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덧없다고 말씀하신 부분에서
제가 생각하기에는 덧없다는 거는 의미 없다
그다음에 세상은 헛살았다 가치 없다 허망하다 이렇게 들리는데//
그거는 불교대학 다닐 때, 경전대 다닐 때 그때 묻지
왜 그 경전에 있는 내용을 지금 물어요?
네, 덧없다 또는 허망하다
그러니까 금강경에
범소유상 개시허망_ 무릇 형상이 있는 것은 다 허망하다, 이럴 때
그 허망, 여기서 ‘덧없다’ 하는 거는 같은 말이고요.
근데 그게 ‘허무하다’는 얘기는 전혀 아닙니다.
‘허망하다’ ‘덧 없다’ 하는 것은
이 세상에 그 어떤 것도
-항상 하는 것은 없다,
-고정불변하는 것은 없다.
-늘 인연 따라 변화하는 거다,
이런 얘기예요.
이것을 우리 한문으로는 제행무상이라고 그러죠.
제행무상
또 빨리어로는 아닛자 이래요. 아닛자, 무상하다.
항상 한 것이 없다.
늘 변한다.
그런데 우리가 어떤 것에 집착할 때는
그것이 항상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거기에 집착을 하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그것이 변해버리게 되면 어때요?
허무하게 느껴지죠.
그래서 괴로움이 생긴다.
그러니까 아닛자이기 때문에
두카_고가 일어난다, 이런 얘기예요.
그래서 덧없기 때문에, 즉 항상 변하는 것이기 때문에
집착할 바가 없다, 이런 얘기예요.
그러니까 집착하지 않으면 어때요?
괴로울 일이 없다
이렇게 되겠죠.
그럼 ‘부지런히 수행 정진하라’ 하는 건 왜 나올까?
그런데 우리가 현실에서는
나도 모르게 자꾸
상을 짓고, 집착을 하고, 괴로움이 생기고 이런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괴로움이 생기면
“아차, 내가 집착했구나” 하고 놓고
또 괴로움이 생기면
“아차, 내가 상을 지었구나” 하고 놓고
괴로움이 생기면
“아이고, 내가 또 어 무상함을 놓쳤구나” 이렇게
진실을 알아차림으로 해서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이런 연습을 꾸준히 해 나가면
이제 상도 짓지 않게 되고, 집착도 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 금강경 뒤에 가면 뭐라고 나옵니까?
일체유의법_ 모든 함이 있는 법은
여몽환포영_ 꿈 같고,
환_ 환상 같고,
꿈 같고, 환상 같고,
물거품 같고, 그림자 같다, 이렇게 말하잖아요.
그러니까 그것은 허무하다는 게 아니에요.
실체가 없다, 텅 비었다, 이런 의미에요.
그렇기 때문에 여기 요지는
‘집착할 바가 못 된다’ 이런 뜻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늘 집착하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늘 괴로움이 생긴다.
그러니까 그것이 제행무상인 줄 알면, 그것이 제법무아인 줄 알면
우리는 거기에 집착하지 않게 된다.
그러면 괴로울 일이 없다.
이거를 꾸준히 해 나가게 되면
괴로움이 없는 경지, 니르바나를 유지하게 된다.
얼굴 표정을 보니까
별로 알아듣는 것 같은 표정이 아닌데
추가로 더 질문이 있으면 하세요.
...
‘감정이 일어나는 거를 어떻게 제어할 거냐?’ 하는 거는
‘병이 난 뒤에 어떻게 치료할 거냐?’ 하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솥에 밑에 불을 떼면서 물이 끓으면
‘어떻게 물이 안 끓게 하겠냐?’ 하고
바가지에다가 찬물을 갖다가 붓는 것과 같다, 이 말이야.
그거는 해결책이 아니다.
일시적 해결책이다, 이 말이야.
그러니까 부엌, 아궁에 있는 불을 빼내야지
아궁이에 불을 떼는데
위에 솥뚜껑을 눌린다, 찬물을 갖다 붓는다 하는 거는
일시적 해결책이다, 이 말이야.
조금 있으면 또 안 된다. 이 말이야.
그 자기가 감정을 통제하려고 그러고 억제하려고 그러니까
됐다가 안 됐다, 됐다가 안 됐다가
이렇게 생기는 거다.
그거는 끓는 물에 찬물 붓는 거와 같다.
솥뚜껑 위에 돌을 넣는 것과 같다, 이 말이야.
그럼 근본 문제는 뭐냐?
아궁에 있는 불을 빼버려야 된다, 이 말이야.
그러니까 감정이 일어날 때
감정을 통제하려고 그러지 말고
“왜 감정이 일어날까?” 하고 살펴야 한다, 이 말이야.
