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조 스님이 돌아가시기 3년 전이에요.
이제는 법을 물려줄 때가 되었구나.
그래서 오조의 법은 이제 육조한테 물려주니까
육조를 뽑으려고
오조_ 조는 조사거든요.
다섯 번째 조사가 여섯 번째 조사를 뽑으려고
“이제 때가 되었구나” 하고
뽑기 위해서 시험 문제를 낸 거죠.
모든 사람에게 자기가 공부한 바를 게송 지어서 제출을 하라고
이렇게 했는데
다른 사람들은 신수 스님 눈치만 보고
신수 스님이 제일 나이도 많고
여러모로 또 점잖고
여러 가지 능력을 갖추시고
또 오조를 대신해서 이미 이렇게 설법 지도를 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모든 사람의 눈이 신수한테만 가니까
신수는 참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는 거죠.
/수일이 지나도록 게송을 짓지 못하였다./
그러니까 본인이 게송을 바쳤는데
그것이 통과 못 받은 거예요.
/심중이 혼란하고, 심사가 불안하여
마치 꿈속에서 헤매는 것과 같아서
앉으나 서나 편치 않았다.
다시 이틀이 지나 한 동자가 방앗간을 지나면서
신수가 적어 올린 그 게송을 외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 게송은 1번입니다.
身是菩提樹(신수보리수)_ 몸은 깨달음의 나무요.
心如明鏡臺(심여명경대)_ 마음은 밝은 거울대, 경대 있죠? 경대, 경대와 같다.
時時勤拂拭(시시근불식)_ 부지런히 때때로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
勿使惹塵埃(물사야진애)_ 티끌 먼지가 끼지 않게 하자.
그러니까요. 게송을 했는데
이거는 입구까지는 왔으나
아직 문 안으로 들어오지는 못했다.
다시 말하면
현상과 본질에서
현상의 가장 높은 단계까지는, 상대적인 청정은 왔지만
본질이 본래청정으로는 아직 들어오지 못했다 해서
지금 다시 한 번 더 깊이 생각해서
다시 지어오너라 했는데 지금 못 짓고 있는데
근데 이 게송만 가지고도
일반 사람들이 현상에서는 제일 높은 곳까지는 올라오니까
이거는 도움이 된다.
이것만 잘 해도 육도윤회 중에서 천상이 제일 높은 곳이거든요.
그러면 이대로 잘하면 천상으로 올라가요.
그러면 적어도 밑에 있는 악도
세 가지 악도
지옥, 아귀, 축생
요 시만 잘 배우고 실천해도 악도에는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이걸 외우고 다니는 거예요.
외우고 다니는 그 소리가
/한 동자가 방앗간을 지나면서 그 게송을 외우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듣자마자 그 게송은 아직 본성을 보지 못한 것임을 알았다./
이때 나는 육조 혜능이죠.
/그러니까 혜능은
그 게송은 아직 본성을 보지 못한 것임을 알았다./
왜냐?
혜능은 본성을 지금 봤거든요.
그러니까 본 사람은 딱, 아는 거예요.
이건 아직 현상에 머물러 있구나.
아직 본질은 보지 못했구나.
/나는 비록 아직 조사의 가르침을 받지는 못하였으나 /
대의_ 큰 뜻이죠.
큰 뜻은 뭐예요?
본질이죠.
/본질은 짐작하고 있었다./
본질이 무엇인지 큰 뜻은 내가 짐작하고 있었다.
/나는 동자에게 물었다.
“외우는 것이 무슨 괴송입니까?” 하니까 그 동자가
“이 오랑캐가 아직도 모르고 있구나.”/
아직 옷도 오랑캐 옷을 입고
지금 방아 찧고 있는 상황이니까
이 오랑캐가 아직도 모르고 있구나.
대사께서 말하기를
/세상 사람에게 생사의 일이 크다./
세상 사람에게 나고 죽는 일이 크다.
맞아요?
그래서 3대사가 있어요.
인간한테는 세 가지 대사.
첫 번째는 생대사, 인간 3대사예요.
첫 번째 생대사, 태어났다고 하는 큰일,
두 번째는 사대사, 죽는다고 하는 큰일
세 번째는 일대사, 깨닫는다고 하는 이 대사.
이 세 가지가 생대사, 사대사, 일대사
일대사인연,
법화경에서 이런 말을 많이 해요.
인간한테 가장 중요한 일대사 인연은 [깨달음]이에요.
[견성성불]이에요.
견성하고 그 부처가 완성되는 것.
/세상 사람에게 생사의 일이 크다.
