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홍익학당
이렇게 해본 적이 없는 거 같아요. 맹자를 처음 전체적으로 제가 진심장 상하편만을 학당 내부적으로 강의한 적은 한번 있는데요. 이렇게 맹자에서 좀 핵심만 추려가지고 이렇게 하는 건 처음인데. 제가 맹자를 읽고 한 게 고등학교 때부터 이제 보긴 봤었죠. 그런데 대학 와서 정식으로 맹자도 배우고 했는데 맹자가 참 대단한 게요. 이 분이 요즘 언어로 말하면 명상의 정말 달인이에요. 이분의 정신 경지는 상당히 높다고 보고요. 동양에서 거의 성인 대우를 받는 분이라. 이분이 이렇게 한 마디 한 마디 그냥 하시는 게 아니라. 엄청난 정신, 어떤 내공을 바탕으로 얘기를 합니다.
그래서 지금 읽어도, 지금 오히려 명상이라는 게 세계적으로 유행이 돼서 지금의 안목으로 보면 더 놀라실 거에요. 그때는 이게 꼭 명상이다 뭐다 없이 그냥 얘기가 됐는데. 지금 이제 명상에 대해 좀 더 사람들이 많이 알게 되고 맹자를 읽으면 훨씬 더 감동적 일거라고 보고 맹자는 지금처럼 인도명상이나 다른 나라 명상하고 서로 다르게. 다른 나라 명상은 현실적 대안이 약해요. 뭐냐 하면요. 정치 잘하자. 어떻게 하자. 그런 상식적인 얘기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명상에 기반을 두고 거기서 현실적인 정치이론을 끌어낸다는 거. 요거는 유교가 제일 잘합니다. 전 세계에서. 유교가 2천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어요.
그러니까 우리 마음의 기본적인 구조. 그리고 아주 심층적인 구조. 더 내면의 깊은 마음까지 바라다보고 거기에 맞게 정치를 한다고 한다는 게 뭔지에 대해서 연구한건 유교가 전 세계에서 제일 잘합니다. 2500년 정도의 내공을 갖고 있죠. 불교나 이런 데는 아무래도 출가승들이잖아. 출가한 사람들끼리 문제정도면 됐거든요. 그런데 유교는 틀려요. 내가 공부하는 목적도 출세에요. 이 출세가 선비들은 세상에 나간다는 의미의 출세입니다. 그래서 나가서 뭐하느냐? 세상을 경영하겠다는 공부에요. 그 공부를 위해서 명상을 해요. 내 마음도 모르고 남의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느냐? 결국 유교의 핵심은 經世경세구요. 세상을 경영하는 거,
요 경영의 핵심은 결국은 마음의 문제입니다. 이번 총선도 있었고 하는데 결국은 백성의 마음을 얻느냐? 못 얻느냐? 에요. 그러면 자기 마음도 못 다스리는 사람이 백성의 마음을 얻기 까지 한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 그리고 이 마음도 두 가지가 있죠. 우리가 잘 알지만 소아적인 마음이 있고요. 누구에게나 있는. 대아적인 참나. 큰 하나님의 마음, 신성한 마음이 있고 되게 이기적인 마음이 있습니다. 이기적인 마음을 또 무시할 수도 없어요. 사람은 그거 없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그러면 이 마음도 알아야 되고요. 이거는 우리가 흔히 에고라고 하는 세계죠. 그리고 참나라고 하는 세계도 알아야 되요.
참나를 모르면 에고를 다스릴 수가 없고요. 에고를 모르면 우리가 서 있는 현실적 기반을 전혀 모르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 우리 수행하다는 건 에고와 참나의 어떤 균형을 잡는 작업이거든요. 에고 없는 어떤 성인은 없습니다. 어떤 성인도요. 자기가 아는 언어, 자기가 배운 어떤 지식 안에서 얘기를 합니다. 자기가 겪은 경험 안에요. 그래서 그 에고의 영역과 그 순후한 신성한 영역의 조화. 이러려면 인간에 대해서도 에고만 알면 안 되고요. 참나까지 알아야 되요. 이게 앞으로 21세기에 회사를 경영한다. 정치한다고 하면 이게 핵심입니다. 이거는 인류가 만년 뒤라도 똑같아요. 10만년 뒤라도 인류에서 이거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인류가 전체 한 2천년 3천년 살아온 결론으로 두 가지 정치 이론이 딱 붙었습니다. 20세기에. 뭐냐 하면 자연주의 쪽하고 사회주의쪽이요. 이거로 문제를 보세요. 거긴 둘 다 참나를 몰라요. 기본적으로 중세가 참나를 찾는다고 했다가 이상한 판타지에 빠져버린 경험이 있어서 근대에 오면서 참나나 이런 종교적인 건 완전히 한번 거부해 봤어요. 그랬더니 뭐가 남느냐하면 에고를 가지고 두가지극인 + - 극이 붙습니다. 현상계는 항상 음양이 있잖아요. 에고를 가지고 뭘 붙냐하면 에고의 욕망을 무조건 충족시켜주는 게 인류가 발전하는 길이다고 하는 자본주의랑. 에고를 억눌려가지고 조직을 위해.
