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 사성제, 연기법, 제법이 공함.
이런 부처님 말씀을 듣고 “아, 그렇구나.” 하고 깨달은 것이 깨달음을 얻은 걸까요?
부처님 제자들은 어떻게 부처님 말씀만 듣고
깨달음을 얻어 다들 출가까지 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깨달음에 대해서 두 가지 극단이 있습니다.
1. 깨달으면 모든 괴로움이 없어지고, 절대화시킨,
깨달음을 절대화시키고 신비주의화 시켜서
도대체 이 세상에서 깨달은 사람이 없어, 부처님 빼고는
이것이 절대화시키는 거요.
마치 죽어서 천당 간다, 구원받는다 하는 것처럼.
말이 깨달음이지, 깨달음을 절대화시켰다.
오늘날 불교가 갖는 큰 폐단이
깨달음을 우리의 일상에서 벗어나서
저 이상에 가져가 버린 이런 폐단이 있고.
2. 또 다른 하나는 아까 질문자가 얘기하듯이
일상에서 조금 돌이킨, 그걸 가지고 전부 다 깨달음이다,
이렇게 얘기해서 깨달았다는데 아무런 생활에 변화도 없는 ㅎㅎ
이런 문제를 가지고 깨달았다,
이렇게 또 얘기하는 거,
너무 수준을 좀 낮춰버린 거.
너무 높여버리는 거
양쪽 극단이다.
깨달음이라는 용어 자체는
모르는 것을 알게 될 때는 두 가지 용어가 있습니다.
하나는 이해
하나는 깨달음, 자각.
그러면 이해하고 깨달음하고는 어떤 차이가 있느냐?
이해라는 것은 원리를 모르다가 원리를 알았다.
지식적인 것을 모르는 것을 알면 뭐라고 한다? 이해라고 말해요.
“연기가 무슨 말인데?”
“아, 연기가 이런 말이구나. 알았다.”
“사성제가 뭔지 몰랐는데, 사성제가 고집멸도구나. 그럼 고가 뭐지?”
“고가 아, 이런 게 고구나.”
이렇게 아는 건 다 깨달음에 안 들어가고 이해에 들어간다.
학교 공부를 하거나 불교 교리를 배우거나 철학을 공부하거나
이런 건 다 어디에 들어간다?
이해에 들어간다.
그러면 깨달음으로 가는 과정에 이해는 필요 없느냐?
아니에요, 이해도 필요합니다.
4가지가 있거든요.
신 – 해 – 행- 증이라고 그래서
1. 법에 대한 믿음
2. 법에 대한 이해, 이때는 이해예요. 그게 무슨 말인지 어떤 원리인지를 알아야 해요.
3. 그것을 자기가 직접 행해봐야 해, 그 원리대로 자기가 직접 해봐야 해.
4. 그리고 증, 증은 자기가 그것이 경험되어졌다, 그걸 실천해 보고 자기가 그걸 증득했다.
이 마지막 단계를 뭐라고 그런다?
깨달음이라 그래요.
여러분이 내가 화가 많았어요.
그런데 남이 나보고
“야, 너 짜증 많다” 이러면 인정이 안 돼.
“내가 왜 짜증이 많아? ”
“너 아까도 짜증 냈잖아”
“아니지, 목소리가 약간 올라간 거지, 그게 왜 짜증 낸 거야?”
자기가 정말 몰라.
이렇게 그것을 남이 지적해도 받아들이지도 않고, 자기는 이해도 안 되고 억울해.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자기가 자기 모습을 봐.
“아, 내가 참, 화가 많은 사람이구나, 내가 고집이 센 사람이구나”
이렇게 스스로 알아차려, 이걸 뭐라고 하냐 하면 자각이라고 그래.
누가 지적을 해줘서 수긍하는 게 아니고, 자기가 어느 순간에
“아, 내가 먹는데 욕심이 많구나, 내가 고집이 세구나, 내가 성격이 급하구나”
이렇게 자각을 하게 된다.
요럴 때를 뭐라고 하냐?
깨달음이라는, 작은 깨달음이라고 그래.
여기서부터는 이해가 아니고 깨달음에 들어가.
그럼 이 자각은 변화를 가져와.
뭐 연기가 뭔지, 공이 뭔지, 사성제가 뭔지, 중도가 뭔지 100번 알아도
내 삶이 짜증이 없어지거나 화가 줄어들거나
이런 거 하곤 아무 관계가 없어.
그런데 이런 자각이 일어나면 어떠냐?
금방 변하지 않더라도 어떤 변화가 일어나.
그러면 이런 자각이 탁 세게 자각이 된 것은 바로 변해버리는 경우도 있어.
부처님 당시에 부처님의 법문을 딱 듣고
자기 어리석음을 탁 깨우쳐 버린 사람은
바로 삶이 바뀌어버린 사람도 있어요.
그러니까 많은 사람 중에 법륜스님의 유튜브를 듣고
자기가 죽으려고 그러다가 용기를 얻었다든지,
이혼하려다가 했다든지, 이렇게 살았다든지
이렇게 자기 삶의 변화를 얘기하는 사람이 있거든요.
