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158페이지 한글 보면서 좀 더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이르시었다. 이 경의 이름은 금강반야바라밀경이니/
많은 경전들이 있지만, 부처님께서 직접 “내가 말하고 있는 이 내용은 무슨 경이다. 이 내용을 무슨 경이라고 해라.” 이렇게 딱 한마디로 지적해서 말씀하신 것은 금강반야바라밀경, 이것뿐입니다. 다른 경전들은 경전을 전하는 사람들이, 또는 편찬하는 사람들이, “이 경은 원각경이라고 하자, 화엄경이라고 하자, 반야심경이라고 하자.” 이렇게 붙인 거예요.
이 금강경만큼은 부처님께서 직접 “이 경의 이름은 금강반야바라밀경이다. 줄여서 금강경이다.” 이렇게 딱 지목을 했어요. 그만큼 금강반야바라밀경, 즉 금강경이 중요하다 이런 뜻도 됩니다.
/금강반야바라밀경이니, 이 이름의 글자 그대로 받들어 지닐지니라./
본뜻 그대로 잘 받아들여라. 아주 중요하니, 분명히 잘 받아들여라. 이런 애기입니다. 그렇다면 금강반야바라밀경, 이렇게 중요한 말씀을 강조해서 하고 있으니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해설, 그 아래 보면 금강반야바라밀이라. 이것은 이미 이 앞쪽에서 설명을 드린 바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다시 또 공부를 해보면, 맨 끝줄에
/우리 마음은 금강이다./ 그랬네요. 그 위에도 보면
/금강은 무엇이든지 끊을 수 있는 쇠 중의 쇠. 즉 비유하기로, 일체의 번뇌, 일체의 집착, 이것은 쇳덩어리 중에 쇠다./ 아주 집착력이 대단한 거죠. 번뇌라는 것이. /그런데, 이 금강경은 이런 끈질긴 집착 번뇌를 끊을 수 있는 그런 힘을 가지고 있다 해서 금강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런 내용입니다.
/우리 본래 마음은 영원불멸하며 우주 만유를 창조하는 근본 바탕이다. 우리 마음이 그랬다./ 그랬구요. 또 /반야는 지혜라고 표현한다. 지식이 아니다. 지식이 주관 객관의 분별적 입장에서 내는 알음알이라면, 지혜는 주관 객관이 벌어지기 이전, 즉 마음의 근원으로 돌아간 무분별지를 말한다./
예, 이 지식은 잘못 받아들여져서 그 지식이 자기를 황폐화하고 남을 해치는 수도 많습니다. 그런데 이 지혜는 밝고 밝아서 언제나 세상의 빛이 될 뿐이지, 절대 나를 해치거나 남을 해치는 일은 없어요. 그래서 우리는 전부 지혜를 얻어야 한다.
모든 부처님 말씀은
다 지혜를 얻도록 가르치고 있는 겁니다.
지식이 아닙니다.
우리가 여기서 배우는 것도 지혜를 배우고 터득하는 것이 지식을 배우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는 반야, 반야지혜, 이렇게 붙여서 애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야의 지혜를 모든 부처님의 어머니이며 절대 평등, 무념의 경지이다. 바라밀은 바라밀다의 준말로 저 언덕에 도착함, 저 언덕이란 부처님 세계를 말함. 즉 바라밀은 부처님 세계를 성취한다. 부처님 세계를 완성한다./ 뭐, 의미를 아시면 되겠는데.
거기서 우리의 마음은 금강이다. 158페이지, 그 끝줄에, /우리 마음은 금강이다. 우리의 본래 마음은 영원불멸하며 우주 만유를 창조하는 근본 바탕이다./ 이렇게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마음에 대한 얘기를 계속 하고 있어요. 예, 그래서
우리의 마음은 금강이요,
우리의 마음은 반야요,
우리의 마음은 바라밀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되요. 금강반야바라밀, 줄여서 금강경. 금강반야바라밀경, 줄여서 금강경 그렇게 말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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