를 했기 때문에 거짓말이 생기는 문제이기 때문에. 거짓말도 종류가 틀려요.
엄마가 되려면 자기가 그런 성질로, 그러면 자기도 가만히 보면 자기 엄마 성질 보면 자기 어릴 때 어때요? 엄마 성질대로 안 되면 엄마가 패악을 지르고 했어? 안 했어? 안 한 거 같아? 아이, 그렇지 않아. 그런데 그 성질이 어디서 배웠을까? 그러면. 그럼 자긴 더 나쁘지. 엄마가 안 그랬는 데도 자기는 어디 가서 그런 성질을 받아왔어요? 이웃집에서 받아왔나? 그러기 때문에 엄마가 안 그런 것 같은데도 그런 성질이 있다 그러면, 자기가 그러면 아이는 훨씬 심해지지.
그래서 나의 이런 것들이 나쁘다고 알면서도 내가 못 고치고 엄마가 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굉장히 나빠져요. 그러니까
자기부터 먼저 고치는 게 중요하지.
애를 어떻게 하려고 하지 마라.
그럴 때 화가 나면 방에서 절을 하세요.
“아이고, 내가 내 성질대로 애를 키우려고 하구나.”
엄마의 사랑이 아이들에게 필요하지, 성질이 필요한 것은 아니에요.
자기 화풀이 대상이 아니다. 이 말이오.
그러면 애가 나쁜 짓해도 놔둡니까? 그것은 성격이 달라요. 옛날에 우리 선조들 어머니들이 애가 잘못을 저지르면 매를 꺾어 와서 자기 종아리를 걷고 애보고 때려라. 이런 얘기 들어봤죠. 안 그러면 애를 종아리를 때리고 이럴 때 그게 성질이 나서 그렇게 합니까? 아이를 바르게 이끌려고 그렇게 합니까? 바르게 이끌려고. 거기는 사랑이에요. 그래서 매라도 그것은 사랑이에요. 자기는 매를 안 때려도 자기 성질, 자기 화풀이하는 것이지, 사랑이 아니라고.
아이를 너무너무 내 가슴이 아파서 “저렇게 하면 아이가 안 된다” 해서, 그래서 내가 어떤 방법을 연구해서 하는 게 아니란 말이오. 콱 내 성질대로 안 되니 눈이 뒤집어져서 악을 지르는 거지. 그것만 딱 알면 돼. 그러면
자기 성질을 못 이겨, 애한테 화풀이 하지 말고
빨리 방에 가서 절을 하면서
내 업을 참회하는 게 중요해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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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2.
제가 고3 딸이 있는데요. 세상에서 부모 노릇하는 게 제일 힘듭니다. 큰 아이한테 집착을 하다 보니까. 잘 되라고 매를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엄마에 대한 나쁜 상처만을 안고 자랐더라고요. 처음부터 너무 꼬인 끈이 돼서 어떻게 해줘야 되는지. 어떻게 해야 상처를 아물게 해줄 수 있는지요?//
애 키우면서 힘드신데, 다 자기가 지은 인연의 과보에요. 그러니까 아까도 제가 얘기했잖아. 아이들을 때리고 성질내고 하면 그게 뭐가 되고? 만성이 되기 때문에. 만성이 되기 때문에 그게 처음에는 교육효과가 단기적인 것은 효과가 있지만, 시간이 흐르면 아무 효과가 없어지고 저항심만 불러오고, 그게 부모도, 형제도 눈에 보이는 게 없어지는, 그런 것으로 가기 때문에 아까 이쪽에 애한테 성질낸다는 엄마 어디 갔노?
