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본체로서
처음에는 본체를 발견하고
다음에는 본처로서 이 현상계를 본체로서 살아가는 것.
다시
지금 의식이 이렇게 있잖아요?
의식이라고 하는 것이 감이, 자꾸 강해지면
지금 이렇게 깨어 있는 이것이
의식이라는 것이 확인되고
그리고 자꾸 의식의 감이 커지면
이렇게 딱 보면
지금 보는 이것이 의식인 거예요.
근데 의식은
현상계로부터 물들지 않는 본질이에요.
그래서 현상과 본질을 다른 용어로 바꿔서 말하면
현상은 꿈이고
본질은 깸이에요.
그래서 이렇게 딱 보면
깨어 있는 힘이 강하면
깸이 꿈을 상대하고 있어.
그렇게 자각이 점점점점 강해져요.
공부가 진행이 되면.
그래서 결국에는 깸이 꿈을 경험하고 있어.
제가 최근에 이 말을 반복해서 말씀드리죠.
그러니까 하나의 타겟을 만들어 드려서
여러분이 이것이 몸으로 이렇게 오게끔
계속 제가 지금 독촉하고 있는 중이에요.
그래서 이 본질을 발견하고
본질의 힘이 자꾸 강화되면
가만히 앉아 있으면 이렇게 의식이에요.
그리고 이것은 깨어 있어.
‘깨어 있다’는 이 말은
현상계로부터 물들지 않게
격외
격_ 현상계의
외_ 그 느낌이 있어요
나는 가만히 있는데
모든 것은 그냥 생겼다가 사라지고 있어.
그러면 가만히 있는 이것이 깸이
생겼다가 사라지는 꿈을 이렇게 경험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을 보고, 촉감을 느끼고, 생각을 하고, 감정을 느끼고
하고 있어, 의식이.
의식이 현상계에서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느끼고, 감각을 느끼고
생각하고, 감정을 이렇게 느끼고 있어요.
그러면 언제나 본질과 현상이 지금 눈앞에서 딱 만나서
이 세계가 돌아가고 있구나
본질과 현상이 이렇게 연기되어서
중도를 이루어서
불이의 상태에서
이 세계가 이렇게 펼쳐지고 있구나.
거기에 대해서 항상 분명한 감이 들어서.
그래서 이걸 마음대로 경험을 해요.
경험을 하는데
나는 경험에 물들지 않아서
어떤 식으로 말을 하느냐?
“경험을 하되 경험하는 바가 없다”고 표현을 하는 거예요.
그러고 다른 말로는
“현상계에서 인과는 있는데
그 인과를 짓고, 받고 하는 작자는 없다.
왜냐하면 깸은
현상계에 속하지 않기 때문에.
현상계는 인과로 돌아가는데
그 인과를 업을 짓고 업을 받고 하는
인과의 주체로서의 나라고 하는 것은 없다.
실제로는 뭐가 있는가?
이거를 경험하는
여기에 물들지 않고
밖에 있는데
여기에서 이걸 경험하고 있는
지금 이 현상계에 물들지 않는
이 깸이, 본질이, 의식이, 부처가
이거를 지금 경험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것이 분명하게 되면
“나는 누구인가?”에서
현상계 속에서의
이 몸과 생각 감정으로 되어 구성된 아무개
그런 거는 실제로는 없구나.
현상계 안에서의 그냥 하나의 인연 따라 이것도 생긴 것일 뿐이구나.
그럼 실제로 나는
이 모든 현상계를 이것까지 포함해서, 이 몸까지 포함해서
경험하는
지금 깨어 있는 의식이다, 이거예요.
그리고 실제로는 의식 하나뿐이다.
의식 하나 안에
의식이 이렇게 지금 다양하게 이렇게 생명체가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만약에 완전히 딱 이 자각이
확고한 사람한테는
확립된 사람한테는
지나가다가 깨닫기 전에 그 사람을 알아보고
아니 부처님한테
부처님 처음 깨닫고 길을 가는데
알아본 사람이
“고타마 태자여, 어디로 가십니까?”
하고 물었다는 거예요. 알아보고.
