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법문/월도스님_BTN즉문즉설

월도스님 BTN 즉문즉설 25_4. 관음기도만 했던 시대에서 경전까지 공부하는 시대

Buddhastudy 2017. 11. 16. 22:23


과거에 우리 어머니들은 아무리 이론적 부분을 가르쳐도 그 이론적 부분을 습득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요즘 많이 배우는 시대이지 않습니까? 많이 배웠기 때문에 그들에게 눈높이를 함께하기 위해서 교와 관을 함께 하는 거죠. 사실은 대각국사의천이라고 하는 우리 스승이 우리 천태종의 종조가 계시지 않았다면, 대단히 어떤 혼란스러운 불교를 반복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그래서 이미 대각국사의천께서 출가하시기전까지만 하더라도 교와 선이 많이 다투었습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불교라는 하는 부분은 두 패로 갈려져 있었어요. 교를 중심으로 하는 스님, 소위 말하는 학문을 중심으로 하는 스님, 선을 중심으로 하는 스님들이 서로 다투었던 거죠. 그래서 내가 하는 것이 불교다.”라고 다투었어요.

 

이미 대각국사의천께서는 송나라 당시에 중국으로 건너가시죠. 그래서 만나신 것이 지자대사의 가르침인 교관총지를 배운 겁니다. 이것을 봤을 때, 교와 선은 다르지 않다. 이미

 

선이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의 언어요,

교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의 말이다.

, 선 부처님이 깨달음이요,

교는 부처님의 언어다. 말씀이다라고 하는 얘기죠.

 

아는 게 있어야 가르칠게 아닙니까?

아는 게 없는데 뭘 가르치겠습니까?

내가 수행을 통해서 깨달음의 세계를 얻어야

가르칠 게 있지 않습니까?

또한 내가 아무리 깨달은 바가 있더라도

누구에게 기술적으로 가르칠 수 없다면

무용지물일 수밖에 없는 거죠.

 

그래서 교와 선은 수레의 양 바퀴와 마찬가지다.

새의 양 날개와 같은 것이다.

 

한쪽 날개를 잃은 새는 아무리 훌륭해도 날 수 없듯이,

아무리 훌륭한 수레라 할지라도

한쪽 바퀴가 펑크가 나면 갈 수 없는 수레이듯이,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인 교와 선은 다른 것이 아니다.

오직 수행을 열심히 하는 거요,

그 수행을 누구에겐가 전달하기 위해서는

공부를 열심히 할 수밖에 없는 것이

부처님 가르침이라는 점을 기억하시고,

 

적어도 천태종의 불자라면

관음정진으로서 즉, 지관을 실천해 내시고,

또한 법화경이라고 하는 큰 위대한 가르침을 통해서

이론적 부분을 잘 갈무리 했을 때

불자로서 당당할 수 있기 때문에

교와 선을 양립하기 위해서 법화경을 가르친다는 점을 기억하시고,

여러분 기도도 열심히 하시고, 법화경공부도 열심히 하셔서

새의 양쪽 날개를 얻듯이 수행체계의 다를 이룰 수 있는 그런 멋진 불자들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갖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