7살짜리에게 성질낸다는 엄마, 나중에 저렇게 되는 거요. 그러니까 아주 좋은 예에요. 사춘기 넘어가면 저렇게 딱 과보가 돌아옵니다. 안 봐도 다 보이는 거요. 그러니까 자기가 정신을 지금부터 차려야 되는 거요. 이것을 한 치도 애 잘못도 아니고, 전생에 업 탓도 아니고, 자기 지금 이전에 자기가 지은 인연의 과보다. 자기가 그저 애를 키우는 데, 애는 엄마의 사랑을 먹고 자라요. 젖을 빨고 자라고, 엄마의 사랑을 먹고 자라는데,
엄마가 어리석게도 아이한테 사랑은 안주고
그저 지 장사하기 바빠서 정신을 팔고
그저 교복 좋은 거 주고, 밥 좋은 거 주고, 학교 좋은데 보내면
아이는 잘 될 거라고 완전히 오산하고 키웠기 때문에.
그리고 그렇게 안한다고 악을 악을 쓰고 키웠기 때문에
아이도 마음에 악심만 남아서 이제 이런 현상이 빚어지거든요.
그러니까 중학생짜리 아이한테 자기 성질대로 안 되어서 칼을 가져가서 “내가 네 앞에서 팍 죽어 버릴란다.” 이런 식으로까지. 그러니까 한마디로 말하면 자긴 지금 뭐라고 얘기할지 모르지만, 스님이 볼 때는 독한 여자요. 엄마자격이 없는 사람이에요. 애들을 엄마 그렇게 하면. 그러니까 애도 커서 그대로 자가기 애를 속 썩이는 방법은 “내가 팍 죽어야 네가 엄마 없이 살아봐야 네가 정신 차리겠다.” 이런 성질이 돋워서 말이 나오듯이, 애도 성질이 나니까, “내가 니 앞에서 팍 죽어버려야 네가 얼마나 좋으냐. 그래야 네가 속이 시원하겠냐?”
그러나 그것은 속이 시원하라고 죽는 게 아니고, “내 죽고 난 뒤에 네가 울고불고 고생을 해라.” 보복심이란 말이오.
그래서 부모가 자식을 못이기는 방법은
자식은 부모 뱃속에서 낳아서 자랐기 때문에 부모의 약점을 누구보다도 알잖아요. 그래서 다섯 살, 여섯 살, 요렇게 어릴 때 아이들이 부모에게 이기는 방법은 “밥 안 먹는다.” 거든요. 그러니까 자식이 자학이라고 그래요. 자기를 자학함으로 해서 부모는 자식보다 더 귀한 게 없으니까, 자식이 밥을 안 먹으면 부모 속이 타잖아. 그래서 부모에게 이기는 거요. 결국은. 그러면 부모가 “아이고, 그래 잘못했다. 잘못했다. 얘야, 밥 먹어라. 내가 잘못했다.” 이리되잖아.
그럼 사춘기가 되면 부모에게 이기는 방법이 뭐요? “밥 안 먹어.” 이래봐야 끄떡해요? 안 해요? 끄떡도 안 해. 그 다음에 두 번째가 뭐요? “집 나가.” 이거거든요. 그럼 사춘기 아이들이 여자애들이 집나가서 팔려도 간다. 어쩐다 하니까 부모는 걱정이 되요? 안 돼요? 걱정이 되니 집나간다. 집만 한번 나갔다오면 부모가 싹싹 빈단 말이오.
그런데 20살이 되고 하면 “집 나간다.” 이래도 눈 하나 끔쩍 안 해요. “그러면 너 같은 것은 없는 게 좋겠다.” 이 정도로 나오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쓰는 게 “죽겠다.” 이거거든요. 그러면 어떤 부모도 자식이 칼을 품고 죽겠다 그럴 때 “그래, 잘 죽어라. 아이고, 너 죽으면 내가 속이 시원하겠다.” 이런 부모가 있을까? 없을까? 없어요. 그러면 무조건 “저거 죽는 게 낫겠다.” 싶어도 정말 “죽는다.” 그러면 또 가서 싹싹 빌어야 되는 거요. 이게 자식이 부모에게 이기는 방법이기 때문에
부모가 자식한테 이기려고하면 안 돼요.
이기려고 하면 근본적으로 이길 수가 없는 조건으로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자식한테 이기려면 한가지 길 밖에 없습니다.