그랬더니 정색하고
“나를 고타마라고 부르지 말라. 나는 붓다다.”
여기서 고타마라고 부른 사람은
현상계 안에서 그 몸통이 하고 연관된 그것을 고타마라고 불렀잖아요.
근데 깨어난 사람은
이 자각의 힘이
이게 내가 아니고
이거를 통해서 이 세계를 경험하고 있는
지금 깨어 있는 의식이
자기다 이거예요.
이 깨어 있는 의식을
붓다라고 부른다, 이거예요.
깨어 있는 의식을 붓다라고
깨어난 사람, 깨어난 존재, 붓다.
그러니까 정정해 주는 거예요.
나를 옛날에 아무개로 부르지 말라.
나를 붓다라고 불러라.
이 말이 이해되세요?
맥락이 그렇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이렇게 자꾸 우리의 존재의 중심이
아무개에서
본질인 의식으로 자꾸 넘어오는 것.
그래서 의식은 낯선 것이라서
낯설은 것은 점점점점 익숙하게 하고
그리고 익숙했던 아무개는 점점점점 낯설게 해서
요 본질과 현상에서의 중심을 잘 잡아서
기왕 몸을 가지고 있는 한은
이 꿈은 펼쳐지기 때문에
기왕 경험하는 거
여러분, 기왕 경험하는 거
기왕이면 다홍치마, 아시겠어요?
그래서 조금 전에 또 두 분이 저한테
쉬는 시간에 질문을 하셨는데
한 분은 “2600년 전에 부처님의 의식하고
지금 나의 의식이 같다는 것이 잘 이해가 안 됩니다”라고 질문하셔서
실제로 있는 것은 여러분
솔직히 말하면
저도 그분의 의식 속에 나타난 하나의 꿈이에요.
그렇지 않나요? 맞아요?
저도 지금 여러분의 의식 속에 나타난 꿈일 뿐이에요.
그러면 실제로 있는 건 뭐예요?
여러분 자신인 의식
그러니까 이때 아무개 말고
의식으로서의 여러분 자신.
천상천하에 여러분 밖에 없는 거예요, 실제로는.
근데 그것이 아무개는 아니야, 대신에.
그래서 그 질문 덕분에
한 번 질문을 이렇게 돌이키면
그 질문 자체가
생각에서 이해하려고 나온 질문이고
그래서 이해로 답이 있는 게 아니라
실제로는 그 생각이 없으면
그 생각이 나온 곳이 어디냐?
실제로는 지금 질문하신 분의 의식밖에 없다, 이 세계가.
나도 거기서
지금 인연 따라 이렇게 나왔다가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일 뿐이다.
이거 하나고
두 번째 질문하신 분은
“집중수행할 때
집중수행이 잘 되어서 아주 성성한 그런 경지를 맛봤다.
그래서 그것이 집으로 돌아가서도 유지가 되었다.
근데 어느 순간, 하여튼 다시 있다가 왔는데
지금은 없어졌다.
그래서 거기에 대해서
어떻게 가닥을 쳐야 합니까?”라는 질문이었어요.
그래서 저의 답변은 뭐냐 하면
의식은
의식 자체는 본질이고
의식이 변화되는
의식의 변화를 변성이라는 말을 써요, 특별하게 심리학에서.
의식의 변성 상태
이 말 아시겠어요?
의식은 같은 의식인데
의식의 변성 상태는 달라요.
밀가루는 하나의 밀가루지만
크라상도 있고, 곰보빵도 있고, 식빵도 있고. 식빵은 발음이 이상하다.
이게 다 달라요.
밀가루는 같은데
의식은 같은데 의식의 변성 상태는 다르다.
그래서 변성 상태는 현상이고
어떤 현상이든지 그것 자체는 의식이잖아요.
그래서 주안점이
어떻게 변해도 밀가루 자체는 안 변하기 때문에
그 특별한 의식 상태가 유지되다가
계속 유지되느냐? 지금도 있느냐?
이것이 하나의 구분,
현상이냐? 본질이냐?의 구분 기준이다.
그러면 그것이 지금 있다가 지금 없어졌으면
분명히 현상에서의 모습입니다.
