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24)

법륜스님의 희망세상만들기_ 여사친을 좋아하는 마음을 애초에 통제해야 할까요?

Buddhastudy 2024. 11. 27. 20:19

 

 

 

친하게 지내는 여자아이가 한 명 있는데

이 애랑 친하게 지낼수록 좋아하는 마음이 점점 커집니다.

그리고 좋아하는 마음이 커질수록 한편으로는

서운함을 느낄 때도 때때로 있습니다.//

 

 

 

좋았다가, 서운했다가 하는 거는

본인의 선택이니까

자기 인생은 자기가 선택해서 살면 되는데

기쁜 마음은 크지만

서운한 마음은 없도록 하는 방법은 없습니까?”

그런 건 없습니다.

 

여기 질문도

잘하면 출가할 가능성이 있는 질문이에요.

 

우리의 마음은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한다

이걸 갈애라 그래요

어떤 것을 좋아하게 되면, 그 좋아하는 것이 이루어지면

내가 바라는 것이 이루어지면

즐거움이라는 마음이 일어납니다.

기분이 좋다하는 즐거움이 생기고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괴로움이라는 마음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이걸 한문으로는 락,

고락이라고 그래요.

그러니까 우리의 삶은 늘 고락이 되풀이 된다.

즐거웠다가 괴로웠다가, 즐거웠다가 괴로웠다가

이것이 되풀이되는 거를 윤회라 그래요, 윤회.

 

그러니까 인도 전통 사상에서 윤회는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고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는 거를 윤회라고 하는데

그건 그냥 믿음이지, 증명이 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그러나 부처님 말씀하신 윤회라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관찰해 보면 마음이 늘

즐거웠다가 괴로웠다가 즐거웠다가 괴로웠다가

이것이 되풀이되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 틀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는데

근데 우리는 어리석어서

즐거움은 갖고 싶고, 괴로움은 없앴으면 좋겠다.”

이렇게 우리가 생각을 하는데

이것은 그렇게 될 수 없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거에요.

 

다시 말하면

종이에 이쪽 면은 고, 이쪽 면이 락이라 그러면

이걸 분리하려는데

이건 분리가 될 수가 없다.

 

즐거움의 높이가 크면 괴로움의 깊이가 깊어지고

즐거움의 높이가 작아지면 괴로움의 깊이도 작아진다

이런 얘기예요.

 

그래서 이러한 세상은

즐거움만 구하고 괴로움을 없애려고 하는

이런 거를 [쾌락주의]다 이렇게 말해요.

그러니까 자기의 원함은

철학적으로 그걸 굳이 말하면 쾌락주의다.

이 쾌락주의라는 건

막 쾌락만 구한다이런 뜻이 아니라

자기가 원하는 것이 뭐든지 충족되기를 바라는 거

쾌락주의다, 이렇게 볼 수 있어요.

 

그런데 이게 대부분 종교나 모든 건

네가 바라면 다 이루어진다

이게 쾌락주의적 철학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볼 수 있어요.

 

그런데 이 욕망의 충족이라는 게 충족이 되면 어떠냐?

원하는 게 이루어지면 그럼 끝이 나야 되는데

이게 성질이 끝이 안 나요.

욕망이 더 커져버려요.

 

다시 말하면

내 저 여자하고 얼굴이라도 트고 말이라도 트고 했으면 좋겠다.”

근데 접근이 잘 안 돼요.

그러다 어떻게 인사해서 접근을 해서 통성명도 하고 대화를 나눴다.

엄청나게 기뻐요.

 

근데 거기서 멈추지 않는 거예요.

좀 더 가까이 지냈으면 좋겠다.”

그럼 더 가까이 어떻게 지내졌다

, 기분이 좋아.

 

근데 거기서 멈추지 않아

서로 좋아했으면 좋겠다.”

이게 또 올라가는 거예요.

그럼 좋아지면 또 즐거움이 커지는데, 그다음에 또 올라가요.

 

근데 만약에 거기서 이런 단계를 조금씩 조금씩 가다가

안 됐다.

그럼 바로 괴로워져요.

 

그러니까 이게 단계를 계속 조금씩 조금씩 조금씩 올라가는데

이게 계속될 수는 없잖아요.

언젠가는 이게 안 될 때가 있다는 거예요.

그러면 괴로움이 발생한다.

그래서 이 삶은 고락이 윤회한다.

