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본질하고 접속해 있으면 되게 신나요.
에너지가 쫙 차오르고
긍정 호르몬이 그냥 확 넘치고.
아니 그런 사람은
자기 에너지를 옆에 사람이 느낀다니까
그러니까 그렇게 살아야 될 거 아니에요.
그러려면 활구를 할 줄 알아야 돼.
활구는 실제로
활은 실제로 일어나는 것
구는 무엇인가?
분별심이 끊어진 상태, 적적성성한 상태, 공적영지의 상태가
실제로 그 사람한테서 일어나고 있는 것
그게 활구예요.
/활구 화두를 들고
온전히 몸으로 체득해 가면/
그 상태를 계속 몸에서 그 상태를 익어가면 어떻게 돼요?
몸의 세포가 기억하겠죠.
공적영지를
모든 분별심의 번뇌망상은 고요하고
의식은 뚜렷하게 각성되어 있고
그 상태가 활구, 공적영지인데
이것을 내가 앉아서
이 상태를 내가 체험하면 할수록
몸이 기억을 해서
몸의 신경회로가 공적영지 상태로 자동적으로 재조합이 된다.
Neuroplasticity
우리의 신경구조가 공적영지를 체험한 사람한테는
몸이 그거를 기억해서
몸의 구조 자체가 거기에 최적합하게 재조합된다.
그 모습은 강력한 편도체는 약화되고
약화되어 있는 전두엽은 강력하게 깨어나서
이것이 밸런스를 딱 맞추기
개체로서의 생명력과 전체로서의 생명력이 밸런스를 딱 맞춘 상태, 중도 상태
그것을 우리가 앉아서 좌선한다, 참선한다.
우리가 목우를 하고 앉으면
일상에서는 목우를 하고
자기 에고를 계속 다스려 가고
그리고 앉으면
그 일이 정리되면 정리되는 대로
빠른 시간 안에 우리의 고향으로 딱 돌아간다.
선정 상태로, 공적영지 상태로, 활구 상태로 돌아간다.
그 시간을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몸이 그 에너지 파장으로 재정비가 돼서
움직여도 그 에너지의 파장 자체가 유지되는 것
기본 우리 존재의 기본 모드로서 유지되는 것
요게 지금 우리가 행복의 지금 길인 거예요.
지금 제가 말씀드리는 거는
빈틈없이 실제로 해야 되는 거죠.
본문 들으시고 통과하시면 안 되고
이걸 가지고 해야 한다.
언제 하는가?
너무나 감사하게도 인생은 계속 수행거리를 준다.
계속 경계를 만들어 준다.
역경계가 있고 순경계가...
역경계라고 너무 침울할 필요가 없고
순경계라고 너무 들뜰 필요가 없고
항상 이 평상심의 기조를 유지하면서
항상 속으로는 에너지가 쫙 차올라 있는 상태
그 상태를 스스로 부단하게 노력을 해서 만들어 가는 거다 이거예요.
지금 공부의 목적은
공부 자체가, 이것 자체가, 수업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발심하셔서 일상에서 차근차근 이거를 실제로 해내기.
그래서 온전히 활구 화두를 들고
온전히 몸으로 체득해 가면
어느새 불이 중도 연기,
불이 중도 연기는 같은 말이에요.
공적영지가 이루어진 상태를 불이 중 도연기라고 불러요.
그리고 이것이 법안이에요.
/이것을 열게 된다.
이 대목은 소를 치고,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므로
철저히 몸으로 수행해야 한다./
몸으로 수행하는 방법은
모든 도는
첫 번째 폼을 배우고
그리고 그 폼을 수없이 반복 연습하고
그리고 몸이 완전히 익으면
폼을 잊어버려도 폼에서 벗어나지 않고
그리고 이제는 몸이 자유자재로 그걸 쓰고
이거를 제가 다시 한번 상기시켜 드리면
형수파리
형은 폼
수는 지키는 것, 폼을 지키는 것,
파는 깨지는 것
리는 공정영지의 이치에 부합하는 것.
형수파리
간단하게 말할게요.
형수파리 하면 공정 정지가 나온다.
따라옵니까?
그러면 다시 공적영지가 다시 형이 돼요.
이때는 활구.
