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문명의 발전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 과학은
문제를 제시하고 해결하는 수많은 과정으로부터 발전해 왔는데요.
몇몇 천재적인 과학자들은
단지 상상만으로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고
심지어 세상의 물리 법칙을 뒤엎을 만한
엄청난 존재들을 창조해 내기도 했습니다.
마치 악마와도 같은 존재들을 말이죠.
--우리의 감각은 믿을 수 있는 것일까?
혹시 이런 생각 해 본 적 있으신가요?
지금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과연 진실일까?
만약 여러분이 보고 있는 제 유튜브 영상이
사실 실재하지 않는 허상이라면?
누군가 여러분의 뇌를 조작해서 모든 감각을 만들어낸 것이라면?
사실 여자친구 같은 건 환상의 생물이고, 현실에는 그런 게 없는 거라면?
영화 <매트릭스>를 보면
기계들이 인간의 뇌를 조종해서 프로그램 속에 살게 합니다.
인간들은 아무런 위화감 없이
프로그램이 진실이라 믿으며 살아갑니다.
지금 여러분도 어쩌면 <매트릭스> 속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 않다는 증거가 있나요?
--오감을 조종하는 데카르트의 악마
이러한 의심은 모피어스가 아니고
17세기의 철학자이자 수학자였던 데카르트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인간의 오감을 완벽하게 조종하는 악마가 있다면
우리는 이것이 현실인지 가짜인지,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데카르트는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들을 모두 다 의심해 봐야 한다고 말입니다.
철학과 과학은 진리를 탐구한다는 점에서 같습니다.
그런데 눈앞의 현실조차 의심해야 한다면
과연 무엇을 진리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데카르트는 그놈의 진리를 찾기 위해서
의심 가는 것에 전부 x표를 쳐봤습니다.
못 믿겠다 싶은 것들을 다 치워버리다 보면
제일 마지막에 남는 것이 진리다라는 생각을 갖고 말이죠.
생각하고 또 생각하던 데카르트는
드디어 절대 의심할 수 없는 하나의 진리를 발견합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아마 제일 유명한 명언 중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수많은 명언충들의 SNS를 수놓은 바로 이 명언은
데카르트의 의심병으로부터 탄생했던 것입니다.
데카르트가 내린 결론은 이렇습니다.
“만약 내가 정말로 조종당하고 있는 것이라면
이러한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내가 존재한다는 것의 증거가 아닐까?”
제아무리 악마라 할지라도
존재하지도 않는 자를 조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깐요.
모든 것이 주작이 아닐까 의심하던 데카르트도
더 이상 의심할래야 의심할 수 없는 명제에 도달하게 된 것입니다.
데카르트는 의심 불가능한 정신의 차원이
하나 더 존재한다고 생각했으며
이는 몸과 정신이 구분되어 있다는 이원론의 기초가 됩니다.
물론 현대의 과학계와 철학계에서는
한계가 있는 다소 낡은 사상이지만
근대 과학이 출발하던 시점에서는
많은 영향을 끼쳤던 중요한 사상이에요.
사실 과학사라고 하기에는 너무 철학 같은 느낌이긴 한데
결국 과학도 철학으로부터 나온 것이고
데카르트의 철학은 과학사에서도 상징적인 의미가 크기 때문에
이는 과학사 4대 악마 중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됩니다.
--모든 것을 아는 존재, 라플라스의 악마
프랑스의 수학자 라플라스는
1814년에 발행된 그의 에세이에서 이런 말을 남깁니다.
“우주에 있는 모든 원자의 정확한 위치와 운동량을 알고 있는 존재가 있다면
이것은 뉴턴의 운동법칙을 이용해서
과거, 현재의 모든 현상을 설명해 주고
미래까지 예언할 수 있다.”
조금 더 쉽게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여러분이 당구공을 치면
당구공이 굴러가서 다른 공을 맞춥니다.
점수를 딸 수 있을지, 점수를 잃을지는
여러분이 당구공을 치는 그 순간 결정됩니다.
즉 최초의 운동상태가 정해지는 순간
이미 결과는 여러분의 손을 떠났습니다.
