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이 전쟁의 승전국으로 유명한 미케네 문명은
기원전 1500년경부터 지중해 동부를 장악하면서
통행료를 거두는 해상권과 교역권을 행사했습니다.
기원전 1200년경에 이르러서는
그리스 본토에 도리스인들이 남하하면서
여러 도시들이 파괴되고 미케네 문명은 종말을 고하는데요.
그 무렵부터 지중해는
페니키아인의 활동 무대가 되었습니다.
페니키아인은 오래전부터 지중해에 진출하여
기원전 12세기부터 기원전 8세기까지
가장 왕성하게 활동했는데
지중해에서 무역활동을 하며 식민 도시를 건설했고
이로 인해 오리엔트 문명이 그리스 세계로 전해졌죠.
오리엔트라는 말은
라틴어 오리엔스(Oriens)에서 유래했는데
그 뜻은 ‘해가 뜨는 곳’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유럽 중심에서 생각했을 때 해가 뜨는 동쪽이라면
동양문화 자체로 아시아를 뜻하기도 하지만
역사적 용어로 사용될 때는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유역부터 동부 지중해 연안과
이집트 나일강 하류를 가리키는 말이었죠.
다시 말해, 중동과 북아프리카 일부라 할 수 있겠죠.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페니키아인은
고대 레바논, 시리아 지역에서 활동했던 민족으로
현재의 레바논 일대가 그 중심지였습니다.
채널 내 재생목록 10분상식 세계백과에서 영상을 제작했었던 레바논은
지중해에 접해있는 위치 덕에
고대부터 좋은 무역항으로 발전을 거듭했고
“중동의 진주”라는 별명을 갖고 있기도 하죠.
페니키아인은 레바논 민족의 직계 조상이기도 한데
페니키아라 불리게 된 것은 로마 제국 때부터였으며
원래는 각각의 도시 국가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이들은 비블로스라는 도시에서 발원하여
남쪽인 ‘시돈’으로 이동하였고
크레타 인이 멸망할 무렵에는
더 남쪽인 ‘티론’으로 이동하였는데요.
시돈과 티론은 성경에서 나오는 시돈과 두론을 뜻하기도 합니다.
페니키아인들은 자신들을 카나안이라고 했는데
이 역시, 성경에서 나오는 가나안을 의미하기도 했죠.
심지어, 페니키아인과 히브리안과는 아주 가까운 관계로
생김새로는 구분이 거의 되지 않았으며
우리나라로 치자면 고대 사회인 고구려, 백제, 신라와 비슷했습니다.
언어에서도 지역적 차이라 할 수 있는 방언 정도만 차이가 났죠.
두 민족 간에 사용하는 문자 또한 같아서
페니키아 문자가 곧 고전 히브리 문자입니다.
페니키아인들이 스스로 칭했는 카나안의 또 다른 말인 가나안은
시나이반도와 아나톨리아 사이에 있는 해안지역을 가리키는 옛 지명으로
일반적으로 요르단강 서부 지역을 가리킵니다.
가나안의 어원은 노아의 방주 이야기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요.
홍수가 끝나고 노아는 가족을 이루어 살고 있었고
그 중, 노아의 차남인 ‘함’, ‘함’의 아들이 가나안이었습니다.
즉, 노아의 손자가 가나안이라는 거죠.
그런데, 어느 날 노아가 만취하여 알몸으로 자고 있었고
아들인 ‘함’은 이 모습을 보고 놀라서는
부랴부랴 형들에게 아버지의 꼴사나운 모습을 알리러 갑니다.
이에, 노아는 아들이 자신의 허물을 덮어주지 않아 화가 나서
함에게 저주를 내리게 되는데요.
‘함, 너의 아들인 가나안의 자손은 형들 자손의 노예가 될 것이다.’ 라고 말했고
시간이 지나 가나안들의 자손들은 이스라엘인들의 노예가 되며
가나안 족속은 성경에서는 악의 상징 같은 존재가 됩니다.
만취해서 잠든 것은 노아 본인이었는데
저주는 손자 대대로 내리다니
자비가 없는 노아라 할 수 있겠군요.
어쨌든, 페니키아인들은 히브리인과 언어, 문자에서 동일성을 보였지만
신앙과 생활방식에서는 차이점을 보였습니다.
주로 해안가에서 상업에 종사하며
바알 신을 중심으로 다신교 활동을 하는 지역이 페니키아였고
내륙에서 농업과 목축을 하며 일신교 활동을 하는 지역은 이스라엘이었죠.
이들은 경쟁과 교류를 반복하였고
건축물을 주로 올린 사람들은 페니키아인들이었습니다.
두 민족은 교류하며 잘 지내는가 싶었지만
페니키아인들이 숭배했던 풍요의 신이었던 바알이 숭배 방식에 있어
이스라엘인들과 종교 갈등을 불러일으키게 되죠.
