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7)

법륜스님의 희망세상만들기_27살 청년의 진로고민

Buddhastudy 2017. 10. 25. 20:10

 

그러니까 다시 조금 더 얘기해 봅시다. 그러니까 어릴 때부터 계속 석사과정마칠 때까지 군대까지 갔다 오면서 계속 조직에 묶여 있다가, 이제 회사 취직하기 직전에 인턴이지마는, 직전에 시간을 좀 내어서, 무전여행 비슷하게 하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좀 불안하다가 지금은 자유롭다. 이 얘기에요?

 

자기가 어디 가기로 했는데 시간을 내어서 가기로 했다고 그랬잖아요. 아르바이트인데, 아르바이트도 직장이잖아요. 처음 직장을 다녀볼 셈이 되는 거요? 아르바이트도 처음해 보는 거요? 많이 했어요? 그러면 지금 자기얘기가 뭐 특별한 게 뭐가 특별해요? 아르바이트도 학교 다니면서도 해봤는데, 학교 안다니면서 아르바이트 한다는 차이밖에 없잖아요. 그런데 왜 불안해요?

 

정착은 해야 되는데, 정착을 싫어하는 성격이다? 그런가? 조금 더 한번 살펴봐요.

 

정착도 하고 싶고

매이기는 싫고 이런 거겠지.

여자 친구는 만나고 싶고

구속은 받기 싫고.

월급은 받고 싶고

직장에 매이기는 싫고.

 

아주 좋은 생각을 하셨습니다. 나도 그런 거 있으면 좀 소개해 주세요. 꿈 깨세요. 꿈 깨. 그런 건 없어.

 

그러니까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되면, 만난다는 것은 그 사람과의 관계가 맺어지기 때문에 자동으로 일정한 속박이 따르게 되는 거요. 내가 회사에 취직을 하면, 취직을 해서 돈을 버는 측면이 한쪽이 있고, 좋은 측면이라면 그 회사에 속박을 받는 측면이 있고. 이게 항상 두 개 같이 되는 거요. 내가 출가 승려가 되어서 혼자서 자유롭게 사는 대신에 여기는 계율이라는 게 있어 규제가 또 있는 거요.

 

이것은 늘 같이 움직이는 거요. 따로 땔 수가 없어요. 그런데 그 두 개를 다 하겠다는 거 아니오. 좋은 것만 골라서. 여기서 요거 좋은 거 빼고, 저기서 저거 좋은 거 빼고. 그러니까 인물이 예쁜 여자 친구가 있고, 마음씨 착한 여자 친구가 있으면 자기는 또 헷갈릴 거요. 인물을 보면 이 여자가 좋고, 마음씨를 보면 저 여자가 좋고. “인물은 이 여자 데려오고 마음씨는 저 여자 데리고 와서 둘이 섞으면 안 될까?” 이런 생각을 하면 장가 못 가는데. 하하하하. 그래서 그런 것은 없어요. 자기 욕심이에요.

 

욕심을 내려놓는 법이라는 게 따로 없고,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는 법이라고 할 수 있어요.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진다.

 

욕심이라는 게 어떤 거냐하면 돈이 지금 궁한데, 그래서 이 궁함을 면하려면 돈을 좀 빌려야 돼. 그런데 빌리면 나중에 갚아야 되잖아. 그죠? 그러니까 돈은 빌리고 싶고, 갚기는 싫고. 요것을 욕심이라고 그래. “돈을 많이 벌고 싶다.”가 욕심이 아니고,

 

모순되는 상호 두 가지를

동시에 가지려는 것을 뭐라고 한다?

욕심이다. 이렇게 말해요.

 

그러니까 그 욕심이라는 것은 성취 될 수가 없는 거요. 왜냐하면 상호 모순이 되기 때문에. 그래서 버리라는 거요. “내가 뭐가 되고 싶다.”를 버려라. 이런 뜻이 아니에요. 돈이 필요해서 빌리고 싶으면 그 빌리라는 거요. 선택을 해라. 그런데 갚아야 되는 책임이 따른다는 거요. 그런데

 

욕심은 주로 어떠냐하면

책임을 안 지려는 거요.

돈은 빌리고 싶고 갚기는 싫은 거요.

 

그러면 제가 말하는 것은

갚기가 싫으면

돈이 좀 궁하더라도 어떻게 하라?

