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0년 전에 인도 영산회상에서
부처님께서 꽃을 이렇게 들은 거나
2500년 후 한국에 서울에서
제가 지금 죽비를 이렇게 들은 거나
차이가 있을까요? 없을까요? 하고 묻잖아요.
부처님을 통해서 꽃을 들어올린 그것
부처님의 그것이죠.
의식이란 말을 쓰기 싫네, 이제는
의식도 부숴버려야 되니까.
그거나
제가 지금 죽비를 이렇게 들어 올린 거나
저의 의식
시공을 초월해서 같다, 이거예요.
나도 마찬가지예요.
10년 전에 나를 통해서 보던 거나
20년 전에 보던 거나
지금 보는 거나
10년 후에 볼 거나
변화가 없다, 이거예요.
이것이 분명하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이것이 불생불멸의 본질이다.
/이분법과 불이법의 차이다, 이 말은
상대와 절대의 차이다.
생사와 불사의 차이다./
이런 말을 우리가 알아들어야 된다
근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부처님이 이걸 깨닫고
역대 조사가 깨달아서
우리한테 물려주기 전에는
우리도 몰랐잖아요.
그렇지 않나요?
그리고 지금 많은 인류가
아직도 모르고 살잖아요.
우리는 운이 좋네. 운이 좋네요.
우리는 지금 이제 알았어.
이거 알았어, 이거.
그러면 이것이 나예요.
그러니까 언제나 이것이 보고 있다는 느낌이
우리가 어텐션을
어텐션은 주의집중이죠.
주의집중을 하면 할수록 분명해질까요? 약해질까요?
분명해지겠죠.
그러니까 이것을 놓치게 하는 가장 원흉은
[생각]이에요.
근데 생각이 쉴 새 없이 우리를
인터셉트해 들어오는 거예요.
그러면 생각이 와도 내가 정신 차려서
이거를 자각하는 힘을 길러둬야지
안 그러면 생각 따라서 경계로 빠지게 되고
경계에 빠지면 마음을 뺏겨요.
견성하면
이렇게 보잖아요.
이렇게 보면서
보고 있는 이 사실을
자각하는 힘이 생겨요.
이렇게 보면서
보는 이 사실을 스스로 자각하는 힘이 생겨요.
그러니까 이 힘을 길러가야 돼.
계속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이
한 번 확인한 다음에는
이 힘을 길러간다.
이 힘이 길러져야지
경계 현상에 내 마음을 뺏기는 것을
내가 여여부동 불취어상
경계를 내가 취하지 않게 되어서
여여부동
이게 해탈이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이것은 말은 쉬운데
이해는 돼요.
근데 실천은 어렵다.
따라서 우리가 일주일에 한 번 모여서 공부하고 나면
나머지는 여러분 뭐 하세요?
배운 것을 생활에서 실천해야 돼.
근데 공부할 거리가 있다? 없다?
많다.
조금도 나를 가만두지 않고
온 가족이, 또 온 직장 동료가, 또 친구가
나를 시험한다.
이해됐나요?
나를 시험한다.
처음에는 100전 100패다.
그러나 하다 보면
이것도 이골이 난다는 말이 있어요.
그래서 기미를 알게 돼요. 기미.
기미란 말 아세요?
낌새
벌써 기미가 탁 와.
그래서 기미를 알기까지는
경계에 자꾸 시달리는 건 이해되세요.
자꾸 끌려가는 거.
그래서 우리가 너무 쉽게 끌려가니까
끌려가지 않기 위해서
뭔가 스위치가 필요해.
불을 켜는.
끌려가지 않기 위한 스위치가 필요해.
그 스위치를 할 수 없이
옛날에는 스위치가 없었어요.
스위치가 없었다는 것은 조사선이라고 해요.
따로 스위치가 없었다.
조사선이다.
근데 스위치를 만들었다
필요하니까.
조사선은 상근기의
또 조사와 함께 사는 사람들은
따로 스위치가 없었어도 그때는 됐어요.
그런데 일반 대중이 참선을 하면서부터는
조사들과 함께 살지 못하잖아요.
