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시간에도 즐겁게 이성과 감성을 다 동원해서
사유를 한번 해봅시다.
오늘도 여러분들이 사유하실 만한 주제를 하나 들고 왔어요.
오늘의 테마는
‘언어’라는 것에 대해서 살펴보는 거 그게 말이죠.
‘말’ 이죠, 말.
말은 과연, 언어는 과연 진실할까?
이건 다른 게 아닙니다.
‘진짜 실체를 드러낼 수 있을까?’라는 그런 테마인 것이죠.
언어라는 것은 참 중요합니다.
왜 중요해요? 중요한 이유가 뭘까요?
--언어의 중요성
언어라는 것이 중요한 첫 번째 이유는
우리는 언어라는 도구를 통해서
세상 자체를 이해하거나 설명하려고 노력하고 있죠.
그러니까 그 도구를 쓰고 있는 거죠, 노력이라기보다.
물론 이제 세상을 표현하고, 설명하고, 이해하는 도구가
언어 하나만 있는 건 아니에요.
느낌도 있고, 어떤 직관적인 앎도 있고.
동시에 뭘까요?
어떤 예술적 방식도 있고, 종교적인 어떤 방식, 보다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그런 방식 여러 방식이 있습니다만
가장 흔하게 쓰이고 효율적이고 합리적이고 대표적인 방법이
바로 언어죠.
언어를 통해서 세상을 설명하는 거예요.
그리고 또 언어를 통해 세상을 동시에 이해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한테 한번 제시해 드리고 싶은 오늘의 화두는
우리가 이 언어를 너무나 의심 없이 철썩같이
말 그대로 믿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 살펴보는 거예요.
그러니까 언어가 정확하다고 너무 이렇게 의심 없이 믿고 있는 건 아닌지를
한번 살펴보는 겁니다.
이 언어에 대해서 한번 살펴보는 거죠.
--언어가 가리키는 것이 같은 것인가?
무엇을 갖다 예로 들어볼까요?
오늘 날이 좋아요.
날이 좋고 저 하늘에 지금 태양이 떠 있습니다.
태양을 한번 볼게요.
태양이라고 말을 했습니다.
언어를 통해서 태양이라는 말을 했어요.
우리가 이 태양이라는 말을 딱 내뱉었을 때
이 태양이라는 것은
지구의 나이가 보통 한 45억년 6억년 정도 됐다고 하니까
태양은 그것보다 더 훨씬 더 오래됐다고 하죠.
그 수십억 년 전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그러니까
고정불변으로 지속적으로 유지되어서
저 하늘에 계속해서 떠 있는 어떤 존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뭡니까?
지금 저 하늘에 떠 있는 저 태양, 지금의 태양은
어제 태양과 같은 것이다라고 믿고 있는 거예요.
근데 이게 과연
어제 태양과 오늘의 태양이 같은 것인지를 한번 살펴보는 거예요.
이와 같은 사유를 통해서
인식과 존재 그리고 인식과 시공간
그리고 언어의 진실성에 대한
어떤 이 세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가 있는 거죠.
하지만 그 사유 과정 자체는 상당히 즐겁습니다.
사유를 한번 해볼까요?
과연 그런지, 어제의 태양과 지금의 태양
어제의 달과 지금의 달
심지어는 눈앞에 있는 이 책상,
어제의 책상과 지금의 책상이 같은 것인지 한번 살펴보는 거죠.
하늘에 떠 있는 저 태양, 해가 보입니다.
어느 장소에 위치를 하고 있죠?
바깥에 ,그러니까 이 몸으로 따질 때는 나의 외부죠.
나의 외부에 있는 저 하늘에 떠 있다라고 느끼죠.
생각을 하는 거죠.
그러면 어제의 태양은 어디에 있어요?
어제의 태양이라는 것은 나의 기억 속에 있지 않습니까?
지금, 이 순간에 어제의 태양을 한번 떠올려보세요.