빌리지를 마라.

이것을 논리적으로 말하면

인연과보라고 그래. 인과라 그래.

 

그러니까 원인이 있으면 뭐가 있다?

결과가 있어.

네가 원인을 지었으면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어야 된다.

결과에 책임을 지기 싫으면 뭘 하지 말아야 된다?

원인을 짓지 말아야 된다.

이 세상은 반드시 원인과 결과로 맺어져 있다.

 

그것을 옛말 말로 뭐라 한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뭐 이런 식으로 격언처럼 얘기가 되어있거든요.

 

그러니까 돈을 빌리면 갚아야 된다.” 하는 거요. 빌리고 싶다. 빌려라. 빌리지 마라. 이렇게 말할 수 없는 거요. “빌리고 싶으면 빌려도 좋다. 그런데 갚아야 된다.” “갚기가 싫다. 그러면 빌리지 말라.” 이게 인연과보. 줄여서 인과의 이치다. 이렇게 말하는 거요. 이 세상은 이런 원리로 일어지는 거요.

 

그런데 이 인과에 모순이 생기는 거요. 인과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려고 하는 거요. 돈은 빌리고 싶고 갚기는 싫다. 그럼 이것을 욕심이다. 이렇게 말해요. 그러니까

 

욕심을 어떻게 버리느냐가 아니라,

욕심은 나에게 결과적으로 괴로움을 가져오는 거요.

 

돈을 빌렸는데 갚기 싫은데 갚으라고 하니까 괴롭죠.

갚기가 싫어서 안 빌리니까 궁해서 괴롭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 괴로움이 발생한다.

 

그러니까 괴로움이 견딜만하면 욕심을 부리면 되고,

괴로움을 더 이상 못견딜만하면 어떻게 하면 된다?

욕심을 버리면 되니까 어떻게 버리느냐? 이런 말은 없어요.

이게 결과가 나한테 안 좋으니까 그냥 버리는 거지.

 

예를 들어서 여기 음식이 있는데, 아주 맛있어. 냄새도 좋고 모양도 좋아. 먹고 싶어. 딱 먹으려고 하는데 내가 거기 쥐약 들었다.” 이래요. 그럼 자기가 어떻게 해야 될까? 먹어야 될까? 안 먹어야 될까? 안 먹어야 되겠죠. 그럴 때 쥐약이 들었으니까 먹지마라.” 원래 부처님이 이렇게 가르친 게 아니고, “여기 쥐약 들었다.” 진실만 가르쳐줬어요. 먹고 안 먹고는 누가 결정하는 거요? 내가 결정하는 거요.

 

몰랐을 때는 먹고 죽게 되죠. 알았으니까 내가 선택하는 거요. 아무리 냄새가 좋고 맛이 좋아도 내가 안 먹는 거요. 그런데 자기가 나한테 이렇게 말해요. “, 배고파 죽겠는데요, 조금만 먹으면 안 될까요? 향기가 너무 좋아요.” 이렇게 얘기하면 내가 뭐라고 그럴까? 그래도 부처님은 쥐약 들었다.” 이렇게 말씀하세요.

 

그러니까 먹고 싶은 것은 이해가 된다. 그러나 그 결과가 나쁘다면 현명한 사람은 어떻게 해야 된다? 하고 싶어도 하지 말아야 되는 거요. 하기 싫은 것은 이해가 되요. 그러나

 

그것을 하기 싫지만

그것을 하게 되면 막대한 이익이 생겨.

그러면 현명한 사람은

하기 싫어도 뭐하게 된다? 하게 된다.

 

그런데 우리는

하고 싶은 것은 꼭 해야 되고,

하기 싫은 것은 무조건 안하려고 그래.

 

일상생활에서 그게 내고 좋고 싫고, 좋으면 하고 싫으면 안 해도 아무 문제가 없어요. 그런데 내가 꼭 하고 싶은데 하면 안 되는 상황이 있어. 예를 들면 전철을 탔는데 밤에, 한잔 먹고 전철을 탔는데, 전체 아무도 없고 여자 한분밖에 없어. 그런데 미니스커트를 입고 있어. 종아리를 보니 너무 예뻐. “, 만지고 싶어.” 그러면 하고 싶다고 가서 만지면 되나? 안 되나? 되지.

