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대학에서 배우는 금강경을 내 삶에 직접 적용하는 방법에 관해//
불대라는 거는
불교대학에서 첫 번째 강좌
‘불교란 무엇인가?’는
부처님의 말씀을
스님이 요약해서, 내가 딱 요약해서 가르쳤다 이 말이에요.
자기들한테 딱 맞게끔
요약해서 그래 가르쳤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알아듣기도 쉽다, 이런 얘기예요.
근데 여러분들이 의심이 들 거 아니에요?
“저 스님, 자기 말일까? 진짜 저 부처님 말씀일까?”
이런 의심이 들 거 아니에요?
그래서 내가 불교를 공부하고 수행한 거를 요약해서
꼭 필요한 거를 여러분들에게
딱 액기스만 해서 가르친 게 불교대학이다.
-불교란 무엇인가?
-부처님은 누구신가?
-부처님의 가르침의 요지는 뭔가?
-불교의 역사는 어떻게 변해왔는가?
그럼 여러분들이
진짜 부처님 말씀을 그대로 해서 한번 공부해 보자.
법륜스님이 말한 얘기하고 같은 말인지, 틀린 말인지.
이렇게 해서 경전 공부를 하는 거다.
그러면 스님이 말하는 거는
지금 한국말로, 지금의 상황에 맞게
또 지금 사람에게 맞게 하는 얘기니까 당연히 알아듣기가 쉽고
경전의 얘기는
시간적으로 지금부터 2600년 전에 부처님이
그것도 한국 사람이 아니라 상대가 누구다?
인도 사람을 상대로 해서 한 말을 지금 우리가 들으니까
그때는 진짜 스님의 즉문즉설처럼 쉽게 하신 말씀인데
그게 옛날 얘기다 보니까
우선 좀 전달에 좀 문제가 있고.
두 번째는 또 그거를 인도 말을 어디 말로 바꿨다?
중국말로 번역을 해서
또 중국 말을 또 어디로 번역했다?
한국말로 번역을 해서 또 들으니까 어때요?
이 번역을 하다 보면
뜻이 좀 정확하게 전달이 잘 안되는 그런 측면이 있잖아, 그렇죠?
그러다 보니까 조금 어렵다.
그래서 내가 해설을 하는 거예요.
안 그러면 해설할 필요가 없지, 그냥 읽으면 되지.
법륜스님 즉문즉설을 누가 또 해설해 줄 필요가 있나?
그냥 들으면 되지.
근데 부처님 말씀도 당시에는 그랬는데
이게 시간이 2600년 흘렀고
그다음에 나라가 다른 나라 얘기고
또 그걸 번역을 두 번이나 하다 보니까
내용은 진짜 좋은데
바로 들으면 무슨 말인지 잘 모르는 얘기가 있다.
범소유상이 개시허망이요
약견제상이면 즉견여래다.
이러면 이게 무슨 말인지 잘 모르잖아. 그렇죠?
그걸 또 한글로 번역해 놨어.
“무릇 형상 있는 것은 다 허망하니
모든 상이 상 아님을 알면 곧 부처를 보느니라”
번역해 놔도 무슨 말인지 모르잖아.
그래서 제가 이렇게 구체적으로
다시 또 지금의 생활에 맞게끔 한다.
그 즉문즉설은 이런 옛날얘기 안 하고
그냥 바로 지금 뭐가 괴롭다 하면
그 왜 괴로우냐?
이래서 바로 얘기하는 거고
경전강의라는 것은 옛날에 한 얘기를 지금에 맞게끔
새롭게 해설을 해 주는 거다.
그러면 실생활에 적용이 안 된다는데
그건 그렇지가 않아.
그러니까 이렇게 문장만 외우면
그냥 옛날 얘기, 지식만 쌓는 건데
그러면 아까
범소유상 개시허망이요
약견제상이면 즉견여래라 하면
이 법문을 딱 들으면
오늘 집에 가서 남편이 늦게 들어왔다
그러면 내가 성질이 탁 난다 이거야.
그럴 때 시비,
옳다 그르다 늦게 들어왔다.
시비가 일어나는 거 왜 일어났을까?