당구공은 뉴턴의 운동법칙에 따라서
이미 정해진 운동을 할 뿐입니다.
정밀한 측정 장치와 컴퓨터가 있다면
여러분이 당구공을 치는 순간
당구공의 운동을 감지해서
결과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도 아마 가능할 겁니다.
여기서 이 당구대를 우주라고 생각하고
당구공 대신에 우주의 모든 원자들이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우리 우주의 모든 사건들이
원자의 움직임으로 인해 일어나는 것이라면
만약 모든 원자들의 운동 상태
즉 위치와 운동량을 정확하게 알고 있다면
우리의 우주의 미래도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것이 바로 라플라스가 제시한
가상의 존재인 [라플라스의 악마]입니다.
무한에 가까운 인지 능력과 계산 능력을 가진 악마가 있다면
그 악마는 우리 우주의 모든 원자들에게 다가올 미래를 예측할 수 있을 것이고
조금만 다르게 말하면
미래가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결정론, 혹은 운명론적 사고
모든 것이 다 운동 방정식에 의해 결정되어 있는 거라면
우리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우리의 자유 의지라고 할 수 있을까요?
우리의 뇌 속 세포들조차
그저 물리 법칙대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라면 어떨까요?
어찌 보면 약간 소름이 돋는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요.
다행히도 라플라스의 악마는 현대 과학에서는
더 이상 설득력을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바로 양자역학으로 밝혀진 다음 두 가지 사실 때문인데요.
첫 번째 물질의 운동량과 위치를 동시에 정확히 알 수 없다.(불확정성의 원리)
두 번째 관측하기 전에는 모든 상태가 중첩되어 있으며
관측하는 순간 확률적으로 결정된다.(코펜하겐 해석)
잘 이해가 가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원래 양자역학은 이해하라고 있는 학문이 아니니깐요.
양자역학에 따르면
어느 날 게임을 하다가 트로를 만나서 빡친 제가
책상을 손으로 내리쳤을 때
손이 책상을 통과할 확률, 이것이 매우 작지만 존재합니다.
이 세상은 근본적으로 불확실하고 확률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확률 투성이인 세상이니
미래 또한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최근 과학계에서는 또 다른 근거로
라플라스의 악마를 부정하고 있는데요.
바로 우주 내의 계산 능력의 한계에 대해서인데요.
계산이란 정보를 처리하는 것이고
정보의 처리에는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바로 시간과 비트입니다.
비트는 0과 1로 이루어진 정보의 최소 단위이며
모든 정보는 0과 1의 조합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우주에는 ‘플랑크 길이’라는 단위가 존재합니다.
이는 물리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가장 짧은 길이입니다.
즉 정보를 저장하는 단위 또한 이보다 더 작아질 수 없습니다.
이 말은 우리 우주가 한 번에 취급할 수 있는 정보의 총량이
무한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리학자들은 이를 토대로
지금까지의 우리 우주의 수명과 크기에 대입해 봤을 때
우리의 우주가 처리할 수 있는 정보의 총량은
10^120bit 정도 될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우주 전체가 거대한 하드디스크가 되어서
정보를 저장하고 처리한다고 해도 용량이 무한대가 아니기 때문에
무한한 미래의 일까지 다 계산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최신 과학들에 의해
라플라스의 악마와 결정론은
거의 폐기된 개념이 되었습니다.
이와 반대로 실제 현실에서의 미래 예측 기술은
AI와 빅데이터 등을 통해서 점점 정확해지고 정교해지고 있다는 것이
재밌는 점인 것 같습니다.
우주를 예측하는 것은 어렵지만
당구대 속의 당구공은 충분히 의미 있는 예측 결과를 낼 수 있듯이
더욱더 기술 수준이 발달하면
라플라스의 악마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가 영위하는 삶의 범위 내의 여러 가지 문제들은
의미 있게 예측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지금까지 과학사 4대 악마 중에
데카르트의 악마와 라플라스의 악마를 알아봤습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과학사 4대 악마는
실존했던 악마가 아닌
과학자들의 상상 속에서 기존의 패러다임을 위협했던 악마들입니다.
나머지 두 악마에 대해서는 다음 영상으로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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