죽어도 눈도 깜짝 안할 정도로 마음이 딱 그냥,
그것이 사랑의 마음에서
“그래, 그렇게 사는 인생은 죽는 게 낫겠다.” 이렇게 정해지든지,
독심해서 정해지든지,
죽어도 정말 후회 안하고 장례나 잘 치러줄 정도로
그 정도가 되면 이길 수는 있어요.
그런데 부모는 그렇게 할 수가 있다? 없다? 없어. 불가능해.
그런 시도를 하면 안 돼요.
그건 시도를 해도 결과적으로 못 기이기 때문에.
하려면 그렇게 해야 되요.
그런데 그렇게 안 되기 때문에
자식을 사랑으로 보살펴야 된다.
매를 때리더라도 사랑의 마음에서 때려야지,
이렇게 악심에 의해서 성질을 내서 하면
이것은 전부 아이에게는 상처가 됩니다.
그래놓고 변명은 뭐요?
“내가 다 너 잘되라고 했다.” 천만에.
잘되라고 한 것은 거짓말이고, 내 성질대로 한 거요. 그건 변명이고,
아무리 “너 잘돼라”고 얘기해봐야
아이들이 그것을 곧이곧대로 듣느냐? 안 들어요.
그것은 그냥 한갓 변명에 불과하지.
그래서 여러분들이 자꾸 뭐라고 그러면 애들이 어른들 얘기를 뭐라고 그래요? “너희 잘 되라고 내가 하는 소리다.” 이래도 애들 안 들어요. 부모 말을 조언으로 안 듣고 뭐로 듣는다? 잔소리. “너 성질대로 네 생각대로 결국 하는 거 아니냐. 내가 너 노예나?” 이렇게 생각하는 거요. 그래서 선생님이나 어른들이 얘기하면, 애들이 선생님이나 부모를 보고 뭐라고 그러는 줄 알아요? 꼰대라고 그러잖아. 여러분들이 다 성질대로 하는 거요. 정말 “이렇게 하면 안 된다. 정말 너를 위해서 이렇게 가야 된다.” 이렇게 하는 게 아니에요. 성질이 나서 하지, 그리고 그 성질이 날 때 생각은 “잘되라고 한다.” 이러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이거 솔직하게 여러분들이 인정을 해야, 여러분들이 자녀와 소통이 되지, 계속 이렇게 하면 안 돼요. 그러니까 자기가 개인은 애들 키운다고 악착같이 돈 벌어서 사는 거 잘했어요. 자기는 그 생각만 하는 거요. 그런데 애들한테 필요한 역할은 엄마 역할은 안 한 거요. 자기가 엄마 대접을 못 받는 거요.
엄마 역할을 안했기 때문에
엄마 대우를 못 받는 거요.
이렇게 생각하시면 되요. 자기는 회사사장이고, 애들은 종업원처럼 자기가 대한 거요. “내가 너희한테 밥 주고 공부시켜 주고 죽을 고생해서 다 했는데 이것들이 왜 말을 안 듣고 이러냐?” 이런 생각이오.
회사 다 그러니까 나중에 처음에 취직시켜줄 때는 좋다고 했다가, 나중에 다 사장이 이기심으로 한다고 생각하니 종업원도 데모하고 다 끝까지 싸우고, “같이 회사가 망했으면 좋겠다.” 하는 데까지 가잖아요. “집구석이 확 망해버렸으면 좋겠다.”까지 가는 거예요.
자기는 엄마가 아니에요.
악다구니만 한 거지.
자기가 지금이라도 반성을 한다면
엄마로 돌아가야 되요. 엄마로.
엄마로 돌아가서
애가 악을 쓰더라도 외면해도 안 되고,
같이 악을 써도 안 되고,
“아이고, 애가 얼마나 마음에 상처가 있으면 저렇게 악을 쓰노.”
이렇게 받아들여 줘야 되요.