그렇죠?
그런데 중요한 거는 뭐냐 하면
여기서 하나의 반전
중요한 것은
아주 성성한 자각 상태, 각성 상태가 스스로 느껴졌다.
이거는 그동안에 맛보지 못한 것이라서
그때는 기분이 되게 좋아요, 성성하니까.
근데 “그것이 혹시 깨달음입니까?” 할 때 깨달음은 아니다.
그것 자체는.
그거는 현상의 한 부분인데
그러나 자 먼저
본질은 성성한 걸 자각할 때 성성한 줄 알았죠.
그리고 지금 보니까 사라졌어요.
근데 사라진 것도 아는 것이 있죠? 이해되세요?
의식이 성성한 것을
“아, 성성하구나” 하고 알은 것
의식이 그런 상태가 사라졌다는데
또 사라졌다는 거를 아는 것은 그대로다.
이해되세요?
그래서 이것이 평범해야 되요.
특별한 것은 현상에서의 변성 상태고
아주 고조된 상태건 다운된 상태건 상관없이
고조되면 고조되었다는 걸 알고
다운되면 다운됐다는 걸 아는 것
그거는 안 변한다, 이거예요.
그것이 본질이다, 이거예요.
그 포인트가 거기 가야 돼요.
그런데 제가 거기서 덧붙여서 뭐라고 말씀드렸느냐 하면
그런 고양된 변성 상태는
본인이 공부를 열심히 하셨기 때문에 경험할 수 있는
육도윤회, 현상계 안에서 천상계의 모습입니다.
육도윤회 안에서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상에서
그렇게 성성한 의식 상태는
천상계의 모습이에요.
그럼 그것이
누구나 본질은 동등하게 육도윤회로부터 벗어나 있지만
몸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 현상계 안에서는
오르락내리락 하겠죠, 육도 윤회를.
그러면 몸을 가지고 사는 한은
몸이 수명이 붙어 있어서 사는 한은
지옥에 사는 게 좋아요? 천상에 사는 게 좋아요?
천상에 사는 게 좋잖아요.
그러면 기왕이면 그런 상태가
이것이 현상인 줄을 알되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거지.
다다 익선이죠.
기왕이면 지옥보다는 인간계
인간계보다는 천상계가
몸을 가지고 있는 한은.
그러니까 괜히 본질을 강조해서
현상은 아무 때나 돼도 좋다고 하면 안 돼.
이게 지금 중도라는 말이
본질은 본래 완벽해서 그대로 오케이.
근데 현상에서는 오르락내리락하는데
현상에서도 좋아야지, 이해되세요?
본질의 이름으로 현상을 깡으로 무시하면 안 돼.
퉁 치면 안 돼, 현상을.
그러니까 둘 다 좋아해야 돼요.
근데 본질은 내가 손을 안 대도 좋아.
맞아요?
내가 주안점을 둘 것은 현상이에요.
어차피 본질은...
그러니까 인간이 부처 걱정 안 해도 돼.
신 걱정 안 해도 돼.
그분들이야 그냥 퍼펙트 해요.
놔두고 나나 잘해.
현상에서의 이 나가
기왕이면 성성해 있고, 깨어 있고, 삼매에 있고
그래서 부동심을 길러서
어떤 사건 사고가 와도 흔들리지 않는.
결국에는 뭐예요? 공부의 목적이.
한 번은 본질을 깨달아야 되고
그다음에는 현상에서 잘 살아야 돼, 공부가.
그래서 중도라고 하는 거예요.
항상 십우도도 그렇고
본질에 간다고 해서 공부가 끝이 아니에요.
한 본질을 봤으면
현상계로 돌아 나와서
현상계에서 잘 살아야 되는 거예요.
현상에서 가장 잘 사는 모습은
남을 도와주면서 사는 게
가장 잘 사는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 공부의 카테고리가
지금 본질을 깨달아야 되지만
그게 목적은 아니다.
깨닫고 나와서
현장에서 잘 사는 거예요.
“본질의 입장에서 현상을 잘 산다, 이게 공부다”
이해됐어요?