 

그 괴로움이라는 건

꼭 나쁜 사람하고 만나야 생기는 게 아니에요.

좋은 사람하고 만나도 괴로운 거예요.

 

그러니까 애인을 만난다.

약속 시간이 잡혔다.

그러면 즐거운데

약속 시간에 가서 안 나타나면 어때요?

괴로운 거예요.

 

별로 상관없는 사람하고 약속 시간에 안 나타나면

별로 안 괴로워요.

안 오면 뭐 하지 뭐이러면 되는데

여러 안 오면 막 조마조마해지고

그다음에 온갖 상상이 일어나고

이렇게 번뇌가 커지게 된다.

 

그래서 이거를 분리해서 한 개만 추구하려는데

이게 사실은 분리가 안 되고 이렇게 돼 있으니까

새로운 또 철학이 하나 나왔어요.

그게 이 욕망을 용납하지 말아야 된다.

욕망 자체가 모든 고의 근원이다.

그래서 [금욕]이라는 또 새로운 수행법이 나오게 된 거예요.

 

그래서 이 금욕은

심지어 먹고, 입고, 자는

기본 생활의 욕구마저도 억압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극단적 고행주의자가 나오게 된다.

 

그래서 부처님은 29살 이전에는

욕망을 따라가는 왕자의 생활이니까 가봤는데

세상 사람이 볼 때는

저 사람 무슨 바람이 있겠는노?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다하는데

본인은 정작 안 그래요.

그래서 혼자서 고뇌하다가 이 고행주의자 수행자를 만났는데

오히려 그게 더 좋아 보였던 거예요.

 

그래서 출가를 동경했는데

부모가 허락을 안 해서 십몇 년을 고심하다가

본인도 이제 부모 몰래 출가를 해서 수행을 했다.

 

그래서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하는 고행을 해봤는데

우리가 고행을 한다면

이를 다물고 이 긴장과 각오를 해야 되잖아요.

그러니까 이게 편안함이 아니에요, 행복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쾌락도 끝까지 해봐도 진정한 행복이 아니고

고행도 끝까지 해 봐도 진정한 행복이 아니어서

뭐가 문제인가?” 이렇게 자기를 돌아보면서 발견한 게 뭐냐 하면

, 이 즐거움과 괴로움이라는 것의 뿌리가 욕망에 있구나.”

 

욕망을 따라가면 즐거움이 되고

욕망을 억제하면 괴로움이 되는 거예요.

즉 고행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그러면 이 둘로부터 이 윤회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뭐냐?

욕망을 부정하지도 않고

긍정하지도 않고 욕망을 다한 욕망으로 알 뿐이다.

이걸 [알아차림]이라 그래요.

 

욕구가 일어나면

, 욕구가 일어나네이렇게만 하는 거예요.

욕구를 따라가려고도 안 하고

억누르지도 않고

그냥 담배를 피우고 싶네.”

이렇게 알아차리기만 하지

피우지도 않고 안 피우려고 각오도 하지 않는

이런 제3의 길을 따라서 수행을 해서

결국은 자유로움에 이르렀다.

 

이 길을 [중도]다 이렇게 말하거든요.

그래서 내가 조금만 거기서 더 발전하면

출가할 길이 열리겠다

이렇게 제가 그냥 웃으면서 얘기하는 건데

 

근데 자기는 굉장히 초보 단계예요, 지금.

이 성격은 알았는데

이건 없애고 요것만 가질 수 없나?

이건 놔놓고 이거는 어떻게 좀 적절하게 통제할 수 없나?

그건 이미 2600년 전부터 사람들이 시도해 왔는데

안 된다.

같은 뿌리에 있기 때문에

 

그래서 여러분들이 선택을 해야 돼요.

즐거움이 높은, 즐거움이 높은 걸 구할수록 뭐다?

슬픔이나 괴로움이 깊은 거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되요.

 

누군가를 내가 열렬히 좋아하면

그걸 기다리는 아픔, 잃어버렸을 때의 그 아픔을

이미 각오해야 된다.

 

그러니까 만약에 아이스크림을 먹으면 설사하는 사람이다, 이럴 때

나 같은 사람이에요.

그럼, 아이스크림 먹을 때 설사할 각오를 해야 되나? 안 해야 되나?

해야 돼.

입안에 그 달콤함을 맛보려면

조금 이따가 설사할 거를 아예 각오하고

그 설사하는 것이 싫으면 달콤함을 어때요?