 

그러면 그 만지고 싶은 게 잘못된 게 아니고, 만지고 싶은 욕망은 이해가 된다 이거야. 그러나 그 만지는 행위로 치러야 할 결과가 너무 크다 이거야. 그러니까 우리가 그 쥐약 들었다는 거 똑같다는 거요. 만지고 싶다. 그러면 만지면 너는 많은 손실을 입게 된다. 그러면

 

어리석은 사람은 그것을 만지고

성추행 범으로 감옥을 가게 되는 거고,

지혜로운 사람은 그러한 욕망이 있지마는

그것을 자제하는 거요. ? 손해가 너무 크기 때문에.

 

그런데 보통 술이 취하면 어떠냐?

계산이 마비되는 거요.

지혜가 없어진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 우리 학교 교장선생님이 지하철에서 남의 종아리를 카메라로 찍다가 잡혀서 망신 사는 거 봤지 않습니까? 그죠. 그러니까 취하면 그렇게 되는 거요. 판단력이 흐려지니까. 그래서 술을 먹고 취하지 마라는 계율이 있는 거요. 그러면 손실을 입게 되니까.

 

그러면 어린애들이 게임은 하고 싶고 공부는 하기 싫잖아요. 그런데 지혜로운 어른들은 하기 싫은 것은 이해되지마는 지금 공부 안하면 나중에 더 큰 손실이 생긴다. “그러니 얘야, 공부해라. ? 지금 하기 싫다고 안하게 되면 나중에 손해를 보게 된다. 지금 싫지만 그래도 조금 하게 되면 나중에 이익이 있다.” 이런 얘기죠. 그런데 아이들은 어리석기 때문에 그게 귀에 잘 안 들어오죠. 지금 눈앞에 보이는 것만 생각이 되지, 10년 후 20년 후는 생각할 수가 없다는 거요. 아이들은.

 

지금 당장 배고픈데 내가 집중하면 이 음식을 먹고 죽는 것은 생각을 안 하게 되는 거요. 그래서

 

이 세상에는 나쁜 사람 좋은 사람이 있는 게 아니라

어리석은 사람과 지혜로운 사람이 있는 거요.

 

쥐약을 먹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 아니라 어리석은 사람이다.

그 종아리는 만진 사람은

나쁜 사람이 아니라 어리석은 사람이다.

 

그런데 쥐약을 먹는 사람은 자기에게만 피해를 줬기 때문에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그러고, 이 종아리를 만진 사람은 자기한테도 피해를 줬지만 상대한테도 어떻게 했다? 피해를 줬기 때문에 자기한테 피해를 준 것은 그래도 감옥 간 것은 어리석은 사람이고

 

상대한테 피해를 준 것은

무슨 사람에 속한다? 나쁜 사람에 속하는 거요.

 

상대를 해치거나

손해를 끼치거나

괴롭히거나 하면

그것은 나쁜 사람에 들어가는 거요.

 

그러니까 이 사람은 자기에게 피해를 끼친 어리석은 사람에다가 상대에게 피해를 끼친 나쁜 사람에 두 가지가 겹치는 거요. 그래서 그런 모순된 생동을 멈춰라. 이런 얘기거든요. 그래서

 

욕심을 어떻게 버리느냐가 아니라

그것이 나한테 손실이기 때문에 버리는 거고 지혜로운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은 눈앞에 보이는 그 욕망에 사로잡혀서

손실을 못 보는 거요. 그래서 나중에 후회하게 되지.

 

그러니까 우리가

하고 싶어도 때로는 절제 할 줄 알아야 되고,

하기 싫어도 때로는 행할 줄 알아야 된다.

그래야 삶이 자유로워진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거요.

 

자기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원리만 얘기했으니 구체적인 자기 삶에서 한번 얘기해 보세요. 의문이 생긴다면.

 

그건 욕심 아니에요.

그런데 자기가 돈은 없고, 해외여행은 마음껏 3년 다니고 싶다. 그러면 그것은 욕심에 들어가는 거요. 해외여행을 다니고 싶다가 욕심이 아니라,

 

내가 해외여행을 다니기 위해서는

부모님의 희생이 따른다는 거요.

 

내가 돈을 벌어서 내가 해외여행을 다니면

잘못이 아니에요.

그런데 내가 좋다고 남을 희생해서는 안 되잖아요.

