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24)

법륜스님의 희망세상만들기_ 마음, 생각, 정신, 영혼의 차이점이 궁금합니다

Buddhastudy 2024. 8. 21. 20:12

 

 

저는 마음, 생각, 정신,

영혼의 차이점이 궁금합니다.

결혼과 육아로 여러 깨우침이 있었고,

엄마를 자연으로 보내드린 후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거는 국어사전을 찾아서 한번 보세요.

무엇을 정신이라 하며

무엇을 마음이라 하며

무엇을 생각이라 하고

무엇을 영혼이라고 하는지

무엇을 혼백이라고 하는지

이런 건 국어사전 찾아보면 알 수 있는 거다, 이렇게 생각하고요.

이건 하등 중요한 것 아니다.

언어일 뿐이다.

 

그러니까 어떤 사물을

이걸 가지고 뭐라고 부르느냐?

컵이라고 부른다. 잔이라고 부른다.

그러면 잔하고 컵은 어떻게 차이가 납니까?

이런 질문과 똑같이

아무런 그 중요성이 없는 얘기예요.

 

잔하고 컵은

하나는 한국 사람들이 부르는 용어이고

하나는 서양 사람들이 영어에서 부르는 용어다.

이런 차이 정도란 말이에요.

여기에 무슨 신비한, 말에 뭐가 들어있는 거 아니에요.

 

보통은 우리가 쓰는 말을

국어사전 이런 거 떠나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말을 할 때

몸을 뭐라 한다?

육체라 그래, 육체.

그러면서 우리가 이 생각하고 하는 거 있죠.

이런 작용을 뭐라고 한다?

정신이라 그래요.

 

그래서 상대적으로 나는

나라고 지칭하는 이것만 지칭을 해서

육체와 뭘로 이루어져 있다?

정신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우리가 정신 차려라이런 말을 하잖아.

육체와 정신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럴 때 이런 물질 생명작용

신진대사를 하는 이 육신의 생명작용을 육체라고 말하고

그다음에 어떤 이런 정신작용을 정신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볼 수 있고요.

 

두 번째 이걸 순 우리 말로는 뭐라 그랬냐?

육체, 정신. 이건 한문 단어잖아, 그죠?

순우리 말로는 뭐 했냐?

몸이라 그래요. 육체를

그러면 이 정신작용을 순우리말로는 뭐라 그럴까?

마음이라고 불러요.

 

그러니까 이거는 중국 사람이 부르는 단어로는 [육체], [정신] 이렇게 하고

우리말로는 [][마음] 이렇게 부른다.

 

그런데 여기 또 이 정신 작용에 대해서

[생각]이라는 용어가 있어요.

생각한다, 이런 생각이란 단어를 쓸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이 마음과 생각은 조금 용어를 구분해서 써요.

요새 내 마음이 아프다, 마음이 괴롭다이런 말은 쓰지만

나 요즘 생각이 많이 아프다. 생각이 많이 괴롭다

이런 말은 안 쓰잖아요, 그죠?

 

그리고 또 이렇게 쓰죠.

너 너무 생각이 많다이런 말은 쓰지만

너 요새 마음이 너무 많다이런 말은 안 쓴다, 이런 얘기예요.

 

그러니까 이 생각과 마음이라는 게 우리말이에요.

그럼 이건 어떤 차이로 이게 구분할까?

 

마음이라는 것은 주로

아프다, 괴롭다 하는 이런 /감정적인 어떤 작용은 마음/이라고 부르고

/기억하고, 추리하고 하는 이런 작용은 뭐라고 부른다?

생각/이라고 우리가 부른다.

 

딱 그 사전에 구분해 있는 건 아닙니다.

말이 그렇게 쓰여지고 있다

 

그러면 몸과 마음 할 때는, 이때 마음은

우리가 구분하는 마음과 생각을 통칭하는 말이에요.

몸과 마음 할 때 마음은

정신작용을 전부 다를 지칭하는 우리말이다.

