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불교TV
이래서 팔정도를 이 자리에서 그대로 외웠어요. 몸으로 배운 건 잘 안 잊어버려요. 머리로만 그냥 앉아서 바른 생각, 바른 말, 바른 견해하면 돌아서면 잊어버려요. 그런데 지금 위에서부터 아래로 쭈욱~ 내려갔죠? [바른 생각 - 바른 말 - 바른 행위 - 바른 생계 - 바른 정진 - 알아차림 - 바른 선정 - 바른 견해] 이렇게 몸으로 배웠기 때문에 이거 여러분들 금생에는 안 잊어버립니다.^^
1. 바른 생각
그러면 바른 생각이 과연 바른 생각이냐? 이걸 설명해 드릴게요. 바른 생각은 바로 우리가 처음에 오프닝할 때 어떻게 했어요? 행복도? 내 작품이다. 이게 바른 생각이에요. 바르지 못한 생각은 무슨 생각이냐? 행복도 불행도 네 작품이다.^^ 이게 바르지 못한 생각입니다. 그래서 남을 원망하고 한탄하고 이게 바르지 못한 생각에서 나오는 거에요. 내가 인이요, 남이 연이다. 내가 주인이 되고 주변 상황이나 다른 것들은 조연이 되어서 주인공과 조연들이 함께 만들어 나가는 하나의 영화. 판타지다. 이렇게 생각을 해야 되요.
여러분들이 다 자기 인생에서는 자기의 주인공입니다. 여러분 인생에 여러분이 주인공이지 누가 주인공이겠어요? 예? 그런데 스스로 주인공이기를 포기해요 자꾸. 나 주인공 안할래.^^ 그리고 자꾸 남한테 미룹니다. 나의 행복과 불행의 키를 내가 쥐고 있는 게 낫겠어요? 남이 쥐고 있는 게 낫겠어요? 잘 안다니까. 하여튼. 나의 행복과 불행의 키를 내가 쥐고 있어야 내가 스스로 행복해질 수도 있고, 불행에서 벗어날 수가 있거든요. 그런데 그걸 남에게 쥐어놓으면 나는 맨날 눈치나 봐야 되요. “문 좀 열어줘.” 하거든요.^^ “문 좀 열어줘.”하고 눈치 보는 게 낫겠어요?
자기 들어가고 싶으면 들어가고 나오고 싶으면 나오는 게 낫겠어? 당연히 자기가 키를 가지고 있는 게 좋죠? 그래서 행복도 불행도 내 작품이다. 으흠. 내가 만들어 가는 거지, 내가 주인공이고 다른 사람들은 내 인생에 있어서는 다 조연입니다. 그래서 물론 주인공 혼자서 영화를 만들 수는 없어요. 조연도 필요해. 엑스트라도 필요해. 여기도 지금 저 혼자 있으면 싱겁겠죠? 여러분들이 막~ “네, 네”하고 웃어주고, 맞장구 치고, 박수치니까 분위기가 이렇게 좋은 거예요.
그러나 역시 또 이 자리에 제가 없으면 또 뭐가 안고 빠진 찐빵 처럼^^ 오하시스 없는 사막처럼. 뭐~ 허전하겠죠? 그러니까 주인공과 조연이 다 필요해요. 그러나 저마다 자기 인생의 주인공은 누구다? 나다. 자기다. 이게 바로 바른 생각입니다.
2. 바른 말
그다음에 바른 말. 바른 말은 뭐냐? 망어, 기어, 양설, 악구가 아닌 바른 말. 망언은 거짓말이에요. 거짓말대신 진실한 말을 하고, 기어는 번지르르한 말입니다. 번지르르한 말 대신 올바른 말을 하고, 그다음에 양설은 이간질 하는 말이에요. 여기 가서 이 말하고, 저기 가서 저 말해가지고 싸움붙이는 거. 예. 이간질하는 말 대신 서로 화합해주는 말을 하고, 또 그다음에 악구는 쌍스러운 말, 욕설, 이런 겁니다. 쌍스러운 말, 욕설, 이런 거 대신 부드러운 말을 한다. 이게 바른 말이에요.
3. 바른 행위.