 

내가 어떤 여인을 보고 포옹하고 싶다. 그 여자가 싫다는데 가서 포옹해 버리면 나는 사랑을 했지마는 그 여자는 뭐를 당했다? 성추행을 당한 게 되잖아. 그죠? 그러니까 나는 좋지만 남에게 피해를 준 거에 들어가는 거요.

 

그러니까 지금 자기가 내가 지금 27살이고, 이미 석사까지 마쳤는데, 새로 대학에 들어가서 뭘 하겠다. 할 때는 그 재정을 자기가 자립해서 가면 괜찮아요. 그런데 부모님의 도움을 얻어서 가겠다.” 할 때는 부모를 희생시키는 거거든요. 그것은

 

자기가 아무리 자식이라도

부모를 희생시킬 권리는 없어요.

부모는 20살 때까지만 자식을 돌봐줄 의무가 있는 거요.

20살이 넘으면 자기가 자립을 해야 되는 거요.

 

그러면 우리가 은행에서 돈을 빌리듯이 20살이 넘었는데도 부모의 재정지원을 받았다 그러면 그것은 권리가 아니고 빚이에요. . 부모로부터 내가 빚을 내어서 쓴 거니까 나중에라도 갚아야 되는 것에 속한다. 인생의 이치를 말하면. 그런데 부모도 부모은행에서 더 이상 대출을 할 수가 없다. 그럼 자기가 대출을 못하면 못하는 거지. 그러면 선택할 수 있는 건 뭐냐?

 

부모님하고 의논해서 내 이 새로운 사업이 상당히 투자가치가 있으니까 투자를 좀 하십시오. 4년간 투자를 좀 해주십시오. 이것은 자식으로서의 권리가 아니고, 투자자에 대한 자기의 설득을 통해서 투자유치를 하면 되요. 그렇게 해서 다니든지, 투자유치를 못하면 자기가 먼저 자기 정한 것을 가지고 뭐한다? 취직을 해서 생활을 하면서 저축을 해서 좀 늦게라도 그것을 해보든지, 안 그러면 직업은 내 전공을 가지고 하고, 그 다음에 취미로, 그런 방송통신 이런 것을 해보면 되요.

 

그러다가 아르바이트 식으로 하다가 그거에서 수입이 조금 생기면, 직업을 옮겨가면 된다는 거요. 이런 순서를 밟아야 된다. 이게 현명한 사람이 하는 일이다.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은 그냥 때를 쓰는 거요. 나 아이스크림 먹고 싶다고 아이스크림 사내라 하는 것처럼 지금 까지 27살이 되도록 공부를 시켜놓으니 이거 싫다고 그러고, 저거 하고 싶다 그러고, 또 시켜 놓으면 또 싫다고 저거 하고 싶다 그러고. 그러면 부모가 아무리 자식이지마는 계속 그렇게 지원 할 수는 없잖아. 그죠? 그러니까 20살이 넘으면 그렇게 사는 것은 올바른 방식이 아니다.

 

그래서 지금 1차적으로 아르바이트를 한든 뭘 하든, 1차적으로 먼저 자기 자립을 먼저 해야 된다. 제가 생각할 때. 1차 자립을 먼저 하고 2차로 정공을 살려서 직업을 구해간다. ? 전공을 살리는 직업을 구하면 아르바이트보다 자기 노동에 대한 대가가 효율적으로, 즉 아르바이트하면 하루 8시간하면 100만원 준다하면 자기 전공을 살려서 취직을 하면 어때요? 200만원 준다면 똑같은 일을 하고 자기가 노동의 가치가 높아지잖아. 그죠? 그런데 이것을 찾기가 쉽지 않을 때는 일단 먼저 아르바이트를 해서 자립을 하고,

 

2차적으로 계속 취직자리를 구해서, 취직자리 구하는 동안 놀면 안 되고 아르바이트라도 해서 노동의 효율이 높은 쪽으로 옮겨가고,

 

3차에는 자기 하고 싶은 것을 하면 놀이가 되요. 하기 싫은 것을 하면 스트레스를 받게 되잖아. 그래서 하고 싶은 것은 돈을 주고도 한다. 이런 놀이에요. 하기 싫지만 돈 때문에 한다. 그러면 노동이에요. 그러니까 이 3단계로 넘어갈 때는 노동에서 놀이로 전환하는 거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도 밥 먹고 살 수만 있으면, 월급이 다시 50만원이 되어도 하고 싶은 쪽으로 옮겨가면 되요. ? 나는 놀이삼아 인생을 사니까. 이렇게 3단계로 가면 좋겠다. 싶어요.