머릿속 세상에 있다라는 얘기입니다.
일종의 정신적인 이미지로 존재를 하는 것이죠.
이게 뭡니까?
어제의 태양이라는 지금의 상은
지금 이 순간의 상은
저 하늘에 떠 있는
지금 이 순간에 태양이 아니고 뭡니까?
오직 머릿속 세상에 기억이라는 ‘심상’의 형태로 존재하고 있을 뿐이에요.
이게 뭡니까?
어제 태양이라는 것하고 지금의 저 지금의 저 태양이라는 것하고는
다르다고 말을 할 수가 있는 거죠.
우리한테 익숙한 이분법적인 논리를 통해서 접근을 해보는 거예요.
재밌죠. 흥미진진하죠.
제가 왜 이 이야기를 하냐면요.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에 약점이 있다라는 거예요.
모순도 있고요.
--닮은 것과 같은 것
흔히들 닮았다와 같은 것이다.
‘닮다’와 ‘같다’라는
이 개념 두 가지의 개념, 이 두 가지 언어를
혼동해서 사용을 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볼게요.
쌍둥이 형제가 있다라고 한번 쳐볼게요.
저 스스로가 쌍둥이에요.
이란성 쌍둥이지만 하나도 안 닮았습니다.
근데 어쨌든 간에 정말 비슷하게 생긴 쌍둥이들 있죠.
동생과 형은 서로 닮았어요.
닮았지만 형은 동생일 수 없고, 동생은 형일 수가 없죠.
오직 동생만이 동생일 수 있고 형만이 형일 수 있는 거예요.
쌍둥이 형제는 뭐예요?
서로가 닮았지만 단지 그뿐인 거죠.
같다라는 표현을 할 때는
그것 자체일 때만 그 표현을 쓸 수가 있는 거예요.
닮다와 같다.
그렇기 때문에 ‘같다’라는 개념을 갖다가 붙이려면은
‘그 순간에 그것’, ‘그때의 그것’ 말고는
이 표현을 갖다 붙일 수가 없다라는 얘기예요.
어제의 태양 그 자체
내가 어제 봤던 그 태양
어제의 태양 그 자체만이
지금, 이 순간 내가 인식하고 있는 머릿속에 나타난 상으로 존재하는
지금 떠올린 어제의 태양과 완벽하게 같은 것이 되는 거죠.
지금, 이 순간의 태양은 어제의 태양하고 닮았어요.
닮았을 뿐이지
같은 것은 아니란 얘기입니다.
또 뭐가 있을까요?
쌍을 이루는 것들, 쌍둥이처럼 쌍을 이루는 것들
쌍쌍바? 아니면 뭐 젓가락?
마찬가지죠.
공장에서 만들어낸 젓가락이기 때문에
피지컬적으로는 예를 들어서
거의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쌍을 이룰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얘도 결국엔 뭐예요?
왼쪽 젓가락은 왼쪽 젓가락이고 오른쪽 젓가락은 오른쪽 젓가락이죠.
그냥 닮았을 뿐이에요.
똑같은 것은 아닙니다.
같은 것은 아니에요.
그렇기 때문에 같은 것이라는 것은
그때 그것, 그 당시 그것, 그 순간에 그것 말고는
존재할 수가 없는 겁니다.
오직 그것!
바로 그것일 뿐이라는 얘기예요.
‘같다’라는 표현
그렇다면은 쌍둥이와 젓가락과
그다음에 어제의 태양과 지금의 태양이
이처럼 서로 다른데
왜 이 둘을 같은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을까요?
인식과 시공간의 비밀, 심상과 물상의 비밀이
여기에서 깊은 사유를 통해서 알려질 수 있습니다.
열심히 사유해 보세요.
어제의 그것과 지금의 그것이 달라요.
닮았을 뿐이지 달라요.
같은 것이 아니잖아요.
같은 것이 아닌데, 왜 이 두 가지를 ‘같다’라고 착각을 하고 있는 걸까요?