공적영지가 우리의 번뇌가 끊어진 상태, 고요한 상태
고요하면서도 깨어 있는 상태
그게 활구가 되어서, 그게 진짜 화두가 되어서
형_ 그거를 지킨다, 공적영지를 지킨다.
익으면 이제는 그걸 하려고 하지 않아도
이 세계 전체가 다 그것으로 변해버린다.
이때 집이라는 것은
처음에는 집으로 돌아가야 되지만
집이 익어져 있으면
이 세상 자체가 집이 돼버려요.
그래서 깨달음이 와요.
내가 처음부터 집을 벗어난 적이 없구나.
처음부터 집 나간 적이 없구나.
그게 파야.
그러면 리_ 뭘 해도 공적영지를 쓰는 것이기 때문에
공적영지를 쓴다, 이 말은
남을 위하여, 이걸 모르고 고통받는 사람을 위하여
그 꿈속에서 이 사람을 깨어내게 도와준다.
이게 지금 공부의 길이라서
다시
형수파리를 다시 형수파리하는 것
앞에 형수 파이는 가화두
“이것이 무엇인가?” 모르니까 알려고 하는 거고
두 번째는 공적영지가 드러났어.
안 다음에는 그것을 지켜가는 것, 진화두
가화두의 형수파리와 진화두의 형수파리를 통해서 완성하기.
이게 정확하게 딱 수행의 길이에요.
이게 초지일관
화두 하나로 자초지종_ 처음부터 끝까지 꿰뚫어내는 간화선의 백미예요.
그러면 이 화두가 없으면
공적영지라고 하는 이 분명한 하나의 어떤 틀이 없으면, 이 폼이 없으면
그거 없이 한 사람이
이 과정을, 그런 거 없이 알아서 내가 한다
잘 안 돼요.
되겠지만 정말로 특수한 사람들만 할 거예요.
근데 이것을 누구나 할 수 있게 폼을 딱 만들어서
지금 화두 하나를 가지고
가화두,
가_ 임시 가짜예요. 임시 화두
이 말은 공적영지를 모르는 사람이
“공적영지가 본질이 무엇인가?”하고 한번 집중하는 것
그래서 한번 형수파리를 통해서 공적영지를 알았으면
다음에는 이 공적영지가 내 몸에서 익어 들어가도록
이걸 계속 반복해서 내 몸에 익히는 것
더 이상 이제는 안 해도 될 정도로 완전히 익히는 것
그다음에는 다른 사람한테 이걸 전하는 것
이게 지금 정확하게 수행의 길이에요.
이것도 이걸 십우도로도 표현하고, 오안으로도 표현하고
제가 뒤에 지금 써놨는데
조금 이따가 이거 총복습으로 이걸 한번 쫙 보면...
이상하게 도표를 그리게 돼요.
저도 원래 이과거든요.
제가 대학에서는 문학 전공했지만
고등학교 때는 고등학교는 이과반이 있었어요, 제가.
그래서 수학을 좋아했어요. 잘했다고는 말 못하고
수학을 좋아했어.
그러니까 이렇게 짜면
아까 그랬잖아요.
인간이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소유할 때는
관념화시켜서 소유한다고.
그러니까 한 번 소유를 한 다음에
그다음에 버려야 돼요.
그런데 한 번 소유할 때는 딱 한 번 개념적으로 짜야 돼.
그래야 딱 들어오지.
그다음에는 여기에 집착하지 말고
이걸 버려야 돼요.
지금 여러분한테는 한 번 들어오시도록
지금 단계가
여러분이 버려야 할 단계가 아니고
한 번 전체 일정표를 한번 딱 이렇게 익혀주면
굉장히 편하잖아요, 수행하기에.
익혀두시고 나중에는 버리세요.
이거 집착하면 안 됩니다.
그러나 자기 것으로 하기 위해서는
우선 이런 과정이 필요해서 한번 썼어요.
마지막으로 보고 넘어가겠습니다.
/그래서 이런 실제 수행을 통해서
몸이 저절로 공적영지를 살아내는 것이다./
이 말도 이해되세요?
‘몸이 저절로 공적영지를 살아낸다’
이 말은 뭐냐 하면
우리의 삶이 자기 삶을 사는 거예요.