의법을 전하고자 하니/
의는 옷입니다.
/옷이라고 하는 이 법을/
이 말은
옷으로 상징되는 법
이거는 이 옷은 달마 스님의 옷이에요.
선종의 창시자인 보리달마대사의 옷이
2조 혜가, 3조 승찬, 4조 도신, 5조 홍인까지 물려내려 온 거예요.
그럼 육조의 이 달마의 법을 물려줄 표시가
달마스님의 옷이다.
/의법,
옷이라고 하는 이 진리를 전하고자 하니
문인들은 게송을 지어오도록 하라.
만약 대의를 깨쳤으면
곧 의법을 전하여 제육조로 삼으리라 하셨다./
그러니까 이 말조차도 못 들은 거죠.
혜능한테는 이 기회가 아예 전달되지 않았던 거죠.
/신수 상좌가 남쪽 복도 벽 위에
이 무상계/
무상계라고 하는 말은 모양이 없는 것이
무상이 모양이 없다는 것은 본질이죠.
들어옵니까?
본질을 노래할 한 게
그게 무상게인데
근데 신수의 무상게는 본질을 노래하려고 했는데
현상의 높은 경지만 언급하고 말았죠.
/를 써놓았다.
대사께서는 사람들에게
“이 게송을 외워라.
그러면 악도에 떨어지지 않으리라”고 하였다./
여러분 우리 인간이
일생을 살면서 경험하는 6가지 의식의 상태가
이걸 육도윤회라고 부르는 거예요.
윤회란 말은
이 의식 상태에서 저 의식 상태로 옮겨가고, 또 옮겨가고
이게 윤회라는 거예요.
꼭 이 몸이 죽어서 윤회는 그것보다도
지금 우리의 의식상태가 6가지로 구분을 해서
지옥 같은 상태,
아귀 같은 상태, 아귀는 막 욕심에 막 이렇게 하는
그리고 축생, 아주 짐승 같은 어두운 본능에 지배되는 그런 상태
이게 삼악도예요.
그리고 삼선도는 아파트로 치면 4층
제일 아래층이 지옥, 2층이 아귀, 3층이 축생, 4층이 아수라
아수라는 싸움을 좋아하는
그리고 그 위가 인간이에요.
인간은 양면의 존재를 가진 존재
양면, 선과 악, 이런 존재
좋고 나쁨, 이런 걸 같이 가지고 있는.
그리고 그 위가 최고위층이
6층 아파트의 마지막 층이 천상이에요, 천상.
천상을 한글로 번역하면 하늘나라예요.
본질을 모르는 사람 입장에서는
하늘나라 가는 게 최고의 목표잖아요.
이해되세요?
천상이라는 말이 천국, 천당으로도 번역이 돼요.
그러니까 이게 아리안 사상에서 나누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상이라고 하는 그곳으로 가면
훨씬 더 모든 업이 가볍고
그리고 하여튼 천상낙이라고 해서
현상계에서 누릴 수 있는 가장 가벼운 락, 그런 즐거움이죠.
이제 그게 있는 곳.
인간이 그럴 때가 있죠.
이 육도윤회를 인간이 왔다 갔다 한다 이거예요.
이해되세요?
그래서 잠시 천상을 가도 또 내려오죠?
또 지옥 간다고 해서 끝이 아니고 또 올라오죠?
오르락내리락하는 걸
인간이 살아생전에도 여기를 왔다 갔다 한다.
인생이라는 것은.
그 이야기를 지금 하고 있어서
이 게송을 외우면 악도에 떨어지지 않는다.
어떤 내용인가?
마음은 깨달음의 나무고
몸은 밝은 경대라서
부지런히 이 거울을, 마음이라고 하는 거울을
부지런히 털고 닦으면
먼지를 끼지 않게 하면
우리가 깨끗한 상태에서 살아가는
현상에서는 상대세계지만 제일 깨끗한 상태로 살아간다.
그렇게 지금 한 거예요.
/내가 말하였다.
그런 말을 듣고 혜능이 말하기를
나도 그 게송을 외워
내생의 인연을 맺어
함께 불국토에 나고자 합니다.
스님. 내가 방아를 찧은 지가 8개월이 넘었는데
아직 조사당 전에 가보지 못했습니다./
요 게송이 붙어 있는 데가
조서당 앞에 복도였죠.
/조서당에 아직까지 제가 못 가봤습니다.
스님은 나를 그 게송 있는 곳으로 데려다 주세요.
나도 예배를 드리고 싶습니다.
동자가 나를 게송 앞으로 인도하여 예배하게 해주자.
나는 다시 정했다.
