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비하지 않고 분노하지 않으면서
사회의 불의와 불공정에 눈 감지 않는
그런 마음을 낼 수 있는
방법이 궁금합니다.//
“옳고 그름을 구분하지 못한다” 이렇게 얘기했는데
옳고 그름이 없다고 맨날 가르치는데
왜 자꾸 구분을 하려고 그럽니까?
스님이 늘 말하잖아요.
“옳고 그름이 있는 게 아니라 나의 선택이 있다”.
스님은 그럼 옳고 그름이 없으니까 아무것도 안 합니까?
아니다 하잖아요.
저는 선택을 한다잖아요.
일제가 만약에 나라를 침략하면
일본 사람으로서 저희 나라를 위해서 남의 나라를 침략할 수가 있다.
그러니까 그것 때문에 막 잠못 이루고, 분노하고, 그러지는 않는다는 거야.
그러나 나는 선택을 어떻게 하느냐?
그걸 막는 쪽으로 선택을 한다는 거야.
거기에 대해서 필요하다면 저항하는 선택을 하겠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건 자기 선택이라는 거예요.
그 선택이라는 건 뭘 말하냐?
마음에서 화라든지 분노라든지 이런 게 일어날 때는
상대편에게 전가할 수 있는 정당하지 않다는 거예요.
내가 내 옳다는데 사로잡힌 증거다.
빨리 돌이켜서 그냥 화 없는 상태로 되돌아가되
“나는 이럴 때 이걸 선택하겠다” 이렇게 얘기하잖아요.
내가 만약에 “북한에 아이들이 굶어 죽는다 지원을 하겠다”
그러면 엄청난 저항이 있습니다.
별관 스님이라 하는 것부터
북한에 가라든지 온갖 욕을 하고 그러죠.
그래,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어요.
그러나 그러면 나는 어떡할 거냐?
나는 그런 비난을 듣더라도
배고픈 사람은 먹어야 하고, 병든 이는 치료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이렇게 얘기를 하는 거야.
그러니까 한반도에 지금 긴장이 고조됐는데
다 그냥 이기려고 생각하잖아요.
“저놈 나쁜 놈들, 저런 거 확 죽여버려야 돼. 그냥 이겨야 돼.”
그래 가면 우리 무기 자랑하고.
북한은 인공위성 쏘면 나쁜 놈이라 그러고
직원도 인공위성 샀다고 우리는 막 자랑하고
보면 좀 이상하잖아요.
근데도 그 사람들 별로 이상하게 생각 안 하잖아요.
자기 생각에 빠져서.
그 사람들 입장에선 그럴 수도 있고
또 우리 입장에는 이럴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이것은 둘 다
내 선택은 그건 바람직하지가 않다 이렇게 하면
결국은 전쟁이 일어날 위험이 높고
그러면 쌍방이 손해 나는 일이 된다.
이기겠다고 하는
게임에서 이기겠다고 하듯이
그거 인정한다는 거예요.
그러나 힘으로, 무력으로, 살상 얘기를 하는 거는 옳지가 않다.
막 경쟁까지 인정하자.
노동자들이 데모를 한다, 틀렸다
이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그럴 만하고
또 정부 입장에서는 또 불법 하면 또 막을 만하지만은
그럴 때 침묵을 하는 게 나을지
나는 노동자 편에 서는 게 나을지
정부 편에 서는 게 나을지
그건 자기가 선택을 하는 거야.
내가 하는 것이 반드시 옳은 거는 아니에요.
그러나 나는 이 길을 가겠다는 거예요.
그럼 거기에 따르는 과보를 받아야 된다, 이런 얘기야.
그렇기 때문에 지혜라는 것은
지혜의 눈을 등불을
자기로 비추면 나의 괴로움이 사라지고
주의를 비추면 주위의 고통을 내가 알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지금
주의를 비출 때
그 고통을 알고
그 고통을 없애는 데
나의 작은 도움을 주는 거를 뭐라 그래요?
자비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부처님의 특징은
지혜 한 가지인데, 깨달음
그걸 다시 나누면
자기 쪽으로 비춘 건 지혜라고 그러고
타인을 향해서 비췄을 때는 자비라 그래요.
그래서 “부처님은 지혜와 자비가 구족하다”
이렇게 말하거든요.
그러니까 우리는 그것이 다른 행동을 했을 때
바람직하지 않다라고 했을 때
자기가 “이건 내가 볼 때는 그렇다” 하는 거예요.
저 사람 틀렸고 내가 옳다가 아니라
“나는 이 경우에는 이 입장을 취하겠다”
그 관점을 법문이하고 있다.
우리 정토회는 지금 그런 관점을 갖고 있잖아요.