“아이고, 얼마나 저게 마음에 상처가 깊으면 저렇게 악을 쓰겠노.” 이렇게 받아들여 줘야 되요. 지금이라도. 그래야 그 악쓰는 아이 수고에 자기 인생이 빛을 발하게 된다. 자기 인생을 살게 된다. 지금까지 그래놓고 갑자기 애보고 고쳐라. 그게 고쳐져요? 안 고쳐지지. 그러니까
애가 고쳐질 거라고 생각하면 안 돼.
그런 아이도 내가 지은 업보다. 이렇게 생각하고
그것을 받아내고 사는 길을 자기가 선택해야 된다.
그럴 때 마다 더 절을 하고, “아이고, 지은 인연의 과보는 피할 수가 없다더니, 정말 부처님 말씀이 맞네. 부처님 말씀이 어떻게 이렇게 하나같이 다 맞노.” 이렇게 기도하면서, 또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그게 안 되면 또 기도하고 하면서 과보를 다 받아내야 된다. 인연의 과보를 받아야 된다. 과보를 피하려고 하면 안 돼요.
부처님한테 빌고 하나님한테 빌어서
내가 빚은 태산같이 져놓고
이거 어떻게 빚을 안 갚고 도망갈 수 있나?
이런 궁리하면
깊은 산속 깊은 바다 속에 숨는다 해도 다음 생까지 따라다녀요.
그러니까 이것을 내가 빚졌으니까
푼돈이라도 버는 대로 갚고,
와서 빚쟁이가 악다구니하면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힘 닿는 데까지 갚겠습니다.” 이렇게 받아 내줘야 된다.
이것처럼 아이가 악을 쓰면, “저 어린아이가 얼마나 저렇게 상처가 깊으면 저렇게 악을 쓸까?” 이렇게 마음을 내어야
자기가 이 국면을 견뎌낼 수가 있다.
그러니까 참회기도를 하시고, 자기가 그렇게 가게하고 악을 쓰고 벌어봐야 다 필요 없는 일이 된다. 그러니까 지금이라도 참회해서 엄마로 돌아가야 되요. 첫째는 그렇게 참회가 근본이고, 생각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되고,
두 번째는 현재 의학적으로 밝혀진 거에 의하면 조그마한 일에 우리가 스트레스를 받잖아. 스트레스를 받으면 저도 최근에 의학 잡지에서 본 건데, 이 스트레스를 받는 유전인자가 있다는 거요. 그게 자극에 강하게 반응하는 스트레스를 받는 유전인자가 있고, 약하게 받는 유전인자가 있는데, 고 둘이 한 짝이 되어있다는 거요. 엔극과 에스극처럼.
그런데 일상적으로 사람이 태어나면 약하게 받는 유전인자가 우성, 그러니까 증상이 먼저 나탄다는 거요. 그래서 우리가 스트레스를 그렇게 많이 받지 않고 사는데, 사람이 자꾸 저렇게 열을 내서 자꾸 어려운 국면에 처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악다구니를 쓰는 쪽으로 가게 되면, 스트레스를 강하게 받는 쪽에 유전인자가 위치가 바뀌어서 전면으로 나온다는 거요.
그래서 조그마한 스트레스에도 이번에는 강하게 반응을 한다. 이런 연구 결과가 나온 게 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들이 현실에서는 그게 실제로 유전인자가 그런지 안 그런지 모르지만, 현실에서는 스트레스가 자꾸 쌓여서 스트레스가 심해지면 현실에서 부딪히는 자극은 작은데도 반응을 강하게 일어나는 경험 다 하시죠. 안 그래요?