나는 글을 알지 못하니 스님이 읽어주십시오./
/그때 강주의 벼슬하는 분이 와 있었는데
광주 땅에서 별가라고 하는 공직 생활을 하던 분이 와 계셨는데
성은 장씨요, 이름은 일룡이라 하였다.
그가 큰 소리로 읽어주는 것을 듣고 내가 청하였다./
그러니까 이 말을 듣고
그 강주 별가 장일룡 거사가 이렇게 읽어준 거예요.
/그러니까 그 말을 듣고 혜능이 청하였다.
“저도 게송을 짓고 싶습니다.
별가께서는 써주십시오.”/
그러니까 깜짝 놀란 거예요.
아무도 신수 스님의 이 게송에 토를 달지 않는데
처음으로 그것도 가장 오랑캐가
“나도 하나 게송을 짓겠습니다” 하니까
“이 오랑캐가 게송을 짓겠다니 희한한 일이로구나.”
나는 별가에게 말했다.
무상_ 위가 없는/
여러분 현상에서는
끝없이 위가 올라가는데
본질에서는 위도 없고 아래도 없다.
이해되나요?
그러니까 위도 없고 아래도 없는 것을 무상
그리고 보리는 깨달음이죠.
/위없는 깨달음을 배우는 사람은
초학자라도 없이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가장 낮은 이에게도 가장 높은 지혜가 있고
가장 높은 이라도 지혜가 낮을 수 있습니다./
조주스님이 그 말을 했네요.
조주가 일찌감치 깨닫고
조주 스님이 10대 후반에 깨달았어요.
그러고 자기 스승인 남전 스님을 돌아가실 때까지 40년을 섬겼어요.
40년을 시봉했어요.
그러니까 한 사람이 깨닫고
자기를 깨닫게 해준 이 눈 밝은 명안종사를
40년간 시봉하면서 얼마나 많이 배웠겠어요.
그러니까 이런 식으로 하는 공부를
조사선이라고 불러요.
조사 스님한테 직접 배우는 것.
그래서 조주 같은 경우는 이 말씀 때문에
10대 후반에 20살 전에 깨닫고
40년을 자기 스승을 시봉하고
스승 돌아가시고 나서 처음으로 행각에 나섰어요.
행각은 그 절에서 나와서 20년을 다녔어요.
그때 조주가 온갖 당대의 다른 깨달은 사람들을
두루두루 만나는 이야기가 나오거든요.
그래서 임제를 만나서는
임제와 조주가 동시대예요.
그러니까 임제를 만나서는 이런 식으로 서로 간에 문답을 나누었다.
이게 법거량이라고 해요.
그러니까 그런 기록이 많이 남아 있어요.
조주록에는 그런 게 많이 남아 있거든요.
근데 그 행각에 나서면서 조주가 어떻게 말했느냐 하면
“3살짜리에도 배울 게 있으면 나는 배우고
20살에 깨닫고 40년간 단련 받아서 익을대로 익은 천하의 조주가
이제 운수는
운은 구름이고 수는 물이잖아요.
구름처럼 물처럼 이렇게 온 지역을 다니면서 사람을 만나는데
3살짜리라도 배울 게 있으면 배우고
80 노인이라도 배울 게 없으면 내가 한 수 가르쳐주고
그러겠다 하고 나서거든요.
그러니까 여기서도
/가장 낮은 이에게도 가장 높은 지혜가 있고
가장 높은 이라도 지혜가 낮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역설적으로 그 한 인간의
어떤 직함, 그리고 명예하고, 그 사람이 본 실력하고는 비례하지 않아요.
그래서 항상 우리가 이런 면에서는 겸허하게
항상 모든 게 공부의 기회예요.
/사람을 업신여기면
곧 한량 없고 가 없는 죄가 됩니다.
그러니까 그 별가가 말하였다.
그대는 다만 게송이나 외우개나
내가 그들을 위해 써주리라/
혜능이 이때 글자를 몰랐어요, 이 당시에.
자기는 별가는 높은 사람이에요. 지식인이에요.
근데 지금 아무것도 모르는 오랑캐 출신의 젊은 사람이
나도 한번 해보겠다 할 때
만약에 가능성이 있는 거잖아요.
그렇게 만약에 육조가 되어서 법을 이어받으면
“나를 구제해 주십시오”라고.
이게 좋은 태도죠.
/나는 게송을 읊었다.
보리는 본래 나무가 없고
밝은 거울 또한 대가 없다.
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어디에 티끌 먼지가 끼랴.
