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20)

[법륜스님 행복TV] 니와노평화상 수상기념연설 '평화를 위한 긴급 호소# 공멸을 피하고 공존을 이루자’

Buddhastudy 2020. 11. 2. 19:55

 

 

 

로마교황청 뉴스

법륜스님 니와노평화상 수상

-2020217

 

37회 니와노평화상 선정이유

이 상은 스님이 해오신 인도주의 지원활동, 환경운동, 사회운동의 특별한 공로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또한 스님이 평화 활동을 하시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오신

서로 다른 믿음과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신뢰와 선의의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훌륭한 노력을 기울이셨다는 점을 표창하는 것입니다.

-이하 생략-

 

37회 니와노평화상 온라인 시상식

-2020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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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와노평화상 수상기념연설

'평화를 위한 긴급 호소: 공멸을 피하고 공존을 이루자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앞서기를 열어가셨던

니와노평화재단 설립자님께 먼저 경의를 표합니다.

 

그 뜻을 이어 여러 사회단체들의 평화활동을 지원하고 종교간 대화와 협력으로

세계평화의 크게 공헌해온 니와노평화재산 운영자 여러분께도 깊은 존경과 감사를 드립니다.

 

2020년 제 37회 니와노평화상 수상자로 저를 선정해주신

니와노평화상 국제선정위원회에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더불어 저를 추천해주신 태국의 위대한 불교사상가이자

INEB(국제참여불교네트워크) 창립자이신 술락 시바락사 박사님께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2000년 한국의 강원용 목사님이 귀재단으로부터 제17회 니와노평화상을 수상했음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강원용 목사님은 저에게 사회정의에 대한 영광과 기독교의 평화비전을 보여주신 분이셨기에

그분과 같은 상을 받는 것만으로도 저에게는 큰 영광입니다.

 

국제적으로 권위있는 이 상을 받게 된 것은 제 개인에게만이 아니라

지난 20여 년간 저와 함께 활동해온 수많은 정토회 평화활동가들에게도

큰 격려가 되어줄 것입니다.

 

또한 오늘도 세계 곳곳에서 평화를 위해 헌신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유명무명의 모든 분과

평화상 수상의 영광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제가 속해있는 정토회는 만물이 서로 연관되어 존재하는 연기적 세계관에 입각하여

맑은 마음 좋은 벗, 깨끗한 땅을 목표로 실천하고 있습니다.

 

맑은 마음이란

개인은 자신의 욕망을 잘 다스려

행복한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좋은 벗이란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경쟁과 투쟁의 적대관계가 아니라

서로 돕는 좋은 벗들의 관계임을 알아

평온한 사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깨끗한 땅이란

자연은 인간이 정복해야할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야 할 삶의 터전임을 알아

아름다운 자연을 잘 보존하는 것입니다.

 

개인은 행복하고 사회는 평화로우며 자연은 아름다운

살기 좋은 세상 정토를 만들자는 것이

정토회가 지난 30여 년간 활동해온 핵심 내용입니다.

 

니와노평화재단은 불교를 기반으로 설립되었지만

그동안 종교를 초월한 협력으로 세계평화를 위한 많은 활동들을 지속적으로 해왔습니다.

 

저도 지난 20여 년 동안 개신교와 가톨릭 등 다른 종교지도자들과 함께

한반도 평화를 위해 남북간 화해와 협력

그리고 식량난으로 고통받는 북한 주민과 탈북난민들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사업을 진행해 왔습니다.

또 인도의 불가촉천민, 아프가니스탄 난민, 필리핀 민다나오의 원주민과 무슬림 등을 지원해왔습니다.

 

이런 활동 속에서 기아 질병 문명의 절대 빈곤 뒤에는

항상 갈등과 분쟁이 존재함을 직접 체험하였습니다.

 

이 갈등과 분쟁을 해소하지 않고서는

인도주의적인 지원도 인권의 보장도 제대로 행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종교를 비롯한 모든 집단들이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바탕에 함께 협력해야 합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할 때 평화의 싹이 트고

서로 화해할 때 평화의 꽃을 피울 수가 있습니다.

화해 없이는 평화를 이룰 수가 없습니다.

 

저는 불교도로서 부처님의 삶을 가장 소중한 지표로 생각하고 실천해왔습니다.

붓다가 살던 당시에도 브라만교라는 종교가 있었고 우파니 샤트라는 철학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종교는 너무 권위주의적이고 철학은 너무 관념적이어서

현실에 사는 중생들의 고통을 해결해주지 못했습니다.

 

붓다는 이런 종교와 철학의 한계를 직시하고

새로운 길인 중도를 발견하였습니다.

 

중도란

욕망의 충족을 통해서 얻는 쾌락과

욕망을 억제하는 고행의 양극단을 떠난 새로운 길입니다.

 

중도는 어떤 편견이나 관념에 사로잡히지 않고

오직 사실은 어떤가 하고 진실을 탐구하여

모든 괴로움과 번뇌에서 벗어나는 실천수행법입니다.

 

모든 인류는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성취한 사람은 아주 소수일 뿐입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욕구를 충족하는 것이 행복인 줄 잘못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붓다는 우리가 자신의 욕구로부터 자유로워질 때

비로소 진정한 자유와 행복에 이를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습니다.