깸의 입장에서 꿈속에서 잘 산다.
다시
본질의 입장에서 현상을 잘 산다.
이게 우리 공부의 목적이에요. 맞습니까?
그러면 본질이 이미 나한테 실현되었어요? 안 되었어요?
됐어요.
본질이 이미 나한테 실현되었어요? 안 되었어요?
됐죠.
그리고 본질이 이미 나는 본질이
지금 내가 알건 모르건 상관없이
이미 본질하고 하나가 되어 있어요.
그리고 현상을 지금 살고 있죠.
이게 극락 아닌가요?
이게 천국 아닌가요?
어디 따로 있겠어요?
여러분,
천국과 극락이
지금 여기에서 한 생각을 일으켜서
아주 멋진 걸 꿈꿔도 여기서 일어나고 있죠.
이해되세요?
천국이다, 해도
여기서 천국이라고 하는 생각이 나타난 거잖아요.
맞아요?
그러니까 여러분, 제 말은
이미 본질이에요.
그리고 눈앞에 현상이 펼쳐지고 있어요.
이것을 내가 토만 달지 않으면
있는 이대로가 극락이고 천국이에요.
이거 이상은 없어요.
그러니까 지금 이거는
참 목숨 걸고 말아야 된다, 이런 거는.
여러분,
이거 이상은 없어요.
그러면 이거 이상은 없으면
내가 현실을 수용하면 문제가 안 되죠, 맞아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내가 수용하면
문제가 안 되는데
현실을 불만족스러워하면
내 마음만 스스로 지옥으로 만드는 거죠, 맞아요?
사건 사고가 났다.
적나라하게 말하고 싶은데
전화가 왔다.
가족 중의 한 명이 자동차 사고를 냈다.
그러면 훈련이 안 된 사람이라면
“안 다쳤느냐, 뭐 했느냐” 뭐
걱정이 막 꼬리에 꼬리를 물고 걱정이 일어나겠죠.
그런데 훈련이 된 사람이라면
그 사고가 나도 인연 따라 처리되겠죠, 맞아요?
그러면 냉철하게 사고 난 것은 받아들이고
인연 따라 이렇게 잘
“처리해라” 하고 그대로 이야기를 하고
요즘은 거의 보험이 되잖아요.
보험 수가는 오르겠다.
그렇지만 웬만한 것은 보험으로 처리되잖아요.
근데 대개는 그때부터 가슴이 막 굉장히 불편하게
두 번째 화살, 세 번째 화살 막 맞는 거 이해되세요?
훈련이 된 사람이라면
첫 번째 화살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두 번째, 세 번째 화살은 안 맞는다.
그래서 현실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힘이
수용력이 길러져요.
수용하면 문제가 안 된다, 이해됐어요?
현실을 수용해 버리면
그것은 나한테 문제가 안 된다.
근데 현실을 부정하고 저항하면
그것은 나에게 와서 문제가 된다, 맞아요?
그러니까 결국에는 평소에
우리가 두 번째 화살을 맞지 않는 훈련
두 번째 화살이 대개 생각이에요.
사고가 나면
생각이 따라붙어
그 한 생각에 휘말리면
하여튼 세 번째, 네 번째, 계속 맞는 거예요.
그리고 우울해져, 다운돼.
불평불만이 자기를 휘감아버려요.
그러니까 여러분
현실을 수용할 수만 있으면
어디를 가도 그대로 그냥 아무 일이 없다.
수용할 수만 있으면
그 수용력이라고 하는 것이 삼매력이다 이거예요.
그 수용력이라고 하는 것이 삼매력이에요.
정력定力이라고 하는 것.
제가 정력이라고 부르는 거
이게 수용하는 실력.
그러니까 이게 평소에 길러주는 게.
여러분,
죽어서도 죽음의 순간에서도
죽음도 수용한다.
왜냐?
의식이 죽어요? 몸이 죽어요?
몸이 죽는 거예요.
그러니까 몸에서 일어나는 죽음이라는 현상도
내가 깨워서 경험한다.
수용하고 경험한다.
어떻게 보면 멋진 경험 아닌가요?
