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식본심 학법무익
알 식
불식_ 알지 못하면
본심_ 본래 마음을
학법_ 법을, 진리를 공부해도
무익_ 이익이 없다.
워낙 중요한 대목이니까 한번 따라해 보세요.
불식본심, 학법무익
지금 이 순간 그냥 외워버리세요.
불식본심, 학법무익
본심을 알지 못하면
법을 공부해도 이익이 없다.
이게 육조단경 오조 스님이
육조 스님에게 물려주는 아주 중요한 말이에요.
선불교의 목적은
지금 이 현상이라고 하는 이 꿈에서
깨어나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점을 분명하게 한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지금 인간한테 있어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거죠.
인간이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게 가장 중요하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인간이 괴로움에서 완전히 벗어나는가?
그러려면 인간이
자기가 누구인가에서
자기를 김 아무개라고 하면
그것은 현상을 나라고 하는 것이 되고
그게 아니라 본질이 나죠.
그리고 본질하고 현상이 균형을 잘 잡는 것.
지금은 거의 현상에 너무 쏠려서 나라고 하고 있어요.
그래서 본질을 발견하고 그 본질과 현상이 균형을 잘 잡는 것
그러니까 중도라고 하는 것
연기라고 하는.
그게 우리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핵심이라서.
그래서 먼저 나의 본질을 먼저 불식,
식, 먼저 알기 전에는
그 무엇을 배워도 꿈속에서 사는 것이라서
그래서 고통을 완전히 해결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 뜻에서
공부가 본심을 알아야 되는 것이 아주 중요해요.
그러니까 그 점을 강조한다.
문제는 이런 걸 볼 때
요 두 가지를 어느 한쪽에도 치우치면 안 돼요.
지금 중도예요, 중도.
현상과 지금 본질을 이야기했잖아요.
그러면 이제 공부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본질이
본래 한 물건도 없고
거기에는 발심도 없고, 견성이라는 것도 없고, 수행도 없고
그러니까 그냥 다 없으니까
본질은 원래 없는 거니까
우리가 그냥 본질만 알아채면 된다, 하는 것은
이 본질에 치우친 거예요.
그리고 본질을 모르고
현상에서 뭔가를 이렇게 하는 것은
그건 또 현상에 치우친 거예요.
그러니까 항상 불법은
중도, 혹은 연기라고 해서
이 두 개의 균형을 잘 잡는 거, 밸런스를 잘 잡는 것
그게 가장 중요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한 번 본질을 깨달아야 돼요.
그러니까 지금 중요한 것이
따라서 두 가지를 치우치지 않게
두 가지에서
“중도를 잡는다” 이 말은
중도 잡는 방법, 중도에 입각한 마음공부는
익은 것은 설게 하라.
그리고 생처는 방교숙
설어 있는 곳은 익게 하라.
익어 있는 것은 뭐냐?
생각이에요.
생각 과잉
숙처를 요즘 말로 딱 번역하면 생각 과잉
영어로 하면 오버 싱킹, 오버 싱킹 하는 것
이게 우리한테는 익어 있어요.
이것이 고통의 원인이에요.
그러니까 생각을 너무 많이 하니까
생각은 줄여라 이 말이에요.
아예 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해요.
생각은 필요할 때 해야 돼요.
근데 문제는 필요하지 않아도 너무 많이 하고 있어요.
그래서 생각을 줄여간다.
이것은 현상에서의 공부
다른 말로 하면 마음 치유라고 할 수 있어요.
그리고 생처_ 낯설어 있는 것은 익게 한다 할 때
낯설어 있는 것은 본질이에요.
그래서 견성한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숙_ 성품을 익혀야 돼요.
그러니까 지금 공부가
우리의 모든 공부를 딱 요약하면
마음 치유와 깨달음,
마음 치유에서는 뭐냐?
현상에서 인간이 생각이 너무 많으니까
그 생각을 줄여가는 것
그리고 딱 그와 비례해서
보통 사람들은 생각에 너무 빨려 들어가서
본질이 있는 것을 모르고 살기가 쉬워서
그래서 본질을 발견하고
그 본질에 계속 우리가 익숙해 들어가야 돼요.
