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때부터 친구가 없다 하고
때리는 같은 반 아이가 있었는데
초등 저, 초등 고학년인 지금까지 반복적으로
왕따와 학교 폭력으로 어려움이 있어 왔습니다.//
정신 질환이기 때문에 병원 치료를 받는 게 중요하고요.
그다음에 엄마가 보통 아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환자라고 생각하고, 환자를 돌보면 됩니다.
자꾸 환자를 정상인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버겁고, 힘들고, 짜증이 나고 그러거든요.
아이가 만약에 두 다리가 없다, 두 눈이 없다 그러면
자기는 이렇게 화나고, 짜증 나고, 힘들고, 그러지 않을 거예요.
좀 불편하지.
눈이 안 보이니까 점자를 가리킨다든지
장애인 학교에 다니게 한다든지, 이렇게 하듯이
이것도 정신적인 질환이기 때문에
‘환자다’ 이렇게 봐야 됩니다.
그러니까 환자라도 예를 들면
장애인이라도 다리가 없는데 장애인 학교를 가면
어른들은 그 장애인을 어렵게 생각해서 도와주는 마음을 내지만
어린아이들은 아직 어리잖아요, 어리석잖아요, 모르니까.
“눈도 안 보이는 것들이” 이러면서 놀리죠.
그건 뭐 그 아이들을 나무랄 수가 없습니다.
아직 그런 거를 알 수 있는 수준이 아니기 때문에.
그러나 선생님들은 그런 거를 자꾸 가르쳐서
“우리가 장애는 열등한 것이 아니라 불편한 거다”
이렇게 해서
장애를 차별하지 않도록 앞으로 가르쳐야 될 일이지
아이들이 그게 뭐 큰 잘못을 했다
이렇게 얘기할 거는 아니다, 이거에요.
그러니까 내 아이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기 때문에
조그마한 말에도, 일상적으로 애들이 그냥 막 하는 말에도
상처를 입는 그런 지금 상태이기 때문에
아동 심리학, 또는 병원, 이런 전문의의 진료를 받으면서
자기의 기대 수준을 낮추고
이런 병이 있거나 장애가 있는 아이도
그 수준에서 엄마가 기대를 안 높이면
우리 아이도 행복할 수가 있다
이렇게 할 수가 있고
자기도 힘들지 않습니다.
자기는 이걸 자꾸
장애가 있는데 정상인의 관점에서
정상인이 되도록 하려니까
그렇지 않다니까 지금 힘이 들거든요.
우리는 이런 장애가 있거나 병이 있으면
내 자식이 아니라도 남이라도 돌보잖아요.
그런데 내 자식이고 내 형제면
돌보는 게 정상이죠.
근데 자기는 지금
“이런 장애가 없었으면 좋겠다
이런 병이 없는 아이였으면 좋겠다.
그럼 얼마나 좋겠느냐?”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아이를 생각하는 게 아니라
자기중심적으로 자기 욕망 중심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자기가 지금 힘드는 거예요.
아이도 힘들고.
그러니까 오늘부터 딱
“아이가 정신적인 장애다” 이렇게 딱 인정을 하고
치유받는 데까지 치유받고
더 이상 치유가 안 되면
그 치유 그런 장애를 갖고도
이 아이는 행복하게 살 수가 있다.
이런 관점에서
그 아이의 장애에 맞는 학교를 보내고
또 아이에게도 그런 격려
“괜찮아 그만해도 다행이야, 그렇게 해도 괜찮아”
이렇게 격려해 주는 게 필요하지 않겠나 싶네요.
...
똑같은 얘기의 반복인데
-환자라고 첫째 생각을 할 것
-병이 금방 낫기를 바라지 말 것
-그리고 그런 병을 안고도 행복하게 살 수가 있다는 거야, 사는 데까지.
그래서 어느 날 일어나 보니 죽었으면
할 수 없지 그걸 어떡합니까?
자기가 그렇게 선택을 한 건데.
그러나 엄마로서는 그런 병을 안고도 행복하게 살 수가 있다.
그러니까 항상
“괜찮아, 그런 정도는 괜찮아” 이렇게
인정해 주고, 격려해 주는 게 필요하지 않느냐
이렇게 생각합니다.
...
아니 그러니까 그게 병이라니까.
그러니까 의사 선생님한테 물어서
아이가 이렇게 힘들어하고 의사가 권장하면
“조금 심하니까 학교를 쉬는 게 낫겠다”든지.
애가 어리고 애가 환잔데
자꾸 애를 어른 생각해서
애 말을 갖고 자기가 지금
“애 말을 들어야 하나? 안 들어야 하나?”
이런 생각 자체가
자기가 책임을 지려는 생각이 없는 거예요.
아이는 어리고, 아이는 환자이기 때문에
그런 거는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서
“아이가 이런 얘기하는데 어떻습니까?” 하면
선생님이
“아 이건 너무 심하니까 지금은 조금 쉬는 게 낫겠다” 하면 쉬게 하는 거고
“약 먹고 조금 어려워도 극복하는 게 낫습니다” 하면 다니는 거고
그 선생님의 말이 100% 맞는 건 아니지만은
그래도 내가 결정하는 것보다는 낫다.
왜?
자기는 아는 게 없잖아요, 아는 게.
자기가 결정하면
자기는 나중에 자학이 일어납니다.
학교에 안 가겠다는 걸 보내서 자살을 하게 되면
“자기가 보내서 죄를 지었다.
내가 안 보내야 되는데...”
이렇게 또 생각하고
또 안 보내가 또 문제가 생기면
“아이고, 그래도 보내야 되는데 잘못했다” 이렇게 해서
그런 아이를 둔 자기가 지금 고통을 만든다니까.
또 선생님이 무슨 제안을 해서
뭐 그게 안 맞았다 그러면
“그 선생님이 문제였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니까.
이것은 장애를 가지고 있고, 환자고
그렇기 때문에 내가 최선을 다한다, 전문가와 의논해서.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해도 멀쩡한 아이도
교통사고가 나가 죽고, 사고 나가 죽을 수도 있는데
그 아이의 말에 너무 연연할 필요는 없다.
다만 그거를
“그래 죽어라” 이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는 거야.
그때 그런 생각이 그 아이에게 드니까.
그러나 어떤 죽음보다도
“어떤 편안한 죽음보다도
어떤 어려움의 삶하고 비교하면 삶이 더 낫단다.”
이렇게 자기 나름대로 얘기해 주면 되는 거고
그 결과는 자기가 어떻게 할 수가 없다는 거예요.
자기가 결정권을 가질 수 없는 일이다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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