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저는 결혼 10년 차 된 주부입니다.
남편의 강박증 틱장애로
친 가족 시어머니 시아버지 가족 모두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모든 언어가 좋지 않은 욕설이 대부분이라
크는 아이에게도 도움이 되지 못하는 거 같아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이해하고 보듬자 마음먹고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지만 잘 되지 않았습니다.
행복하게 가정을 꾸리고 싶은데 제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면 좋을까요?
좋은 말씀 좀 부탁드립니다.//
어떤 증상인데요?
병원에서 진단을 받은 진단입니까? 진단을 안 받고 그렇게 심한 증상입니까?
이해를 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환자거든요. 질환에 속한다는 거요. 그것은. 예를 든다면 의부증이라든지, 이런 것도 다 질환에 속하잖아 그죠? 그러니까 고공공포증이라든지, 이런 우울증이나 이게 다 질환에 속하잖아. 그죠? 육체가 질환이 있듯이 정신도 질환이 있거든요.
질환은 환자를 환자로 이해해야지, 그것을 뭐, 어떻게 좀. 정신질환에 대해서 우리 지금 한국 사람들의 제일 큰 문제는 이것을 질환으로 안 본다는 거요. “그냥 정신만 차리면 된다.” 자꾸 이렇게 보기 때문에 이것을 가지고 시비를 하면 안 돼요. 환자이기 때문에 시비해봐야 아무 도움이 안 되는 거요. 다리 부러진 사람에게 “빨리 걸어라.” 하는 거와 똑같은 거요.
다리 부러진 사람은 부러진데 맞게 휠체어를 타든지, 절둑절둑 걷든지, 천천히 걷든지 이렇게 해야지, 인내심이 아니라는 거요. 그런데 문제는 육체의 병은 눈에 보이고, 정신질환은 눈에 안 보이기 때문에, “너만 정신 차리면 된다.” “당신만 의심하지 않으면 안 되겠냐?” 이렇게 얘기하는 것은 그것은 너무 인생을 피곤하게 살게 되어있다. 이것은 이미 환자이기 때문에. 그런 질환이기 때문에 그냥 환자로 대응을 하면 된다는 거요. 환자로. 딴 거 아무 필요 없고.
예를 들면 알코올 중독자에게 “술만 안 먹으면 된다.” 이런 얘기 해봐야 아무 도움이 안 돼요. 왜? 자기 의지로 술을 안 먹을 수 있으면 중독증이라는 병명이 날까? 안 날까? 안 나겠지. ‘중독증이다.’ 이 말은 자기가 통제가 안 된다는 거요. 우울증환자를 우울증이다. 이렇게 말할 때, “너만 차리면 된다.” 정신이 차려지면 뭣 때문에 우울증이라고 말할 게 있어요?
그러니까 그런 강박관념은 이미 병에 속하기 때문에 질환이라고 보고, 환자라고 보고 그 말에 환자가 하는 말에 내가 괘념치 말아야 된다.
그런데 이게 어려워요. 저도 약간에 이런 의심병이 있거나 이런 사람하고 사는 분들 얘기 들어보면 참 사대육신은 멀쩡한데 매번 그렇게 헛소리를 하면 괜찮은데, 이게 또 발작을 한번 하면 또 그렇게 집요하게 하다가, 또 어떻게 하다 괜찮으면 또 매일 발작하면 병원에 입원시키면 되잖아요.
그러니까 고통이 충분히 이해는 됩니다마는 제일 좋은, 남편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그냥 환자라고만 이해하는 게 제일 쉬워요. “또 병이 낫구나.” 이렇게. 그러면 그것을 이혼을 한다고 조건을 건다고 해서 고쳐지는 것도 아니고, 겁을 주면 ‘정신 차린다’ 하지만, 그 정신 차린 게 오래 갈 수는 없다는 거요. 정상적인 사람은 약속을 하면 지켜지지만, 이것은 환자이기 때문에 약속을 한다고 지켜질 수가 없다는 거요.