그러니까 스위치가 필요했어.
그 스위치를 화두라고 불러요.
그러면 조사선을 대중화시킨 게 화두선이에요.
그러니까 화두는
지금 자기의식을
‘이것’이라고 하는 스위치로
어두워질 만하면 “이것” 하면서 불을 켜기
공부하는 사람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내가 지금 자각이 돌아왔는가? 안 왔는가?”
자꾸 챙기게 돼요, 저절로.
그리고 아침에 한 번 챙기면
힘이 쭉 가.
따로 챙기지 않아도 쭉 가요.
그래서 경제 만나면 한 번 또 챙기고.
그러니까 이런 식으로 자꾸자꾸 스위치를 활용해서
내가 깨어 있기.
그걸 조사선 시대는 어른하고 함께 사니까
이런 스위치가 없어도...
여러분, 그런 말 있잖아요.
일본에서 어떤 청년이 참선하러 오니까
일본에서 있었던 이야기예요.
그 선사가 보니까
청년이 참선하러 오니까
“앞으로 내가 하는 대로 하겠느냐?”하고 다짐을 받았어요.
“예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참선은 깨어 있는 것이다.”
이해돼요?
참선은 깨어 있는 것이다.
“내가 너 때문에 내가 몽둥이를 들겠다.
그래서 내 몽둥이 피하면 하산해라” 이렇게 된 거예요.
그래서 딴 거 안 가르치고
몽둥이 들고 있다가
조금만 방심하다 싶으면 탁 때리는 거야.
되게 아프겠죠?
아프게 때려야 돼.
그러니까 처음에는 막 하루에도 막 수십 대를 얻어터지는 거예요.
이해되세요?
근데 갈수록 어떻게 될까요?
깨어 있겠죠.
깨어서 살피겠죠.
그러다가 어느 날 아궁이에서 불을 때고 있는데
몰래몰래 있다가 탁 때리니까
얘가 들고 있던 불지갱이로 탁 막아.
“어라?”
그다음 날에는 얘가 스승을 탁 때리는 거예요.
스승이 안 맞지 당연히.
여러분 방금 이 에피소드는 뭐예요?
진짜로 무명에는 경계에 딸려가서 얻어터진다.
무명은 깨어 있지 못하는 거 아니에요.
근데 명이면
무주, 마음이 어딘가에 묶여 있지 않으면
모든 것을 살피고 있다는 거예요.
이해돼요?
마음을 어느 하나에 묶이면
얻어맞는 거예요.
실제로 검술의 내용이 이렇대요.
딱 검객끼리 붙으면
그 사람 마음이 어딘가에 딱 묶이는 순간
틈이 딱 보인대요.
그걸 귀신같이 알아챈 데요, 상대방은
이론으로 하는 거 하고
실제 경계에서 내 마음이 뺏기느냐 안 뺏기느냐를 실제로 하는 거 하고
그 차이가 있어요.
그래서 자꾸자꾸 하다 보면
여유로워지고
전광석화처럼 기미가 빨라지고
참선하는 것이 이렇게 그냥 허풍이 아니고
항상 여유로우면서도
눈은 정확하게 깨어서 전체를 살피는 눈이에요.
그래서 참선한 사람은
큰일을 하게 돼.
왜 그럴까요?
여러분, 한 회사의 대리하고, 사장하고
그 시야가 어떨까요?
그 회사를 보는 시야가?
한 회사의 대리급 직원하고, 사장하고
그 회사를 보는 눈이 다르겠죠. 이해되세요?
전체를 본다 이거예요.
의식은 수축하고 느는 것이 자유자재예요.
정말 수출할 때는 현미경처럼 아주 예리하게 딱 보고
그리고 탁 놓아버리면
전체를 스왁~ 포섭하고
이거를 신축을 자유자재로 한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항상 전체를 살피면서
필요하면 딱 집중해서 창조성을 일으키고.
그러니까 이런 것이
생각으로부터 내가 자유로우냐에 따라서 비례해요
이해되세요?
생각으로부터 자유롭느냐?