우리는 김 아무개가 아니에요.
우리는 뭐냐?
생명이에요.
생명이 자기 생명을 꽃 피우는 것.
이게 공적영지를 몸이 살아내는 것
이게 지금 우리들의 목표예요.
여러분, 우리는 꽃이에요.
기왕 꽃으로 태어났는데 활짝 피어야지.
최근에 보니까 모란꽃이 완전히 피니까 함박꽃이 돼요.
그 조그마한 송이가 완전히 피니까 정말로 함박꽃이 돼요.
얼마나 아름답게 탐스럽게 피는지 몰라.
우리도 그래야 될 거 아니에요.
인생은 이 생명의 꽃을 피우러 태어났다.
최선을 다해서
나도 피고, 당신들도 같이 피고.
여러분, 꽃이 혼자만 피우면 재미없겠죠.
같이 다 같이같이 피어야
화엄법계
화엄_ 화_ 꽃, 엄_ 피는 것
화엄_ 꽃이 피는 것
법계_ 꽃이 피는 이 진리의 세계
이게 너도나도 한꺼번에 같이 피어서
생명이 하나하나 자기의 타고난 대로
아름답게 이 빛을 내고 있는 것.
이게 지금 자연이에요.
그 자연에 우리가 하나 되어 들어가기
지금 그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삶이란
본질인 의식이
꿈 같은 현상을 경험하는 일임이 분명하게 된다./
일단 자기가 의식이 되는 거예요.
무아를 통해서 내가 의식임이 밝혀지면
딱 깨어 있기 때문에
이 꿈으로부터 완전 자유, 해탈
그러니까 해탈이라는 것이 몸에서 느껴져.
중요한 대목이에요.
해탈이 말로 하는 해탈이 아니라 몸에서 느껴진다.
어떻게 느껴지는가?
나는 깸인데 이 세계는 꿈이에요.
깸이 꿈을 경험하는데
깸은 꿈으로부터 물들지 않아.
깬 상태에서 꿈을 살아요.
이게 자유 해탈이에요.
그러니까 이 꿈에 물들지 않아요.
깸이니까.
그러니까 그것이 스스로 분명하다.
몸에서 체감이 난다.
그게 지금 이 대목입니다.
/오직 한 개의 의식이
삼라만상으로 펼쳐지며 다양한 경험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개체로서 이 몸을 가지고 사는 한
현상의 꿈은 끝없이 펼쳐진다.
따라서 꿈을 깬 상태에서 꿈속의 세계를 경험하며
인연 따라 남을 돕는 보살행을 실천하는 불안
부처의 눈의 경지를 살아가는 것이다./
따라서 부처의 눈에는 이 세계가 부처로 보여요.
그러면 왜 본질이 절대인 본질로서 안 있고
선과 악이 공존하는 상대를 왜 꿈을 꾸는가?
절대가 선악이 없는 절대로서 안 있고
왜 선악이 공존하는 이 세계의 꿈을 꾸는가?
답이 이거예요.
/꿈을 깬 상태에서 꿈속의 세계를 경험하며
인연 따라 남을 돕는 보살행을 실천하는 불안의 경지를 살아가기 위하여./
그러면 부처 눈에는 부처로 보이면
여러분
부처가 절대 고독의 상태에 있는 게 좋아요?
모든 것이 부처 세계인 곳에서 같이 부처로서 살아가는 게 좋아요?
후자죠, 후자잖아요.
그래서 이 꿈을 꾸는 거예요.
우리가 좋으라고 꾸는 거예요.
근데 희한하게도 이 좋은 걸 그냥 좋으라 그러면 좋은 줄 몰라.
그러니까 실컷 고생을 시키고
진짜 좋은 줄 알게 만들어서 좋은 걸 누리게 만드는 것
기가 막힌 전략이네, 이야기를 하고 보니까
그러니까 그 뜻을 우리가 알아차린다면
빨리 이 고통에서 벗어나서
정말로 이 부처 세계를 마음껏 누리며 사는
그 삶을 살아야 되는 거죠.
그러니까 그게 인생이 그거예요.
인생의 목적이에요.
고통이 반드시 필요해요.
고통 없으면 이 행복을 모른다니까.