자기가 인생을 선택할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환자라고 생각하고 다리가 없는 사람, 장애인도 같이 살고, 눈이 안 보이는 사람도 살고, 귀가 안 들리는 사람도 살듯이, 환자라고 생각하고 몸은 괜찮지만 가끔 이런 질환이 있는 환자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증상이 들 때는 “네네 알겠습니다. 네네.”하고 환자가 하는 얘기니까, 그 분야에 병이 도져서 생긴 얘기니까, 그것을 문제 삼으면 안 돼. 문제 삼으면 자기가 거기에 휘말려 들어가는 거요.
그럼 자기도 화를 내게 되고, 자기도 변명을 하게 되고, 자기도 무슨 얘기를 하게 되고, 이러면 막, 자기도 괴로워지는 거요. 그리고 상대에게 병을 더 가중시키고. 그러니까 “네. 알겠습니다.” 속으로 “병이 시작되었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그냥 맞춰주는 거요. 그냥. 그리고 좀 심하면 어떻게 하면 된다? 병원에 데리고 가서 입원을 시키면 되고, 또 약 먹고 또 나아서 오면 또 같이 지내다가 또 병이 시작되면 또 심하면 입원시키고.
왜냐하면 요즘은 인권문제, 정신질환 환자도 인권문제가 있기 때문에 완전히 발작을 해서 심하지 않으면 강제입원을 시킬 수가 없습니다. 사실은 이것 때문에 정신질환 치료가 더 어렵기는 해요. 그래도 백 명에 하나든, 열에 하나든, 멀쩡한 사람을 정신질환이라고 모함을 해서 입원을 시켜서 하는 이런 부작용이 있기 때문에 남을 해치는, 사람을 때리거나, 기물을 부수거나, 이런 정도의 행동이 아니면, 강제 입원도 안 됩니다.
그러니까 길은 두 가지. 어렵죠. 그러니까 환자려니 생각하고 봐주고, 발작을 해서 이런 외형으로 누가 봐도 문제가 있다. 이 정도가 되면 어때요? 119에 연락을 해서 강제 입원을 시키면 되는데, “이 아이는 내 아이 아니지. 딴 놈하고 만나서 낳았지?” 이런 정도 갖고 입원 시킬 수는 없다는 거요.
자기도 그렇게 의심을 드는데, 우리가 속으로 의심해도 바깥으로 말을 안 하잖아. 그죠? 속으로 욕을 하고 싶어도 이성이, 감정이 욕을 하고 싶어도 이성이 그것을 통제하는데, 정신질환의 가장 큰 문제는 이성이, 그러니까 의지가 감정의 통제기능이 상실되어 버리는 거요. 여러분들도 같이 살면서 어떤 사람 보면서 우리 그러잖아. 애기라고 데려왔는데 얼굴을 보면 아빠를 안 닮았다. 엄마를 안 닮아서 “저게 자기애 맞나?”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지만 그것을 물어보나? 안 물어보나? 안 물어보죠.
그런데 이런 경우가 그것이 입 밖으로 나와 버린다는 거요. 그러니까 누구나 다 그런 의심은 우리가 한다. 다만 우리는 속으로 그것은 자기도 지금 그런 남자하고 “아이고, 이런 사람하고 못살겠다.” 이런 마음이 들 때도 있지만, 그것을 “이러면 너하고 못살겠다.” 이런 말은 안하잖아. 그죠? 그런 것처럼 그게 통제가 안 되고, 그게 입으로 나와 버리는 거요.
그러니까 그 말을 귀담아 들으면 안 돼. 그 말은 그때 그런 마음이 누구나 다 들 수 있는데 통제가 안 되는 거요.
보듬으려고도 할 것 없어.
보듬기는 뭐 보듬어.
보듬으려고 하기 때문에 자기가 살기가 힘드는 거요.
그냥 “환자다.” 이렇게 생각하고
병이 도질 때는 “아, 병이 났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또 병이 나면 같이 지내고.
그러니까 너무 기대도 갖지 말고,
너무 애정도 표현하지 말고,
자기의 병이라면 그거에요.
