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미안해“
이 말은 친구끼리 하는 말이에요.
되게 부모는
”괜찮아?“ 가 아니라
”어디보자, 어디보자, 어디야?“ 이렇게 살펴봐야 하는데
”괜찮아? 미안해.“ 황당..
저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러면 애도
”그러면 내가 뭐라고 대답을 하라고요?“ 이런 거지.
그리고 안 괜찮지, 부딪혔는데.
문꽝은 보호를 원했던 거예요.
그래서 애가 딱 안 오니까 삐졌어요.
마음이 내려앉았어. 무너졌어.
그래서 방으로 들어가 버렸어요.
그런데 애는 들어가면서 엄마가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엄마는 밖에서 장난감 고치고 있어요.
그러니까 애가 황당한 거예요. 이 안에서.
그런데 얘는 여전히 정서적 상호작용을 원하는 애니까 그것도 못 기다려.
참지 못하고 다시 나와서
엄마에게 있어서 엄마의 마음이 힘들 때, 마음의 항구는 누굽니까?
신랑이죠, 그렇죠.
그런데 얘는 자기가 힘들 때
자기의 마음을 정서적인 것을 안정시켜주는 마음의 항구가 아빠와 뽁뽁이인 거예요.
엄마가 아닌 거예요.
그런데 그렇지만 그 끈을 놓지 않고 계속
“그래도 엄마 해주세요, 오늘은 해주려나?
오늘 해달라면 반응해 줄까? 그것도 충분히 해줄까?
안 해주네.
그러면 침 뱉을까?” 이러고 있는 거예요.
뭔가 그 부분에서 금쪽이 마음에 편안함을 못 주는 건 맞는 것 같아요.
그래서 보면 뽁뽁이를 계속하고 있으니 걱정이 되니까 이걸 떼야 하겠다.
뽁뽁이를 주냐 안 주냐 자르냐 마냐로
아이하고 실랑이를 하고 있지,
이게 얘한테 이런 의미이구나, 이런 생각을 못하신 것 같아요.
아빠와 목욕할 때
행복했죠.
밝은 정도가 아니라 아주 행복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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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육아는
시간보다 마음이 중요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