결국 정치라는 건 사회가 잘 살기 위해서 모인 건데. 개인 간의 문제가 아닙니다. 정치는 그냥 개인의 문제가 아니에요. 지금 100명만 모여도 여기서 이제 트러블. 문제가 생기는 거를 치유하기 위해서 정치라는 게 나왔기 때문에. 정치는 기본적으로 그 단위가 사회단위에요. 사회 단위를 올바르게 다스리려면 개인의 욕구를 무조건 충족시켜줘라. 하나랑요. 하나는 개인성을 좀 내려놓고 해라. 이기적인 거를 버리게 해라. 자~ 에고를 하나 놓고요. 에고는 나만 아는 마음인데. 우리 마음 중에 나만 아는 마음을 갖다 놓고 그걸 잘해보라고 하는 거나, 그걸 눌러 라고 하는 거나 여기 답이 있나요? 에고에는 답이 없습니다. 참나에 답이 있죠.
우리 안에 있는 신성한 마음에 답이 있지 에고를 가지고 두 가지를 하는 거는요, 사회주의 식으로 접근하면 에고가 더 빨리 무너져요. 에고는 못 견뎌요. 그런 억압을. 사회주의가 훨씬 빨리 무너졌죠. 자본주의가 오래가요. 왜냐? 에고를 충족시켜주는 거는 계속 변화하면서 또 다른 모습을 띄어요. 빨리빨리 개인의 욕구를 자꾸 부추기고 충족시키고 하면서 커나가기 때문에. 그런데 이것도 답이 아니라는 걸 다들 아실 거에요. 이렇게 에고를 계속 부추기는 거로 답이 안 된다. 그러면 이게 하나의 현대의 선문답이고 화두입니다. 에고를 죽일 것이냐? 살릴 것이냐? 라고 만약에 여러분에게 던졌을 때 여러분이 에고의 차원에서는 답이 없냐? 아니죠.
양심대로 하면 된다. 참나대로 살면 된다고 말하실 수 있고 그렇게 살 수 있는 거를 보여줄 때 이 문제가 풀려요. 21세기의 정치의 핵심은요 결국은 인간의 심오한 영역까지 이해하고 인간의 현실적인 영역을 거기에 맞춰서 조화시킬 수 있느냐? 이걸 장장 자기 몸 안에서 못하면 요. 이건 어렵지 않죠. 자기가 해 볼 수 있잖아요. 여러분의 이기적 마음을 여러분 안에 있는 양심의 마음으로 조화를 시키고 있으신가요? 균형을 잃어버리지 않으시나요? 우리나라 헌법에도 있는 거에요. 헌법에 좋은 말 다 있어요. 사익을 얼마든지 추구하라. 단 공익에 저촉되지 않게 하라. 어려운 얘기 아니죠. 공익이라는 건 누가 공익을 따지나요? 우리안의 참나는 공익을 따져요. 왜냐하면요 여긴 대아적이기 때문에. 보세요.
마음은 어떻게 나 마음을 유리하게 합니다. 그런데 대아적은요. 나를 우주적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나한테 유리하다는 건 곧 모두에게 유리한 마음이죠. 공익을 따지는 마음하고 순수하게 내 몸뚱이만 위하는 마음이 있어요. 사익. 이 두 가지 마음이 인간한테 있기 때문에 이걸 어떻게 조화를 시키느냐? 여기에 대해서 맹자가 2400년 전에 나름의 답을 내렸던 겁니다. 그게 타당하기 때문에. 역대로 맹자는 항상 정치인들한테 필독서였어요. 조선시대도요. 조선시대 벼슬 하려는 사람들은 맹자를 삼천독 사천독하고 나갑니다. 예. 그래서 맹자가 내입에서 맹자 말이 나오기 시작할 때 정치를 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고 그래요.
