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에 계곡에서 7살 아들을 떠나보냈습니다.
아들이 환생할 거라는 집착에 4년째 시험관을 하고 있습니다.
죽은 아들이 환생해서 다시 제게 올 수 있을까요?//
질문 다 하신 거예요?
부모가 죽으면 땅에 묻고
자녀가 죽으면 부모의 가슴에 묻는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그 어린 자식을 잃었는데
그것도 보는 앞에서 잃었기 때문에
충격을 받아서 자기가 지금 트라우마가 된 거예요.
마음의 상처가 됐다.
그래서 거기에 지금 집착을 하고 있다, 이런 얘기에요.
그러니까 그걸 뭐 떨치려 해도 안 떨쳐지는 거예요.
이거는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됩니다.
이 트라우마 치료를 받아야 된다.
자살하는 경우에도 이런 충격이 있거든요.
아이가 창문으로 넘어가는데
쫓아가서 손을 잡았는데
끌어올릴 힘이 없어서 결국은 떨어져서 죽은
이런 사람들은 거의 기절하다시피 하거든요.
또 자기가 운전하는 차에
자기 자식이 차를 뒤로 돌리다가 치여 죽었을 때
충격이죠.
세월호 충격이 큰 이유는
그 죽어가는 장면을
그 모든 사람이 국민들이 봤지 않습니까?
그냥 ‘배가 전복을 했다, 그래서 많이 죽었다’ 이러면 덜한데
그 과정을 계속 보고 있었기 때문에
국민적인 분노를 불러일으키고
큰 정치적인 소용돌이까지 겪게 된 거거든요.
자기가 자식을 잃는 것만 해도 엄청난 충격인데
그 자기 자식이 죽어가는 과정을
자기가 어쩌지 못하고 지켜봤기 때문에
자기한테 엄청난 충격이 됐다, 이런 얘기예요.
안 미친 게 다행이에요.
이렇게 질문이라도 하는 거 보면
아마 그런 정도의 경험을 하게 되면
거의 실성한다, 실성한다, 혼이 나갔다, 혼이 빠졌다, 이렇게 말할 수 있죠.
그런 상태가 자기가 지금 된 거예요.
혼이 나갔다, 혼이 빠졌다, 이거예요.
정신분석학적으로 말하면, 정신적인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자기가 그 충격에 정신을 잃고
제정신이 아닌 상태다,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오직 관심이
잃어버렸으면
죽었다고 해도 안 믿고 ‘언젠가 오겠지’
이렇게 한다든지
죽는 건 확실히 자기 눈으로 봤으니까
그 아이가 어디 있다가 온다
이거는 자기도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이제 아이가 환생해서 다시 내 아이로 태어나지 않겠느냐
이제 이런 생각에 자기가 지금 편집돼 있다, 빠져 있다, 이런 얘기에요.
물론 자기가 건강하다면 아이를 하나 낳을 수 있겠죠.
첫애는 잃고, 두 번째 애를 자기가 가졌다.
이게 정상적인 사고방식이거든요.
근데 이런 충격을 받으면
두 번째 아이가 첫 아이의 환생이다
이렇게 자기는 자꾸 그리게 되는 거예요.
그걸 믿음이라 그래요.
그래 믿어도 돼요.
우리 티벳 불교 같은 데 보면
어린아이가 전에 돌아가신 분의 환생자다.
림포체라고 그러지 않습니까?
그런 거는 믿으면 돼요.
그 믿음은 자유예요.
스님한테 “이렇게 믿어도 됩니까?”
이렇게 묻는 거는
그거는 믿는 건 자기가 믿는 거니까
“내가 하나님을 믿어도 됩니까?”
이걸 나한테 물으면
내가 뭐라 그러겠어요?
“네가 알아서 믿어라”
이렇게 얘기할 거 아니에요.
내생이 있습니까? 천국이 있습니까? 이런 질문은
믿음에 해당되기 때문에
그건 누가 답할 수가 없어요.
자기가 믿고 싶으면 믿고
안 믿고 싶으면 안 믿고
이런 믿음은
자유의 영역, 개인의 자유 영역이란 말이에요.