 

근데 그 정신작용 안에

생각과 마음이라는 용어를 쓸 때는

이때 마음은 주로 감정적인 작용을 의미하고

생각은 주로 이성적인 작용을 의미한다.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마음이라는 용어는

조금 넓은 의미로 쓰일 때가 있고

조금 좁은 의미로 쓰일 때가 있다, 같은 말인데.

 

/넓은 이름으로 쓰일 때는

전체 정신작용을 순우리말로 마음이라고 한다.

조금 좁은 의미로 쓰일 때는

정신작용 중에 주로 감성적이고 감정적인 말을 할 때

마음이라고 한다/.

 

그럼 우리가 그냥 막연히 추리할 때

생각은 머리에 있고

마음은 심장에 있다

이렇게 표현하지 않습니까?

 

그럼 이게 사실이냐?

심장에 그런 작용이 있냐?

없습니다.

그건 뭐냐 하면

생각이라는 것은 조금 위에 있고

마음이라는 것은 조금 아래에 있다는 거를 의미한다.

그것이 머리와 심장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렇게 하고.

 

실제로 우리 대뇌피질은 주로 생각하는 작용이고

그 아래쪽에 주로 마음작용, 감정작용이 있다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정신작용을 자꾸 분석하다가 보니까

[생각]은 주로 [의식]이라 그래요. 의식.

그런데 의식의 밑에 무의식이라는 게 있다

이런 게 이제 밝혀졌죠.

한 백몇십 년 전부터.

[마음[은 주로 [무의식]의 작용이에요.

 

그러니까 약간 아래에 있는

그런 과거로부터 경험상

뭔가 마음은 좀 밑에 있고

생각은 저 위에 떠 있는 것 같은 그런 게

실제로도 그렇게 지금 밝혀져 가고 있다.

이렇게 용어를 그냥 써 왔습니다.

 

그럼 불교에서는 오랫동안

이렇게 정신작용 또는 마음작용을

하나로 돼 있는 걸로 인지 안 하고

다섯 가지 서로 작용이 있다.

이렇게 그 작용을 합해서 그냥 우리가 정신작용, 또는 마음작용이라고 부르는데

그걸 구분해 보면 작용이 조금씩 달라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그다음에 몸으로 감촉하고 머리로 생각하는

이런 외부의 정보를 가지고

이렇게 인지하는 이 작용을 색이라 그래요.

 

두 번째, 그런 누군가의 얘기를 듣는다, 본다 하는 건 색인데

그때 기분이 좋다 기분이 나쁘다 하는 느낌이 일어나는 거

이거는 []라 그래, [느낌]이라 그래.

느낌 작용하고 인지 작용하고 달라요.

 

그다음에 그것을 기억하고, 판단하고, 추리하는 이런 작용을

[], 이걸 [생각]이라 그래.

 

그다음에 이래야지 저래야지 죽여야지 가야지

이렇게 [의지작용]이 있어요.

이걸 []라 그래.

 

그다음에 마음의 밑바탕, 이걸 []이라 그래요. [업식]

이것이 습관화돼서 자동으로 나오는.

이런 경험이 무의식 세계에 쌓여 있어요.

거기로부터 영향을 받고 나오는 이거를 식이라 그래.

 

그래서 색, , , , 식 이렇게 불러요.

아까 []라고 하는 거 이게 []입니다.

이렇게 5가지로 구분을 한다 이런 얘기예요.

 

요즘 우리가 뇌라고 하지만

뇌의 작용도 이런 생각하는 대뇌의 작용

또 소뇌의 작용

뭐 뇌가 네 개나 있다 그러잖아요.

신진대사를 관장하는 작용 이런 것처럼

이제 이렇게 정신 작용이 어떻게 일어나느냐

이제 이런 거를 서로 구분하는 거예요.

 

또 이제 옛날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육체는 썩어서 땅으로 돌아가지만

정신작용은 어떻게 될까?

이런 게 또 궁금했어요.

 

그래서 정신작용이라는 게 육체가 죽으면

그건 정신작용에서 나와서 어디로 간다.

다음 생에 태어나든지, 천국으로 가든지, 지옥으로 간다.