근데 고통을 계기로 발심해서
이런 길을 걸어서 이 행복의 세계로 꼴인해서
나와 자리_ 나도 좋고
이타_ 남도 좋은
그 세계를 살아내기.
그래서 마지막으로
/또한 혜안은
혜안 자체는 과정으로 본다면
돈오는 했지만 점수를 해야 되는 상태
그리고 법안은
돈오하고 난 뒤에 점수를 통해서 돈수가 된 상태./
이때 돈은 단박이에요, 점은 천천히 고.
단박에 깨닫고 천천히 수행한다.
/그다음에 단박에 깨닫고 수행도 단박에 끝났다.
그리고 마지막 불안은 무오무수/
깨고 나니까 꿈에서 깬다는 게 없어.
그 꿈을 꿈에서 깨기 위해서 수행한다는 것도 없어.
깨고 나니까 깨고 난 뒤에
근데 꿈속에 있는 사람이 무오무수 이런 말 듣고
“이거 다 꿈이다”고 퉁치면 안 돼요.
그러면 고통에서 벗어날 길이 없어.
그 사람이 퉁 친다고 고통에서 벗어나면
그래도 되지만.
저도 해봤거든요.
“에이, 무오무수인데 뭘 해?
뭘 깨닫고 뭘 수행해?”
머리는 그러는데 몸은 안 따라주는데 뭐.
몸은 고통인데
그러니까 철저하게 몸에서 이것이 이루어져야 돼요.
자기 몸에서 무오무수가 이루어져야 돼요.
그러려면 완전히 깨어나야 돼.
그러니까 이거는 아주 정말 빈틈없는 수학입니다.
/혜안은 돈오는 했지만 점수를 해야 하는 입장이고
법안은 돈오한 뒤에 점수를 통해 마침내
불이중도의 돈수
깨달음까지도 단박에 마친 이런 입장이다.
그리고 불안은 완전히 깨고 보니
모든 수행이나 깨달음은 착각이었다는 것이 분명하여
이것을 모르고 고해에서 신음하고 있는 사람들도
깨달아 해탈하도록 도와주는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과정이 육조단경의 앞부분에서
4개의 게송으로 이게 나타났기 때문에
거기에 배대
배대한다는 말은
선에서 쓰는 용어인데 대조한다는 말이에요.
육조단경에 나오는 네 가지의 깨달음의 노래에 배대_ 대조하여
오안이니 십우도니 돈오돈수니
이런 거를 한번 쫙 정리를 하면
불교의 전모가, 우리 수행의 전모가 드러나기 때문에
한번 이 대목에서 이렇게 짚고 넘어갑니다.
설명
십우도를 기준으로 하니까
숫자가 1번부터 10번까지 이렇게 쓰게 돼요.
십우도로 치면
심우, 견적, 견우, 득우, 목우, 기우귀가, 망우존인, 인우구망, 반본환원, 입전수수인데
이것이 심우 같으면 육안, 육안은 분별심에 해당하고
아직 생사 속에 헤매는 거고,
그리고 아직 돈이 안 됐기 때문에 시작이 안 된 거고
대승기신론으로 치면 불각이라고 불러요.
불각 깨닫지 못하고 있다.
육안 상태는 일반인들의 상황이에요.
그리고 그 상태에서 깨닫기 위해서 하는 것을
우리 신수 스님이 육조단경에서는
때때로 때때로 부지런히 털고 닦자
시시금불식해서
이 단계를 넘어서자라고 이야기를 지금 했어요.
그게 지금 육안천안의 심우, 견적의 단계였다.
3번 4번이 합쳐서 혜안
혜안을 제가 려처정이라고 부르는데
려는 당나귀 려,
처_ 본다.
정_우물
당나귀가 우물을 본다는 게 혜안이에요.
에고가 “아, 본질이 이거구나”라고 한번 알아채는 것.
당나귀가 우물을 보는 것
그게 혜안
법안은 우물이 되어서 당나귀를 보는 것
입장이 다르죠.
아직까지 현상 속에 있는...
그러니까 당나귀는 지금 김 마무게예요, 한마디로 말해서.