그러니까 평소에는 생각을 잘 봐야지.
평소 수행은 자기 생각을 잘 보는 거예요.
그래서 생각도 잘 보게 되면
생각의 기미까지도 보는 거예요.
구름이 오는구나 싶다니까.
구름이 스물스물스물 오는구나 싶다고요.
그러니까 평소에 그런 구름이 일어나지 않는 쪽으로
항상 자기 일을 처신해 나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게 계율이라는 게 저절로 지켜져요.
당연히.
그리고 항상 정력이라고 하는
딱 집에서 자기 힘을
그러니까 이렇게 앉는 힘
자기 존재의 고향, 이 의식의 1번지
+ - 제로 상태
의식이.
그 상태에 항상 딱 정력이 있고
그리고 일이 닥치면
번개처럼 지혜가 착 나와서 쓰고.
그러니까 이런 일들을 자유자재로 계정혜를
계정혜 삼학이 깨어 있으면 저절로 길러져요.
“내가 계정혜를 해야겠다”가 아니고
의식이 깨어 있으면
저절로 이런 공부는 자동적으로 일어난다.
화두 하나 챙기면
이 모든 공부를 일일이 어떻게 다 해요?
화두 하나로 모든 걸 집약해서
이 순간 내가 명이냐? 무명이냐?
이거는 자기가 검증되잖아요.
무명이다 싶으면 화두 드는 거지.
그리고 화두 들고 있으면
명 상태가 쭉 이어지고.
그러니까 이것을 공부로 딱 잣대로 삼아서 한다.
여러분 상근기는 안 이렇게 해도 돼요.
그리고 옛날 조사선 시대에는
어른 밑에서 계속 정진했어요.
그리고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깨달은 조사하고 같이 살면
그 조사 눈이 호랑이 눈인데
여차하면 눈에서 눈총이 착~
눈총이란 말 참 좋네.
눈에서 총이 탁 이렇게 날아오는데
거기서 허투게 못하잖아요.
깨어 있게 된다 이거예요.
그래서 어느 정도 이제 익으면 하산하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런 시대에는 화두라는 게 따로 없었어요.
그렇지만 조사선 시대가 지나고
대중들이 이렇게 수행을 하니까
일일이 같이 못 사니까
이렇게 이 화두라는 걸 가지고
항상 자기를 깨어 있게 챙기는 그런 게 생겼다.
너무 당연한 거 아닌가요?
지금 우리는 그런 겁니다.
/이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핵심은 견성이다./
그래서 오직 견성 뿐이에요.
잔말 말고, 견성
그리고 견성의 확인
지금 제가 말하는 화두도
견성의 확인이에요. 이해돼요?
그러니까 깨놓고 말하면
견성이 해야지 화두가 시작돼.
그렇지 않아요?
이걸 알아야 챙기지.
모르는 걸 어떻게 챙겨요?
그러니까 제가 지금 계속 강조드리는 것은
견성을 하기 위해서 애먼 짓 할 필요 없다.
견성은
먼저 깨달은 사람하고 1대 1로 부닥치는 것이 최고다.
그냥 제가 첫 시간에 그냥
견성을 그냥 아주 세게 이야기를 해버린 거예요.
여러분 하라고.
자기 의식을 알아챈다.
그러면서 그다음부터는 챙긴다. 이거예요, 의식을.
스스로 의식을 챙긴다.
그래서 핵심은 견성이다.
그러니까 화두가 견성의 확인 작업이에요.
이해되세요?
예 그게 화두예요.
그전에는 화두 아니야, 솔직히 말하면.
그전에는 화두 아니야.
견성을 해야지 화두야.
그러니까 성품이 화두예요.
화두는 이것이잖아요.
무자, 삼서근
다 성품을 말하는 거예요.
‘무’ 하는 건 성품을 말하는 거예요.
‘삼서근’ 하는 건 성품을 말하는 거야.
“불법적적대의佛法的的大意가 뭡니까?
뜰앞의 잣나무다.”
뜰 앞의 잣나무가 성품을 말하는 거라고 그냥
모든 화두는 100%로 그냥 자기 본질을 말하는 거라고요.