상을 지어서 그렇다
무슨 상을 지었지?
늦다는 상을 지었어.
그럼 10시에 들어오는 게 늦다는 무슨 증거가 있나?
그 10시일 뿐이지.
12시보다는 2시간이나 빠른데.
“아, 내가 상을 지었구나.
그래서 상을 지으니 괴로움이 생기구나”
이렇게 탁 놓으면
짜증이 나다가 툭 내려가 버린다, 이 말이야.
그럼 이런 거를 법문을 듣고
집에 가서 실생활에 연습을 하잖아.
그러면 금강경 지금 공부할 때
-첫째 법문 듣고,
-법문 들은 소감 얘기하고
-매주 집에 가서 실천 과제 요즘 안 정해줍니까? 안 주나?
(주는데 제가 잘 참여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러니까 허황한 일을 하지.
아무리 좋은 얘기도
부처님이 좋은 말씀했다. 법륜 스님이 좋은 얘기했다.
이거는 그림의 떡이야.
그림이 보기만 좋지 내가 배부른 건 아니야.
그걸 듣고 내가 소감을 나누어야
“아, 나는 이렇게 느꼈는데 저 사람은 저렇게 느꼈네.”
“아, 사람마다 이렇게 느낌이 다르네.”
이게 바로 범소유상이 개시허망이다는 거를 체험할 수 있는 거다, 이 말이야.
내가 이렇게 느꼈는데 저 사람은 저렇게 느꼈다.
나는 이거를 늦다고 생각하는데 우리 남편은 뭐라고 한다?
자기는 빨리 왔다고 생각할 수 있지.
예를 들어서
저녁 10시에 왔어.
나는 회사 퇴근하고 오면
“아무리 늦어도 네가 8시에는 와야지. 왜 10시에 오나?”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남편은 회사 끝나고 집에 오라니까
친구가 좀 한잔하고 가자 그랬다.
그래 한잔하고 가다가
“아, 그래도 난 10시까지는 꼭 가야 된다”고 생각했는데
또 옆에 친구가 2차 가자 그랬다.
또 2차 가니까 또 3차 가자 그랬다.
그래서 자기는 그걸 뿌리치고 왔다 이거야, 뿌리치고.
뿌리치고 왔으니까 자기는
집에 있는 아내 생각 안 하고
자기가 더 가야 될 거를 뿌리치고 왔다니까
자기는 그래도 아내 생각해서 좀 잘했다고 생각할까? 못했다고 생각할까?
잘했다고 생각하겠지.
그러니까 뿌리치고 왔는데 오자마자 성질을 빡 내니까 어때요?
기분이 팍 나쁜 거예요.
그러면 어떤 생각이 들까?
“이왕 욕 얻어먹을 바에
그냥 친구 가자는 데 가서 그냥 3차 4차까지 갔다 올 거를
어차피 욕 얻어먹을 거를”
이런 생각이 든다, 이 말이야.
그러면 이게 갈등이 자꾸 벌어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상대가
내가 볼 때는
이게 나는 이거하고 같이 보다 보니
이게 작다고 했는데
상대는 이거하고 비교해서 보니까 크다 그런단 말이야.
그러니까 나는 나대로 어떤 생각을 가지고
늦었다 하는데
상대는 지는 또 지 경험에 기초해서
자기가 지금 굉장히 잘한 줄 알고 칭찬받으려고 와서
“여보” 하고 들어오는데
막 성질을 빡 내니까 이게 서로 안 맞는다.
아이 키우는 것도 그렇다 이거야.
어린아이는 엄마가 자기를 위해서 어떻게 하는지 알까? 모를까?
모르지.
근데 어른은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그 얼마만큼 관심을 가지고 손길이 가는지를
자기는 다 경험해서 알잖아.
그러니까 “내가 너 키우는 데 얼마나 고생했는데” 이렇게 생각을 있는데
아이는 전혀 그런 걸 알 수가 없단 말이야.
그러니까 엄마가 자꾸 그런 얘기하면 듣기 싫은 거야.
자기는 자기 혼자 큰 것 같아.