“익숙해 들어간다.”
이 말은
“내가 누구냐?”에서
지금은 1과 10 사이에 5가 돼야 되는데
딱 이 중도가 돼야 되는데
지금은 거의 1, 2, 3에 거의 치우쳐 있어, 보통 사람은.
그러니까 이거를 본질적으로
현상에 너무 치우쳐 있으니까
당겨서 5에 딱 이 균형을 잡는 것
이게 공부예요.
그러니까 요 현상은 너무 익숙하고
본질은 너무 낯설고
낯선 것은 익숙하게 당기고
익숙한 것은 낯설게 당겨서
딱 그 중심을, 절묘한 중심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현상과 본질에서 치우치지 않는
그 중심을 잡는 것
이것도 중요하니까 한번 따라해 보세요.
숙처방교생熟處放敎生
생처방교수生處放敎熟
요거 하나를 제대로 하면 돼요.
그러면 말 난 김에 간단하게
숙처방교생하는 방법
숙처를 생초로 바꾸는 방법
숙처는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생각 많은 거라고 했죠. 맞나요?
그러면 생각을 줄이는 거다 이거죠.
그럼 생각을 줄인다, 이 말은
생각이 났을 때 생각을 해보라.
첫 번째가 생각을 보라
그러면 언제 생각이 나요?
수시로 나죠.
그러면 이 수행은 일상에서 하는 수행
일상에서 수시로 하는 수행
그러니까 생각이 났을 때 생각을 본다.
이게 첫 번째
그러면 생각을 관찰하면, 자꾸 보게 되면
그 생각이 일종의 패턴을 가지고 있어요.
몸을 나라고 하면
몸을 나라고 했으니까
이 몸이 아닌 것은 전부 남이 돼서
남을 분별해서
좋다, 나쁘다를 하기 때문에
사건 사고가 주로
나쁜 거죠.
그러니까 나쁜 것이 온다 이거예요.
그런데 공부인은
좋은 것이 와도 돌아봐요.
그러니까 너무 좋아하지는 않는 거죠.
또 나쁜 것이 와도
너무 또 나빠하지 않는다.
그 패턴을 돌아보라 이거예요.
그래서 지금 일상에서의 공부는
그냥 막연하게 “해야지” 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생각을 보는 것,
그 생각을 보고 그 패턴을 발견해 내고
그리고 패턴을 통해서 내 안에 어떤 고정관념이 있다는 것
고정관념이
분별심, 에고, 아상, 선악과 이런 식으로 말할 수가 있어요.
그래서 그걸 추적을 해보는 그게
그 추적하는 게 사실은 부처님이 하신 거잖아요.
그거 추적한 것.
“고통이 생겼다”
왜 고통이 생겼는가?
추적을 해봤더니 두 가지 원인이 있더라.
하나는 감정적으로 모든 일에 내가 좋다 나쁘다 하는 것
그리고 그것이 왜 좋다 나쁘다 하는 걸 또 더 추적해 봤더니
내가 무명이라고 하는
내가 진짜 나를 모르고 이 몸을 나라고 하는
이게 지금 근본 원인이구나.
그러니까 지금 계속 반복해서 말씀드리는 것은
부처님이 추적을 해봐서
깨달음을 얻었다는 그 사실
그것을 우리가 욕심내지 말고 돌아보면
나한테도 적용할 수가 있다.
너무 나쁜 일이라고 낙담 안 하고
너무 좋은 일이라고 들뜨지 않고
차분하게 이걸 보는 것
그러면 하여튼 지금 숙처방교생은
생각이 많은 것을 생각을 줄여가는데
그 방법은
계속 생각을 보는 것
생각을 추적해 보는 것
그게 하나고 또 하나가 있어요.
또 하나는
결국에는 머리의 생각을 줄이려면
몸의 감각이 발달해야 돼요.
중요한 부분이에요.
머리의 생각을 줄이려면
몸의 감각이 발달해야 돼요.
몸의 감각이 발달하기 위해서는
몸이 생각을 자동적으로 알아채게끔 만들기
몸이 생각을 알아채게 만들기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앉는 거예요.
