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의식 하나의 입장
전체의 입장에서 개체로서 일어나는 생각을
전체의 입장으로 바꾸기,
개체로서 일어나고 있는 생각을
항상 전체의 관점으로 이 생각이 바꾸어 나간다.
그러면 말도 개체의 입장이 아니고, 전체 입장에서 하게 된다.
그러면 행동도 개체가 아니라, 전체 입장에서 행동을 하게 된다.
그러면 그 사람의 생활도 항상 전체 입장을 유지하는 생활이 이루어진다.
그러면 항상 깨어있기가 가능해지고
그것이 계속 이어져 나가는 바른 정진이 꾸준히 일어나서
그리고 항상 선정 상태예요.
바른 선정이라고 하는 것은
가장 쉽게 말하면
열반적정 상태가 자기한테서 일어난다는 거죠.
열반적정을 극락이라 하잖아요.
그러면 다시 말하면
자기가 바로 열반적정의 아미타불의 극락정토가
자기에서 실현되고 있기
이게 인간의 길이다 이거예요.
여러분, 여러분이 뭘 해도 하는 그것이에요.
그러니까 이 말귀를 알아들어야지
이 말귀 못 알아들으면 찾는다 이거예요.
찾는 어떤 게 아니라, 찾는 그것
맞아요?
그러니까 그냥 자기예요.
의식은 자기예요.
모든 것의 주체.
근데 보세요.
저의 주체, 의식이죠.
맞아요?
여러분의 주체도 의식이죠.
그러면 나의 모든 행동의 주체죠.
근데 나로 안 그치고
모든 인간이 하는 행동의 주체
그러니까 희한하게 여러분
한 개의 의식이 여러분을 통해서도 작동하고
나를 통해서도 지금 작동하고 있어.
지금 80억 인구를 통해서 작동하고 있어요.
근데 인간만 있는 게 아니고
까치도 있고, 뱀도 있고, 토끼도 있고, 별게 다 있잖아요.
다 의식을 가지고 있잖아요.
한 개의 의식이 정말 무수한 생명체를 통해서
이렇게 지금 작용하고 있어.
그러니까 모든 동사의 주어는 의식 하나뿐이야.
의식이 지금 작동을 하고 있다, 이거예요.
그걸 한번 딱 바로 세워서
모든 사고방식과 말을 잡아 들어가면
엄청난 변화가 한 개인한테
세계를 보는 것 자체가 변화가 일어난다.
찾는 그것이 바로 의식이다.
여러분 찾는 그것이 의식이다.
“내가 의식을 찾는다”가 틀린 문장이에요.
“찾고 있는 그것이 의식이다” 맞는 문장이에요.
이해돼요?
그러니까 이렇게 하면 전환이
“내가 의식을 찾는다”가 아니고
내가 의식을 찾으면
“찾는 그것이 의식이다” 하는 이렇게 바른 문장으로
내가 한 번 딱 인식이 전환이 되면
많은 것이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본질인 의식을
흔히 공개된 비밀이라고 한다./
공개된 비밀
여러분 여기에 지금 의식이 있어요? 없어요?
근데 눈에는 안 보이죠.
그러니까 지금 공개된 비밀
이렇게 좀 필링이 옵니까?
지금 여기, 지금 의식으로 꽉 차 있거든요.
근데 이걸 지금 의식인지 모르고 살았다 이거예요.
그래서 요거기 때문에
공개되어 있는데 비밀 같은 것이다.
눈 있는 자만 본다.
눈 없는 자는 못 본다.
그래서 심봉사다, 이거예요, 심봉사.
/전체를 부분으로 찾아서 못 찾는 것이다./
이런 말도 옵니까?
전체를 부분으로 찾아서 못 찾는 거다.
찾는다는 것은
내가 무엇을 찾는다 할 때
나도 부분이고, 무엇도 부분이잖아요.
그런 식으로는 안 찾아진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전체라서.
전체를 찾는 방법은
찾는 걸 포기하는 거예요.
찾으면 나누어져요, 주관과 객관이.
근데 안 찾으면 어떻게 돼요?
주격이 안 나눠져요.
안 나눠지면 어떻게 돼요?
안 찾으면 그냥 통으로 전체가 의식 하나예요.
들어옵니까?
그러면 나는 의식을 안다 하고
나는 의식을 모르겠다 하고
어느 쪽이 진짜에 가까울까요?
“나는 의식을 안다” 하고
“나는 의식을 모르겠다” 하고.
다시 말하면 어느 쪽이 안 나눠져요?
모른다가 안 나눠져.
그러니까 이걸 아는 사람들은
나눠지지 않아야 되기 때문에
‘안다’라는 소리보다는 ‘모른다’는 걸 선택한다, 이거야.
