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를 하는데 기도를 하면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 져야 되는데 기도를 잘하려고 하다보니까 기도가 안 되어서 스트레스 받는다는 얘기거든요. 좀 전에 제가 이야기했던 것과 좀 무관하지 않는 이야기거든요. 목표가 기도를 잘한다는 기준을 먼저 정해 놨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거예요.
기도는 그냥 잘하는 게 없어요.
하면 되는 거고,
안하면 안 되는 겁니다.
아시겠죠. 잘하려고 하는 기준을 만들어내니까. 그러니까 소위 말하는 식자우환이라. 이런 말이 있어요. 아는 게 병이다. 그냥 모든 것이 기도를 하는 과정 속에 오는 현상이다라고 생각하면 그냥 그 시간이 즐거워요. 그런데 문제는 뭐냐 하면 먼저 상식으로 공부를 했거든요. “아. 기도를 하면 삼매에 빠진데. 삼매를 만들려 하면 모든 번뇌를 없애 야 된데.” 모든 번뇌를 없애려고 하니까 번뇌가 없어지는 게 아니고 더 많은 생각이 일어나? 안 일어나? 그러니까 그때부터 스트레스를 받는 거예요.
누구는 저렇게 마음이 편해진다는데 나는 기도를 할수록 더 많은 번뇌가 일어나다 보니까 너무 힘들다라는 쪽으로 생각을 하거든요. 그런데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저 우물에 많은 슬러지가 끼었어요. 그래서 그 흙탕물을 깨끗한 물을 만들려고 하다 보면 그 깨끗한 물을 만드는 방법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한 가지는 가라앉히는 거죠. 한 가지는 퍼내는 겁니다. 가라앉히는 것은 더러운 것을 일시적으로 그냥 가라앉아있는 거예요. 더러움의 잠재력을 그냥 가지고 있는 거죠.
그런데 그 물을 진정으로 깨끗한 물로 만들려면 물을 퍼내야 됩니다. 물을 그냥 가라앉히면 깨끗해 보이기는 하지만, 언젠가 파도가 일어나면 그 흙탕물은 일어납니까? 안 일어납니까?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우리 마음이 깨끗한 것처럼 보이는 것뿐이에요. 지금 우리는 그 번뇌라고 하는 것이, 내 마음속에 번뇌의 더러움이 나한테 꽉 차있는 겁니다. 그런데 그 부분을 인식하지 않고 있는 거예요. 그 물이 더러운 건지 아닌지 중생인지 보살인지 이것을 생각하지 않고 그냥 즉흥적으로 그냥 있는 그대로 살고 있는 것을 우리는 중생이라고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부처님께서 이 사바세계에 오신 이유는 “중생 중생이여, 너희가 알고 있는 모든 세계가 네가 지금 알고 있는 게 다라고 생각하지만, 그 알고 있는 모든 것은 번뇌인고로 그 번뇌를 없애라.” 가라앉히는 것이 아니고 없애라. 그 없애는 방법이 뭡니까? 선이라고 하는 거예요. 참선도 될 수 있고, 염불도 될 수 있고, 간경도 될 수 있고, 독경도 될 수 있고, 여러 가지 것이 있는데, 그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서 내 평상시에 생각하지도 않았던 마음을 깨끗하게 만들려고 마음을 휘저어버리다 보니까 더 혼탁해질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닙니까? 그렇죠.
물을 푸려다보면 물은 더러움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하지만 그 더러움으로 돌아가는 것이 진정 더러움이 아니고, 한 바가지 한 바가지 자꾸 푸다보면 그 더러움의 농도가 낮아집니까? 높아집니까? 한 방울 퍼내면 퍼낸 대로 그물질은 바깥으로 나가게 되어 있고, 그 이물질이 자꾸 나감으로 인해서 그 우물은 깨끗함을 향해서 한 발짝 한 발짝 가는 경우수를 만들어내듯이,
내가 관세음보살 부르고 내가 열심히 노력하다보면 처음에는 내 마음이 깨끗한 줄 알고 앉아서 관세음보살 불러 더 깨끗한 물을 만들다보면 더 많은 번뇌가 올라오는 것 자체는 바로 샘물이 흙탕물이 일어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끊임없이 노력하면 되는 거예요. 안 되는 것이 아니고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되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려고 하니까 지루함이 생기고, 괴로움이 생기고, 안하는 것 보다는 못하는 더 힘들다고 하는 생각을 가지고 포기해버리고 싶은 생각되지만, 노력한 것 만큼은 어디로 가지 않는다.
그래서 옛날에 2대 정종스님을 모시고 있을 때, 저도 우리 저 보살님이 고민했던 것과 똑같은 현상을 겪을 때가 있었어요. 스님으로 머리를 깎고 출가를 한다고 해서 갑자기 마음이 바뀌어 지는 게 아니에요. 여러분과 똑같은 과정을 통해서 가는 겁니다. 여러분, 머리를 깎는다고 마음이 달라지고, 승복을 입었다고 갑자기 검어진 게 허예지고 그러겠습니까? 과정은 똑같은 과정을 겪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선방에 앉아 있어도 하루종이 정말 모든 번뇌가 나를 가르치고. 그래서 한번은 여쭌 적이 있어요.
“큰 스님, 저는 도저히 마음을 공하게 비우고 무심으로 가려고 애를 쓰는데도 불구하고 더 많은 생각이 일어나는 이유는 뭡니까?” 이렇게 물어봤어요. 그런데 우리 큰스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시냐하면 “네 마음속에 그 뭔가를 깨끗하게 만들려고 하는 것까지도 번뇌다.” 이렇게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러면서 네 마음이라고 하는 것 속에 아무것도 두지 마라. 거기에 책을 두지 않고 그냥 무심으로 부르다보면 저절로 무심이 되는 거죠. 네 마음을 깨끗하게 만들려고 애를 쓰는 것 자체가 이미 번뇌인고로, 그런 부분까지도 없애라.
생각 생각을 두지 말고 그냥 내가 관세음보살 불러내는 소리를 내 귀로 자꾸 들으려고 애를 쓰다보면 저절로 공해진다. 그러면서 비유를 뭐로 하시냐하면 네가 지금 문이 여러 개가 있는 집이 있다고 치자. 그 방에 금은보화를 갖다 놓고 그 금은보화를 도독 놈으로부터 지키려고 하다보면 그 도둑놈으로부터 그 금은보화를 지키기가 대단히 어렵다.
그런데 그 금은보화고 뭐고 좋고 나쁜 부분을 다 내려놓고 훔쳐갈게 없게 만들어놓고 문열어놓으면 도둑놈이 와도 훔쳐갈 게 없으니까 지킬게 있어요? 없어요? 바로 내 마음 밭에 번뇌라고 하는 것은 탐내는 마음, 성내는 마음, 어리석은 마음의 탐심이 욕심이 그득하기 때문에 그것이 힘든 거지, 그 것까지도 다 놔버리고 오직 관세음보살 부르는 한 기쁨으로 취해서 가다보면 나머지는 저절로 청정해 진다라고 하는 말씀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잘하려고 애쓰지 말고, 갑자기 깨끗해지려고도 하지 말고 그냥 원리를 통해서 하다보면 저절로 청정해지고, 저절로 행복해하는 수행의 단계가 된다는 점을 기억하시고 열심히 노력하는 불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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