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좀 색다른 영상으로 찾아뵐까 합니다.
바로 SF 소설을 낭독하는 영상입니다.
늦은 밤에 틀어두시면 3분 안에 숙면에 돌입할 수 있도록
최대한 차분하고 잔잔하고 그윽하게 낭독하겠습니다.
낭독할 책은 칼 세이건의 소설 <콘택트>입니다.
조디 포스터가 출연한 영화로도 유명한 소설이죠.
영화에서는 주인공 엘리 혼자 우주로 여행을 떠나지만
소설에서는 엘리를 포함해 다섯 명이 여행을 떠납니다.
외계인이 보내준 우주선 설계도가
애초에 다섯 명 탑승 정원으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다섯 국가에서 선발된 여행자들은 베가성을 거쳐
지구에서 3만 광년 떨어진 곳에 도착해 각자의 외계인을 만납니다.
영화든 책이든 하이라이트는
주인공 엘리가 외계인과 대화하는 장면입니다.
영화에서는 이 장면이 짧게 지나가지만
책에서는 꽤 길게 이어집니다.
아마 칼 세이건이 외계인을 만나면
묻고 싶었던 질문들을 주인공 엘리를 통해 실컷 풀어놓는 것 같습니다.
오늘 영상에서는 그 대화 중 앞부분 일부만 낭독해 보겠습니다.
그럼 모두들 3만 광년 밖에서 편안한 밤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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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백 미터 아래쪽 해변에 누군가가 나타난다.
처음엔 베게이라고 생각했다.
실험실에서 나와 뭔가 기쁜 소식을 전하려는 걸까?
하지만 그는 탑승복 차림이 아니었다.
게다가 배게이보다 좀 더 젊고 기운찬 모습이었다.
엘리는 망원경을 잡았지만 어쩐지 자신이 없었다.
대신 자리에서 일어나 손으로 해를 가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이건 불가능한 일이야 이런 식으로 나를 놀릴 순 없어.”
하지만 엘리는 참을 수 없었다.
모래사장을 따라 그를 향해 달려갔다.
머리카락이 날렸다.
그는 엘리가 가지고 있는 사진들 중 가장 최근에 사진처럼
기운차고 행복해 보였다.
하루 동안 면도를 하지 않은 얼굴
엘리는 흐느끼며 그의 품에 안겼다.
“우리 귀염둥이구나.”
그는 오른손으로 엘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틀림없는 아빠 목소리였다.
기억이 금방 되살아났다.
냄새, 걸음걸이, 웃음소리, 뺨에 닿은 수염의 감촉
다른 생각은 하나도 할 수 없었다.
마치 거대한 돌로 된 봉인이 열리고 고대의 무덤 안으로 햇살이 내리쬐는
느낌이었다.
엘리는 이성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흐느낌은 그칠 수 없었다.
아빠는 참을성 있는 표정으로 서 있었다.
어린 시절 엘리가 처음으로 커다란 계단을 혼자 내려왔을 때
계단 밑에서 기다려주던 그 표정과 똑같았다.
엘리는 늘 아빠를 한 번이라도 더 만나볼 수 있기를 꿈꿔왔다.
그런 마음을 오랫동안 억누르며 살아왔다.
너무나 불가능한 일.
엘리는 아빠 없이 살았던 모든 세월을 위해 울었다.
어린 시절 그리고 성인이 된 뒤에도 엘리는 아빠 꿈을 꾸었다.
아빠가 죽은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꿈
꿈속에서 아빠는 정말 생생했다.
언제나 엘리를 꼭 껴안아주었다.
꿈에서 깨어나면 아빠가 곁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슬픔이 복받쳤지만
엘리는 계속 그런 꿈을 꾸었다.
그런 꿈조차 소중했다.
그런 공상의 순간에는 최소한 아빠와 함께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아빠는 유령도 꿈도 아니다.
살과 피가 있는 생명체다.
아니 최소한 그렇게 보였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아빠는 이 별에서 엘리를 불렀고 그래서 이렇게 온 것이다.
엘리는 있는 힘껏 아빠를 껴안았다.
이것이 만들어낸 형상이고 가짜라는 점은 알고 있었다.
엘리는 잠시 뒤로 물러서 아빠를 살펴보았다.
완벽했다.
여러 해 전에 돌아가신 아빠를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난 기분이었다.
엘리는 다시 흐느끼며 아빠를 껴안았다.
마음을 가라앉히기까지 시간이 좀 필요했다.
나타난 인물이 데어 헤르였다면
혹시라도 지구에서 기계를 하나 더 만들어
은하계의 중심으로 보낸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빠라면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아빠의 시신은 호수 근처 묘지에서 썩어서 흙이 되었을 테니까.
엘리는 한참을 울고 웃다가 눈물을 닦았다.