아직도 김 아무개 입장에서 본질을 보는 거 하고
본질이 되어서 김 아무개를 보는 거 하고
본질이 되어서 김 아무개를 보면 김 아무개 되게 귀여워요.
귀여워 죽겠어.
우리 꼬마들이 자라면서 머리 쓰는 거 있죠.
빤히 보이는데 머리 쓰잖아요.
그거 비슷해요.
뻔히 보이는데 머리 쓰고 있어.
그러니까 자꾸 토닥이면서 토닥이면서
“안 그래도 잘 돌아가, 그렇게 안 해도 잘 돌아가”하고 토닥이면서
그걸 잘 사랑으로 잘 인도하면
걔가 성숙해져요.
에고는 성숙한 거예요.
그래서 그런 거 불안이라고 하는 거고
그래서 하여튼
가로로 보나 세로로 보나
이것이 서로 짝짝 맞아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지금 하여튼
이것만 해도 벌써 한두 시간짜리네요, 그죠?
어쨌든 한번 읽고 넘어갑시다.
그래서 십우도에서 오안을 보면
육안, 천안, 견우, 득우가 혜안
목우, 기우귀가, 망우존인을 수행을 통해서
법안을 인우구망이라고 하는
그림에서는 동그라미 하나만 남는
그 법안, 정처려
그리고 그다음에 반본환원은 입전수수는 회양, 보살행을
사람들을 도와주는 일을 하는 불안의 단계다.
무생사
무생사는 선에서 많이 쓰는 건데
생사 없는 도리, 무생사 도리에요.
생사 없는 도리에서
知무생사 생사 없는 도리를 안다는 것은
혜안을 말하는 거예요.
생사 없는 도리
본질이죠.
그 본질을 한번 “아, 이거구나” 하고 알아채는 것
그것은 知무생사인데
体무생사, 생사 없는 도리를 몸에 익혀가는 것
그게 지금 목우, 기우귀가, 망우존인
따라서 여기다가
이런 말을 적어넣을 수는 있겠네요.
修行,
여기 지금 수행이에요.
목우가 되면 저절로 앉기만 하면 선정으로 쑥 들어가고
기우귀가 하고
그러면 선정에서 깨달음이니, 나니 하는 것이 다 사라지고
오로지 공적영지 하나만 딱 남아서 확인되기
몸에서 완전히 체득이 되기
그러면 證무생사 깨달음이
생사 없는 도리에 대해서 완전한 깨달음이 일어나고
그러면 다음에는 用무생사, 무생사의 도리를 쓴다.
여러분, 지금 보는 게 무생사예요.
지금 보는 게 무생사야
그러면 무생사가 생사 속에 뛰어 들어와서
아직 이걸 모르는 사람한테 지금 설명하고 있어.
지금 그 상황이에요, 느낌이.
무생사가 생사 속에 뛰어들어서
이걸 모르고 고통받는 분에게
이 도리를 지금 찬찬히 설명하고 있는 느낌.
따라옵니까?
근데 아무리 말을 해도
말은 현상이고, 이것은 이 현상에 물들지 않는다.
근데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무생사가, 생사 없는 도리가
생사의 세계 속으로 이 현상계로 뛰어들고 보니까
얘도 생사인 거예요.
따라옵니까?
이 말은 보는 게 나지
얘도 생사의 현상 속의 일부분
오케이?
몸과 생각, 감정으로 이루어진 김 마무개도
이 생사 속의 일부분.
근데 보는 이거는
그것으로부터 해탈.
해탈했는데 여기에 뛰어들어서
지금 사람들 건지고 있어.
들어옵니까?
느낌이 옵니까?
그게 분명하다 이거예요.
“나는 누군가?”
지금 보고 있는 이건데
이거는 공적영지로 표현되지만
말에 속으면 안 되고 실감을 느껴야 한다.
몸에 익어서 스스로 실감을 느껴야 한다.
그래서 用무생사, 생사 없는 도리를 쓴다.
돈점으로 따지면
견우, 득우인 혜안, 知무생사가 돈오.
그런데 体무생사는 점수
이거는 보조국사가 강력하게 주장을 한 거죠.
수심결 전체 내용이 이거잖아요.
“돈오하고 점수를 해서
돈오돈수가 되어야 한다.