그래서 시간 날 때마다 3분도 좋고, 5분도 좋고, 10분도 좋고
시간 날 때마다 앉아 있으면.
제가 가끔 그런 걸 해요.
이렇게 사람들하고 대화하다가
지금 같으면, 제가 여러분이라면
저는 지금 마이크를 들고 말을 하기 때문에
제가 스톱할 수가 없죠.
맞아요?
근데 여러분은 듣기만 하면 되니까, 스톱해도 들리니까
스톱할 수가 있잖아요.
그러니까 저는 가끔 제가 여러분 입장이라면
앉아서 스톱을 해보는 거예요.
그럼 이 순간 딱 스톱하면
시간이 흐르고 앞에 여기 마이크 드신 분은 말을 하고
수업이 진행되는데
나는 딱 멈춰서 이 흐르는 것 속에서
나는 흐르지 않는 느낌
이해되세요?
그런 느낌을 자꾸자꾸 일상에서 가져본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나는 스톱해 있는데
모든 것을 움직이고 있어.
움직이는 중에
나는 스톱에 있는.
그러면 이게 좀
이 현상으로부터 나는 툭 떨어진 느낌?
그런 것이 있으면서
이것이 반복되면
여러분 놀랍게도 이것이 반복되면
나는 불생불멸인데
이 앞은, 지금 이 현상은 생멸이 쭉 이어지고 있어서
나중에 어떤 지혜가 나오냐 하면
“이게 지금 영화 같으네.”
나는 안 변하는데 이것이 변하고 있어서
안 변하는 입장에서 변하는 걸 보면
이것이 실체가 현실감이 현저히 줄어들어요.
그래서 어느 순간
“이게 지금 영화 같으네”
이렇게 흐르고 있는데, 상영이 되고 있는데, 돌아가고는 있는데
이게 현실감이 현저히 떨어지면서
“무엇이 현실인가?”
이걸 보고 있는 내가 현실이고
이것은 지금 인연 따라서 이렇게 떠가서
이게 지금 흘러가서 사라지고 없네, 하는 그 지혜가.
그래서 부처님이 말씀하시는
제행무상 그리고 제법무아,
모든 것은 무상하게 변해서 흘러가고
그리고 현상으로 나타난 것은 나라고 할 것이 없어.
다시 말하면 고정된 실체라는 것이 여기는 없구나.
그러면 혼자 딱 깨어서 불생불멸로 있는데
앞에는 영화처럼 모든 것이 이렇게 흘러가서 사라지고 없는 것
그러려면 내가 움직이지 않아야 돼요.
그러니까 내가 움직이지 않는다.
이거를 우리가 좌선한다고 이야기를 하죠.
본질은 항상 삼매상태예요.
거기에 우리가 익숙해져서
매사를 본질에 맡겨서 하는 거예요.
그럼, 그때는 생각이 없기 때문에 몸이 하는 느낌.
자동적으로 몸이 하는 느낌.
그러니까 그런 걸 익혀가는 것.
이런 대목을 읽어도
지금 현상을 이야기하고 본질을 이야기하잖아요.
이것이 잘 균형을 잡아서 밸런스를 맞추는 그런 가르침이다.
그러면 실제로는 내가 매사에서 생각이 너무 많다.
여러분 죄송합니다.
생각이 많아요? 안 많아요?
생각 진짜 많아. 그렇죠?
그러니까 이해는 다 해도
“생각아, 그만 좀 나대라” 해도
내가 말을 들어요? 안 들어요?
자동으로
지금 생각은 자동으로 돌아가니까
그러니까 이렇게 공부하는 사람이
이런 어떤 원리를 공부하고 이해했다고 해서
생각이 안 돌아가지는 않잖아요.
이렇게 공부도 원리도 이해해야 되지만
지행합일,
지도 해야 되지만
행을 해야 한다.
행은 좋은 것이
일상에서 자기 생각을 계속 보기
그리고 생각 없이 몸으로 하기
웬만하면 맡겨서 하기.
본질에 맡겨서 하기
그러려면 필수적으로
시간 날 때마다 앉아야 된다 이거예요.