자기는 지금
아이를 그리워하다 보니까
환생을 원하는 거예요.
근데 자기가 환생이 100% 믿어지면
‘믿어도 됩니까?’
이런 질문을 나한테 안 하겠지.
근데 그걸 원하는데
‘그러나’ 하는, 안 믿어지는 구석이 있으니까
이런 질문을 하는 거예요.
치료법은
자기가 지금 아이가 내 앞에서 죽는 그 충격 때문에
정신적으로 지금 병이 들었다.
옛날로 말하면 혼이 빠졌다,
정신을 잃었다,
멍한 거예요.
그냥 아무 세상에 의미가 없고
그러니까 이거는 치료를 받아야 돼, 치료를 받아야 된다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그리고 종교적으로 말하면
만약에 그게 혼이 없다면 신경 쓸 것도 없고
혼이 있다면, 영혼이 있다면
이렇게 계속
죽었으면 새로운 몸을 받아야 되는데
계속 누군가가 부르면 떠나지를 못한다.
그래서 무주고혼이 된다, 이렇게 말하거든요.
그러니까 이미 몸을 버렸으면
기독교인이라면 천국에 잘 가시라고 인사를 해야 되고
불교인이라면 얼른 극락에 가라고 이렇게 인사를 하는 게 맞다.
그래야 죽어서라도 행복할 거 아니냐, 이 얘기예요.
그리고 나는
두 번째 아이가 필요하면 나는 두 번째 아이를 갖겠다
이런 관점을 가져야 된다.
근데 몸에 이상이 있어서 가질 수 없다면
어떻게 우리가 원하는 걸 다 해요?
포기 해야지.
그렇게 무리해서 갖게 되면
장애인을 갖거나
아이를 또 뱃속에서 유산을 하거나
이래 되면
더 큰 자기는 트라우마에 빠지게 된다.
“한 명도 아니고, 2명이나 내가 이렇게 아이를 잃었다.”
이런 또 혼란에 빠지기 때문에
제가 생각할 때는
그 상태는 충분히 이해하지만은
자기가 지금 정신질환 상태다.
이걸 인정을 해야 돼.
내가 지금 아이가 죽은 충격이
지금 정신이 잃은 상태, 혼이 빠진 상태다, 제정신이 아닌 상태다.
이렇게 자각을 하시고
지금 빨리 정신을 차려서
남편하고 나머지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아갔으면 좋겠다
이런 말씀을 드립니다.
혼자 힘으로 안 되면
-하나는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된다.
-두 번째 수행적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려면
“좋은 곳에 가서, 이런 위험이 없는 곳에 가서 행복하게 살아라.
엄마도 행복하게 살게”
이런 기도문을 가지고 기도하는 게 좋다.
더 물을 게 있으면 물으세요.
정신이 차려졌어요?
아니 자기 믿고 싶으면 믿어도 되고
안 믿고 싶으면 안 믿어도 되고 그래요.
기독교인은 하느님을 믿고
티벳 불교인들은 환생을 믿고
인도인들은 윤회를 믿고
바닷가에 사는 사람은 용왕을 믿고
또 천국을 믿고 극락을 믿고 그러잖아요.
그러니까 믿음을 가지고 이러니 저러니 하는 건 옳지 않아요.
다 사람들은 사람이 죽고 난 뒤에 너무 이 충격 때문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 또는 헤어짐의 슬픔 때문에
그래도 천국에 갔다, 좋은 데 갔다, 극락에 갔다, 다시 돌아온다
이런 것으로 위안을 삼는 데서
이런 종교가 형성이 된 거다
이런 얘기에요.
그건 진위를 논하면 안 돼요.
그냥 그렇게
“저 사람은 그렇게 믿구나. 나는 이렇게 믿는다”
이렇게 해야지.
이게 맞느냐? 아니냐?
믿음은 그렇게 따지는 게 아니야.
믿어지면 믿는 거고, 안 믿어지면 안 믿는 거지.
믿는 사람 안 믿는 사람
이렇게 그냥 서로 다를 뿐이지
누가 옳고 그르고
이런 문제가 아니다.
