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만년필이 없으니 글 쓸 기분 안 나네”
스님은 유독 만년필을 좋아했습니다.
어찌 보면 집착한 듯 보이기도 했습니다.
“생각만으로 글이 써지는 것은 아니다.
마음에 드는 필기구와 종이의 형태와 질, 기분이 하나가 될 때 글이 된다”고 했을 정도니까요.
마음에 드는 만년필에만 집착했던 그는 다름 아닌 법정스님이었습니다.
스님도 연장 탓을 하다니..
꽤나 흥미로운 발견인 듯싶다가도 스님도 속인과 같은 번뇌는 어찌할 수가 없나 보다...하는 새삼스러운 생각
최근에 출간된 김금희의 소설에도 간단한 일화가 등장합니다.
“형, 번뇌를 어떻게 없애요?”
주인공의 질문에 출가해서 스님이 된 그의 선배는 단언합니다.
“못 없애... 내 번뇌도 못 없애”
-<김금희 경애의 마음>
팔만대장경
그 수없이 많은 글자들을 하나로 줄여보면 그것은 곧 마음 심心자가 된다는데...
사람들이 종교에 의지하고 종교인을 아름답게 여기는 이유는
들끓는 세속의 욕망 속에서도
고요하고자 애쓰는 마음의 다스림 때문일 것입니다.
“너무 놀라지는 마세요. 앞으로 웬만한 정치인들 뺨치는 일들을 더 보게 될 겁니다.”
조계종의 내홍을 취재하는 기자들을 향해서 불교계 인사가 건넸다는 말입니다.
총무원장에게 숨겨둔 부인과 자식이 있다는 의혹 속에서 시작 된 논란은, 기자의 말을 빌자면 ‘드라마 뺨치는 빠른 전개와 반전을 거듭’했고
결국 오늘 조계종 종단 사상 처음으로 그 수장에 대한 탄핵안이 통과됐습니다.
부처가 하늘에 뜬 달이라면 스님들은 천강에 비친 달이라는데 그 소란함 속에 가려서
세상이 종교를 통해서 얻고자 하는 고요함은 어디론가 흩어져버리고 말았던 것이지요.
“만년필이 없으니
글 쓸 기분이 안 나네”
유독 만년필을 탐했던 스님의 선택은...
“누가 선물해서 만년필이 두 개가 됐어요.
한 개를 가지고 있을 때보다
살뜰함과 고마움이 사라져요.
선물한 이에게는 미안한 일이었지만
만년필 한 개를 다른 이에게 주어 버렸지요.”
-법정 스님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같습니다.
누군가에게 선물을 받아서 만년필 두 개가 된 뒤로는 오히려 살뜰함과 고마움이 사라져서...
결국 한 개를 다른 이에게 주어버렸다는 것이지요.
소유하지 않으려 번뇌했던 아름다움.
하나뿐인 법정의 만년필은 세상에 아름다운 가르침을 남겼으나 남은 이들의 저 들끓는 마음속에는 과연 무엇이 담겨 있는 것인가...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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