포기해야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길은 두 가지

하나는 뭐다?

달콤함을 선택하고 설사를 기꺼이 받아들인다.

그걸 피하려고 하지 말고

두 번째 설사가 싫으면

달콤함을 멈춘다.

 

이 둘 중에 어떤 길을 갈 건지는

자기가 선택을 하면 돼.

둘 다 수행이에요.

 

그럼, 수행이 아닌 건 뭐냐?

달콤함은 받아들이고, 설사는 안 받아들이겠다 할 때

괴로움이 생기는 거예요.

받아들이면 괴롭지 않습니다.

 

그리고 설사가 싫어서 달콤함을 멈출 때

그걸 아쉬워하면 안 돼요.

설사를 생각하고

, 그건 몸에 해로운 거야이렇게 딱 놓아야 한다.

그런 관점을 가지면 어느 쪽이든 그건 상관이 없다.

 

이걸 경전에는 두 여인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주 아름다운 여인이 찾아와서

이 집에 들어가도 됩니까?”

, 들어오세요.”

근데 당신 누구요?”

저는 공덕천입니다.”

조금 있으니까 아 죄송합니다. 얼굴 생긴 거...

못생긴 여자가 얼굴이 시커먼 여자가 찾아왔어요.

이 집에 들어가야 됩니까?”

안 돼요.”

그래서 당신 누구요?”

흑암천입니다.”

들어오지 마세요.”

, 조금 전에 들어간 사람이 저하고 자매지간입니다.

우린 떨어질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얘기하니까

어리석은 자는 두 여자를 받아들인다.

지혜로운 사람은 두 여자를 다 내쫓는다

이렇게 비유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즐거움을 추구하면

반드시 괴로움이 동반된다, 이런 얘기예요.

그러니까 애를 낳았다고 막 너무 좋아하면

그 아이가 병이 나거나

그 아이가 나중에 공부를 못하거나 그 아이가 사고나 죽거나 하면

그 괴로움이 엄청나게 크다 이런 얘기예요.

그런데 인생이 그런 거 아니냐?”하고 받아들이고 살면 돼요.

 

그런데 요 즐거움은 갖지만

어떤 불행도 안 일어났으면 좋겠다

이게 지금 우리 대부분의 생각이거든요.

근데 그건 그렇게 될 수가 없다는 거예요.

원리가 그렇게 돼 있기 때문에.

 

그래서 지금 한 여인을 사랑하게 되면

그만한 고뇌를 감수해야 돼.

그걸 피하려면 안 돼.

가슴 조이는, 그런 아픔을 감내해야 돼.

그러면서 성숙해 가는 거예요.

 

...

 

그건 뭐, 다른 사람이 알아서 하겠지 뭐

그 사람이 또 알아서 할 거예요.

 

...

 

표출을 하면 내가 손해인데 뭐.

가끔 표출할 때도 있지만 표출하면 자기가 손해잖아요.

그럼 표출하면

스님의 이미지가 나빠질 거 아니에요? 그죠?

같이 사는 사람은 존경심이 떨어질 거 아니에요?

 

그러면 떨어지면 떨어지는 걸 감수해야 되고

또 그걸 어느 정도 유지하려면

적절하게 자기를 살펴야죠.

세상에는 공짜는 없습니다.

 

그러면 스님을 특별히 존경 안 하는 이유는

스님도 흠이 있다는 얘기고

그렇다고 스님을 내치지 않는 거는

그래도 괜찮은 점도 있다는 거고

그런 거예요.

 

그러니까 스님이 완전하다 그러면 흠결이 있고

스님 별로다 하면 괜찮은 점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다 이래 사는 거예요.

 

여러분들 남편이나 아내도 다 마찬가지예요.

못 헤어지는 거는

그래도 괜찮은 구석이 있어서 못 헤어지는 거고

불만 있는 거는

그것도 문제가 있기 때문에 불만이 있는 거예요.

 

불만 있으면서도 안 헤어지는 건 뭐에요?

아직 먹을 게 좀 있는 거예요.

그래서 다 이렇게 사는 거예요.

구시렁구시렁하면서 사는 거예요.

인생이라는 게.

