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신에게는 열두 척의 배가 있습니다.”
일본이 수출규제로 공격해온 이후에 명량에서 일본의 적선을 맞이한 이순신의 전선 열두 척이 입길에 올랐습니다.
“전남의 주민들은 이순신 장군과 함께 물과 열두 척의 배로 나라를 지켜냈습니다.”
누가 이순신이고, 누가 선조인가 논란이 일었고
“세월호 한 척으로 이겼다는 댓글..”
-정미경 자유한국당 최고위원
배는 열두 척이 아니라 그 배 한 척이라는, 막말이되 막말이 아니라 주장하는 조롱마저 등장했습니다.
논란은 분분하지만 다만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은 딱 한 가지
그날 그 명량의 바다에서 이순신은 전선 단 열두 척을 거느리고 출정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이었지요.
그리고 그가 그 보잘 것 없는 배 열두 척으로 바다를 가득 매운 적선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던 필연적 이유는 바로 내부에 존재했다는 사실입니다.
“조정을 기망한 것은
임금을 무시한 죄이고,
적을 놓아주지 않은 것은
나라를 저러빈 죄...”
-<선조실록> 1597년 3월 13일
조정을 능멸하고, 임금을 기만했으며, 기동 출격 명령에 따르지 않은 죄
바다를 지키던 그는, 느닷없이 포승줄에 묶여 도성으로 압송되었는데
“원균만 못하옵니다.”
-<선조실록> 1597년 1월 27일
그 배경에는 임금의 두려움과 불신, 주변의 시샘과 잘못된 정보들...
“원균은 매양 이순신이 공을 빼앗았다고 말하였습니다”
-<선조실록> 1597년 1월 27일
관계가 좋지 않았던 또 다른 장수와의 갈등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용서할 수는 없습니다.”
-<선조실록> 1597년 1월 27일
그러니 이순신의 그 배, 열 두 척이란 상황을 만들어낸 것은 누구도 아닌, 바로 내부의 적,
“중죄에 처해야 합니다”
-<선조실록> 1597년 1월 27일
즉, 끊임없이 분열하고 자신의 탐욕만을 앞세우던 당시의 위정자들이었다는 것.
또한 그보다 중요한 것은 아마도
그 배 열두 척을 지켜낸 이들은 국난의 시기에 늘 그래왔듯이
그 뒤를 따르던 백성들의 작은 어선들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역사는 그렇게 말해주고 있지요.
결국 왜란을 이겨냈던 것은
외부의 적 앞에서 분열했던 위정자들이 아니라
민초들이었다고 말입니다.
또한 늘 그랬듯 역사는 되풀이되든 것인가...
가고 싶던 여행을 포기하고
버릇처럼 손이 갔던 맥주 한 캔에도 손을 거두어들이는
애틋한 마음들은
그 열두 척의 배를 지켜낸 백성들의 마음과 닮아있습니다.
그러니 지금...
누가 이순신인가는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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