그 이유가 바로 언어 때문에 그런 거예요.
언어라는 개념화의 도구 때문에 그런 겁니다.
--언어의 개념, 실체화
언어라는 것, 그러니까 개념이죠.
어떤 하나의 개념에 해당하는 것이
사실은 실재하는 게 아니에요.
실재할 수도 없는 하나의 ‘심상’입니다.
하나의 심상임에도 불구하고
이 언어로 무언가를 지칭하는 순간
언어가 딱 등장해서 개념화를 시키는 순간
동시에 뭐가 일어나죠?
‘실체화’가 일어나요.
이원적인 인식, 이원적인 의식 상태에서는
개념화 자체가 동시에 ‘실체화’가 돼버린다는 겁니다.
언어가 등장하는 순간
단순히 개념에 불과한 어떤 환상, 허상이
가상의 어떤 것이 실체를 가지고서
‘실재’로서 존재하는 어떤 하나의 존재로
독립적인 존재로, 실체로 인식이 되어 버린다는 겁니다.
즉 ‘심상’이 '물상'으로 여겨지게 된다라는 거예요.
정신적인 이미지가
실체를 가진 물질적인 어떤 존재로서
둔갑을 해버리는 거죠.
어이가 없죠?
그러니까 언어라는 것이 뭡니까?
언어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힘이 뭐냐면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 없는 것을 실제로 만들어버리고요.
-‘찰나’라는 것을 어떤 찰나, 찰나를 ‘지속되는 것’으로 만들어버리고요.
실제로 성립할 수 없는 어떤 것인데 그것을 개념의 실체화를 통해서
성립할 수 있는 것으로 창조를 해내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니까 전부 다 뭡니까?
착각의 연속이고
이것이 바로 '무명'이에요.
언어라는 것의 실체 정체를 모르는 한
우리는 계속 이 언어에 속으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겁니다.
--경전에서 말하는 언어의 모순
예를 들어서
종교 경전들을 한번 살펴볼게요.
종교 경전들을 살펴보면
언어의 모순, 언어의 실체에 대해서
지적을 하고 있는 그런 구절들이 꽤 많아요.
우리는 이 언어를 통해서
환에 불과한, 환영에 불과한 이 세상 자체를
실체적 세계 그리고 또 뭡니까?
동시에 이원적으로 분리되어 있는 어떤 그런 세계로
착각하게 만들어 버린다는 부분을 지적하고 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서
도덕경을 볼게요.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이라는 구절이 있어요.
해석을 하자면
도라는 것은
그러니까 진실, 진짜 사실, 진실이라는 것은
도라는 것은
도를 도라고 부를 뿐이지, 이렇게 개념 지어서 부를 뿐이지
실제로는 그 도, 진실된 것에 해당하는 그 무엇이
실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뜻이에요.
단순히 문자 그대로 해석을 하면
‘도를 도라고 부르면 이미 도가 아니다’
이런 식으로 해석이 될 수가 있겠죠.
그것을 조금 더 깊이 해석하자면
‘도’라는 것은
우리가 ‘도’라는 이름으로 부를 뿐이지
그 이름에 해당하는 무언가가
실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뜻이에요.
‘명가명 비상명’도 마찬가지예요.
이름이라는 것, 개념이죠.
이름이라는 것은 단순히 이름일 뿐
이름에 해당하는 무언가가 실체하지
실재로서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뜻이에요.
이건 도가 경전이고
불교 경전도 정말 많죠.
그중에 하나가 보자면 금강경에 나오는 어떤 그런 구절이 있어요.
‘여래설세계 비세계 시명세계’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다른 게 아닙니다.
그 여래(부처)의 차원에서 보면, 여래의 입장에서 볼 때는
이 세상이라는 것은 ‘실재하지 않는다’는 뜻이에요.
단순히 세상은 이름일 뿐이다.
‘시명세계’ ‘이름일 뿐이다’‘개념일 뿐이다’라는 뜻이에요.