그것을 너무 불쌍히 여겨 보듬겠다.
자기 자식도 아닌데 자기가 뭣 때문에 그래?
그러기 때문에 또 자기가 더 힘드는 거요.
“내가 언제까지 이렇게 사나?” 이러거든요.
그러니까 환자려니 생각하고, 그냥 병이 도지면 “아이고, 병이 나셨구나.” 이러면 그때부터는 자기가 조금 더 부드럽게, “네네, 아이고 알았어요.” 그리고 “남의 자식이지?” 이렇게 묻고, 그 다음에 또 어떻게 묻나하면 “남의 자식이라고 얘기하면 내가 문제 안 삼을게.” 또 이렇게 나옵니다. 그럴 때, “그럼 좋다. 너 문제 안 삼는다 하니까, 아니지만, 네 자식 맞지만 아니라고 대답해볼까?” 하도 자꾸 그렇게 쪼니까, 그래도 그런 말 하면 안 돼. 그러면 “이제 네가 바른말 하구나.” 이렇게 나옵니다.
그래서 아무리 유혹을 해도 “아이고, 여보 아닙니다. 당신 빼놓고 내가 만난 사람이 없습니다.” 이렇게. 말 길게 변명할 필요도 없고. 그냥 “아니에요.” 이렇게만 하면 돼. 그거 뭐, “다른 만날 사람이 없습니다.” 이 말 하려고 해도 입이 아프잖아. 그지? 그러니까 자기 말 실컷 하게 하고, 대답은 “노!” 이렇게 말하면 돼.
그러면 자기가 입 아프지 내가 입 아플 게 뭐가 있어. 그러니까 환자로서 하는 얘기니까 아니면 아니라고만 얘기하고 “나 말고 딴 남자 만나지.” 그래도 “아니에요.” “남의 자식이지?” 해도 “아니에요.” 이러고, “너 나하고 안 살려고 그러지?” 그래도 “아니에요.” 이러면 돼.
가더라도
어느 날 없어지는 게 나아.
그러니까 그렇게만 길게 말하지 말고, 아니라고. 변명은 해봐야 아무 도움이 안 돼요. 그냥 “아닙니다.” 이렇게. “아니에요.” “아니에요.” 이렇게. 그럼 자기 열 마디하고 자긴 한마디하고 열 마디하고 한마디하고. 그러면 뭐, 자기가 지치지 내가 지칠 이유는 없잖아. 자기 한마디 했는데 나는 열 마디로 변명하고, 한 마디 하면 열 마디로 변명하고. 이러니까 누가 지친다? 내가 지치는 거요. 지칠 필요가 없어요. 환자이기 때문에.
그렇게 해서 사는데 까지 살아보고, 내가 볼 때는 사는데 아무 지장이 없어. “아니에요.” 그러면 되니까. 그런데 그것을 자꾸 변명하려고 그러고, 해명하려고 그러고,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자기 지쳐서 나가떨어져. 그거 너무 불쌍히도 여기지 말고. 그건 저희 엄마가 불쌍히 여기겠지. 내가 뭐 불쌍히 여길게 뭐가 있어요?
그럼 잘됐지 뭐. 이상이 있는 줄 알았는데, 아무데도 이상이 없네. 이러면 딱 끝나야지.
공항장애니까, 남편 말에 자꾸 이렇게 대응을 하면 공황장애에 빠지니까, “아닙니다.” 이렇게 편안하게 가지고, 어떤 말을 해도 “아닙니다.” 이렇게 하면 돼. 그러면 저절로 편안해져.
“마음을 편히 갖는다.” 그 말이 안 맞다니까.
마음을 편히 갖고 싶다고 가져지면
나한테 질문할 사람이 있을까? 없을까?
편히 갖고 싶어도 마음이라는 것은
그렇게 작동이 안 되니까
여기 와서 이렇게 묻는 거 아니오.