그래서 맹자 읽은 사람하고 말하지 마라 그럽니다. 읽어보시면 알겠지만, 맹자가 어떤 동양에서 제일 말 잘하는 사람이에요. 그 양반이 사단을 가지고 남을 지적하고 다녀요. 왕들이 죽어납니다. 맹자랑 만나면. 나 여자 좋아해서 왕도 못해. 아~ 여자 좋아하지 않으시는 줄 알았습니다. 걱정했습니다. 여자 좋아한다면 왕도 할 수 있습니다. 여자 좋아한다면 백성들도 여자 좋아하는 마음을 잘 아시겠네요. 즉 왕도는 작은 이익만 자기 이익만 따지는 마음을 확장시키기만 하면 되요. 왕도는. 에고는 자기 좋아한 것만 알거든요. 왕들은 여기다 뭐만 더 보태냐 하면 내가 이렇게 좋으니 남도 좋겠구나. 까지 가면 왕도가 되요. 요건 사단이거든요. 요건 참나의 마음입니다.
내가 술 좋아한다. 이건 에고에요. 그런데 그럼 내가 술꾼들 마음을 다 알겠더라. 여기는 확장이 되요. 나라는 게 커집니다. 거기에는 희망이 생기고요. 거기에는 공익이라는 게 들어설 여지가 있어요. 그래서 참나의 마음. 제가 사단 노트를 보급했죠? 사단 아시죠? 상대방 심정은 어떨까? 상대방을 이해하는 훌륭한 도구가 되요. 내가 좋아하는 욕망들이. 그래서 욕망들을 자신의 욕망들을 정확히 이해하고 이것을 대아적으로만 활용하실 수 있으면 여러분은 이미 성자고요. 그런 분이 동양에선 군자고 성자고. 가장 그거 잘하시는 분이 통치하는 것을 왕도정치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왕은 어려울 게 하나도 없어요. 맹자입장에서는. 국민들이 술 좋아하는 마음을 잘 이해하고 있고, 여자 좋아하는 마음, 돈 좋아하는 마음을 다 이해해서 그 마음을 적절히 잘 풀 수 있게 도와주는 거에요. ‘나’라도 내가 백성이라도 임금이 그래주면 좋겠다는 것만 해주면 되요. 보통 반대로 하죠. 국민이 좋아하는 걸 리더가 싫어하고요. 국민이 싫어하는 건 또 악착같이 좋아합니다. 리더다. 이런 경우 동양에서는 왕도의 정반대입니다. 임금이 리더가 리더 같지 않은 리더다. 맹자를 읽으면 그런 리더는 끌어 내려라. 까지 가요. 맹자는 프랑스혁명의 근거가 됐던 사회계약론들이 있죠.
아주 서양에서 사회를 변형시켰던 거대한 이론인데. 그 이론들을 맹자는 일찍이 동양에는 묵자도 그렇고 맹자도 그렇고 그런 주장을 다 해요. 임금이라는 거는 사회계약론 아시죠? 계약이 뭐냐 하면요. 왕이 절대적인 신성영역이라고 보고 살다가. 프랑스에서요. 사회계약론이 나오면서 가정을 한 겁니다. 실제 우리는 사회 계약을 한 적은 없죠. 계약은 한 적은 없는데 여러 사람이 모이다보니까 개인들이 모이다보니까 살기 힘들어져서 계약을 했다는 겁니다. 리더를 하나 뽑고 네가 우리를, 네가 반장해줘. 하고 계약을 맺었다는 게 사회계약론입니다. 즉 만약에 계약을 맺었으니까 그럼 백성하고 국민하고 임금하고는 계약관계라는 겁니다.
이 사람이 만약에 계약을 위반하면요 몰아낼 수 있는 근거가 생기죠. 저항권이 생겨요. 계약위반이니까. 왜? 이런 마인드가요. 서양에서는 엄청난 아이디어였습니다. 이것 때문에 혁명이 일어나요. 프랑스 혁명이. 루소나 로크의 이런 사회계약론. 홉스에. 자~ 그런데 동양에서는 묵자도 이런 얘기를 했고요. 맹자도 이런 애기를 주장하는데 계약론이라고는 안하지만, 뭐냐 하면요 요즘으로 치면 뭘까요? 일종의 계약이죠. 고객과 정치는 서비스에요. 국민은 고객이고요. 계약관계죠. 일종의. 만약에 서비스가 부실이라면 내가 돈 냈는데. 고객, 백성들이 낸 세금으로 리더가 월급 받고 하는 거죠. 士農工商사농공상 중에 士사의 물입니다.
