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25)

법륜스님의 희망세상만들기_ 시골아이 교육

Buddhastudy 2025. 2. 6. 20:22

 

 

저는 초등학교 6학년 4학년을 둔 엄마이고요.

경기도에서 지방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어요.

이사 온 후에 많이 고민했던 것 중에 교육 문제였는데요,

경기도나 서울 쪽에 있는 엄마들은 선행학습, 의대 준비반, 공부를 많이 시키고

공부에 대한 관심도나 분위기 면에서

서울 경기하고 지방이 많이 차이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이사를 가야 되나?' 이런 고민들을 많이 했었는데요,

그러다가 수행 정진하면서

'그런 과한 공부는 바람직한 건 아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럼, 어떻게 교육에 대한 원칙, 생각을 가져야 되는지?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보면

지금 너무 과열 경쟁 시대에 이르고 있는데

이러한 교육을 바라보시는 스님의 입장은 어떠하신지

의견을 듣고 싶어서 질문 드렸습니다.//

 

 

여러분들 우리가 지금 경험하는 범위 안에

10년 사이에도 많이 바뀌었어요? 안 바뀌었어요?

사회가 많이 바뀌었죠.

 

20년 전에 생각하면

제일 처음에 무선 전화기 나오는 첫 번째가 삐삐 아닙니까, 그죠?

삐삐 그 문자 메시지 받다가

그다음에 핸드폰이 나오게 되고

지금은 스마트폰이 나오게 되고

그 전화기에서 온갖 메일도 받고, 문자도 보내고

온갖 거 쓰면서 지금 생활 방식이 많이 바뀌었단 말이에요.

 

근데 이거보다 더 큰 변화는

인공지능이 나오면 더 빨리 변화가 오게 됩니다.

제가 지금 이 활동하는 하루를 이렇게 기록하는 거를

스님의 하루라 해서 기록을 하는데

이게 사람들이 다 내용이 좋다고 영어로 번역하자 이러는데

매일매일 그걸 누가 번역하냐는 거예요.

그 많은 양을, 몇 페이지를.

이런 문제가 있어서

10년째 스님 하루를 영어로, 영어판으로 내자, 이러면서도 못 냈단 말이에요.

 

그런데 요번에 이 자동번역기 이런 챗gpt 나오고 이러면서

이거는 몇 가지 손 보는데

거기에다가 우리 불교 용어라든지

스님이 평상시에 쓰는 용어

이런 것까지 다 맞춰 넣어서

현재는 99%가 거의 번역이 되니까

굳이 수정 안 해도 될 정도다

이렇게 됐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지금 한 사람이 하루 종일 번역해야 될 게

5분 만에 번역이 나오거든요.

그러니까 지금 한글본하고 영어본이 한 10분 차이로 나옵니다.

발간이.

 

그래서 요즘은 어떤 내가 한글 책을 낼 때

한글 책하고 12년 있다가 영어책 나오는 게 아니라

동시에 얼마든지 출간이 가능하다.

 

예를 든다면

거기 자율주행도 있고

로봇 청소기도 있고 많이 나오지 않습니까?

 

이렇게 자꾸 변해가기 때문에

어떤 규칙을 정해서, 어떤 원리를 가지고 반복되는 건

다 이 앱으로 처리를 할 수 있다는 거예요.

 

앞으로 법률 같은 거 이런 것도

지금 변론이라든지 판결문 같은 게

오히려 사람보다 더 잘할 수도 있다, 이런 얘기예요.

 

이런 것처럼 많은 부분이

이렇게 교체가 되기 때문에.

우리가 지난 100년 동안, 지식을 배우는 교육

그러니까 외우고 하는 이런 교육은

필요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이 소위 계산기라고 하는 것이

인공지능 개념에서 제일 먼저 간단한 게 계산 아닙니까, 원리가.

계산기부터 시작해서

지금 점점 컴퓨터가 발달해 왔잖아요.

 

그래서 미래에는 학교 가서 지금처럼 외워서 등수 매기는

이런 거는 사실은 그렇게 유용하지가 않습니다.

 

이건 마치 조선시대에 서당에 다니면서

명심보감, 논어 배워서

과거시험 보러 가면, 문장이 나오면

그걸 시로 어떻게 표현할 거냐?

글을 어떻게 쓸 거냐?

글씨를 얼마나 예쁘게 쓸 거냐?

이런 거 갖고 평가하잖아요.

 

그게 우리가 소학교, 이 근대 학교가 나오면서

서당교육의 등수 매김이 아무 의미가 없지 않습니까?

 

그런 것처럼 오늘날 우리 학교의 등수 매김이라든지

이걸 통한 직업이

앞으로 미래에는

크게 의미가 없다는 게

이미 예측이 되고 있다, 이런 얘기예요.

