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용서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상대를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불행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정을 알고 있는 주변 사람들이
그냥 용서해 주라고 해도
난 도저히 용서가 안 된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 생각만 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고 하죠.
정도가 심하면 밥도 잘 못 드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일단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안 만나면 됩니다.
그런데 안 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죠.
그 사람이 했던 말과 행동들이 상처가 되어서
내 귓속에 맴돌고 마음속에 남아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기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그렇게 말하고 행동한 상대는
이미 지나간 일은 진작에 잃어버린 경우가 많습니다.
또 나에게 이렇게 심하게 하고도 사과하러도 안 온다고 합니다.
근데 그 사람 절대 사과하러 오지 않습니다.
심한 경우에는 그런 말을 한 것조차 까먹고 있을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내가 그 일 때문에 식욕도 없어서 막 밥도 못 먹고 있는데
상대는 밥도 맛있게 잘 먹고 잘삽니다.
상대는 하루 종일 자신의 일밖에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나는 싫은 상대를 생각하면서 용서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
억울하게 당한 내 자신을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대부분 하루 종일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면서 지냅니다.
매년 아프리카에서는 200만 명이 식량난으로 굶어 죽고 있습니다.
매일매일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이 먹을 것이 없어서 죽어가고 있습니다.
내가 만약에 지금 이빨이 아픈데
이런 먼 나라의 뉴스를 들으면
뉴스보다는 아픈 내 이빨이 더 죽을 맛인 거죠.
하루 종일 아픈 이빨만 생각하게 됩니다.
또 어떤 분들은 내가 어떻게 하면 더 예뻐질까하고
몇백만 명이 사망하는 뉴스보다
내 얼굴에 수분크림 한 번 더 바르는 것이 중요한 사람도 있습니다.
이렇게 자신밖에 생각하지 않는 것이 인간입니다.
저는 싫어하는 사람을 용서 못하시는 분들께
한 번씩 이런 말씀을 드립니다.
불교에서는 사람이 다시 한번 태어나는 데
몇만 겁의 세월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인간은 겨우겨우 태어납니다.
그렇게 겨우겨우 받은 생명으로
겨우 몇백 년도 아니고 몇십 년을 살다가 다시 돌아갑니다.
어찌 됐든 반드시 태어나면 죽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인생에서 소중한 하루를
아니면 반나절이라도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나한테 한 짓을 생각하면서 억울하게 보낸다면
그 자신의 천금과 같은 하루를
그 상대에게 뺏긴 것과 같은 것입니다.
1년 이상을 용서를 못하고 있다면
상대는 알아주지도 않는 1년이라는 시간 동안
혼자 소중한 시간만 낭비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너무 아깝게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것이죠.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사실 그 1분 1초도 아까운 시간입니다.
그럴 시간에 더 즐겁고 행복한 생각이나 행동을 하는 것이 훨씬 더 낫습니다.
좀 심한 경우에는 10년이 훌쩍 넘기면서까지
상대를 원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도 상대는 당신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그런 생각이나 상대에 대한 증오나 집착은 그만 멈추고
용서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상대를 용서하는 것은 그 상대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내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상대를 아무리 싫어하고 원망해도 그 사람에게는 닿지 않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내 자신이
가장 그 기운에 가까이 있기 때문에
내 속에서만 증오심이 돌고 돌 뿐입니다.
이런 미워하고 증오하는 마음은
내 몸속을 돌아서 내 몸까지 해칩니다.
화나고 억울하고 슬픈 마음은
온몸을 경직되게 하고 피를 탁하게 합니다.
싫은 상대를 생각하면서 1년이고 2년이고 허송세월도 보내고,
거기다가 몸까지 망가지면서
잠도 잘 못 자고
상대가 아닌 원망하는 내 자신이 그것들을 그대로 받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용서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나 자신부터가 완벽한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죠.
내가 싫어하는 상대에게 그렇게 당했듯이
나 역시도 나도 모르게 기억도 못하는 사이에
남에게 상처를 줬거나
남이 잠도 못 잘 정도로 마음을 아프게 한 일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저도 기도를 하다가 갑자기 떠오른 여자분이 한 분 계십니다.
유치원 때 그 엄마 따라갔던 부산의 서면시장에 세븐미용실이라는
그 미용실 누나가 있었는데
제가 그 누나에게 뭐라고 말했는지 기억은 잘 안 납니다.