빨래도 해 주고 뭐 조금 하긴 했지만
뭐 그거 엄마들은 다 애 낳으면 다 하는 일인데
이렇게 생각한다고
그래서 엄마는 자기가 한 걸 생각해서
“내가 이렇게 너를 키우는데 고생을 했으니
네가 좀 말이라도 잘 듣고 어떻게 좀 해야 되지 않냐”
이런 기대가 있고
애는 엄마 엄마가 고생 좀 했다 하더라도 그렇게까지 생각을 안 하고 모르니까.
그러니까 자기는 또 자기 친구하고 비교해서
부모가 유학도 안 보내준다.
부모가 용돈도 적게 준다
자기는 친구하고 비교해서 또 생각을 하니까
부모한테 불만이란 말이야.
부모가 생각하면 자식이 부모한테 불만 가질 이유가 없어야 되는데
애는 불만이고.
그러니까 이게 다 뭐냐 하면
이게 서로 인식이 다르다.
왜 다르나?
비교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그렇다.
그런데 우리는 자기 생각을 객관화시킨다, 상을 짓는다, 절대화시킨다 이 말이야.
그래서 그것을 딱 가지고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니?” 이렇게 딱 한단 말이지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니” 이 말은
“이 사안이 객관이다” 이런 얘기에요.
그래서 갈등이 생기니까
금강경에서 이런 공부를 하고
그럼, 오늘 과제로 집에 가서
이런 걸 한 번 연습을 해 봅니다.
보시도 마찬가지.
내가 이렇게 아이를 돌봤다, 아이를 키웠다 하면
부모는 자식한테 뭔가 도와줬다 이렇게 생각한다.
도와줬다, 이 생각한단 말이야.
근데 아이는 도움을 받은 줄을 모른다, 이 말이야.
그러니까 내가 도와줬다.
이것을 상으로 도와줬다는 상을 짓게 되면 반드시 뭐가 있냐 하면
내 공을 네가 좀 알아줬으면 하는 기대감이 있단 말이야.
기대감이 있으면 나중에 그게 안 채워지면 괴로움이 생긴다.
그러니 ‘그 상을 버려라’ 이 말은
자연에서 내가 샘물을 한 바가지 떠서 내가 먹었을 때
자연이 나한테 ‘도와줬다’, 이런 생각 안 하잖아.
그냥 ‘먹었다’ 이런 생각하지.
그런 것처럼 아이는 엄마가 자기한테
내가 산에 가서 열매를 따 먹는 것처럼
당연한 걸로 생각한다, 이 말이야.
그러니까 내가 내 세수하듯이
내 아이 돌보거나 다른 사람에게 한 것도
그렇게 아무런 상을 짓지 않으면 기대하지 않고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하는 일이 없어진다.
그래서 무주상보시
그걸 무주상_ 상을 짓지 않는 보시다.
상을 짓지 않는 거를 보시에다 적용하는 거예요.
그러면 그거를 집에 가서
이번 주에는 아이들이나 남편에게 내가 좀 실망했을 때
이렇게 해줬으면 하는데 기대가 안 돼서 내가 실망했을 때
“아, 그게 기대해서 그렇구나”
기대를 한 이유는
“어떤 상을 지었기 때문에 그렇구나”
어떤 상을 지었나?
이런 거를 가지고 매일 일주일 자기가 연습해 보고 와서
나누기를 한단 말이야.
“아, 나는 이게 잘 안 됩디다.
법문이 이해가 안 됐는지
이해는 된 것 같은데 현실에 딱 잘 안 돼요.”
그러면 어떤 사람은
“나도 안 돼” “나도 안 돼”
아, 이게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상을 짓고
이걸 까르마, 업식이라고 그러지.
“아, 그래서 이 음식을 우리가 빨리 소멸해야 되겠구나”
이렇게 공부를 해 나가야 된다.
그래서 강의만 들으면 안 되고
강의를 들어야 되는 거는
강의가 이렇게 생활에 맞도록 해석해 주는 거고
해석은 그건 생각이고 자기가 직접 해보지 않으니까
자기화하는 과정이 뭐다?