집에서 예를 들어 부인하고 싸워서 스트레스를 받고 회사 나갔는데, 회사에서 종업원이 서류 조그만 글씨가 틀려도 집어 던지고 난리가 난단 말이오. 아까 저기처럼 연초에 시댁에 갔다가 받은 스트레스가 애한테 드러나듯이. 이런 식으로.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는 게 유전인자 적으로 설명한 것을 제가 본적이 있어요. 그게 얼마나 정확한지는 모르지만, 거기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제가 얘기한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하고 있다는 거요. 이렇게 유전인자 위치가 바뀌면 바뀐 위치로 아이에게 유전이 된다는 거요. 자식을 가지면. 그럼 이 아이는 자기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스트레스를 강하게 내는 게 아니고, 체질적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거요.
왜 어떤 사람을 보면, 딴 사람은 별일 아닌데도 발~하는 사람 있어요? 없어요? 있죠. 이런 현상이 있습니다. 유전이 된다. 이런 보고까지 나왔어요. 저는 과학적으로 내가 연구하는 게 아니니까, 엄마가 아까 저기도 얘기했잖아. 엄마가 어떠냐? 물어보잖아요. 이 보살님도 이런 성질은 다 엄마가 그런 성질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도 그 불려 받아서 자기가 어쩔 수 없는 거고, 이 아이도 또 결혼하면 어떨까? 자기보다 더 하겠죠. 이런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자기 대에서 이거 끊어줬어야 되었는데, 미리 애기 낳기 전에 이런 도리를 알고, 자기가 자기 성질을 바꾸어서 애기를 가져야 되고, 성질을 나처럼 못 바꿀 것 같으면 단종을 해줘야 되요. 애기를 안 가져줘야 되요.
그러니까 그럼 애기를 가진 뒤에 지금이라도 자기가 참회를 해서 아이마음이, 아이가 그렇게 스트레스 받을 때 자기가 엄마가 되어서 그것을 껴안아줘야 되요. “아이고, 그래그래.” 자기도 지금 자기 엄마한테 보면 자기가 이렇게 스트레스 받을 때 자기 엄마도 한 번도 자기를 따뜻하게 껴안아주지 못했을 거요. 늘 “너 성질이 더럽다. 네가 뭐 어쨌다.” 이렇게 받아쳤지, 껴안아주지 못했다.
“아이고, 네가 참 고생하구나.” “아이고, 네가 힘들지.” 이러면서 사람이 밖에서 성질내다가 엄마한테 가면 실컷 지 성질 부려도 엄마가 등 두드려주고 “아이고 그래그래. 네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구나. 그래 엄마가 부족해서 네가 이렇다.” 이렇게 껴안아 주면 확 이게 극한으로 치닫던 게 가라앉거든요. 자기가 그런 역할을 해줘야 되는데 이것은 깊이 반성 안 되면 그렇게 되기가 어렵습니다. 맞받아쳐지지 그렇게 껴안아지지가 않는다. 그런데 부모는 자식을 위해서 이렇게 할 수 밖에 없죠. 그래서 부모 아니겠어요.
그리고 두 번째는 이런 것을 요즘은 심리학적으로나 정신분석학적으로 뭐다? 과잉행동이라는 게 있습니다. 어린 아이부터 유전자가 이렇게 되면 ‘과잉행동 증후군’이라 해서 자기 일을 자기가 못 견뎌요. 애를 나무란다고 해결이 안 됩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정신병원에 집어넣고 이렇게 생각하지 말고, 사랑으로 내가 감싸주고, 사랑으로 의사선생님하고 의논하고, 진료를 해서 혹시 그런 육체적으로, 그런 정신 질환적으로 그런 증상, 자기가 자기를 못이기는 이런 증상이 있다면, 그것을 치유를 해줘야 되요. 엄마 된 도리로서.
이런 것이 자기가 지금 할 역할이지, 그냥 악다구니하는 것은 역할이 아니다. 그러면 결국은 가정에 불화가 생기고 더 나아가서는 가정에 불상사가 생기면, 만약에 자식이 부모를 죽였다. 하면 죽은 부모도 문제지만, 가장 부모가 자식을 욕되게 하는 게 자식이 부모에게 불효하도록 하는 거요. 그러면 그 자식은 평생 불행하게 살 수 밖에 없어요. 불행을 부모를 해쳤기 때문에. 그렇게 자식을 만들면 안 된다.