자기가 성추행을 어릴 때 당해서 늘 괴로워했는데
법문을 듣다가
‘아, 내 몸은 더럽혀질 수 없는 거구나’하고 자각하면서
거기서 해방이 되어서 얼굴 들고 다니게 되었다, 감사합니다.
이런 분이 있단 말이야.
이런 것은 깨달음에 들어가, 이해에 들어가는 게 아니라 깨달음에 들어가게 된다.
깨달음에 들어가면 고뇌가 사라진다, 번뇌가 사라진다.
그런데 그 깨달음의 충격의 강도와 바탕,
더 무의식 세계 밑바탕에 있는 무지가 깨지면 더 폭넓게 번뇌가 사라지고
조금의, 의식의 위로 올라오는 부분의 무지가 깨지면 그 부분만 사라진다.
다시 말하면 여기 올라가는 동맥 중에 하나가 탁 막혀버리면
이 전체가 병들지만,
아주 가는 실핏줄이 하나만 막히면 그 부분만 고장이 나는 것처럼
그런 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문경수려원 같은데 와서 깨달음의 장을 한다.
그럼 5일 동안 굉장히 수련을 한단 말이오.
그럴 때는 어떤 문제에 대해서 확, 자각이 되면
그건 이해하는 게 아니에요, 논리를 이해하거나 이런 게 아니라, 자각이 되면
내가 여태 누군가를 미워했는데 왜 미워하느냐를 계속 탐구하다 보면
미워할 아무런 이유가 없는 걸 발견하게 돼.
자기가 생각해도
“내가 미쳤나 왜 지금까지 이걸 붙들고 10년을 괴로워했지?” 이렇게.
내가 어머니에게 뭐 해달라는데 어머니가 안 해줬어.
그래서 그게 목에 탁 걸려 어머니를 계속 미워했단 말이야.
그런데 자기 삶을 깨달음 장에서 돌아보니까
자기가 어머니한테서 받은 은혜는 태산 같은데, 그중에 딱 한 개, 지맘대로 안 됐다는 그게 탁 걸려서 미워했는데
“아, 이거 내가 어리석었구나.”
그게 탁 무너지면, 어머니에 대해서 미워했던 것들이 확 둑이 터져 무너져버리듯이 그렇게 된다.
그러면 고뇌가 확, 넓은 면에서 고뇌가 없어지는데
이런 막힘이 하나의 이치,
어머니에 대해서 그랬다면 아버지에 대해서 마찬가지고, 남에 대해서 마찬가지겠죠.
그렇게 해서 고뇌라는 것이
결국은 내가 어떤 생각을 하나 움켜쥐고 집착하면서 생기는 거구나.
이런 걸 경험적으로 하게 되면, 다른 문제들도 같이 번뇌가 사라지게 된다.
이렇게 되더라도 현실에서는 어떠냐?
어떤 거는 100% 없어지지만, 어떤 것은 그렇게 알아서 없어진 줄 알았는데
또 세게 대시가 오면 또 살아난단 말이오.
그래서 늘 큰 쓰레기는 한꺼번에 탁 버려지지만
미세한 먼지들은 한꺼번에 없어지지 않고 꾸준히 걸레를 빨아서 닦아내듯이
이렇게 꾸준히 정진해 나가야 한다.
그러니까 이것은 어떤 원리를 이해하는 거 하고는 거리가 멀다.
그런데 이해하는 것이 깨달음으로 가는데 도움이 될 때도 있고
이해한 이론에 집착해버리면 어떻게 되냐?
깨달음에 오히려 그게 장애가 된다.
불교 교리를 공부함으로 해서 깨달음에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제가 경험한 걸로는 불교 교리 공부를 하거나 불교에 대해서 아는 게 많을수록
깨달음에 장애가 되는 게 일반적이에요.
안다는 생각에 빠져서.
직접 탐구를 안 하고, “왜 그렇지?” 하고 탐구를 안 하고
“어, 그건 이거야, 그건 그거야, 에이 저 사람 저것도 몰라”
이런 식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오히려 장애가 되고 있다.
예를 든다면 8만대장경을 다 공부하고, 불교의 이론에 밝은 불교학 박사를 따서
불교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교수가 있다 치자.
이 사람 집에서 부부싸움 할까? 안 할까?
이 사람 자기 자식이 말 안 들으면 신경질 날까? 안 날까?
나겠지.
그러니까 이렇게 아는 거 하고 삶에서의 자기의 변화하고는 다른 문제에요.
이게 이해해요. 이건 이해만 한 거지, 지식적으로 이해만 한 거지, 자기가 경험적으로 체험된 게 아니다.
그런데 불교 교리를 하~~~나도 몰라도 어떤 이런 이치
“아, 내가 내 옳다는 생각에 탁 빠져서 내가 여기에 사로잡혔구나.”
이렇게 탁 자각하면, 이게 없어져 버린단 말이오.
그래서 우리가 행복학교에서는
불교 교리를 안 쓰고, 내용은 똑같은 불교 교리 용어는 안 쓰고
기독교인이든, 일반인이든 하도록 하는 거고
적어도 우리 정토 불교대학은 그래도 불교 용어 좀 써가면서 한다.