-첫째 나누기
-두 번째는 그걸 생활에 적용해 보고, 그걸 가지고 와서 다시 나누게 하는
자기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 강의만 들으면 안 된다.
그러니까 오늘 질문 잘했으니까
반드시 강의도 집중적으로 듣고
두 번째는 뭐 하다?
나누기 반드시 참여해서
“다 똑같은 건데 왜 우리가 이렇게 달리 느끼지?”
“아, 똑같은 컵인데, 어떤 사람은 적다고 그러고 어떤 사람 크다 그렇구나
누가 옳고 그런 게 아니라 이렇게 사람의 생각과 느낌이 다 다르구나”
그것만 딱 해도
“아 그래서 지난번 그 사건을 갖고 남편과 내가 서로 달리 생각했구나”
이런 거를 경험해 가고
또 실천 과제를 가지고 해보고 또 나누게 하고.
“나는 잘 안 되는데 되는 사람도 있네.”
“우리 모두가 이거 잘 안 되네.”
이런 거를 자꾸 해 가면 자기화가 된다.
내 삶에 도움이 되도록 하는 작업이 필요해서
-나누기도 하고
-실천 과제도 주고
-또 오프라인에 모여서 봉사도 하고
우리가 길거리에 가서 모금 운동을 한번 해보는 거예요.
이것도 다 실험하는 거거든요.
그러면 길 가는 사람은
내가 평소에 관심 안 가졌을 때는
그 사람이 오든지 가든지 내가 신경 안 쓰잖아.
그런데 내가 모금함을 가져가서
“가난한 어린아이를 도웁시다.
북한에 굶주리는 아이를 도웁시다.
인도에 천원이면 아이들 두 끼 식사가 됩니다.”
이렇게 내가 말을 했는데
그냥 지나가 버리면 기분이 좀 안 좋잖아.
그 기분 안 좋아 아무런 이유가 없잖아.
그 사람은 원래 지나다니는 사람인데
내가 가서 시비를 한 거란 말이야.
그런데 그 사람이 옆에서
아이스크림은 3천 원 주고 사 먹으면서
자기 아이에게는 5천 원짜리 뭘 사주면서
‘옆에 굶어 죽는다’, 그런데도 신경 안 쓰고 가면
기분이 더 나쁘다 이 말이야.
그런데 이럴 때는 “왜 기분이 나쁘지?”
저 사람은 저 원래 자기 일상생활 하는데
내가 보고 시비를 하는 거란 말이야.
그러니까 “아 이게 공부 때는 되는데
인식, 원리는 이해하는데 실천에 딱 가야 안 되구나.”
그래서 이게 모금도 해보고 실제로 해 봐야 된다 이 말이야.
그러니까 모금하는 거 “귀찮다” 이게 아니라
가서 해보면 말이 잘 안 나와.
아니 내 돈 만 원 넣고 그냥 가라 그러면 쉽게 가겠는데 거기 가서
천 원짜리 그거 남한테 하려면
남이 막 나를 쳐다보는 것 같고, 목소리가 기어들어 가고, 막 불편하고
“금강경 공부하는데 왜 이런 거 시키냐?”
불만도 생기고 이런단 말이야.
그런 거를 체험을 통해서
이거를 내가 경험해 나가는 거란 말이에요.
그렇게 공부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변화가 있지.
소극적으로 하면 그때뿐이야.
들을 때 조금 기분 좋고
지나면 또 그만이고, 지나면 또 그만이고 그렇게
오늘 이걸 계기로 해서
본문도 조금 귀담아듣고
나누기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남의 얘기도 듣고
오프라인 상에서 뭐 한다 하면 적극적으로 참여도 해보고
그러면 [자기화]된다.
당신들 귀찮게 하려고 그런 프로그램 마련한 거 아니에요.
그걸 자기화
이렇게 법문은 그걸 이해시키는 거고, 이치를 알게 하는 거고
그것을 자기에게 경험화시키기 위해서.
자기화시키는 과정으로 제일 쉬운 게,
나누기
그다음에 생활 속에서 실천해 보고 나누기
길거리에 가서 모금 운동도 해 보고, 뭐도 해 봐라
이런 것도 다 자기화하는 하나의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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