 

그런데 교육 시스템을 못 바꾸는 이유는

가르치는 선생도 옛날 것밖에 모르지

애 엄마도 옛날 것밖에 모르지

교육 행정가도 옛날 것밖에 모르지.

 

그러니까 아이들이 미래 1020년 후에 닥칠 거를 예측할 수 있는

아무런 관계되는 사람이 없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교육정책을 하든, 학교에서 가르치든, 집에서 거기 가서 뭐 문제를 제기하던

방식이 다 똑같다는 거예요.

 

그들 사이에서 이해관계로

지금 막 갈등을 일으키고 이런 거지.

 

그런 면에서 저는

그러면 미래의 이런 변화된 시대에 대비하는 교육은 뭐겠느냐?

선행학습이 뭐겠냐?

 

저는 어떻게 될지 아무도 예측을 못하기 때문에

점쟁이처럼 뭘 예측해 미리 공부 가르쳐 놓는다이런 방식이 아니고

[적응력]을 키우는 게 매우 중요하다.

[뭐든지 할 수 있는 사람]

 

농사를 지으라면 농사를 지을 수도 있고

계산하라면 계산도 할 수 있고

변화된 사회에 뭐든지 적응할 수 있는

이런 아이들의 교육이 매우 중요하다.

 

특히 창의적인 교육이라고 그래서

자기 생각을 할 줄 아는 아이들이에요.

그러니까 선생님이 어떤 문제를 내서

애가 얘기를 하면

그거 틀렸다, 정답이 뭐고?”

이게 정답이 없는 교육을 해야 되는데

지금 정답 있는 교육을 하거든요.

정답 있는 건 다 인공지능이 다 할 수 있어요.

 

스님의 즉문즉설, 사실은 정답이 없거든요.

그런데도 지금 저한테 계속 교섭이 오는 게

선생님이 지금까지 즉문즉설한 거를

1만 개만 제공해 주면

인공지능 법륜스님을 만들겠다는 거예요.

아바타를 아시겠어요?

 

그러면 얼마나 편리해지냐 하면

이렇게 와서 묻고 사람들 보는 앞에서 창피하고 이럴 필요 없이

핸드폰에 앱을 딱 깔아서

어려울 때마다 법률스님한테 물으면 되는 거예요.

그러면 앱에서 어쩌라 어쩌라고 얘기해 주는 거예요.

 

그러니까 내비게이션이 있어서

어디로 가느냐? 물으면

내비게이션이 어디로 가라, 어디로 가라, 얘기해 주는 것 같이 되기 때문에

개발을 하자고 지금 계속 제안이 들어오는데

 

사실은 인생의 변수는

수만 가지, 수십만 가지, 수천만 가지라는 거예요.

이 변수가.

 

그런데 지금 제가 만 개의 즉문즉설 샘플을 했다 하더라도

그거는 변수가 몇 개밖에 없습니까?

만 가지밖에 없잖아요.

그러면 이게 도식화된다는 거예요.

만 가지 범위 안에서 인생이 도식화된다는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들에게 도움은 되죠.

?

비슷하게는 도움이 되는 거예요.

 

이렇게 되면

나중에 도그마가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안 해야 된다는 얘기

부처님 원래 법대로 하면 안 해야 된다.

 

그런데 이 현실론을 제기하는 사람은

스님이 안 해도

스님 이름으로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이 아니고

딴 사람을 내세워서

이미 공개된 게 2, 3천 개 정도 되니까

이걸 갖고 누가 만들어버린다는 거예요.

그러면 더 부작용이 큰 거 아니냐, 더 나쁜 거 아니냐.

그러니까 빨리 해야 된다는 주장과

 

원래 의미로서는

인생은 어떤 도그마라도 한정 지으면 안 된다 하는 원래의 관점 사이에

지금 우리도 이 현실론과 원칙론 사이에서

지금 선택을 지금 강요받고 있는

그런 상태란 말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어떤 과제를 주고

아이가 이렇다이러면

선생이 그건 아니다이리 말하면 안 되고

그럴 수도 있다. 너는 그렇게 생각했구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네.”

이렇게 해야 된다는 거예요.

기다, 아니다로 말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래야 이 사유 체계가 자꾸 되는 거거든요.

 

제가 여기 강의 들어오기 전에

몇 분 와서 인사드린다고 저기 응접실에서 잠깐 만났거든요.

거기 오신 분이 그래요.

 

제가 어릴 때부터 궁금했는데 스님께 하나 물어보겠다는 거예요.