“저 제가 지금 보는 것이 로봇인가요? 최면술인가요? ”
“내가 로봇이나 꿈일 거란 말이지
그럼 여기 있는 모든 것들도 그럴 수 있겠지.”
“저는 아빠와 다시 만나 단 몇 분만이라도 함께 지낼 수 있다면
제가 가진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다고 생각해 왔어요.”
“그래서 내가 여기 왔잖니 ”
아빠는 명랑하게 말하며 손을 들어올렸다.
옆구리가 드러나면서 등 뒤쪽도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참으로 젊었다.
엘리보다 더 젊어 보였다.
세상을 떠났을 때 아빠는 겨우 서른여섯이었다.
어쩌면 이것이 엘리의 두려움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외계인의 방법인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그들은 아주 사려 깊은 생명체다.
엘리는 아빠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 자기 짐이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아빠는 정말로 살아있는 사람 같았다.
이 피부 아래에 기계 장치와 직접 회로가 있다면 기가막히게 잘 숨겨 둔 셈이다.
“저 지금 우리가 뭘 하고 있는 거죠?”
엘리가 물었다.
질문이 좀 모호했다.
“그러니까 제 말은”
“무슨 말인지 안다.
너희가 메시지를 받고 여기 오기까지 여러 해가 걸렸구나.”
“시간이나 정확성으로 평가하려는 건가요?”
“ㅎㅎ 둘 다 아니야.”
“그럼 아직 시험이 끝나지 않은 건가요?”
아빠는 대답하지 않았다.
“저한테 설명해주세요”
엘리는 초조하게 말했다.
“우리는 메시지를 해독하고 기계를 제작하느라 수년이 걸렸어요.
이 모든 것이 실제로는 어떤 일이었는지 이제 설명해 주실래요?”
“우리 딸 싸움꾼이 다 되었구나.”
그는 진짜 엘리의 아빠인 것처럼 말했다.
정말로 그의 기억에 남아 있는 과거의 엘리와
지금 눈앞에 보고 있는 현재의 엘리를 비교라도 하는 듯한 말투였다.
아빠는 엘리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어린 시절에 해주었듯이.
하지만 3만 광년이나 떨어진 곳에 있는 그들이
어떻게 오래전 위스콘신에 살았던 아빠의 애정어린 태도를 흉내낼 수 있을까?
엘리는 갑자기 깨달았다.
“꿈이군요.
어젯밤 우리가 모두 잠자는 사이에 머릿속으로 들어온 거죠?
그래서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빼내갔군요.”
“우리는 복사를 했을 뿐이다.
네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은 그대로 있을 거야.
한번 살펴보렴.
없어진 것이 있다면 말해 봐.”
아빠는 빙긋 웃더니 말을 계속했다.
“텔레비전 방송만으로는 알 수 없는 것이 않았단다
물론 기술 발달 수준이라든지 인간의 특성 같은 점을 이해하는 데는 도움이 되었지만
인간에게는 간접 관찰로 알아낼 수 없는 많은 것이 있거든.
물론 넌 사생활 침해라고 생각하겠지.”
“방금 농담하신 건가요?”
“ㅎ 우리에게는 시간이 너무 부족하단다.”
“벌써 시험이 끝났다는 말인가요?
지난 밤에 잠자면서 우리가 모든 질문에 답했다는 거죠.
그럼 합격인가요? 불합격 인가요?”
“이건 시험 같은 게 아니란다.”
아빠가 말했다
“이건 6학년 과정하고는 달라.”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엘리는 6학년이었다.
“우리를 우주의 보안관으로 생각하진 말아다오
그냥 은하계 통계청 정도로 여기면 되겠다.
우리는 정보를 모으고 있단다,
너희들이 보기엔 지구가 너무 낙후되어
우리가 습득할 정보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지구의 문명에도 장점이 있단다.”
“어떤 장점이 있죠?”
“음악이 있지. 사랑도 있고. 꿈도 중요해.
인간은 꿈을 아주 잘 꾸더구나
물론 그건 텔레비전을 통해서는 나타나지 않았다.
은하계에는 꿈을 사고파는 문명들도 존재 하거든”
“그러니까 당신들은
우주의 여러 문화들 사이에서 중개 역할을 하는 거군요.
바로 그 때문에 이 모든 일을 했던 건가요?
그렇다면 탐욕스럽고 잔인한 문명이
항성간 여행 기술을 갖게 된다 해도 아무 상관이 없는 건가요?”
“난 이미 우리가 사랑을 소중히 여긴다고 말했다.”
“만약 히틀러의 나치가 전 세계를
그러니까 전 지구를 정복하고 우주여행을 준비하기 시작했다면
거기 개입하지 않으실 건가요?”
“그런 일이 얼마나 드물게 일어나는지 알면 놀랄 거다.