菩提本無樹보리본무수
보리는 보디라고 하는 인도 말을
중국어 발음을 가지고 한자로 쓴 거예요.
그래서 보디가 발음이 보리로 이렇게 발음을 한 거예요.
인도 말로 보디, 붓다
보디는 깨달음
붓다는 깨달은 사람
그런 뜻이에요.
그러니까 보리_ 깨달음은
본래 무수_ 나무가 아니고 나무가 없고
명경_ 밝은 거울 역시
비대_ 대가 아니다, 대가 없다.
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어디에 티끌 먼지가 끼랴.
티끌 먼지는 현상이고
본질은 차원이 다른, 현상의 것이 물들지 못하는 그 본질
그러니까 본질을 지금 드러낸 거예요.
/본래 무일물, 한 물건도 없다./
이 말이 참
현상에서 모든 문제를 걸고 엎치락뒤치락 하는 입장에서는
한 물건도 없다.
이 말이 청천병력 같은 격외의 소식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본질의 입장에서 이 세상을 살아간다.
다시 말하면 꿈을 깬 입장에서
꿈속의 세계를 살아간다.
자유다 이거예요.
인연 따라 다 하긴 하는데
이게 꿈인 줄 알기 때문에.
꿈을 깬 입장에서
몸을 가지고 있는 한은
꿈이 꾸어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꿈을 깬 입장에서 꿈속을 살아가면
이것이 꿈이라는 걸 알고 살면
참 가볍겠죠. 그죠?
이제 그런 입장이에요.
지금 신수하고 혜능이 베틀을 했다 이거예요.
그러면 사람들이 딱 보면 벌써 판정이
못 깨달아도 좋은 거는 척 보면 알죠.
인간한테는 본질이 있어서 본질을 보면
자기도 모르게 통해
그러니까 본질과 본질이 통하는 게 이심전심이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즐거움이에요.
석가가 꽃을 들었을 때 가섭이 미소 지었다.
이심전심
본질에서 본질로 소통하기.
그러니까 인간한테 진정한 소통은
본질과 본질의 소통이에요.
인간에게 있어서 진정한 소통은
본질과 본질이 서로 소통하기
그러니까 만약에 가족 중에서도
본질과 본질로 소통할 수 있는 게 있다면
또 친구 사이에서도
현상과 현상이 아니고
“너네 집은 얼마짜리냐?” 이게 아니고
본질에서 본질로 서로 소통할 수 있으면
이것보다 더 나은 즐거움은 없어요.
왜 그래요?
본질에는 한 물건도 없어서.
최고의 즐거움은
즐겁다가 아니에요.
즐겁다는 괴롭다의 반대말일 뿐이에요.
즐겁다 괴롭다가 함께 없는
서로 중화되어서
플러스 마이너스가 제로 되어서
좋다.나쁘다가 없는, 옳다 그르다가 없는
중립 상태
이게 인간의 원래 태어났을 때의 상태예요.
그 상태가 가장 인간이
그러니까 부처님도 깨닫기 전에, 어렸을 때, 아무것도 몰랐을 때
그 어릴 때의 즐거움 있죠?
어릴 때의 즐거움은
무슨 막 돈이 많아서 그런 게 아니고, 쾌락이 아니고
그냥 즐거운 것
아무 조건 없고 이유 없이 그냥 즐거운 것
이해되세요?
어릴 때 서로 간에 게임할 때는 놀이할 때는
눈에 불을 켜고 땅 그어놓고 이러다가
“얘야 밥 먹자” 하면 탁 던지고
그 자리에서 딱 돌아서서 쫓아가는
그러니까 참 정말 마음이 그렇게 비어 있는
마음이 비어 있는 상태에서
무심과 무심이 만나서
그 사이에 흐르는 평상심의 관계
이게 인간한테 소중한 거예요.
인간으로 태어나서
그 맛을 모르는 건
참 원통할 것 같아.
그래서 그걸 극락이라고
그냥 락이 아니고
락이 있고 없고를 넘어서서
그거를 극락이라고 이렇게 부르는 거예요.
조금 뒤에 보겠지만 반쪽짜리 깨달음이에요.
왜 그러냐면 여러분 왜 반쪽자리냐면
신수의 게송에 베틀로 지금 나온 거잖아요.
신수는 부지런히 털고 닦자
현상을 말했을 때
지금 혜능은 본질을 본래 한 물건도 없다 하고 그거를 부정하는
이야기를 지금 한 거잖아요.
이 말은 뭐냐 하면
본래무일물
신수가 유에서 깨끗하게 하려면
상대에서 깨끗하게 하려고 했다면
지금 혜능은 무를 제시한 거거든요.