그러니까 “아닙니다.” 이렇게 “환자입니다.” 스님이 “환자입니다.” 이 말이 내 마음을 편안하게 “아, 환자였구나.” 나는 저 말을 갖고 자꾸 시비를 하다 보니 내 마음이 불안해졌고, 불안한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려고 해도 안 가져지는데, 마음을 편안하게 갖는 방법은 “아, 환자였구나.” 이러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 말이오.
저 분은 환자입니다.
이렇게.
그러니까 절을 하면
부처님이 도와주고 관세음보살님이 도와주고
이런 애기가 아니고,
그것은 종교 얘기고. 알았죠?
그런 게 있다고 믿으면 또 있을 수도 있는데,
그것은 종교 얘기고,
절을 하면서
저 분은 환자입니다.
저 분은 환자입니다.
이럴 때 내가 저거를 환자라고 안보고
“그 말을 시비를 했구나.”하는 것을 참회해야 되는 거요.
그러면 자기 속에 무의식에, 의식이 무의식에 들어가서 계속 자기 암시를 주는 거요. 뭐라고? 환자라는 것을. 그런데 우리가 육체를 딱 보면 육체가 멀쩡하니 환자라는 것을 잊어버린다 이 말이오. 그러면 말하는 말에 꽉 내가 대응을 하는 것은 환자라는 것을 순간 놓쳐버린 거거든요.
그래서 환자입니다. 하고 자꾸 절을 하면 딱 마음이 변명하려고 그럴 때, “아, 환자지.” 이렇게 하면 다시 진정을 하고, “네. 알겠습니다.” 환자는 얘기한대로 그냥 환자니까, 정상적인 게 아니란 말이오. 다른 것은 다 정상적인데, 고 분야만 환자란 말이오. 고 부분만. 전체를 다 무시하라는 게 아니라. 그렇게 말하는 것만 환자적 병으로 생겨서 말을 하는 거니까, 그때는 “환자입니다.” 이렇게 자기 내면에, 남편이 말할 때도 “지금 병이 났네요. 병이 났네요.” 이렇게 자기 암시를 주면, 그 말이 아무렇지도 않단 말이오.
내가 말은 이렇게 하지만 저거 보통 일 아니오. 가족관계 정신, 저런 약간의 질환이 있는 분, 또는 남편이나 아내가 의심병이 있는 사람, 이런 사람하고 같이 살면 사람이 미칩니다. 이게 숫제 다리가 부러졌거나 무슨 중풍이 들어도 몸뚱이를 못 움직이니까 눈에 보이잖아. 그죠? 그러니까 이것은 아무리 힘들고 간호를 해도 이게 환자라는 것을 내가 갖고 하니까, 도움이 되는데, 이건 뭐, 멀쩡한데 가끔 이러니까 사람이 머리가 돈단 말이오.
그런데 눈에 안보여서 그렇지, 환자에요. 그래서 항상 환자라는 각성을 가각을 해야 됩니다. 환자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약간 문제가 심각하면 “아, 이게 정상을 넘으셨다.” 하면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고, 그 다음에 병원에 의사의 진료에 따라 치료를 해야 되요. 그리고 나는 환자라는 것을 늘 인지를 해야 됩니다.
지금 우리는 환자라는 인지를 안 하거든요.
이게 제일 큰 문제에요.
그것도 환자에요.
앞으로 세월이 흐르면
육체적인 병은 병축에도 아마 안 들어갈 거요.
정신적인 질환이 더 커집니다.
이유는 지금 여러분들 컴퓨터, 우리 초기에 컴퓨터 나왔을 때 주로 하드웨어가 고장이 나서 맨날 고치고 그랬잖아. 그죠? 요즘 컴퓨터에 하드웨어에 고장 날 일이 있나? 없나? 거의 없어. 전부 소프트웨어 문제에요. 그래서 백신, 개발하고, 요즘 사이버 전쟁이라는 것도 전부 소프트웨어 문제잖아. 그러니까 앞으로는 정신질환이 큰 문제요. 그래서 지금 우울증 환자나 이런 수가 굉장히 증가합니다. 연령층은 점점 낮아지고 있고.
