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신들은 정해진 모습이나 정해진 이름이 없습니다.
그들은 살아생전에 자기가 가지고 배운 문화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어요.
그런 디자인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어요.
전혀 생소한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왜 아까 ‘아버지 같은 사람이 나를 불렀다’ 그랬죠?
아버지가 부른 게 아니라
마찬가지예요.
죽음의 신들이 나타날 때도
자기 문화권에 걸맞는 모습으로 나타나게 돼 있어요.
이 얘기는 정해진 모습이 있다는 거예요? 없다는 거예요?
정해진 모습이 없다면 실체라는 거예요? 환영이라는 거예요?
환영이라는 뜻이에요.
그런데 환영임을 꿰뚫어 보지 못하는 이에게는 실체죠.
그래서 반야의 지혜를 수행하지 못한 사람들은
대부분 죽음 이후의 경험을 실제처럼 하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속는 거예요.
금강경을 자주 읽고
무상의 진리를 꿰뚫고 있는 사람은
언제든지 죽음의 과정, 그 언제든지
그 모습을 꿰뚫고
실체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있어요.
근데 반야의 지혜가 없는 사람들은
그냥 죽음의 심판이 실제 일어나는 것처럼 느껴지고
그 고통이 실제처럼 느껴지고
그렇게 해서 다음 생으로 끌려가는걸
실제처럼 경험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우리가 마치
지금 인생을 실제처럼 살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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