士사는요 농공상이 실질적으로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잖아요. 이 사람들이 넌 일하지마라 월급 줄 테니까. 우리를 다스려줘라. 라고 계약한 겁니다. 동양에서는 이런 계약 관계로 봐요. 굳이 딱 계약이라고 말은 하지 않지만 읽어보면 계약관계에요. 만약에 농공상이 세금을 냈는데 사가요. 만약에 생산도 안하는 사람이. 통치를 제대로 안 해주면 계약위반이죠. 그랬을 때 맹자는 쫓아낼 수 있다는 이론을 제시해요. 이것 때문에 대게 혁명적인 이론이라 조선에도 그렇고 맹자 자체는요. 널리 보급하는 걸 꺼려합니다. 맹자 너무 읽고 그러면 역모죄로 어디, 투서 나가기 딱 좋겠죠.
그래서 맹자는 일본도 확실히 조사는 안 해봤지만 메이지유신 때까지 맹자를 못 읽게 했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뒤집어 버린다는 발상이 있어요. 조선시대 정약용이 맹자의 이 구절을 응용하면서 탁론이라는 걸 써요. 탁론이라는 거는 은나라 탕왕이 그전 은나라 전이 하나라죠. 하나라 걸왕을 통치를 못한다고 쫓아내고 은나라를 세운 거에요. 그러니까 유교에서는 일찍이 쿠데타 했던 왕들이 성인왕으로 추종을 받아요. 추종을. 그렇죠. 그 대표적인 왕이 탕왕과 은나라 말에 주왕이 깽판을 치니까 주나라 무왕이 쳐버리죠. 주 무왕과 은 탕왕이 대적 유교에선 성인들이거든요. 성인 왕들.
정치 정말 잘하는 왕들인데 기존 자기 주군들을 쫓아냈거든요. 그럼 이건 하극상이잖아요. 여기에 대해서 맹자는 옹호를 해요. 그거 하극상이 아니다. 왜냐? 이런 관계가 있기 때문에. 서비스가 엉망이면 고객이 업체 바꿀 수도 있다. 이겁니다. 이걸 역성혁명이라 그래요. 성을 바꾸어 버리니까요. 이씨왕조에서 만약에 다른 왕조로 바꿔버리면 성을 바꾼 거죠. 그래서 역성이라고 그럽니다. (바꿀 易역)자해서요. 역성. 역성혁명을 합니다. 성을 바꿔버린다는 거는. 성이 바뀌는 경우는 보통 두 종류에요. 요임금이 자기 아들한테 안주고 순임금한테 주는 경우는요. 훌륭한 사람한테 주는 거죠. 이거는 선양이라 그래요.
이런 식으로 성이 바뀌거나 아니면 방벌이라 그래서 쫓아냅니다. 쿠데타입니다. 방벌은 구테타구요. 중국사에서 보면 두 가지인데요. 역성이 가능한 경우가 우리 참선 禪(선)자 있죠? 참선 禪(선)자가 아니고 이런 제사 지낸다. 이런 의미 인데 이런 경우에 씁니다. 禪讓(선양), 이러면 요임금이 순임금한테, 자기 아들한테 안주고요. 나라에서 제일 도덕 잘 된 사람을 뽑아다 줘요. 이런 식으로 바뀌던가. 아니면 放伐(방벌)이라고 신하가 말이 안 되는 전혀 계약을 위반하는 서비스업체를 갈아치우는 게 방벌입니다. 요즘은 아주 좋죠. 투표를 통해서 방벌 할 수가 있어요. 마음에 안 들면 업체를 바꿀 수 있습니다.
요즘 시대랑 3천년 전이나 인간의 조건은 똑같아요. 요즘은 민주세상. 이렇게 생각하시면 안 돼요. 그때는 그냥 우리가 알기로 임금이면 무조건 독제하고 이런 게 아니고 인간은 기본적으로 임금이 좀 이상하면 반드시 어떻게든 없애요. 그 판을 깨요. 어떻게 해서든 깹니다. 그러니까 유교는 기본적으로 전제하고 맹자 같은 경우는 그걸 기다리지 말고 깰 수 있으면 빨리 깨버려. 하는 얘기까지 하고 있는 겁니다. 이 정도 감 잡으시고. 자~ 정치얘기를 좀 했는데. 요런 게 요즘 우리 상황에 시사하는 게 대게 많아요. 그래서 그런 얘기는 제가 차차할게요. 일단 동양에서 정부를 바라보는 입장이 이런 식입니다.