...
노력할 것도 없어.
놓아줄 것도 없고
그냥 “안녕히 가세요”
이러면 돼.
“잘 가” 이러면 되는 거야.
노력할 게 뭐 있나?
오늘 그냥 “잘 가” 이러고 끝내지
어떻게 생각해요?
“잘 가”
한번 해봐요.
오늘 못 하면 1년 지나도 못 해.
그럼 1년 끌어서 할 거 뭐 있어요?
“그래, 우리 정이 좀 애착이 있지마는
그래도 미왕지 이렇게 된 거 어떡하노?
잘 가라.”
이렇게 잘 가 한번 해봐요.
‘잘 가’ 그 말은
‘잘 가라. 그러나 가지 마라’ 이 얘기예요.
그러지 말고
뒤끝이 딱 올라가야 돼.
“잘 가” 이렇게 딱 해봐요.
아니 그것도 안 돼, 아직도.
아직도 그거 뭐
‘잘 가라’ 이러면서 울면
‘가지 마라’는 얘기하고 똑같지.
그러니까 ‘잘 가’
이렇게 딱 좀 딱 끊어지는 맛이
마침표가 딱 있어야 돼.
그래 이렇게 딱 하면
오늘 해결하지, 뭘 그걸 노력을 할 거 뭐가 있어?
인생은 노력할 거 없어.
그냥 놓아버리면 되지.
‘무슨 놓으려고 노력한다.’이 말은
‘놓기 싫다’ 이 말이에요.
놓는데 무슨 노력이 필요해?
“담배 끊으려고 노력하겠습니다.” 이 말은
‘끊기 싫다’ 이 말이에요.
담배 안 피우면 되는데
끊기를 위해서 노력을 해?
그냥 안 피우면 되지.
남편 있어요?
그럼 자기 내 울고 사는 게 남편한테 도움이 될까?
웃고 사는 게 도움이 될까?
같이
둘 다, 깊은 수렁에 빠져서 잘한다.
셋이 다
아이도 물에 빠져 죽듯이
슬픔에 빠져서 셋이 다 죽는 게 나?
애 하나 놔놓고 우리 둘이 잘 사는 게 나?
...
잘 살아도 되지.
그럼 애가 만약에 있다 그러면
엄마 아빠가 잘 사는 게 좋겠어?
맨날 울고 있는 게 좋겠어?
그러니까 어떻게
안타까움이라는 건 이루 말할 수가 없지만
이미 일어나버린 일을 어떡하겠어?
그러니까 ‘잘 가라’ 하고
자기도 남은 인생을 행복하게 사세요.
그리고 시험관 아기 한다고
그렇게 무리하게 하지 말고
돈 쓰고, 집착해 무리하지 하지 말고.
이렇게 자녀를 낳아 가지고 이렇게 죽으니까
이렇게 슬프니까
나 같으면
“아, 자식이 괴로움의 덩어리구나.
자식은 내가 두 번 다시 안 낳아야 되겠다.”
이렇게 딱 관점을 가지면 안 될까?
...
그래요. 그럼 좀 더 한 1년 정도 더 울고
다음에 내내 와서부터 웃으세요.
한 1년 더 울고
지금 울은 거 갖고는 부족하다니까
둘이서 수렁에 빠져 한 1년 정도 더 울고
한 3년 울고 정신 차리세요.
뭐 괜찮아.
자식이 죽었는데 내가 웃을 수가 있어요. 그지?
계속 울고 살아야지.
웃음이 어떻게 나나?
울어야지. ㅎㅎㅎ
그래요.
그건 자기 선택이에요.
오늘부터 웃고 살 건지
3년 후부터 웃고 살 건지
웃어도 자식이 안 오고
울어도 안 와요.
어차피 안 오는 거는 마찬가지인데
우는 게 낫겠는지, 웃는 게 낫겠는지
본인이 좀 잘 생각해 봐요.
오늘 법문 제대로 들었으면 병원에 안 가도 되고
법문 듣고도 안 되면
내일부터 병원에 가서 치료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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