그러니까 본질을 알아야지 화두가 시작이 돼요.
그러니까 그렇게 챙기는 거예요.
황벽 스님이 견성이란 무엇인가?
견성見性이란
견즉, 보는 놈이 성품이다.
견성이라는 말이 무슨 말인가?
보는 놈이 성품이라는 것이 견성이라는 뜻이다.
지금 여러분 보세요.
근데 보는데
보고 있는 자기하고
초점이 의식이
의식에 초점 맞추기.
다시
의식이 의식 자체에 초점 맞추기.
의식의 현상을 보지 않고
현상을 보면서도 의식이
보고 있는 자기 자신을 알아차리기.
의식이 의식에 초점 맞추기.
이게 견성의 확인 작업.
한 번 했다고 이게 안 돼요.
한 번 견성했다고
“이게 나의 의식이구나” 하는 걸 한 번 알아차렸다고
그 초점이 맞지는 않아.
한 번 확인해도
여전히 습관적으로 경계에 쑥 딸려 나가버린다, 이거예요.
자꾸 불러들여서
의식이 의식을 의식하고 있기
그러니까 이것은 해야 되는 거예요.
이게 화두예요.
화두의 정의
의식이 의식을 의식하는 것
들어옵니까?
화두란 무엇인가?
의식이 의식을 의식하는 것
이게 화두다 이거예요.
화두 자체가 견성이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그거를 자꾸 반복해서 해야 한다.
불교는
본질인 의식 자체가
본래 청정하다는 걸 깨달아버리는 것.
그게 불교고.
외도는
의식을 모르니까
현상계에서 내 생멸심이 청정하게 만들려고 하는 게 외도예요.
지금 차이점이 있어요.
현상계의 생멸심을 가지고
깨끗하게 만들려고 하는 것은 외도
생멸심에 관계없이
생멸심에 물들지 않는 본질 자체는
본래 청정하다는 걸 깨달아버리는 것.
그래서 나는 누구냐?
생멸심이 내가 아니고
불생불멸심인 본질 자체가 나라는 걸 깨달아버리는 게 불교
차이점 이해되세요?
그러니까 본래청정을 깨닫는 거예요.
이거 굉장히 큰 차이예요.
유위법으로 청정하게 하려고 하는 것은 외도
무위법이 본래 청정하다는 걸 깨달아버리는 것이 불교
차이점 납득됩니까?
그러니까 견성이 중요하다 이거예요.
견성이 그래서 중요하다.
내가 애써서
상대성의 원숭이 마음을
상대성에 물들어 있는 원숭이 마음을 가지고
깨끗하게 하려고 하는 것은
도로아미타불이다.
아무리 해봐라.
도로아미타불.
이거 부처님이 해보신 거예요.
부처님이 무슨 비상비비상천까지 선정을 다 닦아봤지만
깨고 나니까 도로아미타불더라.
이 말은 뭐예요?
입정하면 고요하지만
출정하면 다시 시끄럽더라.
해결이 안 나더라.
그래서 그런 헛수고를 “아차”하고, 다 내려놓으니까
샛별을 딱 봤는데
샛별를 보는 것이잖아요.
부처님께서 새벽에 견명성했다 그러잖아요.
밝은 샛별을 보았다.
샛별 본 게 뭐예요?
그게 하나 우주를 다 삼키고 있더라, 이거죠.
그걸 깨달은 거다 이거예요.
이렇게 본질이 본래 청정하다는 걸 깨닫는 거지.
현상에서 깨끗하게 만들려고 하는 모든 노력은
실패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이걸 부처님이 우리한테 알려준 거예요.
그러면 부처님이 실패하신
현상에서 깨끗하게 하려면
우리가 또 6년간 해야 돼요? 할 필요 없어요?
부처님은 6년 동안에는 못 깨달았는데
“그것이 잘못했구나” 하는 걸 알아차리시고 모든 걸 놓았어.
일주일 안에 깨달았다.
모든 깨달음은 일주일 안에 일어나는 거예요.