그러니까 양 무제가 달마 스님한테
“달마, 당신 누구요?” 하고 물었더니
달마 스님이 “모르겠소” 하고.
“모르겠소” 해야지 전체 의식에 가깝다.
말로 표현하자면
“안다” 그러면 안다 모른다가 나눠지는데
그냥 “모르겠소” 하면 모르겠소 밖에 없어서
나누어지지 않는 상태.
그러니까 그런 말을 왜 했는지 이해되나요?
그게 안목이다, 이거예요.
/전체를 부분으로 찾아서 못 찾는 것이다.
찾는 자기가 바로 의식이다.
그러므로 회광반조/
광_ 빛 광자인데 이게 의식이에요.
/의식을 돌려서 거꾸로 비춘다./
의식을 돌려서 거꾸로 비추면
의식이 자기 자신한테 오지요.
회광반조.
여러분 회광반조,
마조한테 어떤 스님이 와서 진리를 물었어.
그랬더니 마조가 보니까
아직 이 사람이 약간 너무 긴장해 있어.
진리를 뭔가 거창한 걸로 생각해서 아주 긴장해 있어서
지금 말이 좀 안 들어가겠어.
“오늘 내가 피곤하니까 내일 다시 오게.”
그래서 그 사람은 너무 먼 길을 찾아왔으니까
하루 정도는 기다릴 수 있어요.
그래서 절하고 내일 다시 오라 하니까
절하고 물러나라
물러 나갈 때는 오늘은 끝났잖아, 일이.
그러니까 그 사람 마음이 긴장이 좀 끝났으니까
돌아나가면서 긴장이 풀어져 있잖아요.
그때 “어이 잠깐, 잠깐” 이랬다고, 문 나가기 전에.
지금 그 사람이 진리를 물었잖아요.
근데 보니까 이 사람이
말을 해줘도 지금 안 들어가겠어. 긴장해 있어서.
그래서 “오늘 내가 피곤하니까 내일 다시 오게.”
그래서 나가는 사람을
“어이, 잠깐 잠깐” 했다고
형사 콜롬보가 나가면서 돌아서서 “잠깐” 할 때
그 상대방이 방심하잖아요.
그때 딱 아주 아주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면
상대방이 버벅거리잖아요.
우리 그 장면 많이 보죠, 형사 콜롬보에서.
그것처럼 마조가 나가는 사람을
“어이 잠깐” 잠깐 했다고요.
그럼 돌아보잖아요.
딱 돌아보는 걸 가지고
“그것” 그랬다고요.
그러니까 돌아보는 걸 가지고
“뭐꼬?” 했다고요.
그때 돌아보는 자기를 가지고 손가락질을 하면서
“뭐꼬?” 할 때
딱 묻는 자기를 회광반조
한 번 딱 돌아보는 인연이 그때 맞으면
“이거, 지금 묻는 이거구나” 하고 딱 알아차린다, 이거예요.
그게 있어요.
전등록에 마조편에.
마조 스님이 그런 식으로도 가르치신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 여러분 저 보입니까?
“그것”
이런 말에서
어느 순간 한 번 회광반조가 일어난다 이거예요.
밖으로 묻던 것이 돌려서 자기를 한번 본다.
밖으로 묻는 그것이
그 밖으로 나가는 의식을 돌려서 자기를 한번 본다.
회광반조_ 거꾸로, 의식을 돌려서 거꾸로 비춘다
그러면 자기다, 이거예요.
그다음 단계의 공부는
그 의식이 분명하다면
당신이 의식을 깨달은 게 아니고
의식이 의식을 깨달은 겁니다.
이 말에서 한 번 당신이 떨어져 나가야 된다.
그러니까 지금 계속 제가
이 바뀌는 이야기를 지금 하고 있거든요.
의식을 깨닫기 전에는 아무개로서 의식을 찾았어요. 그죠?
그리고 깨달았어.
근데 깨닫고 난 다음에
깨달음이 참이 되려면, 대오가 되려면,
바뀌어, 입장이 바뀐다.
내가 의식을 본 게 아니고
의식이 나를 보는 걸로 입장이 바뀌는데
이걸 노력해서 되는 게 아니고
본래 그렇다는 것.
처음부터 그랬었다는 것.
언제나 의식이 나를 본 거지
내가 의식을 본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
그러니까 지금 의식으로서의 주체성 확립
이게 공부의 급선무예요.
의식으로서의 주체성 확립.
그리고 그걸 바탕으로
생각, 말, 행동, 생활 이거를 차례차례 바꿔 나가기
그래서 이것을 확립하기
확립하는 것을 정념, 정정진, 정정 이렇게 부른 거예요.
참 부처님
참 참 똑똑한 사람 같아요. 정말 똑똑한 사람 같아.
인간의 변화가 이런 식으로 일어난다는 걸, 설명을 잘하셨네.