이럴 때는 그건 또 뭐라고 불렀나?

[영혼]이다, 또 이렇게 불렀어요, 이름을.

그런 게 있는지 없는지가 관계없이

그냥 그런 게 있다고 치고

부르기를 뭐라고 불렀다?

영혼이다.

불교에서는 [영가].

이렇게 이름을 붙인 거예요.

 

그러니까 그게 뭐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무슨 어느 학자도 아니고

그냥 용어가 그렇게 사용됐다, 지금까지.

 

그래서 옛날에는 내가 먹고 싶은데, 어떤 물건을 갖고 싶은데

돈이 없다

그래서 몰래 가져갈까?” 하는데 다른, 한쪽에서

그러지 마라, 그건 도둑질이야, 하지 마라이럴 때,

뭔가 내면에서 하고 싶어서 행동하려는데

내면에서 하지 마라, 하지 마라하는 거를

이걸 갖다가 []이다, [선신]이다.

착한 신이 속삭인다. 나쁜 걸 막기 위해서 한다

이렇게 생각했고.

 

그다음에 거꾸로

저거 하면 안 되는데그런데 다른 한쪽으로 속삭여

야 해도 돼, 해도 돼, 만져봐, 가져와

이렇게 속삭이는 거를 또 뭐라 했냐?

[악신]이다, 이렇게 또 불렀어.

 

그래서 우리 몸에는

악신과 선신이 깃들어 있어서 조정을 한다.

옛날 사람이 이렇게 생각했다. 이 말이야.

근데 지금은 어떠냐?

그 의식의 아래에서

이렇게 속삭이는 게 신이 아니고

악마도 아니고

우리의 [무의식]이다, 이렇게 얘기했다.

 

이게 이제 한 백몇십 년 전에 프로이드의 <꿈의 해몽>으로부터 시작된

여러 정신에 관한 연구예요.

정신 질환이든, 이제 욕망이든, 이런 것들을 왜 일어나는지를

옛날에는 그런 작용을 다 신의 작용, 악마의 작용, 마귀의 작용

이렇게 생각했는데

이제 그것이 나의 사람의 무의식의 작용이 있다.

이런 거를 분석해서

지금 점점 연구를 해와서

지금 오늘날 정신 과학적인 그런 치료를 받잖아요.

 

그러니까 옛날에는 신이 들어왔다’, ‘귀신이 들어왔다’, 이러는데

요즘은 그걸 다중인격’, ‘이중인격

이렇게 표현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자기가 뭔가 들어온 것 같은 섬뜩함이 있었다.

그러면 그건 그런 느낌이 드는 거지

들어왔는지 안 들어왔는지 그건 알 수가 없다, 이 말이에요.

 

그러니까 자꾸 신비주의에 빠지지 말고

우리는 그것을 자꾸 연구하고

그렇다고 무조건 부정도 하지 말고

그걸 무조건 받아들이지도 말고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

이렇게 탐구하고, 연구하는 이런 자세를 갖는 게 좋지 않을까?

 

그리고 용어가 뭐냐, 이건 별 의미가 없다.

그거는 사람들이 그렇게 용어를 쓰는 거예요.

 

그러면 이 지구상에 수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나라의 말로 용어를 쓰겠죠.

그런데 우리가 아는 용어는

그중에 이렇게 몇 가지, 일상에서 쓰는 용어는

요 정도로 우리가 쓰고 있다

이렇게 그저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유교 같은 데서는 또 혼백이라 그래서

삼혼, 칠혼, 삼혼 칠백 이래서 나눠 쓰고

불교에도 들어가면 뭐 많습니다.

5, 육식, 7, 8식 이래서

정신적인 문제를 또 나름대로 분석한 그런 학문들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다 그렇게 그런 관점에서 보고 설명했다.”

이렇게 봐야지

그것이 사실이다이렇게 보면 안 된다.

 

/그런 관점에서 분석을 했다.

그런 관점에서 정신 작용에 대해서 연구를 했다./

이런 정도로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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