그래도 많이 줄였어요.
그런데 일반적으로 불교대학 다니면,
그 교리 배우는 용어 해설하고 교리 배우고 외우는데 치중을 한다는 거요.
특히 남자들이 이런 경우가 많아요.
자기가 뭐 “불교에 대해서 나한테 물어라, 나 다 안다”
이런 식으로 하는데, 아무 삶의 변화는 없어요.
그 다음에 믿음을 갖고도 마찬가지오.
절에 다니면서 불공 올리고, 복 빌고 이런 것만 하지
아무런 삶의 변화가 없다.
그러니까 시어머니 같은 분들이 불교를 믿고 절에 가서 참선하고
계속하면서 며느리한테는 온갖 잔소리 다 하고,
이러면 며느리가 볼 때는 어때요?
“불교 믿는데 지금 뭐 하노?” 이래서 며느리는 교회 가버리는 이런 일이 생기죠.
이런 데서 깨달음이라는 것은
자기의 심리상태, 습관, 감정, 이런 거에 대해서 스스로 알아차리는
자각을 하고, 그 자각에 기초해서 변화를 도모해 나가면서
“아, 이게 집착 때문에 일어난 거구나”
왜 집착을 하냐?
“이게 객관적이다, 이게 진실이다, 이게 맞다하는 상을 내가 짓고 거기에 집착을 하고 있구나.”
“그러면 정말 내가 맞는 거냐?”
이런 거를 법문을 듣고 이치적으로도 이해도 하고
그래서 연습하기가 있잖아요.
법문 들으면 다 아는 것 같은데 가서 안 되잖아.
그래서 직접 해보는 거.
아침기도를 하면서
남편 말이, 남편 입장에서는 그렇다. 이렇게 해도, 남편하는 얘기 딱 들으면 기분이 나쁘잖아.
그래서 우리가 절을 하면서
“남편 말은 부처님 말입니다.” 이렇게 기도를 자꾸 하다 보면,
남편이 뭐라고 하는게
부처님 말이라는 것은 남편 말이 옳다는 것이 아니라
저분 입장에서는 저렇게 말할 수 있구나 하는 것이
말하는 중에도 경험으로 탁 이해가 되면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바람 소리처럼 들을 수가 있게 되는 거요.
그러면 삶에 변화가 일어난다.
그런데 깨달음은 천천히 올라가는게 아니고
약간 계단식으로 가요.
정진해도 아무런 변화도 없다가
어느 순간 어떤 사건을 계기로 해서 푹 무너져 내리고
또 거기서 또 쭉 한참 가다가
그래서 공부해도 아무 변화가 없다,
1~2년간 진척이 없다, 이렇게 말하기도 하고.
그래도 포기하면 안 된다는 거요.
그러다 어느 순간에 또 팍 한 단계 무너져 내리기도 하고.
그렇게 공부해 나가는 거요.
이해하는 것은 깨달음이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깨달음장에 와서도 체험해 보시고,
또 매일 정진하다 보면 어느 순간에 자기가 자기를 자각합니다.
법문 듣는다고 되는 게 아니라
이렇게 정진을 하다가 법문을 들으면
전에는 법문 들을 때 그 생각을 못했는데, 오늘 법문을 탁 들으니까
“하아, 내가 엄청나게 고집이 센 사람이구나” 이렇게 자각될 때가 있어요.
그러면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부처님처럼 대도를 깨달았다 이렇게 말 못하더라도
작은 깨달음을 얻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부처님 당시에 제자들은
부처님이 워낙 교화력이 커서 그런지
대부분 다 그냥 요즘처럼 얘기하는 게 아니라
정말 자기가 힘들고 괴로워서 울고불고 부처님을 찾아오거든요.
부처님을 만나기가 쉽지 않으니까.
너무 간절하니까 부처님 말씀을 탁 듣고, 자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첫째는 본인이 간절했다는 것이 있고
두 번째는 부처님이 교화력이 컸기 때문에 오는 문제도 있다.
부처님은 왕자출신이다 보니 세상에 대해서 아는 것도 많고
여러 가지 지혜가 있어서 방편을 그 사람의 맞게끔 쓴 그런 것도 있고
세 번째는 부처님 만났다고 다 깨달았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면 수많은 부처님과 사람들의 만남 중에
이걸 다 외워 올 수는 없잖아.
그럼 그 중에 효과가 난 것만 외울까? 효과 안 난 것도 외울까? 기록을 할 때는.
효과 난 것만 하죠.
우리가 즉문즉설 할 때도 오늘 하루 종일 한 것 중에
제일 그래도 효과가 난 걸 갖고 스님의 하루에 싣잖아.
그런 것처럼, 효과가 난 것만 싣다 보니까 다 깨달은 것같이 보이고
또 법문을 듣고 조금 변화가 있다가 한 1년 만에, 10년 만에 깨달아서 변화가 왔다 그러면
10년 과정을 다 적을까?
다 생략해 버리고 시작하고 끝만 적을까?
그래서 경전은 듣자마자 다 깨달은 것처럼 되어 있다,
이 얘기에요.
부지런히 정진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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