게임 ‘디아블로2’에서는 지옥을 지배하는 3대 악마로
파괴의 군주 바알이라는 대악마가 등장하는데
성경의 영향을 많이 받은 서양권 문명에서 바알이라는 이름은
각종 매체에서 악마를 대표하는 이름으로 많이 쓰이는 편입니다.
원래 바알은 셈어족의 언어로 ‘왕’,‘주인’ 등의 의미로
중동과 소아시아 및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숭배되는 신이었는데요.
문명이 시작되는 시점에 농경 사회가 이루어지면서
비와 폭풍을 주관하고 동시에 풍요의 신으로
양손에는 각각 창과 곤봉을 들고 휘두르는 모습으로 묘사되었죠.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거친 강의 흐름으로 인해
물을 다스리는 치수의 신이 중요하게 여겨졌고
페니키아인들을 비롯하여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치수에 관한 신은 가장 중요한 신들로 숭배했습니다.
그런데, 농경지역에서 풍요라는 것은
그만큼 인력이 많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고
그건 다시 말해, 번식력이 왕성해야 한다는 것을 뜻했죠.
바알 신에게 제사를 하는 그 과정에서
주변국과의 사회적 문제를 야기했는데
바알 신의 제사는 두 가지 행위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여기서 잠깐. Youtube의 노란딱지를 피하기 위해
특정 행위에 대해서 ‘읍읍’ 이라고 표현할테니
시청자분들께서는 알아서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당시, 바알 신을 모시는 사람들은 신전에 모여서
남녀가 함께 모여 단체로 ‘읍읍’을 하는 것이
씨를 뿌려 농작물을 키우는 농사와 같다고 생각했는데요.
그래서, 바알을 모시는 제사를 하는 첫 번째 과정에는
남녀 여러 명의 동시 단체 읍읍 행위가 있었고
이로 인해, 아빠와 엄마가 누군지도 모르는 아이들이 태어났던 거죠.
두 번째 행위는 그 와중에 생긴 아기에 대해서는 부모가 누군지 모르니
태어나자마자 제물로 바쳐지게 됩니다.
바알 신에게 이 지역에 대한 축복을 기원하기 위해
아기로 인신 공양을 하였죠.
또한, 이렇게 생긴 생명체에 대해서는
부모 개념이 없어 거리낌 없이
그 생명을 앗아 제물로만 이용했습니다.
현대 사회 기준에서, 인간 윤리와 성행위의 기준에서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일이지만
인간의 윤리적 관념이라는 것은
기원전 2~3천년 전쯤부터 철학적 사고가 발달하면서
윤리 의식이 발달하기 시작했는데요.
최소 1만년이 넘는 인간의 역사 동안에는
무분별한 읍읍과 인신 공양은
세계 어느 대륙에서도 흔하게 발생하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바알 숭배 제사 의식은
그 시절의 바알 숭배를 하는 민족들끼리의 종교행사이니
본인들이 알아서 할 문제다. 라고도 보는 견해도 있지만
이에 대해 상당한 반감을 갖추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되죠.
종교는 당시 권력의 핵심이었기 때문에
단순히 종교행사에서만 그치지 않고
이는 사회 구성원들에게 ‘정당성’을 부여하는 역할을 했던 겁니다.
즉, 제사 때 행해지는 집단 읍읍 행위가
평소 ‘일상생활에서도 쉽게 이루어져도 상관없다’ 라는 의식으로 전개되고
결국 사회 전반적으로 누구나 쉽게 따라하는
윤리적 저항심을 낮추게 되었던 거죠.
약 1천년이 지나 로마 제국 시대에서는
방대한 나라를 통합하여 국가통치함에 따라
다양한 종교에 대해 관용적인 태도를 보였지만
이러한 바알신의 종교행사 의식만큼은 금지했을 정도입니다.
또한, 성경에서는 바알이 이민족의 신으로 등장하며
바알을 섬기는 행위가 우상 숭배의 대표적인 이미지가 되어
타락의 상장으로 이어지게 되었죠.
이스라엘은 바알 신앙을 가장 경계하고 금하게 되는데
두 신앙의 윤리관, 특히 성적 윤리관이 판이하게 달라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바알은 사탄과 같은 의미가 되었던 겁니다.
이처럼 고대에는 성경과 대립을 보이면서도
오랫동안 강한 영향력을 지니던 바알 신앙은
헬레니즘 시대의 그리스 문화로 흔들리기 시작하여
유대인들의 지도자였던 ‘유다 마카베오 왕조’가
바알 신앙을 탄압하며, 바알 신앙은 세력이 약화됩니다.
그리고는 로마 제국이 전 유럽을 통치하면서
바알 신앙은 거의 대부분 힘을 잃게 되는데
기원후 300년경 콘스탄티누스 황제 이후
로마가 기독교화되면서 완전히 소멸되게 되죠.