근데 이 무는
유의 반대로서의 무예요.
이해되시나요?
상대의 반대로서의 절대예요.
그럼 이거는 진짜 절대가 아니야 아직은
중요해요.
여러분 따라오세요.
상대를 부정하기 위해서 제시하는 절대는
아직도 상대하고는 밖에 있잖아요. 떨어져 있잖아요.
근데 절대가 절대가 되려면
떨어져 있으면 안 되잖아요.
그러니까 상대의 반대로서의 절대는
아직까지 완전한 절대가 아니에요.
오케이?
그럼 진짜 절대는 뭐냐?
이 절대가 자기가 없어져서
상대가 절대가 되어야, 하나가 되어야
진짜 절대예요.
그러니까 색의 반대말로서의 공은
아직 공이 아니야.
진정한 공이 아니야.
진정한 공은
색즉시공 공즉시색이 되어야 진짜 공이에요.
그러니까 이게 또 한 가지 차원이 또 달라요.
그런 점이 있어서
아직까지 이 상대의 반대로서의 절대를 제시했거든
보살이라는 거지.
아직 혜안이에요.
더 가야 돼요.
상대적 청정
현상에 대한 반대로서의 본질을 말했지
현상과 본질이 하나가 된 진짜 본질은 아직 아니다.
그 말도 이해되죠?
/그래 쌀을 다 찧었느냐?/
이것까지만 말고 좀 쉴게요.
쌀을 다 찧었느냐가 중요한 말이에요.
쌀을 다 찧었느냐 하니까 대답이
쌀을 다 찧었지만 아직은 키질은 못하고 있습니다.
키질은 뭐예요?
쌀을 처음에는 짖고 그럼 쌀겨가 나오잖아요.
겨하고 쌀알이 섞여 있잖아요.
그걸 밥을 못 하잖아요.
그러면 키에다가 해서
바람 부는 쪽으로 이걸 해서 날려서
알만 받잖아요.
벼를 찧어서 키질을 해서 쌀을 내는 과정을
우리 마음공부를 거울로 삼은 거예요.
쌀알이 본질
그런데 쌀알을 찧으면
겨가 아직까지 많이 남아 같이 있다.
현상에 찌꺼기들이 많이 아직은 붙어 있다.
그래서 쌀을 지금 찧는다, 이 말은 혜안.
본질을 한번 봤어.
본질을 본 그것을 ‘쌀을 찧었다’고 하고
근데 “키질을 아직 못 했다”이 말은
아직 법안은 못 떴다 이거예요.
그럼 쌀을 찧고, 쌀겨를 키질하는 방법이 무엇인가?
보림법이라고 소위 말하는 거예요.
마음자리를 한번 알아채고
한 번 확인을 해도
“아, 이거구나” 해도
여전히 현장에서 끌려다니는 습관은 남아 있다.
그러면 그 습관을 잡아들어 가는 게 선정력을 기르는 거다.
부처님은 선정력을 마스터 한 다음에
딱 하니까 쌀을 찧고 키질을 바로 그냥 통과를 했는데
우리들은 지금
분별을 잘하는 육안에서 혜안이 떠져도
천안을 지금 그냥 통과해서는
법안이 더디다.
그러니까 세상에 공짜는 없기 때문에
시간 날 때마다 앉아서...
실제로 앉으면
낮에 일을 많이 하고 앉으면 머리가 복잡해
이해돼요?
바로 푹 못 들어가고
입정을 바로 못하고 여러 가지 그 잔상이 남아 있잖아요.
특히 직장에서 누구랑 싸웠다 이러면
그게 막 우리 마음을 굉장히 어지럽게 만들잖아요.
그러니까 그런 데 대한 정보 처리를 하는 시간을
계속 우리가 정성들여서 해야 된다, 이거예요.
그래서 실참이라고 하는 세계를
소홀히 하면 안 된다.
항상 균형 잡혀서
지행합일, 항상 이 비율을 같이 가야 돼요.
그리고 모르고 하면 또 어리석어져요.
왜냐하면 모르고 하면
자기 나름대로 엉뚱한 거를 “이거다”라고 또 잡아서 잘못 가게 돼.
이해되세요?
공부를 통해서 방향을 바로잡고
실제로는 가야 되고
그러니까 이게 딱 균형 맞춰서 가야 한다.
그러니까 참선을 우리가 제대로 합시다
그런 뜻이에요.
그래서 쌀은 다 찧었지만, 혜안은 떴지만
키질은 아직 법안은 제가 뜨지 못했습니다,
이 말이에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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