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서양 최초의 여성 직업 화가였던 그가 활동한 시대는 17세기 이탈리아.
그 시절 유럽에서의 예술은 남성의 전유물이었습니다.
여성이 여성의 몸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조차 금기시되고는 했습니다.
그러나 젠틸레스키의 작품은 금기를 넘어선 거침없는 표현으로 충만했습니다.
작품 속의 여성들은 당당했고 아름다웠습니다.
사실 그에게는 지우고 싶은 시간이 존재했습니다.
어린 시절 미술선생에게 성폭행을 당했고
피해사실을 법정에 알렸지만 세상은 오히려 그를 비웃었습니다.
‘남자를 꾀어낸 여자’ 이런 비난은 쏟아졌고 그는 자신의 주장이 진실임을 증명하기 위해 손가락 고문과 산파의 검증까지 거쳐야 했습니다.
이후 그가 택한 방식은 붓을 통한 조용한 항거.
“당신은 시저의 용기를 가진
한 여자의 영혼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가 한 고객에게 보낸 그 편지글처럼
젠틸레스키는 자신의 자화상을 통해서 붓과 팔레트를 들고, 세상에 맞서는 강인한 여성의 모습을 형상화합니다.
오늘(14일) 내려진 법원의 1심 판결은 오늘의 세상에 커다란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위력으로 존재감을 과시해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억압했다고 보기에는 증거가 부족하다.
사회에서 사용되는 성폭력 행위의 의미와 형사법에 규정된 성폭력 범죄의 의미가 일치하지 않는다.”_ 1심 재판부
법원은 각각의 진술과 증거를 법의 잣대로 들어단 본 뒤에, 설사 피해 정황이 있다 하더라도 지금의 법체계 하에서는 성폭력으로 규정하기 어렵다고 말했죠.
그렇게 본다면 이런 법정 다툼은 처음부터
그리고 앞으로도 결론이 정해져 있을 수밖에 없는 것.
미국 연방 대법원의 여성대법 긴즈버그가 대법관 아홉 명 중 여성은 몇 명 필요하냐고 물어보면 늘 “전원”이라고 답하곤 합니다.
그 일화를 굳이 떠올리지 않아도 법이 누구의 관점에서 만들어졌는가는 우리를 항상 고민하게 만들지요.
논란은 한동안 분분할 터이지만...
이번 판결이 이제야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세상의 절반을 숨죽이게 하는 결과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
아마 이것만은 모두가 공감하고 있지 않을까.
무너진 둑이 터지듯 쏟아졌던 증언과 눈물과 요구들은 세상을 향해 무언가 답을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시저의 용기를 가진
한 여자의 영혼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젠틸레스키는 누군가에게는 시저의 영혼을 가진 투사였을 것이나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시대의 질서를 뒤흔든 논란의 인물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긴 시간이 지나
우리는 그가 남긴 자화상을 바라보면서 그때와 똑같은 고민에 빠져있는 것은 아닌가...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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