인생의 마지막에 제일 멋진 경험을.
그러니까 사실 예전에 공부를 많이 하시는 분들은
‘앉아서 죽는다’는 말이 그런 말이에요.
죽음도 본다 이거예요.
죽음이 어떻게 일어나는가를 보고
“나는 안심 인명 속에서 죽는다.
왜냐하면 의식이라고 하는 자각은
영원히 그대로 있으니까.”
그래서 여러분께 오늘 여기서 당부드리고 싶은 말씀은
내가 수용하면
이 땅이 천국으로 변한다.
내가 거부하면 지옥이다.
내가 현실을 수용하면, 현실이 천국으로 변하고
현실을 거부하면, 현실이 지옥으로 변한다.
모든 것이 누구한테 달렸어요?
내가 하기 나름이다.
그러면 그 점을, 이 원리를 내가 터득한다면
내가 이 힘을 길러야지.
수용하는 이 힘을.
수용하는 힘을 기르려면
내 마음이 흔들려서는 안 되니까
평소에 딱 정력을 길러서
우리가 이 둘을 다 소화를 한다면
한편으로는 논리적으로도 납득이 돼야 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지금 느끼는, 이 순간 느끼는 거예요.
이 순간 느끼는 것.
개구리 반찬
살았어요? 죽었어요?
지금 말하는 그거
지금 일거수일투족 지금 느끼는 것
지금 하는 모든 것
이 순간 살아서 지금 움직이는 작용하는 모든 것
이 순간 느끼는 그거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이런 거를
가장 쉬운 길도 있고, 또 가장 세밀한 길도
둘이 같이 있다.
이거를 우리가 같이 공부를 해서
자기한테 마스트, 통달하게 만들기
내 몸에서 이 공부가 통달되게 만들기.
그러니까 지금 우리는
굉장히 입체적인 공부예요.
쉽다면 가장 쉽고
어렵다면 가장 어려워하고.
왜냐하면 차원이 벗어난 문제라서.
그러면서 동시에 본질과 현상이 이 순간 나한테서
지금 같이 구축되어 있다.
그러니까 여기서 한번 마음을 돌이켜서
여러분께서도 마음을 돌이키셔서
내가 나를 찾는 어리석음을 먼저 느끼셔야 돼요.
자기가 자기를 두고 또 찾는 어리석음
거리가 없는 것을 거리를 만들어서 지금 구하는 그 어리석음.
그걸 한번 돌이키셔야 돼요.
그래서 “아” 하고 한 번 돌이켜야 돼.
그게 지금 공부의 급소예요.
그래서 저는 차마 못 때리는 걸 용서하십시오.
돌이키라고 때리는 거예요, 사실은.
돌이키라고 때리는 거예요.
왜냐하면 이걸 아는 사람 입장에서는
“의식이 뭡니까?” 물으면
“의식이 뭡니까?” 하고 묻는 게 의식이죠, 이해되세요?
아니 자기가 의식인데
“의식이 뭡니까?” 물으면
이거 지금 미칠 노릇 아닌가요?
그러니까 때리는 게 최고의 답이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이런 말을 여러분께서 탁 알아채셔서
지금 내가 나를 다시 구하는 이것이
나의 지금 모든 잘못된 공부의 원인이었구나.
여기서 돌이키면 가만히 있어야 돼.
가만히 있으면
“이거구나.”
가만히 있으면
지금 이거, 깨어 있는 이거.
이렇게 찬스가 온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오늘은 이제 좀 시간이 많이 지났네, 죄송합니다.
...
건드리면 안 되는 세 번째 거?
건드리면 안 되는 새끼 세 마리
-하나는 독사
-두 번째는 왕의 새끼
-세 번째는 도인 된 사람.
아무리 어리더라도.
그러니까 여러분 중에서 신입생 있죠?
여러분 신입생이라고 깔보죠?
큰일나요.
신입생이 앞으로 도인 될 사람이기 때문에.
그거 정말 무서운 사람이에요.
도를 공부하는 사람이
최고로 무서운 사람이야.
그러니까 참 재밌는 공부예요.
재미있죠?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늘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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