그래서 옛날에 자식이 부모를 죽여도 부모는 “내 자식이 나를 죽였다.” 이렇게 말 안하고, “내가 스스로 이런 거다.” 이렇게 해서 그 자식을 살리려는 마음 있잖아요. 그런 것처럼, 자식을 감싸 안아줘야 된다.
이게 첫째고, 병원에 가서 조사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그러나 가서 문제만을 풀려고 하면 자식이 거부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먼저 자기가 참회하고, 기도하고, 껴안아주고를 먼저 하고, 그래서 아이하고 소통이 조금 되면
나하고는 내가 수행이 되면 내가 껴안아지는데, 과잉행동이 동생이나 다른 사람하고는 그 사람이 못 껴안아 주니까 똑같이 나타날 거 아니오. 그죠. 그럼 결혼할 수도 없단 말이오. 남편한테 그렇게 나타니까. 그래서 그때는 병원에 가서 이 문제 치료를 필요로 한다. 그런데 지금 내가 힘들어서 치료를 요하게 하면 자식이 안 받아들이기 때문에 오히려 “엄마가 나를 정신병원에 집어넣으려고 한다.” 이러기 때문에 치료가 더 어려워진다.
여러분들 자식 키우는 거 힘들어요?
자식 키우는 거 힘들면
자식은 다 불효가 됩니다.
자식 키우는 게 힘들면 어릴 때부터 젖먹이 때부터 애 키우는 게 힘들면 다 불효가 됩니다.
그 이유는
애 키우는데 힘들다는 것은
부모를 괴롭힌다는 거 아니오.
그러니까 애가 불효가 됩니다.
여러분들이 자식을 키울 때,
육체적으로 조금 힘들지만 기뻐야 되요.
“아이고, 내가 애 없었으면 애 없이 사는 거 보다
애 있는 게 얼마나 행복한가,”
그러니까 애 키우는 것에 자꾸 즐거움을 느끼고,
재미를 느끼고, 또 애가 말 안 들으면 그것을 성질내지 말고 연구하고,
애 안 키운 나도 애들 연구해서 심리가 어떤지 아는데,
자기 애 키우면서 연구를 안 해요.
애가 왜 저렇게 저항을 할까? 다 이유가 있을까? 없을까? 이유가 있어요. 그것을 연구하면 애를 키우니까, 아이들 심리가 이렇게 움직이는 것을 알고, 어떤 것은 나를 닮아서 흉내 내는 것을 알 수 있고, 아이를 통해서 내 업을 볼 수 있거든요. 이런 것을 자꾸 연구하고, 아이를 통해서 기쁨을 얻으면 아이는 효자가 되죠. 왜냐하면 부모가 즐거워하면 효자가 되는 거요. 애가 어떤 행동을 하든. 그러면 아이는 비교적 훌륭하게 자라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동물 중에 불효 새끼 봤어요? 효사 새끼도 못 봤고 불효 새끼도 못 봤죠. 왜? 어릴 때는 극진히 돌봐주고 크면 상관 안하니까. 그러니까 효자도 안 되고 불효도 안 되는 거요. 그게 진짜 효자요. 그런데 왜 사람은 그렇게 안 될까? 어릴 때는 저렇게 극진히 돌봐주지 않고, 커서는 과잉보호를 하기 때문에 원수가 되는 거요.
나는 과잉보호를 하는데 애의 입장에서는 간섭이고 구속이고 감옥인 거요. 그러니까 저항을 하는 거요. 자식이 부모에게 저항한다는 것은 벌써 부모가 과잉보호를 하고 있다는 거요. 어린아이들이 사랑을 못 받아서 사랑을 그리워한다는 것은 내가 아이한테 극진하지 못했다는 것을 말해요.
대부분 사람들이 사랑고파병에 들어있는 것은
어릴 때 사랑을 못 받았다는 얘기고.