그래서 옛날 같으면 아주 극소수에 있을, 부모가 자식을 죽이거나, 그런 것도 다 우리가 볼 때는 “어데 짐승보다도 못하고” 그러지만 다 정신질환에 속합니다. 그게. 그냥 그 현상만 보지 말고, 어떤 정신질환상태에서 일어나는 일이거든요.
그래서 제가 얘기하지 않습니까?
이것을 치료를 하는 쪽으로 하기에는
사회적 비용이 앞으로 너무 많이 들고,
또 사회적인 손실이 엄청납니다.
미국 같은데 지금 매일매일 초등학교부터 총 쏘아서 사람 죽이고 이런 일 계속 일어나잖아. 그죠? 그래서 아이를 3살 때까지 정신적으로 안정시키고 건강하게 키우는 것에 대한 예방책은 이것보다 더 좋은 예방책은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얘기를 내가 해줘도, 사람들은 미래의 일어날 일이잖아.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얘기해주면 아무 소용이 없어요.
전쟁이 일어나서 사람이 죽고, 재산이 파괴되고, 난민이 되어서 국제 사회로 떠돌고 하면 “아, 조금만 우리가 감정을 진정했으면 이런 고통을 안 받을 건데” 이렇게 반성을 하고. 애가 나중에 자라서 문제가 생기면 “아, 내가 어릴 때 조금만 지위니 돈이니 하는데, 신경 쓰지 않고 아이 마음을 좀 편안하게 안정시켰으면 좋았을 텐데.” 이렇게 되지마는,
지금은 뭘 먹이고, 뭐 입히고 이런 거 밖에 안 보이잖아요.
사실 이것은 하등 중요한 게 아니에요.
뭘 먹이고, 뭘 입히냐 이것은.
그런데 고양이나 돼지도 아니고, 왜 그것을 자꾸 중요시 합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를 위해서 엄마가 모든 것을 희생하고, 헌신하는 것이
그 사랑을 먹고 아이가 사람이 되고,
사람답게 자라는 거거든요.
그래서 어릴 때,
자아가 형성될 때 심리를 안정시켜주는 것,
그것은 엄마만이 할 수 있는 일이오.
그 나머지는 다 딴 사람이 해도 되요. 사회가 해도 되고. 교육 같은 거 이런 것은 다 다른 사람이 대신할 수 있는 일이다. 이 얘기요.
그리고 여기 할머니들, 자기 딸이 힘들다고 가서 손자 봐주는 사람들 많이 있잖아. 그죠? 그런데 지금 자기 딸은 지금 40되고, 30이 되었는데, 아직 엄마가 돌보려고 그래요. 그럼 그 아이는 제 엄마로부터 사랑받을 권리가, 한 살짜리 두 살짜리가 제 엄마로부터 사랑받을 권리를 뺏어서는 안 된다.
직장생활하면서 아무리 어렵더라도 내 자식을 내가 돌보려고 하는, 그 정성 속에서 아이가 아주 훌륭하게 심리적 안정이 되어 자라는 거요. 그러니까 자기 딸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 까지는 좋은데, 그 어린아이가 엄마로부터 사랑받을 수 있는 권리를 뺏어서는 안 된다. 이것을 꼭 명심을 하셔야 되요. 그래서 주말에만 가서 좀 거들어 준다든지, 뭐 이런 것은 괜찮지마는, 이런 얘기 하니까, 30대 직장 맘으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받는 거요.
사회제도도 잘못되었어요.
모든 아이가 자기 엄마로부터 키워질 때
정부가 지원을 해야 되고,
맡기면 벌금을 물어야 되는데,
지금은 맡기면 지원을 받고, 혜택을 받고,
자기가 키우면 혜택이 없으니까
키울 수 있는 사람까지도 갖다 맡기잖아요.
이게 인간에 대해서 너무 모른다는 거요.
여러분들이 다, 저도 그렇고
우리가 이렇게 사람답게 된 거 다 엄마 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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