근데 조건이
열심히 해보고 안 된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포기할 때
바닥을 칠 때 소위 말해서
자기가 뭔가를 하려고 했던 이 유위법의 바닥을 쳐버릴 때
유위법을 놓아버리면
자동적으로 지금 작동하고 있는
자기의 본질을 발견하게 된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이게 하나의 원리예요.
불교는 이 꿈에서 아예 깨어나는 거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꿈속에서 천상이라고 하는 좋은 꿈을 꾸는 게 아니고
육도윤회 중에서 천상에 가는 게 아니고
이 육도윤회 자체로부터 해탈을 하는 거다 이거예요.
육도윤회는
현상의 몸을 나라고 하면
이 몸은 육도윤회하게 돼 있어요.
근데 나는 우리는 누구예요?
몸이에요? 지금 깨어있는 이거예요?
깨어 있는 이거예요.
그런데 돌아서면 까먹어버리네.
왜냐하면 생각이 우리는 습관적으로
몸을 나라고 한 것이 오래 됐어요.
그런 분리감이라는 게 있어.
여러분, 의식은 분리가 있어요? 없어요?
의식한테는.
의식이 꿰맨 자국이 있어요? 의식한테?
의식은 무봉이라고 무봉.
꿰맨 자국이 없다.
무봉탑 이런 말 쓰잖아요.
천인은 무봉이다.
꿰맨 데가 없다.
천_ 하늘의 옷은
이걸 말하거든
의식을 말하거든.
근데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몸을 이렇게 한계 지어서
몸속에 갇혔다는 느낌이 있어요.
몸을 나라고 하는 분리감이 있어요.
없어요?
있어요.
그러니까 그만큼 완강하다 이거야.
그동안의 습관이.
따라서 하루아침에 인두겁을 벗어버릴 수가 없다.
하루아침에 안 된다.
비록 내가 의식이라는 걸 알아도
여전히 완강하게
이걸 나라고 하는 그런 것이 있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이게 계속계속
이쪽으로 신경을 써줘야 돼요.
관심이란 말 압니까? 관심
그러니까 자기의식에 관심을 가져야 돼요.
그게 약하니까 화두가 생긴 거야.
그래서 “이 뭐꼬?”를 한다는 거예요.
이것이 의식이잖아요.
그러니까 의식에 계속 관심을 하기 위한 스위치로
이 뭐꼬라고 하는 화두가 생겼다.
그러면 하면 되잖아요.
그러니까 여러분 좋은 거는 뭐냐 하면
불교에는 수행법이 많거든요.
어마어마해요.
근데 다 됐고
화두 하나만.
초지일관 화두 하나만.
계속 이거 챙기는 것.
견성을 계속 확인하는 것.
이거 하나가 모든 공부의 가장 핵심이다.
그러니까 화두 하나를 제대로 들자.
“화두 놓치면 죽은 목숨”
이 말도 이해되세요?
“화두 놓치면 좀비”
불교적으로 말하면
“화두 놓치면 영가”
산영가, 멀쩡한 영가
“화두 챙기면 부처”
제가 말해놓고
처음 말하는 것 같다.
“화두 챙기면 부처”
“화두 놓치면 영가”
아주 뭐 이거 아주 간단명료해.
그냥 화두는 뭐냐?
의식이 의식을 의식하는 것.
이거 하나를
의식은 알아차리는 건 쉬워, 어렵지 않아.
지금 이거예요.
보는 이거 그냥.
이거는 어렵지 않지만
의식이 의식을 의식하는 것은 어려워요.
왜냐하면 자꾸 의식이 가서 붙어버리니까, 습관적으로.
집 나가서...
영화 보세요.
영화 보면
영화 속의 내용이
시각하고 청각으로만 돼 있습니다. 영화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오감이 아니고
이감만 있어요.
하여튼 제일 좋은 예는
007시리즈
시작하자마자 바바바바박
5분 안에 벌써 그냥 5분이 뭐야?
007시리즈는 유독 그래요.
시작하자마자 악당하고 막 싸우는
정신없이 만들어서
우리를 영화 속에 쏙 빠지게 만들어버려.