 

스님은 지금 어느 단계에 왔습니까? 3단계에 와 있어요. 저는 노동을 하는 게 아니라 놀이의 삼아 하는 거요. 그래서 여러분들 강연료를 안 받는 거요. 강연료를 받으면 내가 적게 받으면 저임금노동자가 되고, 많게 받으면 고임금 노동자가 되는데, 안 받기 때문에 저는 노동자가 아니에요. 그래서 저는 놀이삼아 하는 거요.

 

놀이삼아 하기 때문에 노동하는 사람보다 제가 더 오래할 수 있어요. “오늘 한 5시간 하자.” 하면 난 5시간 놀 수가 있어. 그런데 여러분들은 5시간 놀기가 좀 힘들거요. 2시간 놀면 벌써 힘들어서 빠져나갈 거요. 그런데 실제로 노동은 내가 더 힘들거든요. 나는 말해야 되고 여러분들은 앉아있으니까. 하하하.

 

그러니까 그렇게 단계로,

처음에는 무조건 20살이 넘으면 자기 자립을 해야 되니까, 직업귀천을 따지면 안 돼요. 무조건 자립하는 게 원칙이다. 생존이 원칙이다.

두 번째는 이왕지 노동을 하는 데에서 노동이 효율적인 노동을 한다. 그러면 자기가 잘하는 것을 하는 거요.

세 번째는 노동으로부터 놀이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좋아하는 쪽으로 해 나간다. 그러면 뭐를 감수한다? 재정손실을 감수해야 되요. 그러면 전환하면.

 

그런데 2단계에서 3단계 가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에요. 왜냐하면 우리가 돈에 집착을 하기 때문에. 그러면 2단계에서 3단계 가려면 돈을 과감하게 포기를 해야 되요. 그런데 2단계에서 돈을 많이 벌어서 취미생활로 돈을 팡팡 쓰면서 노는 사람이 있잖아. 그럼 500만원을 벌어서 200만원을 노는데 쓴다. 그러면 저는 300만원 받되 내가 좋아하는 일로 전환하는 거요. 그러면 200만원을 놀이에 쓸 필요가 없잖아요. ? 자기 직업 자체가 없으니까. 놀이니까. 이렇게 전환을 하는 방식이 있다. 굳이 내가 인생을 얘기한다면.

 

그래서 저는 3번째 단계에 들어왔어요. 그래서 제가 여러분들이 볼 때 , 스님, 지치지 않습니까? 나이도 많은데 건강이 안 좋습니다.” 그런데 노는 것도 힘들어요? 안 힘들어요? 힘들어요. 그럼 노는 것은 조금 쉬면되잖아. 그죠? 그래서 저는 육체적으로 힘든 것은 조금 있지마는 조금 쉬면되지만, 스트레스 같은 것은 좀 적은 편이에요. ? 노니까. 노는데 왜 스트레스가 있어요? 스트레스 풀려고 하는데.

 

그래서 내가 결혼생활이 힘든 것을 들으면 스트레스를 받는 게 아니라, 혼자 사는 스트레스가 풀어져요. 아시겠어요? “, 결혼생활이 저렇게 힘들구나. 내가 안하기를 정말 잘했지.” 이러면 그냥 혼자 사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가 확 풀려버리고, 자식을 안가지고 있는 스트레스가 있다 그러면 자식 때문에 괴로워하는 얘기를 들으면 내 스트레스가 확 풀려버리고.

 

그래서 놀이라고 하는 거요. 저는 여러분들의 얘기를 듣는 게 나한테 부담이 아니고 놀이에요. 여러 가지 내가 배우는 점이 많거든요. 그래서 저는 항상 즉문즉설 할 때마다 내 선택에 대해서 굉장히 자신감이 생기는 거요.

 

그런 것처럼 자기 인생을 어떻게 살 거냐? 이분 얘기 때문에 우리가 전체적으로 같이 하는데, 젊은이들은 첫째 20살이 넘으면 부모에게 의지하면 안 됩니다. 부모의 도움을 받으면 안 되느냐가 아니라, 그때는 부모로서 도움을 받는 게 아니라 뭐로써? 스폰서로서 계약을 해야 됩니다. 아시겠어요?