마지막에는 무오무수”
완전히 깬 다음에는 잠자는 것도 없고 잠에서 깨는 것도 없어.
깬 다음에는.
그러니까 이런 돈점 논쟁이 이렇게 정리가 된다.
돈오가 맞느냐? 돈수가 맞느냐가
맞다 틀리다가 아니고 과정이에요.
우리가 거쳐가야 될 과정이야.
근데 어디를 더 중시하느냐 하는 건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
이해되나요?
“어떤 게 더 중요하느냐?” 하는 주장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사실은 어떤 게 더 중요하다가 어디 있어요?
알아서 착실하게 잘 가면 되지.
다음에 대승기신론에서는
대승불교의 모든 이론의 아주 골자
대승불교가 시작할 때
선도 대승불교에 속해요, 선불교도.
대승불교의 가장 기본 틀,
모든 인간이 불각 상태다. 현재는
육안 천안으로 사는 것은
아직까지 윤회계 속에 있는 것은 불각, 깨닫지 못한 상태다.
근데 혜안을 한번 뜨면 시각
비로소 각의 눈을 뜬다.
근데 여기서 더 수행을 해서 구경각
돈오돈수의 구경각을 하면
구경각이라는 말은
완전히 에고가 깨달음을 아는 게 아니고
에고는 사라지고 깨달음 자체가 살아 나오는것
깨달음 의식 자체가 깨어나는 것.
그렇게 되면
처음부터 본각이었네.
마지막에 무오무수라는 말이나 본각이란 말이나
처음부터 본래는 다 깨달아 있었네.
이걸 내가 모르고 착각해서
영화 속에 나오는 주인공을 나라고 동일시해서
지금까지 이 모든 과정을 거쳐왔는데
알고 봤더니 나는 영화 속에 있는 게 아니고
처음부터 이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이었네.
그래서 “본래부터 깨달아 있었네” 하는 본각으로
이렇게 정리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육조단경에는
시시근불식
육안 입장에서는 부지런히 털고 닦자.
그리고 한 번 시각, 돈오, 지무생사, 혜안을 열 때는
본질자리에는 본래무일물
본래 한 물건도 없이 텅 비었네. 본질은 텅 비었네.
공을 한번 본 거예요.
근데 아직 본질은 안 됐어.
그래서 본질이 되는 수행을 통해서
이게 전부 수행이에요.
점수라는 말이 수행이죠.
점수, 점수, 점수 수행을 통해서
하기자성능생만법何期自性能生萬
자성이 되어 보니까
이쪽에서 저쪽을 보는 게 아니라
본질 입장에서 보니까
모든 것이 본질이 일어난 거네.
법안을 읽어보니까
모든 것이 이 본질이 이렇게 일어난 겁니다.
그래서 능색망법이라는 말은
색즉시공 공즉시색하고 같은 말이죠.
중도 정견이 열렸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보리자성이 본래청정하고
모든 사람이 다만 쓰는 것이므로
본각, 이미 처음부터 성분에 마쳐 있다.
모든 사람이 다만
그 사람의 평생의 일거수일투족이
다만 이 의식을 쓰는 건데
의식이 부처임으로
모든 사람이 자기가 몰라서 그렇지
본래는 다 부처로서 살았던 거다 하고
보리자성, 본래청정, 단용차심, 직료성불
모든 사람이 처음부터 성불해 마쳐 있다.
이게 본각이다. 이거예요.
본각, 무오무수, 용무생사, 불안, 반본환원, 입전수수의 입장이다.
그러니까 이거를 한번 이렇게 틀을 짜서
한번 정리해 보면
여러분께서 수행의 일정표, 수행의 자초지종을 한번 쭉 이해하고
다음부터 양심에 따라서
나는 1번이구나, 2번이구나
그러면 그거 하면 될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착실하게 이 길을 밟아간다.
근데 길을 모르고 수행하는 거 하고
일정표를 알고 수행하는 거는 하늘과 땅이죠.
나머지는 뭐예요?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실제 하는 것,
착실하게 하는 것,
오늘 중요하네요.
첫 시간, 둘째 시간 다 중요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프린트물 다 한 게 너무 기쁘다, 무엇보다도.
진도를 나간 게 제일 기뻐요.
감사합니다.
다음 주 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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