진리의 측면에서
사람의 생각은 다르고, 믿음이 다르다, 생각도 다르다
그런 거를 인정하는데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천당을 가겠다” 하는 그런 것도
하나님 믿음으로 인정하잖아요.
그건 뭐 틀렸다.
그러나 나는 그건 그런 선택을 안 하겠다는 거야.
우리는 나의 어리석음을 깨우쳐
괴로움이 없다고 하는
이 붓다의 길, 열반의 길을 나는 선택하겠다는 거예요.
이것만 옳고, 저건 틀린 게 아니라
여러 방법이 있는 중에
나는 이 길을 선택을 하겠다
이런 선택이야.
그러니까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
다른 사상을 가진 사람, 다른 체제를 가진 사람을
우리가 다 만나잖아요.
부탄에 가도 왕국이 있고
중동에 가도 왕국이 있고 그러잖아요.
나는 우리가 3.1 운동하면서
대한제국에서 대한민국을 우리가 세웠기 때문에
저는 민국을
민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저는 원해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왕이 세상을 다스리는 나라를 저는 동의 안 해요.
저는 그러나 인정은 해요.
이건 잘못됐다 이런 말 안 해요.
그건 지난 5천 년 동안 그렇게 살아왔는데
그러나 나는 민(民)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지향하고
그 길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겠다.
그러니까 다른 길을 선택한 사람하고 비난할 이유는 없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런 관점을...
여성이라고 차별하는 문화가 있다는 거예요.
계급을 갖고 차별하는 문화가 있다는 거예요.
피부 빛깔로 차별하는 문화가 있다는 거예요.
그러나 나는 사람을 그렇게 하는 것은 동의하지 않겠다.
나는 사람은 평등한 쪽으로 나아가겠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에서는
이런 작은 차별들이 일어나는 것 또한 현실이에요.
그것 또한 인정을 하겠다는 거예요.
이런 관점을 갖는다면 문제가 없지 않을까?
서울 가는 길은 정해져 있지 않다.
본래 옳고 그름이 없다.
그러나 내가 인천 살 때는 난 동쪽으로 가겠다는 거예요.
서울 방향으로.
동쪽이 서울 가는 방향이라고
나는 제안을 하고 주장을 하겠다는 거에요.
스님은 주장이 없는 게 아니에요.
주장이 있습니다.
-검소하게 살자.
아무리 네가 돈이 많아도 소비는 확대하지 마라.
지구 환경을 생각하고 타인을 생각해서
-재산을 갖지 마라 이런 말은 안 해요.
재산이 많고 적고 간에
개인이 소비를 자꾸 높이면
우리 전부가 함께 써야 할 소비를 개인이 과다하게 씀으로 해서
다른 사람의 생존의 위협을 주고
이것이 지구 환경 위기를 초래해서 모두를 고통에 빠뜨린다.
제가 볼 때는 저는 그 과소비자는 큰 범죄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그걸 범죄라고 인정을 안 하니까
그걸 자랑스럽고, 부러워하고 막 좋아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그건 절대로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지구 환경을 살리는 쪽으로 가자
-전쟁을 부추기는 쪽으로 말고
평화를 지키는 쪽으로 가자.
-어려운 사람을 돕는 쪽으로 가자.
팽개치지 말고
이 정토회에서 분명히 딱 입장을 갖고 있잖아요.
그러고 막 복을 빌고 이러지 말고
자기의 어리석음을 깨우쳐서
자기 행복한, 괴롭지 않는 삶, 붓다의 길로 가자.
우리는 딱 주장이 있잖아요.
이게 선택이에요.
이런 주장이 있는데
왜 다른 사람, 그런 사람하고 반대하는 사람하고 같이 일하느냐?
남방 스님 중에 그런 거 저 어떤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는 채식주의자다.
고기 먹는 사람하고는 같이 만나지도 않겠다.
말도 안 하겠다.
같은 식탁에 안 앉겠다.
저는 뭐 내가 단식할 때도
밥 먹는 사람하고 같이 앉고
저는 뭐 고기 먹는 사람하고도 앉고
담배 피우는 사람하고도 앉고
술 먹는 사람하고도 앉아요.
필요하면.
필요 없으면 그런 사람하고 할 필요가 없지만.
저는 거기에 동의 안 하지만
자기가 하겠다는 걸 어떻게 해요?
근데 그게 남을 해치는 거는 아니겠죠.
그래서 우리가 다섯 가지 계율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해야 한다.
그러나 나머지는 가능하면 관여하지 마라.
그러나 권유해라.
바른 길을, 우리가 생각하는 길을 권유하자.
이런 관점을 가지면 어떨까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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