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
시 김재진
우리 만나던 밤은 모란이었다.
헤어지던 날은
바람이 섬의 모든 문을 흔들어 대고
자줏빛 심장마다 구멍을 뚫어 놓았다.
섬에서 피는 모란은 바람의 통곡이니
그것은 만날 수 없던 날의 타버린 심지 같다.
호랑이 눈 같은 불길 하나 가슴에 안고
한 생을 모란같이 살던 사람은
모란이 지면 따라서 진다.
바람의 유서 같은 상처를 남긴 채
모란이 질 때면 따라서 져라.
후두둑 지고 나면 섬의 오월은
밤을 지키는 맹수의 눈으로
등불 하나 없어도 환하게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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