 

그런 거를 이런 원리를 알면

약간 안 맞는 게 있어도 구시렁구시렁 덜 되지 뭐

기분이 약간 나빠도 금방 돌이키고

그건 까르마에서 반응하는 것일 뿐이니까

그래서 서로 맞춰서 인생을 살아가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신혼 초에 너무 상대에 대해서 기대가 크고 결혼해 보면

막 안 좋은 것만 계속 보이는 거예요.

기대가 클수록

결혼 초에 안 좋은 것만 보이는 거예요.

 

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남자, 제 좋은 여자를 골라서 결혼을 하면

행복할 것 같은데

바로 불행해집니다.

안 좋은 것만 계속 보이기 때문에

기대가 크기 때문에

 

근데 길 가는 남자하고 만나가 결혼하면

원래 기대를 안 했기 때문에

오히려 좋은 점이 많이 보여요.

그 인간 쓸만하네.”

, 그 여자 밥도 할 줄 아네이렇게 돼서 좋은 점이 발견돼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낯선 사람을 만나면

친구가 될 가능성이 있죠.

?

아무 기대도 안 했는데 괜찮은 거예요

고향이 같네

종교가 같네

야 취미가 같네

이러고 친구가 되는 거예요.

그래 그거 몇 개 갔다고 친구를 해서

그러면 머리가 착각을 합니다.

다 같은 줄 알아요.

 

같이 밥을 먹어보니

음식도 틀리고, 뭐도 틀리고, 뭐도 틀리고

그래서 또 헤어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다르다고 전제하면 같은 게 발견되고

같다고 전제하면 다른 것이 발견되는데

낯선 사람은 다르다고 우리가 머리가 인지하고 있어요.

저 사람이 나하고 다르다.”

그런데 얘기를 해보면 같은 게 발견돼요.

그러니까 친해지는 거예요.

 

이게 친하면 이게 또 머리가 또 너무 빨리 가요

같다고 또 전제를 해버려요.

그래서 이거는 또 다른 게 자꾸 눈에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결혼하면 뭐 작은 일부터

남편이 오줌 누는데 그 딱 앞에 당기고 안 누고 밑에 떨어뜨리는 거

그런 것부터 하나하나하나

수건 쓰고 아무 데나 버리는 것부터

다 거슬리기 시작한다, 이런 얘기예요.

 

이렇게 해서 갈등이 생기는데

이렇게 막 심리적으로 갈등이 생겨서 티격태격할 때 또 아기를 낳으면

그리고 엄마의 마음이 불안하고

부부지간에 갈등이 있을 때 아기가 태어나면

아기는 심리적으로 또 불안하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신혼초에 갈등이 심할 때는

맏이가 나중에 키워보면 못 해요.

신혼 초에 아주 좋을 때 아기를 키우면

맏이가 나중에 인성이 낫고.

 

근데 이렇게 막 싸우다가

이제 막 타협을 해서

아이고 막 그래그래 니나 내나 뭐...” 이래서 같이 살면

그때 두 번째 세 번째가 태어나면 괜찮고

 

그래서 대부분 여러분들이 하나 낳으니까 잘 모르는데

한 서너 명 낳아보면

이게 내 심리가 어떨 때 애를 낳고 키우는 게

그대로 드러납니다.

 

옛날에 한 여섯 일곱 낳으면

보통 한 셋째가 건강한 경우가 많아요.

그거는 심리가

처음에는 갈등을 하다가 대충 적응을 했고

그다음에 뒤에 가면 어때요?

또 방심을 해서 또 갈등이 생기고

이제 막 서로 막 배 째라이러고 살거든요.

그래서 막 말도 막말하고 막 이렇게 막 살기 때문에.

 

그런 것이 다 이게 대물림이에요.

육체의 대물림처럼

정신적인 것도 다 되물림이거든요.

 

 

조금 얘기가 빗나갔습니다마는

좋음이 있으면 기대가 있고

기대가 있으면 거기에 대한 실망이 따르고

또 좋음이 있으면 어떤 기대가 있고

거기에 따라서 조마조마함이 따르고

서운함이 따르고

 

그럴 때 그 사람의 문제로 보지 말고

내 마음이 이렇구나이렇게 살피면

조금씩 조금씩 진정이 돼 간다

이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다.

 

...

 

좋음이라는 게 괴로움의 원인이구나.”

이걸 자극하면 출가를 하는 거예요.

락이라는 것이 곧 고구나

이러면 둘 다 쫓아내 버리거든.

그러면 해탈의 길로 간다.

내가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그래도 아이스크림을 먹고 설사를 하겠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