근데 그 누나가 그 잠시 그 미용실 밖에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더니
눈이 벌겋게 부어 있는 상태로
손님들의 파마를 하는 모습을 본 기억이 났습니다.
제가 좀 짓궂은 말을 했겠죠.
지금이라도 만나면 정말 그 무릎 꿇고 사과드리고 싶습니다.
근데 정말 죄송한데, 제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잘 안 납니다.
아마 꼬마 떼여서 거르지도 않고 막말을 내뱉었을 겁니다.
혹시 이 영상을 보고 계신다면 위광사에 오시면
제가 맛있는 차라도 한잔 공양 올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상대를 미워하고 원망하기 전에
나 자신부터 단속해야 합니다.
나를 키워주신 부모님도, 어릴 때 무서웠던 학교 선생님도
모두가 완벽한 인간은 아닙니다.
길을 가다가 넘어질 수도 있고요.
또 밥 먹다가 흘릴 수도 있는 인간입니다.
시대가 가면 갈수록
결벽증과 완벽주의자가 늘어나고 있다고 하죠.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상의 가상 공간에서
많은 일들이 벌어집니다.
기계가 처리하는 완벽하고 깔끔한 세상에서 나오게 되면
완벽하지 않은 인간들은 성에 차지 않는 겁니다.
인터넷 주문하면 편한데
시장까지 걸어가서 사 오시는 그 어머니들을 보면
어떻게 보면 미련해 보이시겠지만
그렇게 보고 있는 우리를 포함한 모든 인간들은
본질적으로 불완전한 동물들입니다.
싫어하든, 좋아하든, 찌지든 볶든, 좋아서 죽겠든
인간은 그런 동물입니다.
이런 것들을 즐기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너무 깨끗하고 완벽한 것만 쫓아가지 말고
불완전한 내 자신부터 용서하고
내 자신이 행복해지면 얼굴에서 자연스러운 웃음도 만들어지고
주변 모두가 그 기운을 받아서 다 같이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과거에 괴로운 일이 있었든
또 지금 현재 그런 일을 겪고 있더라도
그런 일을 저지른 인간도 완벽한 인간은 아닙니다.
정말 인품이 훌륭한 사람이라면
상대에게 상처주는 말이나 행동을 애초에 하지도 않았겠죠.
상대를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도 용서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은
나 자신이 무슨 잘못을 저지른지도 모르고 있다는 말이 되겠죠.
이런 사람은 이 사람도 저 사람도, 학교 선생님도, 직장 상사도, 부모님조차도
용서를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완벽하지 못한 인간에게 완벽함을 요구하는 것과 같습니다.
또 자기 자신을 너무 모르는 사람인 것이죠.
나부터 내 자신을 용서해야 합니다.
상대도 그만 놓아주고 용서를 해주면
몸도 마음도 정신도 다시 건강을 되찾습니다.
용서가 안 되는 사람에게 받은 스트레스 때문에
마음 맞는 동료들과 술도 많이 드시고 하시죠.
술 마시면서 친구들한테 하소연도 하고
또 노래방 가서 실컷 노래도 부르시고 하시죠.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으로 몸이 경직되어 있다가
그 스트레스로 마신 술이 또 몸을 완화 시켜줍니다.
일시적으로 몸과 마음이 위로가 될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상대한테 받은 스트레스를 술로 풀기 시작하면
자동차로 친다면
그 악셀과 브레이크를 동시에 밟는 것과 같습니다.
차에 무리만 가겠죠.
바로 몸 건강에 이상 신호가 옵니다.
한때 어리석은 감정으로 잠시 스트레스를 풀었다면
이제 나 자신을 위해서 용서하시면 됩니다.
이 대한민국은 송사가 참 많은 나라입니다.
이성보다 감성에 충실한 국민성도 있겠지만
또 그만큼 정이 있고 사랑이 넘치는 나라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왜 싫어하는 사람을 용서하지 않으면 안 되는지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30대, 40대, 50대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서
친구는 점점 줄어들고 원수는 점점 늘어나죠.
가족도 못 믿을 세상까지 되었습니다.
나부터 용서를 해야 됩니다.
용서를 빌고 기도를 해보신 분들은
이 얼굴이 녹아내릴 정도로 뜨거운 눈물을 흘리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래서 내가 먼저 용서하면 됩니다.
마음 편안한 밤 되시고
오늘 하루도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끝까지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성불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