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25)

법륜스님의 희망세상만들기_ 12살 딸 아이가 희망이 없다고 합니다

Buddhastudy 2025. 1. 31. 19:22

 

 

유치원 때부터 친구가 없다 하고

때리는 같은 반 아이가 있었는데

초등 저, 초등 고학년인 지금까지 반복적으로

왕따와 학교 폭력으로 어려움이 있어 왔습니다.//

 

 

정신 질환이기 때문에 병원 치료를 받는 게 중요하고요.

그다음에 엄마가 보통 아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환자라고 생각하고, 환자를 돌보면 됩니다.

자꾸 환자를 정상인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버겁고, 힘들고, 짜증이 나고 그러거든요.

 

아이가 만약에 두 다리가 없다, 두 눈이 없다 그러면

자기는 이렇게 화나고, 짜증 나고, 힘들고, 그러지 않을 거예요.

좀 불편하지.

눈이 안 보이니까 점자를 가리킨다든지

장애인 학교에 다니게 한다든지, 이렇게 하듯이

이것도 정신적인 질환이기 때문에

환자다이렇게 봐야 됩니다.

 

그러니까 환자라도 예를 들면

장애인이라도 다리가 없는데 장애인 학교를 가면

어른들은 그 장애인을 어렵게 생각해서 도와주는 마음을 내지만

어린아이들은 아직 어리잖아요, 어리석잖아요, 모르니까.

눈도 안 보이는 것들이이러면서 놀리죠.

그건 뭐 그 아이들을 나무랄 수가 없습니다.

아직 그런 거를 알 수 있는 수준이 아니기 때문에.

 

그러나 선생님들은 그런 거를 자꾸 가르쳐서

우리가 장애는 열등한 것이 아니라 불편한 거다

이렇게 해서

장애를 차별하지 않도록 앞으로 가르쳐야 될 일이지

아이들이 그게 뭐 큰 잘못을 했다

이렇게 얘기할 거는 아니다, 이거에요.

 

그러니까 내 아이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기 때문에

조그마한 말에도, 일상적으로 애들이 그냥 막 하는 말에도

상처를 입는 그런 지금 상태이기 때문에

아동 심리학, 또는 병원, 이런 전문의의 진료를 받으면서

자기의 기대 수준을 낮추고

이런 병이 있거나 장애가 있는 아이도

그 수준에서 엄마가 기대를 안 높이면

우리 아이도 행복할 수가 있다

이렇게 할 수가 있고

자기도 힘들지 않습니다.

 

자기는 이걸 자꾸

장애가 있는데 정상인의 관점에서

정상인이 되도록 하려니까

그렇지 않다니까 지금 힘이 들거든요.

 

우리는 이런 장애가 있거나 병이 있으면

내 자식이 아니라도 남이라도 돌보잖아요.

그런데 내 자식이고 내 형제면

돌보는 게 정상이죠.

근데 자기는 지금

이런 장애가 없었으면 좋겠다

이런 병이 없는 아이였으면 좋겠다.

그럼 얼마나 좋겠느냐?”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아이를 생각하는 게 아니라

자기중심적으로 자기 욕망 중심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자기가 지금 힘드는 거예요.

아이도 힘들고.

 

그러니까 오늘부터 딱

아이가 정신적인 장애다이렇게 딱 인정을 하고

치유받는 데까지 치유받고

더 이상 치유가 안 되면

그 치유 그런 장애를 갖고도

이 아이는 행복하게 살 수가 있다.

 

이런 관점에서

그 아이의 장애에 맞는 학교를 보내고

또 아이에게도 그런 격려

괜찮아 그만해도 다행이야, 그렇게 해도 괜찮아

이렇게 격려해 주는 게 필요하지 않겠나 싶네요.

 

...

 

똑같은 얘기의 반복인데

-환자라고 첫째 생각을 할 것

-병이 금방 낫기를 바라지 말 것

-그리고 그런 병을 안고도 행복하게 살 수가 있다는 거야, 사는 데까지.

 

그래서 어느 날 일어나 보니 죽었으면

할 수 없지 그걸 어떡합니까?

자기가 그렇게 선택을 한 건데.

그러나 엄마로서는 그런 병을 안고도 행복하게 살 수가 있다.

 

그러니까 항상

괜찮아, 그런 정도는 괜찮아이렇게

인정해 주고, 격려해 주는 게 필요하지 않느냐

이렇게 생각합니다.

 

...

 

아니 그러니까 그게 병이라니까.

 

그러니까 의사 선생님한테 물어서

아이가 이렇게 힘들어하고 의사가 권장하면

조금 심하니까 학교를 쉬는 게 낫겠다든지.

 

애가 어리고 애가 환잔데

자꾸 애를 어른 생각해서

애 말을 갖고 자기가 지금

애 말을 들어야 하나? 안 들어야 하나?”

이런 생각 자체가

자기가 책임을 지려는 생각이 없는 거예요.

 

아이는 어리고, 아이는 환자이기 때문에

그런 거는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서

아이가 이런 얘기하는데 어떻습니까?” 하면

선생님이

아 이건 너무 심하니까 지금은 조금 쉬는 게 낫겠다하면 쉬게 하는 거고

약 먹고 조금 어려워도 극복하는 게 낫습니다하면 다니는 거고

그 선생님의 말이 100% 맞는 건 아니지만은

그래도 내가 결정하는 것보다는 낫다.

 

?

자기는 아는 게 없잖아요, 아는 게.

자기가 결정하면

자기는 나중에 자학이 일어납니다.

 

학교에 안 가겠다는 걸 보내서 자살을 하게 되면

자기가 보내서 죄를 지었다.

내가 안 보내야 되는데...”

이렇게 또 생각하고

 

또 안 보내가 또 문제가 생기면

아이고, 그래도 보내야 되는데 잘못했다이렇게 해서

그런 아이를 둔 자기가 지금 고통을 만든다니까.

 

또 선생님이 무슨 제안을 해서

뭐 그게 안 맞았다 그러면

그 선생님이 문제였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니까.

 

이것은 장애를 가지고 있고, 환자고

그렇기 때문에 내가 최선을 다한다, 전문가와 의논해서.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해도 멀쩡한 아이도

교통사고가 나가 죽고, 사고 나가 죽을 수도 있는데

그 아이의 말에 너무 연연할 필요는 없다.

다만 그거를

그래 죽어라이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는 거야.

그때 그런 생각이 그 아이에게 드니까.

 

그러나 어떤 죽음보다도

어떤 편안한 죽음보다도

어떤 어려움의 삶하고 비교하면 삶이 더 낫단다.”

이렇게 자기 나름대로 얘기해 주면 되는 거고

그 결과는 자기가 어떻게 할 수가 없다는 거예요.

자기가 결정권을 가질 수 없는 일이다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