대부분 아이들이 부모에 대해서 약간의 저항감을 갖고 있는 것은
과잉보호를 했다는 반증이에요.
그거 뭐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어요. 그러니까
“내가 과잉보호 안했는데” 이렇게 생각할 필요도 없고,
“내가 부족하게 돌보지 않았는데” 이렇게 생각할 필요 없어요.
애가 사랑고파병이 있으면 그것은 무조건 어릴 때 보살핌이 부족한 거고,
애가 속박을 느낀다. 부모에게 저항 한다.
이러면 무조건 과잉보호 했구나 이렇게 알면 되요.
과잉간섭을 하고 있구나.
동물은 저항하는 거 없잖아요.
왜? 간섭을 안 하니까.
내가 욕심이냐? 이게 보살의 원이냐? 이거 간단해요. 내가 하는 일이 “돈 벌겠다.” 이게 욕심이다. 원이다. 그러잖아요. 내가 그게 안 되었을 때 괴로우면 욕심이오. 안되었을 때 괴롭지 않고 “요거요것 때문에 안 되었네.” 이런 마음이 일어나면 원에 속해요. 스님이 3백강을 할 때, “아이고, 300강 이거 어이하노, 아이고 죽겠다. 괜히 시작했다.” 이러면 욕심을 낸 거고, “전국적으로 골고루 구경 이차에 해보겠네.” 하면 보살의 원이 되는 거요.
제가 올가을부터 한국에만 다도는 게 아니라 세계 모든 나라를 다 돌면서 큰 도시는 다 강의를 해요. 100개 강의를 잡았습니다. 100일 동안에, 300일 동안에 100개 강의를 잡은 게 아니고, 100일 동안에 100개 강의를 잡았다. 무조건 비행기 타고 가서 하루에 하나씩. 여기서 만약에 독일까지 비행기타고 가서 그날 도착하자마자 저녁에 강의하나씩, 매일 매일 해야 되는 거요. 그렇게 잡았을 때, 잡기는 잡아놓고 부담이 되어서 잠이 안 오고 심리적으로 불안하고, 이러면 욕심으로 시작한 거고, 덕택에 세계일주 구경을 해요? 안 해요? 하지. 여러분들은 했어요? 못했어요? 못했지.
그러니까 남이 부러워할 정도의 그런 마음으로 육체적으로는 힘들지만, 그러면 그것은 원으로 하는 거요. 그러니까
“대통령이 되겠다.” 한다고 욕심이다.
“돈 많이 벌겠다.”고 욕심이다.
이렇게 정하는 게 아니에요.
그게 안 되었을 때 괴로우면 욕심이에요.
그게 안 되었을 때 “아, 이렇게 안 되네. 저렇게 해 봐야지.” 하고
연구가, 아이디어가 더 나오는 쪽으로 움직이면
그것은 원에 속합니다.
그래서 대부분 우리 인생이
욕심으로 하기 때문에 지금 힘든 거요.
그래서 욕심을 버리라는 거요.
밥 먹겠다. 돈 벌겠다. 대통령 되겠다.
이게 욕심이 아니에요.
여러분들은 지금 자기 능력밖에 욕심으로 하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힘이 든다. 이런 얘기요.
육체적으로만 힘이 드는 것은 조금 쉬어주면 되요.
그런데 정신적으로 힘이 드는 것은 어렵죠.
네, 그래서 참회를 먼저 하셔야 되요.
그러니까 애 키우는 게 힘든다. 부모가 되기 힘들다.
그 말 자체가 애가 불효가 될 수밖에 없는 거요.
그러니까 장사하는 거 보다 애 키우는 게 더 재미있고,
애 업고 장사하면 혼자 하는 거 보다 더 재미있고 그래야 되요.
그런데 그렇게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아이를 키우는 것을 부담으로 느끼고 있기 때문에,
결국은 아이가 부모를 고생시킨다는 거잖아요.
그럼 아이는 나쁜 아이에요.
부모 고생시키는 아이가 어떻게 좋은 아이가 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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