그게 뭐냐 하니까

 

자기가 교회도 조금 다녀보고

교회 다니는 친구도 있고 그런데

죽어서 천국에 간다는데

천국에 가면

천국에 온갖 나라 사람들이 모여 사는데

어느 나라 언어로 사는지

 

사람이 이게 일찍 죽기도 하고 늦게 죽기도 하는데

어머니는 40에 죽고, 아들은 나중에 80에 죽으면

천국에 가서 어느 모습으로 태어나가 있는지

그러면 이거 아들이 80이고 엄마는 40이고, 이상하잖아. 그죠?

그러니까 어릴 때의 모습이냐, 중년 때의 모습이냐, 늙을 때의 모습이냐.

천국에 가서 언제 때 나이로 거기서 살아나느냐 이거예요.

 

예를 들면

이렇게 궁금해했는데, 그걸 물어보지 못한다는 거예요.

물어보면 목사가 미친 놈이라 이렇게 생각할 것 같으니까.

그런 얘기를 해서

우리가 웃으면서 대화를 나눴는데.

 

그것처럼 어떤 생각도 할 수 있도록

열어줘야 된다는 거예요.

그렇게 얘기하면

그건 왜 그러지?” 이렇게 생각할 수 있잖아요.

그런 걸 탁 막아버린다는 거예요.

 

학교 교육이라는 것 자체가

ox로 그냥

아니야,

 

이렇게 하기 때문에

지금 한국 사람들은 모방 기술은 굉장히 뛰어난데

창의적 기술이 부족한 거예요.

 

그런데서 아이를

자기가 서울 살면 그렇게 해도 되는데

이 내려와서 자꾸 꿈꿔봐야.

이사를 가든지 그러면.

 

안 가려면

여기가 갖는 장점을 살려야 된다.

그랬을 때 애들은 어릴 때 놀아라.”

근데 노는데 맨날 컴퓨터 게임하고 노는 것보다는

좀 자연 속에서 놀고, 운동하고, 그리고 뭐든지 궁금해하고

이렇게 키우고

뭐든지 자기 일,

방청소도 자기가 하고, 빨래, 설거지도 자기가 하고

이렇게 아이를 여기에 맞게끔 키우려면

온갖 걸 다 할 수 있는 아이를 만들어야 돼.

 

그 아이를 노동시키는 게 아니에요.

생활력을 다 가질 수 있도록

그리고 애가 어떤 문제를 제기해도

아니다이런 소리하면 안 되고

그럴 수도 있는데

 

근데 본인이 얘기한 거 하고

본인의 행위가 모순인 것만 지적해 줘야 돼.

네가 앞에서는 이렇게 말했잖아.

네가 뒤에 이렇게 말하면 이 둘은 모순이잖아.”

 

예를 든다면

엄마 공부하기 싫어

그래, 안 해도 돼.”

근데 너 대학 갈 거니?”

가야지

공부 안 하고 대학 가는 방법이 있니?”

이렇게 해야 된단 말이야.

 

애가 공부 안 하면 어떡해?” 이러면 안 된단 말이야.

공부 안 할 수도 있어.

근데 네가 대학을 가려면 공부를 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공부를 안 하려면

대학 갈 거를 포기해라 이거야.

대학 안 가고도 저 법륜스님 봐라.

대학 문턱에도 안 가보고 얼마나 잘 사냐?

 

항상 저는 공부 못하는 아이들에게 희망입니다.

유학을 갔나? 뭐 대학을 갔나?

그래도 잘 살잖아, 그죠?

 

그러니까 이렇게 조금 이 성격에 맞게끔

오히려 가르킨다면

저는 서울에서 교육보다

결과적으로 지금은 처질지 몰라도

20, 30년 후에는 그게 더 낫다

이런 결론이 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요.

 

제가 지금 부탄에 가서 하는 거 뭐예요?

저게 지금 보고 하는 줄 아세요?

저는 저거 100년 뒤를 보고 합니다.

 

이 방식으로는

더 이상 우리의 삶이 유지될 수가 없다.

이런 일이 안 일어나면 다행이고

일어난다면

그때 우리가 제시해 놓은 이 모델

, 이렇게도 사람이 사니 되네.

CO제로로

이걸 생각해서 지금 만드는 거예요.

지금은 다 쓸데없는 짓한다 할지 모르지마는.

 

그런 것처럼, 이게 미래에 대한 투자 아니겠어요?

그러니까 너무 현실에 집착을

하려면 가서 그냥 같이 하면 되고

아니라면

그에 맞는, 조금은 자유로운 교육을 추구하는 방법도 있다.

 

그러면 자꾸 애를 가르치려면 안 돼요.

창의력을 키우는 공부를

가르쳐서 창의력을 키운다고 그건 불가능해요.

창의력이라는 것은

스스로 자꾸 궁금해서 이리저리 하는데

그거를 사람들이 막지 말아야 돼요.

 

그런 관점을 갖는다면

저는 오히려 시골에 내려오는 게 훨씬 낫다,

이렇게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