그 다음에 바른 행위. 바른 행위는 뭐냐? 살생 투도 사음을 안 하는 거에요. 살생 대신 뭐를 해요? 방생을 한다. 지금 방생하기도 바쁜데 언제 살생을 해요? 방생할 시간도 모자라는 데. 그 다음에 투도, 도둑질 대신 뭐해요? 보시를 한다. 그렇지. 어떻게 하면 보시를 할 수 있을까? 고민 중인데 남의 걸 뺏을 생각은 아예. 지금 내 것도 주지 못해서 안달인데. 그다음에 사음. 삿된 음행대신 정행. 올바른 행을 닦는다. 바른 행이었죠?
4. 바른 생계
그 다음에 뭐에요? 바른 생계. 배를 채워야 돼. 그래서 배에다 이렇게 한 거에요. 바른 생계는 뭐냐? 살생 투도 사음을 업으로 삼지 않는 거. 이게 바른 생계에요. 예를 들어서 살생을 업으로 삼는다. 킬러. 직업이죠? 이것도. 사람을 죽여서 밥 벌어 먹고 살아. 이런 거는 바른 생계가 아니다. 이 소리에요. 또 투도. 도둑질을 업으로 삼는다. “나 직업이 도둑이야.” 이래서는 안 된다 이거에요. 으흠. 그다음에 사음. 이것을 업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이게 바로 바른 생계.
5. 바른 정진
그다음에 바른 정진. 바른 정진은 우리의 올바른 행위는 꾸준히 늘려나가고, 잘못된 행위는 점차점차 줄여 나가는 거, 이게 바른 정진이에요. 그래서 좋은 일도 꾸준히 해야 자꾸 몸에 배이게 되요. 그래서 오히려 매주 월요일 마다 자꾸 누굴 만나야 돼? 월호스님을 만나서^^ 자꾸 이렇게 부처님 말씀을 듣다 보면은 자기도 모르게 이게 달라져요. 사람이. 콩나물에 물을 주면요, 물이 쭈욱~ 다 빠져 나가는 거 같지만 콩나물은 자란다. 으흠. 여러분이 여기서 이 말을 듣고 나가면서 잊어버리는 거 같지만 그걸 꾸준히 막~ 듣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자라있어요.
제가 이번 학기에 동국대학에서 강의했는데, 기말에 학생들한테 소감을 물었어요. 어떤 학생이 그래요. “강의를 듣고 달라진 점이 뭐가 있느냐?” 그랬더니 “착해졌어요.”^^ “그래. 내 보람이 있다.” 선과 대중예술 관련해서 이렇게 했거든요. 그랬더니 선에 관한 얘기를 계속 듣다보니까 자기 어떤 고정관념이나 시야가 바뀌었다 이거에요. 그리고 “아~ 내가 착하게 살아야 되겠구나.” 하고 느꼈다는 거에요. 보람 있는 일이죠. 그게 바른 정진.
6. 알아차림.
그다음에 알아차림. 이게 뭐냐? 자기가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하고 있던 자기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알아차리는 겁니다. 혼을 빼놓고 있는 게 아니고. 얼이 빠져 있는 게 아니고.
7. 바른 선정.
그다음에 바른 선정, 바른 선정은 무엇이냐? 몸을 관찰하고 마음을 관찰하고 관찰자를 관찰하는 거 이게 바른 선정입니다. 그래서 정작 관찰해야 될 것은 자신의 몸과 자신의 마음. 그리고 자신의 몸과 마음을 관찰하는 성품. 관찰자를 관찰해야 되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거는 관찰할 생각 안하고 남의 허물을 잘 관찰해요. 남의 눈 속에 티는 잘 보면서 자기 눈 속의 대들보는 못 본다. 그 속담이 그래서 나온 거에요. 남을 관찰하려고 그러지 말고 자기를 관찰해야 되요. 그래야 성장, 발전이 있습니다.
남의 허물을 자꾸 관찰하다보면 자기도 그 허물에 초점이 맞추어져서 자기도 허물이 많아져요. 그러니까 남의 허물을 자꾸 보려고 그러지 말고 자기의 몸을 관찰하고 자기 마음을 관찰하고, 자기의 성품을 관찰하는 거. 이게 바른 선정.
8. 바른 견해.
그다음에 바른 견해. 바른 견해는 사성제, 팔정도. 그래서 사성제는 고집멸도. 나의 고통의 원인은 내가 있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사성제의 첫 번째에요. 내 고통이 사라지려면 뭐가 사라져야 되요? 내가 사라져야 된다. 그게 바로 무아법. 무심공부입니다. 무아법, 무심공부에 통달해지면 내 고통이 사라져요. 내가 있으니까 내 고통이 있겠죠? 내가 없어지면 내 고통이 있어요? 없어요? 없는 거에요. 그래서 몸이 있는 동안에는 내가 몸이 없어질 수는 없지. 그죠? 그러나 마음이라도 쉬게 하는 거에요. 분별심이 쉬게, 나라는 생각이 쉬게 하면은 고통이 쉬어지는 거에요. 저절로. 으흠.