/아무런 노력이 필요치 않다.
이렇게 보편적이고/
이런 말 음미해 보세요.
보편적이다. 또 평등하다. 평등하다.
/그리고 당연해야만 진리다./
여러분 진리는 이렇게 해야만 돼요.
오늘 또 한 가지 덧붙여서 말씀드리면
여러분, 아무것도 안 쓰니까 좀 섭섭하다.
지금 여러분이 정신은 나가지 않았는데
여기 왜 온지 아세요?
여러분 여기 왜 온지 아세요?
여기 안 오셔도 의식이라는 것은 알죠.
여기에 온 목적이 의식을 확인하러 온 건 아니에요.
그러면 대개 보면 뭘 하러 왔는가?
이게 너무 의식은 시시해서 뭔가 특별한 걸 구하러 왔어.
조금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근데 특별한 게 뭔지 아세요?
여러분이 뭔가 특별한 걸 구하고 계시는데
어떤 걸 구하고 계시는지 아세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특별한 체험을 구해요.
내가 체험해야만이 인정하겠다는
그 에고의 고집이 이렇게 세요.
근데 여러분, 보세요.
체험하고, 의식을 체험하는 거 하고
이때 체험은
뭔가 번개가 번쩍하고, 뭔가 쪼개지고, 뭐 어쩌고저쩌고
막 그런 신화가 있어요.
그런 데 대해서 솔깃한 게 있어요.
이게 중요해요?
아니면 지금 자기 생각 하나를 바로잡아 가는 게 중요해요?
아니면 이런 체험이 중요해요?
여러분 솔직히 어떤 게 중요해요?
정사유가 중요하죠.
여러분 체험이 중요합니까?
정사유가 중요합니까?
제가 드리는 말씀은 뭐냐 하면
실질적인 인간의 변화는
이런 번쩍하는 체험이 아니에요.
그거는 현장에서의 문제예요.
근데 바른 생각을 잡아 들어가서
내가 통째로 바뀌어 나가는
그것이 정말로 중요해요.
중요하지 않나요?
그러니까 여러분께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에요.
또 저도 저한테 당부하고 싶은 이야기예요.
어떤 체험이 중요한 것보다는
실제로 내한테서 일어나고 있는 이것이 바로잡아지는 것.
그러니까 사실은
행동이 바로잡아지는 게 제일 중요한 거예요.
행동.
근데 [행동]이 바로잡아지려면 [말]이 바로잡아져야 되고
그리고 [말]이 바로잡아지려면 [생각]이 바로잡아져야 돼요.
그러니까 저는 제일 중요한 포인트는
[정사유]에 있다고 봐요.
앉은 채로, 내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한 생각
그 한 생각이 바르게 되는 것
그게 진짜 소중하다고 생각해요.
그게 인간 변화의 가장 핵심이라고 봐요.
여러분, 진짜 뭐가 중요한가를 잘 생각해 보세요.
정말로 뭐가 중요하냐?
정말로 자기 눈이 바르게 되고, 생각이 바르게 되서
그러니까 실제로 이것이 일어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하여튼 공부가 딱 정말로 practical하게 reality로 딱 돌아와서
내가 이렇게 안목이 딱 서면
그다음부터는 일정표가 확립된다고 제가 말씀드리잖아요.
일정표대로만 걸어가면 되는 거예요.
진짜 공부는 간단 명료하다.
공부는 간단명료한 공부가 진짜다.
근데 하는 사람과 안 하는 사람은 하늘과 땅 차이다.
맞아요?
공부는 간단한데
실제로 하고 안 하고는, 하늘과 땅 차이다.
생각은 일어나.
근데 그 생각을 통해서
나의 사고방식이 바로잡히는 것
그게 정말 중요하다, 이거예요.
구체적으로 공부합시다.
/누구에게나
지금 현재 힘들이지 않고, 작용하는 이 의식이
천하의 귀중한 부처요, 성령이다. /
여러분 의식이 부처고, 의식이 성령이에요.
그러면 *~! 소리 들려요?
의식이 듣죠.
우리가 정견을 말하면 성령이 들어요.
불자한테는 부처가 들어요.
기독교인한테는 성령이 들어요.
그러면 지금 우리가 부처님을 친견한다고 할 때
부처님을 친견한다.
부처님을 친견하고 있어요. 이해돼요?
이게 의식의 체험이라고
진짜 체험.
*~! 듣는 이것이 의식이라고요.
듣는 이게 체험이라고
이게 의식 체험이라고요. 이해돼요?
그러니까 모든 것이 안목의 문제다.
안목이 바로잡아지면
체험이라는 것도 결국 바로잡아진다.
체험하지 않는 것이 불가능하다.
어떤 체험이냐?
지금 보고, 듣고, 하는 이것이 성령체험이다.
강의를 마치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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