시간 날 때마다 앉아서
적적한데 성성한 그 감이 있어요.
앉아보면 적적한데 성성한 그 감을 자기가 계속 체크가 돼.
그러면서 그 감이 익어지면
그 감이 앉아 있을 때만 그런 게 아니고
이렇게 지금 수업을 듣거나
일상에서 뭘 할 때도 그 감이 생겨서
마음이 부동심이 계속 익어 들어간다.
부동심_ 경계에서 흔들리지 않는 마음
그거를 내가 익힌다.
그리고 생처방교숙_ 본질이 무엇인지
본질이 무엇인지는
여러분, 본질에 대한 사랑이에요.
여기 생처방교숙하는 방법은
본질과 사랑하는 거예요.
본질을 사랑하면
뭘 해도 본질이 자꾸 떠오르고
마음이 그쪽으로 간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본질에 대해서 궁금한 화두 라고 하는 것도
사실은 본질에 대한 그리움, 본질에 대한 사랑
본질과의 연애를 말하는 거예요.
그러면 항상 본질과 연애하면
그 생각이 자꾸 나겠죠.
사람을 만나도 그 사람에서 본질을 보려고 하고
나뭇잎이 움직여도 거기서 본질을 보려고 하고
자꾸 보려고 하면
여러분, 보려고 하면 결국 보일까요? 안 보일까요?
결국 보여요.
그러니까 결국에는
모든 것이 내가 하기 나름이죠.
지금 인지에서, 인지의 땅에 결과가 생긴다.
인을 심으면 과가 나온다.
사랑하면 만난다.
만날 뿐만 아니고 같이 산다.
사랑하면
결국 만나고
만나서 같이 산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한쪽은 현상계에서 생각에 너무 시달리고 살았고
여기서 벗어나는 거예요.
해탈은 생각으로부터 해탈
이 모든 것이 누구한테 달렸는가?
내가 하기에 달렸어요.
내가 본질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궁금해하고
계속 에너지를 그쪽으로 보내면
결국에는 본질이 이렇게 나타나서 하나가 딱 된다.
아주 간단한 원리지만
이걸 실제로 하고 안 하고는 사람한테 달렸다.
하는 사람이 장땡이다.
결국에는.
“내가 누구인가?”
생각이 아니고, 의식이 본래 나다.
지금 의식이 본래 나라는 것을 한 번 알아차려야 돼요.
여러분, 결국 깨닫는 거는
여러분이 하셔야 되는 거예요.
여러분이 하시는데
깨닫는 타깃은 분명하게
첫 번째는 본질을 깨달아
두 번째는 본질하고 현상이 하나라는 걸 깨달아
두 번 깨닫는 거예요.
첫 번째는 본질을 깨닫고
두 번째는 본질하고 현상이 하나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면 스스로 깨닫는다.
하여튼 본질은 깨닫고 보세요.
제가 뒤에 적었지만.
보세요.
자기가 자기를 깨닫는 데 있어서
자기와 자기 사이에 거리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다시
자기와 자기 사이에
깨닫는 주체와 깨닫는 대상 사이에
거리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죠.
지금 여러분 그대로 의식이에요.
여러분 이대로 의식이에요.
여기에 토를 붙이면 안 돼.
토를 다는 것은 생각이죠.
여기에 자기와 자기 사이에 생각이 끼어드는 순간
쫙 나눠버려요.
주객으로 나뉘어져 버려요.
생각이 끼어들면
거리가 생겨.
그래서 절대 못 깨닫는 거예요.
지금 깨닫는 비결은
자기가 자기 사이에는 거리가 없다.
여기서 토를 달면 멀어져 버린다.
그러니까 지금 자기가 자기를 깨달을 때는
지금 있는 이대로 의식이다.
‘지금 있는 이대로 의식이다’
이런 말에 딱 알아듣고, 깨닫는 거예요.
이게 지금 이심전심.
왜 못 깨닫는가?
여러분께서 현 상태를 바꿔서 깨달으려고 하기 때문에
못 깨달아요.
다시
지금 상태에서 지금 상태를 바꿔서
무엇으로 되어서 깨달으려고 하기 때문에
못 깨달아요.