화가 나면
“왜 화가 나지?”
남편이 그렇게 행동하는데, 남편이 그런 말을 하는데
그 사람 나름대로 지는 지대로 알아서 그런 행동을 하고 그런 말을 하는데
아니면 아니라 그러면 되지
왜 화가 날까? 이거야.
내가 이렇게 감정이 일어날 때 감정을 살펴야 된다.
“화가 나구나” 하고 알아차리고
“왜 나지?”하고 살필 때
거기로부터 점점 자유로워져 가는 거다.
그러니까 자기가 공부를 제대로 안 하기 때문에
그래서 시간만 많이 걸린다 이거야.
그러면 꾸준히 한다는 건 뭘 말하느냐?
이 감정 통제를 꾸준히 한다는 게 아니라
이 살피는 거를 놓친다, 이 말이야.
늘 마음을 살피고 있으면
이게 일어날 때 바로 사라지는데
놓쳐버리고
“네가 그럴 수 있나?” 이렇게
내가 옳다는 생각에 빠져버리니까, 사로잡혀 버리니까
나도 모르게 감정이 일어나 버린다, 이 말이야.
그땐 살핌을 놓쳤다, 알아차림을 놓쳤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니까 “아, 내가 놓쳤구나” 하고
다시 알아차림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거야.
그렇게 자꾸 연습을 해야 된다.
...
불대나 경전반 다니는 거는
이치를 공부하는 거다, 이 말이야.
그것을 내가 경험하고 체득하는 건
자기가 현실에서 계속 일어날 때
그때그때 계속 알아차리고, 놓는 연습을 해야지.
지식은 아무리 많아도
불교가 이런 거다 저런 거다, 뭐 팔만대장경을 다 외워도
내 감정은 제어가 안 됩니다.
그거는 생각의 문제이기 때문에
감정은 마음의 문제거든.
그러니까 이것은 마치 어두움을 휘젓는다고 없어지는 게 아니라
밝은 불을 비춰야 없어지듯이
이렇게 싹 자기 마음이 일어날 때
그것을 알아차리는, 살피는
그런 관점을 가져야
거기로부터 점점 자유로워진다.
처음부터 잘 안 되기 때문에
놓치면 다시 하고
놓치면 다시 하고
이렇게 꾸준히 일상에서 연습을 해 나가야 되고
명상을 한다 하는 거는
명상한다고 좋아지는 게 아니라
일상에서는 자꾸 나도 모르게 감정에 자꾸 끌려가니까
모든 바깥 경계를 끊어놓고
자기 알아차림만 집중을 하니까 조금 쉽다 이 말이야.
근데 자기가 아무 다른 사람하고 만남을 다 끊고
자기 혼자 자기 내면을 보라고 시간을 줬는 시간에도
내 딴 생각하고 딴 짓 하는 수준이라면
현실에서 되기가 좀 어렵지.
이 바깥 경계를 다 끊고
자기가 자기를 관찰하는 그런 데 집중할 때
돼도 현실에선 잘 안 될 수가 있다, 이 말이야
현실에서는 자극이 많이 오니까.
그러니까 운전 연습을 하는 사람이
운전 교습소에서 이렇게 왔다 갔다 하면서
면허증 따는 것이
앉아서 명상하는 거고
이제 도로주행을 하려면
막 옆 차가 막 끼어 들어오고
막 이리저리 하는 속에서 운전을 해야 되잖아요.
나 혼자만 잘한다고 안 되잖아.
그러니까 차가 옆에서 끼어들어올 것도 고려하고
급정거할 것도 고려하고
다 고려하면서 운전을 해야 되잖아요.
그것처럼 일상에서 남편이 욕을 하고, 늦게도 들어오고
애가 공부도 안 하고
이런 일어나는 속에서
내가 알아차림을 딱 유지해야
그런 경기에 끄달리지 않게 된다.
그러니까 명상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명상을 하는 거는 일종의 운전 교습소에서 연습하는 것과 같고
그런 연습을 함으로 해서...
그러니까 운전면허증도 못 딴 게
길거리 몰고 나오면 안 되잖아
자기만 다치는 게 아니라 남까지 다치게 하니까
그래서 초심자일수록
좌선을 하고, 앉아서 하고, 가르침을 받고 하고
조금 익숙해지면
걷기명상, 행선도 하고
그다음에 일상에서 알아차림을 공부해 나가야 된다.
그것을 불교대학도 다니고
또 여기 깨장도 하고
이렇게 여러 공부를 해 나가면서
조금씩 조금씩 개선이 돼 나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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