쉽게 표현을 하자면요.
--언어로 인한 착각
우리가 언어라는 것의 진정한 정체를 모르는 한
언어가 실체시 해놓은 환영의 세계를
그 안에서 분리된 상태로
이것이다 저것이다,. 이분법적으로 이원성에 기반해서
분별하는 상태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라는 겁니다.
언어가 만들어 낸 일종의 착각, 망상 안에서 허우적대는 거죠.
마음공부를 할 때도 마찬가지예요.
구도행을 하시는, 수행하시는 많은 분들이
수십 년 동안 명상도 하고 이렇게 막 이런저런 수행도 하고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진함을 느끼고
‘본인이 깨달았다, 깨닫지 못했다.’
뭐 이렇게 헤아리면서 미진함을 느끼는 그런 이유도
이 언어 때문에 그래요.
이 세상 자체를 일단 실체시하는 바탕 위에서
마음공부를 시작하기 때문에 그래요.
이게 아닙니다.
세상 자체가 언어가 만들어 놓은 허구의 세상,
일종의 환영이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그런 거죠.
이 언어를 통해서 무엇이 일어납니까?
둘이 아는 세상을
나와 너, 나와 남, 이것과 저것, 주체와 대상, 주체와 객체 등으로
이분화 해놓았기 때문에 그래요.
아까도 말씀드렸죠.
언어로 개념화를 하는 순간 이분법이 작용을 하면서
이원성 안에서 실체화가 일어난다라고요, 동시에.
실제하는 것이 아닌데
언어를 통해서 실제하는 것처럼 착각되게 되는 거죠.
여러분, 언어에 대해서 깊이깊이 사유를 한번 해봅시다.
제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냐면요.
단도 직입적으로 말씀을 드리면
나, 너, 뭐 깨달음, 있음-없음
아니면 뭐 윤회, 환생, 전생, 공, 무아, 텅 빈 그것
진공묘유, 텅빈충만, 의식공간, 순수의식, 존재의식, 우주의식, 합일의식
기쁨, 즐거움, 슬픔, 고통, 진짜다-가짜다
여래, 불성, 본래면목, 탄생, 죽음...
하나님, 부처님, 크리슈나 신, 시바 신, 아트만, 브라만 기타등등
이렇게 우리가 언어를 통해서 지칭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결국엔 뭐라는 얘기예요.
심지어는 깨달음, 마찬가지죠.
사실은 뭡니까?
이름만 그러할 뿐이지
그 언어에 해당하는 것은 ‘실재하지 않는 환영’이라는 얘기입니다.
여기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이
일맥상통하는 그 부분이 나타나죠.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인식되는 일체의 법
이름 붙여서 인식될 수 있는 일체의 것은
‘여몽환포영’, 꿈속에 나타난 환과 같다라는 말씀입니다.
언어에 대해서 다시 한번 사유를 해봅시다.
이번 영상이 조금 어려울 수는 있어요.
왜냐하면 생각 자체를 조금 몰아붙이는 영상, 몰아붙이는 내용이기 때문에 그렇죠.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세상을 이해하고, 세상을 표현하고, 세상을 전달하고
세상을 동시에 뭡니까?
체험하는 도구인 ‘언어’라는 것이 가지는
언어의 그 실체, 속성을 한번 들여다보는 것이기 때문에
조금 어려울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세상을 공부하고 마음을 공부하고
그리고 시크릿을 공부하시는 분들이라면
이것을 반드시 한 번은 대면하고
깊게 깊게 여실히 사유를 해보셔야 합니다.
이 세상이 그러니까 결국 무엇이겠습니까?
언어, 말을 통해서 실체화된 이 세상이 사실은 무엇이겠습니까?
여러분 스스로의 가슴과 한번 대화를 해보세요.
무엇을 지금 이 순간에 느끼고 있는지.
감사합니다.
다음 시간에 또 찾아뵐게요.
재미있는 테마를 가지고 찾아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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