무엇으로 된다는 것은
그거는 생각을 줄이는 거는 해야 되는 거예요.
그거 말고
지금 익은 것을 설게 하는 거 말고
설은 것을 익게 하는 것에서는 거리가 없어요.
지금 있는 이대로 그냥 수긍하면 돼.
지금 있는 이대로
자기가 의식이라는 것을 수긍하면 돼요.
얼마나 쉬워.
돈을 내라 그러나, 뭐를 하라 그러나
그냥 있는 이대로
지금 이 순간 있는 이대로 의식이에요, 그냥.
자기가 자기를 깨닫는 데는 거리가 없다.
이 거리에는 공간적인 거리도 없어요.
맞아요?
시간적인 거리도 없어요.
여러분이 지금 말고
뭘 해서 의식이 되는 것이 아니에요.
다시
여러분께서 무언가를 해서
시간적인 거리를 두고 뭘 해서 의식이 되는 게 아니에요.
현상에서는 거리가 있어요.
본질에서는 거리가 없어요.
그러니까 지금 타겟이
본질을 깨달을 때는
있는 이대로 깨달아야지
이거를 뭔가를 내가 해서, 나를 바꾸어서
시간과 공간의 거리를 두고
나중에 깨닫는다고 하기 때문에
못 깨닫는다는 거예요.
그래서 깨닫기 싫어한다는 거야.
고집 피운다는 거야.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의식이 부처잖아요.
그러면 지금 이 순간 내가 부처다.
이걸 수긍하느냐 못하느냐의 문제인 거예요.
근데 중생은 죽으라고 자기가 중생이라 그러네.
지금 제 말뜻 이해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이 저항하고 있다니까.
수긍하면 끝날 일을
죽으라고 저항하고 있다고요.
어떻게 저항하는가?
“나는 중생이다” 하고.
의식이 부처죠?
다시
심즉시불, 의식이 곧 부처다.
그러면 지금 의식이 있다.
그러면 있는 이대로
안 바꾸고
있는 이대로 의식이니까
있는 이대로 부처다.
그러니까 이것을 딱 자기가 한 번
시공간의 거리를 넘어서서
즉각돈교
돈교_ 즉각 깨달음, 이 가르침, 확인 사살
여러분 아닌 적이 있었던 사람 한번 얘기해 보세요.
여러분이 인생에서
자기가 아닌 적이 있었던 사람?
언제 어디서나 자기였다.
맞아요?
근데 희한하게
이것을 한 생각을 일으키면 흐려져 버려.
한 생각을 일으키면 차원이 뚝 떨어져 버려요.
생각 속은 허구예요.
그러니까 여기서 한 생각을 일으키느냐? 안 일으키느냐?의 문제예요.
그러니까 생각을 일으키지 않고 즉각 알아들으면 돼.
내가 나를 만나려면 어디로 갈 필요가 없다.
그러면 지금, 지금 자기를 돌아보세요.
지금
자기지요?
이때 자기는
지금 자기다 할 때
자기가 자기인 줄 아는 그거다 이거예요.
지금도 이렇게 자기인데
지금도 이렇게 자기라고 하는 이 감각을
생각 때문에 놓쳐요.
그러니까 이거를 알아채도
생각 때문에 놓쳐.
알아채는 것이 하나
생처방교숙 요게 하나
나머지 하나는
알아채도 돌아서면 또 생각이 나를 현상계로 끌어내리기 때문에
그 생각으로부터 속지 않는 것
그러려면 생각을 봐야 돼.
그래서 나중에 그 뿌리를
뿌리라고 하는 것은 에고예요.
생각을 보고 뿌리를 뽑아야 돼요.
근데 그게 하나의 축이에요.
한 축은
의식인 자기 자신을 한번 딱 알아차리는 것
여기 한 축이라면
나머지 한 축은
그 사실을 흐리는
우리로 하여금 그 사실을 망각해 만드는 생각,
그 생각이 계속 만들어내는 그 뿌리
이거를 한번 딱 파고들어서 뿌리를 뽑는 것
이 두 개가 딱 만나서 완벽해지는 거예요, 공부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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