그래서 나의 고통의 원인은 바로 내가 있기 때문이다. 고통이 소멸하려면 내가 없어져야 된다. 그럼 내가 없어지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게 바로 팔정도에요. 머리로는 무얼 한다? 바른 생각. 입으로는 바른 말. 어깨는? 바른 행위. 배는? 바른 생계. 다리는? 바른 정진. 발바닥은? 바른 알아차림. 손은? 바른 선정. 이거는? 바른 견해. 야~ 우수한 학생들만 아이큐 120이이 또 뛰어나.^^ 이렇게 자화자찬도 해가면서^^
자기가 즐거워야 남도 즐겁게 해줄 수가 있는 거에요. 자기는 인상 파악~ 찌푸리면서 남들 보러 “웃으세요. 웃으세요.” 이거 웃을 일이 아니라 웃기는 일이지.^^ 그죠? 그래서 여러분들이 즐거워야 여러분들 가족들도 즐겁게 해 줄 수 있고, 또 친구들도 즐겁게 해 줄 수 있는 거에요. 그래서 이렇게 자기 스스로를 즐겁게 해주는 것은 좋은 겁니다. 그것도 올바른 방법으로. 잘못된 방법으로 즐겁게 해주면 안 되죠? 마약을 먹는다든가. 뭐~ 이런 거 잘못된 방법으로 즐거워지는 거에요. 그런 방법만 아니면 팔정도. 올바른 길을 통해서 사람이 점점 행복으로 가게 된다.
이거는 궁극적인 행복입니다. 이거는 일시적인 행복이나 의타적인 행복이 아니에요. 의타적인 행복은 일시적인 행복입니다. 왜? 다른 거에 의존해있기 때문에 그 상황이 변하면 나의 행복도 변하게 되어 있어요. 예를 들어서 신이 나를 행복하게 해준다. 그럼 신의 마음이 변하면 나는 불행해져야 돼. 이걸 바로 의타적인 행복이라는 거에요. 돈 때문에 내가 행복하다. 이것도 역시 의타적인 행복이에요? 자생적 행복이에요. 의타적인 행복입니다. 그런 거는 다 일시적인 거에요. 상황이 변하면 행복도 변하게 되요.
그러나 이 팔정도를 통해서 얻는 행복. 이것은 의타적인 게 아니라 스스로, 온몸으로, 체험을 통해서 얻는 행복이기 때문에 이것은 사라지지를 않습니다. 우리가 몸으로 배운 거는요, 몸이 기억을 해서 안 사라져요. 여러분들 수영 같은 거, 한번 배워 놓으면 1년 동안 안하다가 1년 후에 해도 되요? 안 돼요? 되요. 말로만 배운 것은 1년 후에 다 까먹죠? 그런데 몸으로 배운 거는요, 안 잊어버립니다. 그래서 우리가 팔정도를 [ 바른 생각 - 바른 말 - 바른 행위 - 바른 생계 - 바른 정진 - 알아차림 - 바른 선정 - 바른 견해 ]
그래서 이렇게 몸으로 여러분들이 지금 배웠기 때문에 여기 계신 분들, 또 시청하고 있으면서도 역시 따라 해야 되요. 몸으로. 그냥 이렇게 보고 으흠. 바른 생각, 바른 행위, 이렇게 들으면은요, 잊어버려요. 그런데 자기가 이렇게 아~ 여기서 스님하고 여러분들이 하는 걸 보고 아~ 이거 맞는 말이다. 머리로는 바른 생각, 이렇게 직접 따라 해야 되요. 다 따라 하세요. 지금 시청자 분들. 여기 있는 분도 다.
머리는 뭐한다? 바른 생각. 입은?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알아차림. 바른 선정. 바른 견해. 으흠. 다 맞췄으니까 기분이다. 박수 한번. 짝~ 예. 이렇게 몸으로 배우면 죽을 때가 안 잊어버립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팔정도야 말로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정말 보여주신 길이고, 부처님을 따라 배울 때 가장 근본으로 따라 배워야 할 것이 팔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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