자유와 행복은 모든 인류가 이루고자 하는 꿈입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저는 지금 붓다의 가르침에 따라

우리가 가장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사회적 실천과제, 3가지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평화입니다.

이념이나 종교, 민족이나 국가를 넘어 일체의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지지하는 활동에

대화와 협력이 집중되기를 바랍니다.

제가 살고있는 한국은 전세계에서 전쟁이 일어날 위험이 가장 높은 나라 중의 하나입니다.

 

올해 2020년은 한반도 최대의 비극이었던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7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전쟁이 완전히 종식되지 않는 정전상태로 남아있습니다.

만약 한반도에 다시 전쟁이 일어나 핵무기 사용이나 핵발전소 폭파로 이어진다면

한반도뿐만 아니라 주변국에도 큰 피해를 초래할 것입니다.

 

반면에 한반도의 평화는 아시아의 평화로, 나아가 세계평화로 이어지는 중요한 징검다리가 될 것입니다.

한반도 평화 없이 세계평화는 없습니다.

 

 

2. 환경입니다.

기후에 대한 대응은 이제 더이상 환경운동가들만의 몫은 아닙니다.

개발도상국에서 벌어지는 환경생태계의 파괴는

각종 갈등과 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념이나 종교, 민족이나 국가의 차이를 넘어

기후 위기를 해결할 공동행동에 즉각 나서야 합니다.

 

기후 위기는 이제 안보 위기와 식량 부족, 전염병 확산, 거대한 산불 발생에 이르기까지 그 피해가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이제 기후 위기에 따른 재앙 앞에서는

어떤 나라도 어떤 사람도 안전할 수가 없다는 것이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들은 분명히 현대문명의 위기입니다.

더 많이 생산해서 더 많이 소비하는 것이 잘사는 것이라는 소비주의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인류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소비를 줄일 것인가.

아니면 공멸할 것인가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습니다.

 

기후변화에 대응 없이는 세계시민의 안전이 담보될 수 없습니다.

 

 

3. 기아 질병 문명과 차별로 상징되는 구조적 불평등의 해결입니다.

제가 20년 전, 굶주리는 북한어린이들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처음 시작할 때 많은 사람들이

왜 저걸 돕느냐?” 하고 반대했습니다.

심지어는 우리가 준 쌀이 총알되어 돌아온다는 반론도 제기되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념이나 종교, 인종이나 성별을 넘어서 배고픈 이는 먹어야 합니다.

병든 이는 치료받아야 합니다.

배움이 필요한 아이들은 제때 배울 수 있어야 합니다.

 

기아, 질병, 문명은 인류사회에 가장 구조화된 불평등입니다.

굶주리는 사람에게는 음식을, 병든 사람에게는 약을, 난민들에게는 피난처를 제공하는 것은

인류사회가 가장 시급히 해결할 일들입니다.

 

세계적 차원의 불평등인 절대빈곤은

이제 더이상 한 국가의 책임만으로 끝날 수 없으며 인류 모두의 책임입니다.

 

나아가 사람은 누구나

인종이나 성별, 계급이나 계층, 종교나 민족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받아서는 안 됩니다.

또 신체장애나 성적지향, 난민 등 소수자라는 이유로 차별받아서도 안 됩니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고 존엄합니다.

정의는 차별을 극복하고 평등을 지향하는 사회적 실천입니다.

그러므로 행동하지 않는 정의는 공허한 말장난에 불과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지금 세계는 큰 위기에 봉착해 있습니다.

선진국과 후진국, 북반구와 남반구, 동양과 서양, 기독교와 불교를 막론하고

이 지구상에서 코로나 바이러스를 피할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따라서 세계적 차원에서 공동대응과 상호 협력이 매우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각국이 다 자기 살길만 찾고 서로 책임을 전가하기에 급급합니다.

 

정작 위험한 것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아니라 위험 앞에서 분열하는 우리입니다.

분열이 지금 이 문제해결의 가장 큰 장애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류는 위기 앞에서 종종 생존을 위한 초인적 힘을 발휘하여

예상하지 못한 기적을 일궈낸 적도 있습니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희망과 믿음을 갖고 꾸준히 협력해 나아가면

우리는 어떤 난제도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더이상 특정한 지역, 특정한 종교, 특정한 국가만의 평화는 없습니다.

이제 더이상 특정한 지역, 특정한 종교, 특정한 국민만의 안전은 없습니다.

 

평화, 환경, 구조적 불평등의 문제해결과 전염병 확산 방지는 전 인류가 공동으로 대응하여 해결해야 할 시급한 과제들입니다.

 

따라서 세계 각국간, 종교 간 협력과 공동대응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 세계의 모든 평화활동가와 각국의 정치 지도자들과 종교지도자들이 함께 협력한다면 아무리 어려운 문제라도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음을 모으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다시 한번 요약해서 말씀드리면

평화는 전쟁이 없는 평화라서 국가간의 공존을

환경은 생태적 평화로서 자연과의 공존을

구조적 불평등의 해결은 구조적 폭력을 없애고 사회적 평화로서

성별과 인종, 계급 계층 간의 공존을 추구하자는 것입니다.

 

제 얘기의 핵심은

평화로서 우리 인류가 공멸을 피하고 공존을 이루자는 것입니다.

 

생명 가진 모든 존재에게

평화와 행복이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