1분 만에 빠져버려요.
이해되나요?
지금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것은
이감이 아니고
오감+생각, 감정까지 합친 거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에다가
생각 감정까지 포함된 영화가 지금 눈앞에서 펼쳐져요.
영화는 1분이라면
이거는 10초 만에 그냥 솩~ 빨려든다.
이 영화 속으로 빨려든다.
생시라고 하는 영화 속으로 빨려든다, 습관적으로.
그러니까 화두가 필요해요.
계속 챙겨야 돼.
그러니까 저도 스스로한테 자문해 봐요.
스스로에게 자문해 봐요.
인간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생각에 잘 속을까?
생각에 정말 잘 속는...
그렇게 구조되어 있어요.
왜냐하면 여러분
생각이 벌써 AI예요.
AI는 뭐예요?
AI의 특징은 자가학습이에요. 딥러닝이에요.
이 말은
생각은 자가학습을 하고 있어요.
엄청난 속도로 생각이 계속 자가학습을 하고 있어, 벌써.
이거 이기기가 힘든 거예요.
그러니까 이쪽에서도 강력하게 브레이크를 걸어야 돼.
그러기 위해서 화두라는 게 사실은 나온 거예요.
그래서 처음 화두 걸 때는
굉장히 강력하게 브레이크를 밟게 하는 거예요.
처음에 화두가 강력하게 의심 속으로 밀어넣는 그 이유가
그 생각에 그 속도를, 브레이크를 콱 밟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런 이유가 다 있는 거예요.
하여튼 화두 하나를 의지해서 공부한다
이것이다.
이거 잡으면 부처
놓치면 젊은 사람들한테는 좀비
부산행 영화 보면 막 좀비들이 있죠.
오늘 처음으로 돌아가서
이렇게 앉아 있잖아요.
지금 이게 지금 의식이라니까.
지금 보는 이게.
그러니까 공부가 익어지면 딴 거 없고
멀쩡하게 앉아 있는데
앉아 있는 이게 지금 의식이라는 자각이 성성해져요.
이거는 해야 돼.
하루아침에 그냥 주어지지 않아요.
“이거 의식이구나” 알아봤자 힘 없어, 아직은.
마치 죽순 가지고
죽순이 대나무는 대나무지만 뗏목을 못 만들 듯이
어린아이가 인간은 인간이지만 힘을 못 쓰듯이
이거 알았다고 해서
바로 힘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에요.
그러면 힘을 길러야 돼.
어린아이가 힘을 기르려면 어떻게 하면 돼요?
잘 먹고, 잘 싸고, 잘 놀고, 그러면 되잖아요.
그러니까 이렇게 깨어 있는 이 자각의 힘
이것을 자꾸 챙길 수밖에 없어.
그러니까 화두를 든다 이거예요.
그래서 화두를 자꾸 듦으로써
화두를 들면 들수록 인터벌이 늘어나요.
처음에는 자주 들어야 되고 자꾸 놓치니까.
근데 힘이 붙으면
1시간에 한 번 정도.
더 힘이 붙으면
한 번 눈뜰 때 한번 챙기고
중간에 경계 왔을 때 한 번 챙기고
잠잘 때 한 번 챙기고.
이런 식으로 점점점점 늘어난다 이거예요.
모든 공부는 견성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냥 깨놓고 말할게요.
견성하기 전에는 공부한다고 할 수가 없어요.
다시 말하면
한 번 꿈을 깨봐야지
한 번이라도, 단 1초라도, 꿈을 깨보면
그거는 원자탄이 터진 거와 같아요.
그 무명의 긴 세월을
1초라도 한 번 꿈에서 깨면
빛이 팍 터지는 거하고 같아요.
그때부터 변화가 오는 거예요.
그러니까 한 번은 견성해야 돼.
그러면 견성은 달을 보는 거다 이거예요.
그럼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은
지금 멀쩡하게 깨어 있는 보는 이것.
따라 음미해 보세요.
지금
여기
의식
이것뿐이에요.
나머지는 생각이에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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