공격적인 문명은 결국 자멸의 길을 걷는 법이다.
거의 대부분이 그래.
그것이 그들의 본성이니 달리 어쩔 도리가 없다.
이런 경우 우리는 그냥 그 문명을 내버려두면 돼.
아무도 자멸의 길을 방해하지 않도록 하면서 말이다.
스스로 운명을 결정하는 거지.”
“그렇다면 왜 우리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았죠?
아니 불평하려는게 아니라
그저 은하계 통계청이 어떤 식으로 기능하는지 궁금할 뿐이예요.
당신들이 받은 지구의 첫 정보는 히틀러의 방송이었어요.
왜 우리와 접촉하기로 결심했죠?”
“그 방송은 정말 놀라웠다.
너희들이 어려움에 빠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 하지만 음악은 달랐다.
베토벤의 음악은 그래도 인류에게 희망이 남아있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단다.
우리는 이런 특별한 경우를 전문으로 다루는 쪽이다.
작은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
실제로 우리가 줄 수있는 것도 작은 도움 뿐이고
너도 이 해야겠지.
인과 관계 때문에 한계가 있는 법이거든.”
아빠는 몸을 숙여 손을 물에 담갔다가 바지에 문질러 닦았다.
“지난밤 우리는 너희들을 살펴보았다.
다섯 사람 모두 말이다.
많은 것이 있더구나.
감정, 기억, 본능, 학습된 행동, 직관력, 광기, 꿈, 사랑,
특히 사랑은 중요하지.
너희는 흥미롭고 복합적인 존재야.”
“모든 것을 단 하룻밤 사이에 살펴보았다구요?”
엘리는 못 믿겠다는 투로 말했다.
“서둘러야 했거든.
시간이 별로 없단다.”
“왜죠?
혹시 다음 단계 같은 게 있나요?
그게 아니라 우리가 인과관계의 사슬을 만들지 않는다면
그 사슬은 혼자서 제멋대로 이어져 나가고 말아.
그러면 상황이 거의 나쁜 쪽으로 가곤 해.”
엘리는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인간관계의 사슬을 만든다고요?
우리 아빠는 그런 식으로 말한 적이 없어요.”
“네 아빠는 그렇게 말했어.
어떤 말투였는지 기억 안 나니?
그는 책을 많이 잃는 사람이었어.
그는 그러니까 나는
어린 너한테도 똑같이 책을 많이 읽은 사람으로 대하면서
말했었지 정말 기억 안 나니?”
엘리는 기억이 났다. 정말로 그랬다.
엘리는 지금 양로원에 계신 엄마를 떠올렸다.
“멋진 목걸이구나.”
아빠가 살아 계셨다면 사춘기가 된 딸에게 이렇게 말해주셨겠지 하고
상상하던 바로 그런 말투였다.
“누가 준거니? ”
“아, 이거요?”
엘리는 메달을 손가락으로 만지작 거렸다.
“실은 제가 아직 잘 모르는 사람이 준 거예요
그런 내 신념을 시험했어요.
그는 그런데 다 알면서 물어보시는 거 아니예요?”
아빠는 다시 미소를 지었다.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어요”
엘리가 짤막하게 물었다.
“정말로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아빠는 망설이지 않고 바로 대답했다.
“좋아 일단 너희들이 이제까지 잘 해왔다고 생각한다.
감탄할 만해.
너희들은 사회 조직에 대해 거의 아무런 이론이 없고
놀랄 만큼 낙후된 경제 체제를 지냈으며
미래를 예측하는 기계도 없어.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해
너희들 세계가 얼마나 빨리 변화하는지를 고려하면
아직까지 스스로 파멸의 길을 걷지 않았다는 게 신기할 정도야.
바로 그 때문에 우리는 아직 너희를 포기할 수 없기도 해.
너희 인간은 적응력이 뛰어나단다.
비록 단기간의 적응력이긴 하지만.”
“단기간.
그게 문제군요, 그렇죠?”
“여러 문제 중 하나지. 가까운 미래 밖에 예측하지 못하는 문명은
곧 사라져 버리는 법이란다.
그런 문명은 스스로 멸망할 운명이야.”
엘리는 그가 솔직히 인간을 어떻게 여기고 있는지 묻고 싶었다.
호기심? 동정?
감정을 개입시킬 가치조차 없는 하루의 업무 대상?
마음속으로는 엘리를 그저 한 마리 개미로 여기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막상 입을 열어 물어볼 수는 없었다.
어떤 답변이 나올지 두려웠다.
“저 아빠, 다음 계획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그 전에 과학자로서 궁금한 것 몇 가지만 물어봐도 될까요?”
“물론이지. 한두 가지 정도는.”
“당신들의 운송 시스템을 알려주세요!”
책에서는 엘리와 아빠의 대화가 본격적인 과학 주제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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