바알은 ‘동쪽의 군세를 이끄는 왕’,
‘지옥 최초의 군주’라는 호칭에서도 느껴지듯이
66 군단을 이끄는 지휘관이며
검술의 달인으로 묘사되었다고 합니다.
바알 신을 주신으로 숭배한 페니키아인들은 많은 노동력을 확보하고
적극적인 대외활동으로 현대 인류에게까지 큰 영향을 끼치게 되는
알파벳을 발명하게 됩니다.
페니키아인들이 지중해를 차지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로는
기술력을 꼽을 수 있는데
천문관측과 조류의 흐름 등을 통한 전문지식인 항해술을 발전시켜
원양항해와 야간항해를 성공시켰죠.
야간항해가 가능해진다는 것은 장기간 항해를 할 수 있었고
조선술, 항해술, 천체술을 모두 갖추게 되면서
최초로 갤리선을 만들기도 합니다.
갤리선은 고대에서 중세에 걸쳐 아주 오랫동안 지중해를 지배했던
당시로서는 고도의 선박기술 집합체라고 할 수 있었죠.
돛과 노를 이용하여 배를 운영하는데
노 젓기는 기계가 발명되지 않았던 시대이기 때문에
노잡이라는 사람들이 훈련을 받아 노를 저었습니다.
영화 매체에서는 노예들이 채찍을 맞아가며
강제 노동을 하는 것처럼 연출될 때도 있지만
실제로는 훈련되지 않은 비숙련자들이 노를 저으면
노가 엉켜서 제대로 배가 조정되지 않아
철저하게 훈련된 자유민으로 구성되었다고 합니다.
갤리선이 주로 이동했던 바다는 지중해라
바람이 불규칙적이고 변화가 심했기 때문에
숙련된 사람들만이 조정할 수 있었던 거죠.
페니키아인들은 갤리선 발명으로 인해 지중해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점점 항해 기술을 발전시켜 아프리카를 돌아
인도양을 다녀오며 중개무역을 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는 값비싼 모피를 찾아서는
덴마크와 스칸디나비아 반도까지 다녀왔다고 하니
당시로서는 그 일대의 상업면에서 대기업같은 민족이었죠.
이들은 무역을 하며 지중해 여러 곳에 식민지를 건설했고
포에니 전쟁으로 잘 알려진 카르타고 또한
페니키아인들의 도시였습니다.
이렇게 지중해 활동과 상업이 번성하는 과정에서
이전의 문자들은 복잡하고 쓰기가 불편하여
간편한 글자를 만들 필요성을 느끼게 되는데요.
이집트의 상형문자와 수메르의 설형문자를 발전시켜
최초의 알파벳인 ‘페니키아 알파벳’으로 개량하고
이는 고대 그리스 알파벳 라틴문자인 로마 알파벳의 영향을 주었고
이는 결국 영어로 발전되게 됩니다.
또한 페니키아 알파벳에서 발달한 문자 중 하나인 아람 문자는
당시 페르시아 제국과 알렉산드로스 이후의 헬레니즘 문화권에서 주로 통용되기도 했으며
기원 후 3세기부터 아람 문자는
히브리 문자 및 아랍 문자로 파생되기도 하죠.
오늘은 오리엔트 문명이라 불리는 역사
미케네 문명 이후에 지중해 패권을 차지하던
페니키아 인들에 대한 이야기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그들은 레바논 민족의 직계 조상이기도 하며
종교적으로는 바알 신을 주신으로 하여
스스로를 카나안으로 부르기도 했는데요.
기술력에 주안점을 두어, 최초로 갤리선을 만들어
지중해와 아프리카, 인도양까지 종횡무진하여
장기간의 해상무역을 통해 상업적으로 번창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이전보다 좀 더 쉬운 글자가 필요했으며
이는 페니키아 알파벳으로 발명하게 되죠.
페니키아 알파벳은 고대그리스 알파벳, 로마 알파벳
그리고 영어로 발전되었으며
뿐만 아니라 페니키아 알파벳에서 파생된 아람 문자,
후에 발달되는 히브리, 아랍 문자의 영향을 주어
현재까지도 문자면에서는 전 세계에 많은 영향력을 주게 됩니다.
'시사 - 역사 > 역사, 세계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계사, 4대 문명] 잔인했던 아시리아 제국 10분 완벽정리 (0) | 2023.07.13 |
---|---|
[세계사, 4대 문명] 히타이트 10분 완벽 정리 (0) | 2023.07.12 |
[세계사, 4대 문명] 4대문명 10분 완벽정리 (0) | 2023.07.05 |
[세계사, 4대 문명] 이스라엘 3대왕 솔로몬 (0) | 2023.06.22 |
[세계사, 4대 문명] 다윗과 요압 (0) | 2023.06.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