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이 생각하는 행복이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괴롭지 않는 게 행복이오. “건강이 뭐요?”하면 건강하다. 네가 건강하다. 그러면 백 미터를 12초에 달려야 된다. 턱걸이는 50번을 해야 된다. 팔굽혀펴기는 100번을 해야 된다. 이렇게 한 게 건강한 거요? 안 아픈 게 건강한 거요? 그럼 어떤 게 행복일까? 안 괴로운 게 행복이오.
그러면 기분이 새 좋은 이것은 뭐요?
그건 행복이 아니고 쾌락이오. 즐거움이야.
그런데 심리를 분석하면
즐거움과 괴로움은
반드시 동전의 양면처럼 같이 따라 움직여.
기분이 좋으면 반드시 기분 나쁨이 연결이 돼.
그런데 우리 세상 사람들은 기분 좋음과 기분 나쁨을 구분해서, “기분 나쁜 것은 버려버리고 기분 좋은 것만 계속될 수 없느냐?” 이런 생각을 하는데, 이게 잘못된 생각이라는 거요. 심리는 그렇게 될 수가 없어요.
기분 좋음과 기분 나쁨은 늘 붙어 다녀서
기분 좋음이 있으면 반드시 그만큼 뭐가 있다?
기분 나쁨이 있고,
즐거움이 그만큼이 있으면
반드시 괴로움이 반드시 그만큼 있어.
여러분이 즐겁고자 하기 때문에
반드시 괴로워지는 거요.
그러니까 즐거움으로 행복을 삼으면,
필연적으로 괴로움이라는 불행이 따르게 되어있는 거요.
그러면 지속가능한 행복, 그것은 뭐냐?
괴롭지 않는 거요.
괴롭지만 않으면 돼.
즐거운 것은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아.
그런데 즐겁다고 거기에 놀아나면
반드시 괴로움이 뒤 따라 와요.
그래서 괴롭지 않는 것이 행복이고
아프지 않는 것이 건강한 거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건강한 것을 백 미터를 몇 초에 달렸느냐? 근육이 얼마냐? 키가 얼마냐? 힘이 얼마나 세냐? 이런 것으로 건강을 삼기 때문에 나는 건강하지 않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어. 그러니까 기분이 새~ 한 것을 행복이라고 하면 안 돼. 그것은 즐거움이라고 해. 그런데 그 즐거움은 반드시 괴로움이 동반되기 때문에 그것은 일시적인 것이지 지속가능하지가 못해.
그래서 이 중생은
즐거움을 구하기 때문에
괴로움이 필연적으로 따라오기 때문에
즐겁고 괴롭고를 반복하는 거요.
그것을 윤회라고 그래. 윤회.
뭐라고? 윤회. 윤회가 사람이 죽어서 소 되고 말 되고 개 되는 게 윤회가 아니에요. 그렇게 생각하는 여기 불교신자들이 있다면 불교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오. 그것은 힌두교, 인도 힌두교에서 말하는 윤회에요. 아시겠어요?
소가 미련할까? 사람이 보기에 그럴까?
돼지가 욕심이 많을까? 사람이 보기에 그럴까?
그런데 사람이 조금 욕심이 많으면 “저거 죽어서 돼지 될 것 같다.” 사람이 조금 늦으면 “저건 죽어서 소가 될 것 같다.” 물을 싫어하면 “저것은 전생에 염소였나?” 이건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 실제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는 거요.
그래서 옛날 사람은 그렇게 생각해서 윤회라는 것을 죽어서 소 되고 말 되고 하는 것을 윤회라고 하는 것은 힌두교고,
부처님이 말하는 윤회는
즐거움과 괴로움이 되풀이 된다.
그러면 우리 인생은 늘 즐겁고 괴롭고 가 되풀이 됩니까? 안 됩니까?
되풀이되기 때문에 우리는 윤회중생이라는 거요.
윤회해서 늘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도는 중생이다. 이 얘기에요.
천당을 간다 해도 지옥을 가고,
이렇게 돈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 여기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여기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윤회하지 않는 중생,
윤회로부터 벗어났다는 말은
괴로움이 없는 삶이오.
괴로움이 없는 이 말을 인도말로 뭐라고 그래요? 니빠나. 빨리어로는 니빠나. 산스크리스트어로는 니르바나. 우리말로는 뭐다? 열반. 이래요.
그러니까 수행의 목표는 열반에 드는 거요. 열반에 든다는 말은 쉬운 우리 생활용어로 하면 뭐다? 지속가능한 행복을 유지하는 거요. 행복했다가 불행했다가 이런 행복이 아니고,
늘 행복이 유지되는 건데,
늘 행복이 유지되는 것은
늘 즐거운 상태가 유지된다가 아니라,
괴로움이 없는 상태, 이런 뜻이오.
그리고 어떤 게 행복이냐?
괴로움이 없는 상태다.
그래서 제가 어떤 분이 “행복해지고 싶습니다.” “그럼 네 지금 상태가 어떤데?” “별 일이 없어요.” “그럼 너 행복한 거야.” 자기가 행복한데도 자기가 행복한지 몰라요. 왜? 기분이 새~ 한 것을, 쾌락을 뭐로 삼기 때문에? 행복으로 삼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쾌락을 행복으로 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불행에 빠질 수밖에 없다.
여러분들인 인생을 한번 살펴보세요.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 만나면 행복하죠. 기분 좋죠. 그런데 그 만나는 사람 때문에 괴로움이 생겨요? 안 생겨요? 생겨요. 여러분들은 다 행복하려고 결혼해서 결혼 때문에 지금 다 괴롭잖아. 자식을 낳아 행복했는데 자식 때문에 괴롭잖아. 가게 문을 여는 것은 행복이었는데 열어서 지금 괴롭잖아. 그러니까 이것은 항상 그림자같이 뒤따르는 거요.
즐거움으로 행복을 삼으면
불행은 필연적으로 따르게 된다.
여러분들이 괴로움이 없는 경지,
그게 행복이다. 그게 열반이다. 이 얘기요.
그럼 스님은 “늘 괴롭지 않다.” 이런 말은 할 수 있지만, 늘 기분이 좋아서 “히히히히” 이러고 살까? 괴로운 것도 심리가 들뜨는 것이고, 즐거운 것도 심리가 들뜨는 거요. 니르바나라는 것은 심리가 편안한 상태, 평정심의 상태. 고요함의 경지다. 이 말이오. 그런데 즐겁고 괴롭고 라는 것은 심리가 흥분되어서 널뛰기 하는 상태. 그게 윤회의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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