 

20살이 넘으면 스폰서에게 내가 프로그램을 제출해서 내가 대학을 가서 이렇게 이렇게 하면 이것이 나중에 수익이 이렇게 이렇게 더 나기 때문에 부모님에게 투자가치가 있다.” 부모님을 설득해서 자기가 지원을 받는 거요. 이것을 일종의 뭐라고 그럴까? 금융권에다가 투자를 받듯이. 이런 관점.

 

그러니까 미성년자, 20살 이하는 미성년자일 때는 부모는 자식을 돌봐야 할 책임이 있고, 자식은 부모 말을 들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런데 20살이 넘으면 자식은 부모 말을 들어야 할 책임이 없어지고, 대신에 부모는 자식을 지원해야 될 책임이 없어집니다. 그러면 성년이 되면 부모와 자식은 이름만 부모와 자식이지 성인과 성인사이의 계약관계로 넘어가야 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게 계약관계로 안 넘어가기 때문에, 부모는 20살이 넘은 자식에게 자꾸 잔소리를 하니까, 자식은 부모로부터 엄청난 억압의 스트레스를 받고, 또 부모는 자식을 20살이 넘었는데도 계속 돌봐야 할 무거운 짐을 지니까 부모한테도 또 엄청난 부담이 되죠. 그래서 부모자식이 어릴 때는 참 좋았는데, 성인이 된 부모자식 사이에는 굉장히 서로 원한관계가 되기가 쉽다. 이런 얘기요.

 

그럼 부모자식은 원수가 되는 게 아니라,

이 관계를 전환하지 않아서 그래요.

 

그래서 여러분들 결혼생활 해보면 이것을 알 수 있잖아요. 내 남편이 한 남자로서 독립된 사람인 줄 알고 결혼했는데, 이 사람이 독립이 아직 안 되어있고, 어떤 늙은 여자의 어린아이로 아직 위치로 가지고 있다. 그러면 결혼생활하기가 힘들어요? 안 힘들어요? 힘들죠. 결정을 둘이서 못하고, 늘 딴 데 가서 물어보고 와서 결정을 하는 거요. 그러면 이 회사가 운영이 제대로 안 되는 거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20살이 넘으면 자립을 해야 돼. 재정적으로 자립해야 되고, 의사결정에 독자성을 가져야 되요. 그러면 부모 말을 안 들어야 된다가 아니라, 부모는 어떤 말을 해도 그것은 최종결정은 내가 해야 되는 거요. 그 여자하고 결혼하면 안 돼. 이렇게 얘기하는 것은 부모님은 나한테 간섭하지 마세요.” 이러면 안 돼요. 부모는 그런 의견을 낼 권리가 있어요.

 

그러나 그것은 부모의 마음이지 그 여자하고 결혼하고 안하고, 부모 말을 듣고 안 듣고는 누가 결정한다? 내가 결정하는 거요. 그런데 여기 보면 무책임하게 자기가 결혼해놓고는 나중에 엄마한테 봐라. 내가 안한다고 그랬는데 엄마가 그 여자 좋다고 그래서 하라고 그래서 했잖아.” 이렇게 얘기하면 안 돼요. 20살이 넘으면 어떤 결정도 최종책임을 누가 져야 된다? 자기가 져야 돼.

 

그러니까 이런 인간관계가 제대로 정립이 안 되어서

오늘날 우리 가족이 가족관계에 갈등이 생긴다.

그래서 여러분들 정신 차리셔야 돼.

 

자기가 지금 그 전공을 하고 싶은 것은 괜찮은데, 그것을 부모의 지원을 받아서 하겠다는 생각은 잘못되었다. 그러면 무조건 잘못된 게 아니라 프로그램을 내 봐야 돼. 부모가 오케이 하면 그건 부모가 투자니까 괜찮아요. 내가 뭐 담보도 없는데, 부모에 대한 나와의 신뢰, 지금까지 함께 살았던 신뢰에 의해서 신용대출을 원하는 거요.

 

그런데 부모가 신용대출하기가 어렵다 그러면 자기는 대출을 포기하고, 일단 지금까지 공부한 것을 가지고 자기 인생을 먼저 살고, 거기서 저축한 돈을 가지고 이 문제에 접근하는 방법이 있다.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