역성, 왕조도 바뀔 수 있어요. 얼마든지 바뀔 수 있어요. 그러니까 한 왕조가 먹어서 오래가야 된다. 이거는 오히려 떨어지는 사회에요. 이 사회는 아무리 잘해도. 동양은 요즘 나올 수 있는 모든 정치 이론은 그때 다 나왔어요. 서양에서 말하는 아까 사회계약론도 나왔고. 우리 흔히 大同(대동)사회 얘기하죠. 그 다음 小康(소강)사회라는 게 있어요. 중국은 지금 소강사회를 주장합니다. 요것도 알아두면 좋아요. 중국은 자기들이 지금 소강사회. 대동은 아직 아니고요. 소강을 지향해요. 요걸 계속 언론에다 홍보합니다. 소강, 대동은 그분들이 약간 지금 정확하게 쓰시지는 않는 건데.
대동은 왕이 그다음 왕한테 정권을 넘길 때 요 왕이 성하고는 상관없이 꼭 달라야 되는 건 아닙니다만, 유능한 사람한테 주는 게 대동사회에요. 천하를 내 거로 생각을 안 해요. 만약에 이씨왕조가 다스렸다면 어떤 걸까요? 소강사회에요. 소강은 왕가 거에요. 천하가. 천하가 왕가 거면 소강사회이고, 천하에 주인이 따로 없으면 대동사회에요. 이해되십니까? 요게 예기에 나오는 겁니다. 요즘 기업으로 예를 들면 뭘까요? 대동사회는? 전문 경영인이 전문 경영인한테 계속. 전문 경영인이 요임금이 그랬어요. 요임금이 자기 아들한테 아주고 순이라는 사람이 그 나라에서 제일 현명하다는 걸 알고 들여다가 궂은일부터 다 시켜봐요.
험한 보직도 줘보고. 하나하나 올라가서 마지막에 교육부 장관도 하고 마지막에 재상이 되어가지고 요임금 대신 나라를 다스려요. 그다음에 거기다가 자기 딸 둘을 줘요. 결국 인척관계가 되기는 했죠. 사위가 되기는 했지만. 이런 식으로요. 지금 만약에 회사에서 사원으로 들어가서 커 올라가가지고 사장이 됐다. 거기에 해당 된다고요. 선양이라든가 대동사회는 그런 식으로 정권을 넘겨요. 소강은 자기 아들한테 주죠. 자기 핏줄한테만 줘요. 천하에 그 나라가 누구 건지가 분명히 있는 경우에요. 자~ 이런 것도 지금 세계사적으로 분명히 역사는 거의 최근까지 다 군주제였죠. 어느 나라 건. 저걸 인정하셔야 되요.
우리 민주제만 훌륭한 시스템. 이렇게 생각하지 마시고요. 오늘 이 강의 들으실 때는 정치에 대해서 원형을 들어 갈 테니까. 그런 생각을 빼시고요. 시대나 이런 한계에 따라서 다양한 모습으로 정치는 나타납니다. 군주가 더 나을 때도 있어요. 왜냐하면 조선시대에 만약에 지금같이 전문 경영인한테 넘긴다고 하면 대동도 상황이 돼야 디거든요. 대동을 조선시대 적용했으면 더 나았을 거 아니냐? 백성이 투표하고 하면 더 나았을 거 아니냐? 일단 백성이 투표할 정도의 수준이나 그런 교육을 받을 수 있을지가 의문이고. 두 번째가 뭐냐 하면 그렇게 됐다면 조선은 500년 간 피로 얼룩졌을 수도 있어요.
누구나 왕이 될 수 있다면 난리가 납니다. 청나라가 아들 중에 아들이라는 제한이 있습니다. 동이족 중에 북방 민족이다 보니까 이 양반들은 중국은 장자한테 주는데 동이족들은 장자한테 안줘요. 현명한 사람한테 주는 가풍이 있어요. 유목민들은 아들한테 줬다간 큰일 나요. 한 부족이 통으로 날아가요. 아주 험난하기 때문에 아주 유능한 사람을 골라서 줍니다. 요게 동이족 전통에 나온 게 선양이에요. 중국식은 농경사회에서는 주로 장자한테 줍니다. 사회에 별 이변이 없거든요. 그래도 아무 문제가 없어요. 제사지낼 사람한테 주면 되요. 그런데 북방의 유목민족은 오늘 여기서 양떼나 이런 거 끌고 어디로 가느냐에 따라 부족의 생사가 갈려요.
거의 하늘의 계시 받는 아파치급들이, 그 정도 샤먼급들이 리더를 해야 돼요. 안 그러면 큰일 나요. 그러니까 우리 동이족에서는 단군이라든가 머리가 제일 밝은 사람, 도덕적으로도 뛰어난 사람한테 임금 자리를 넘기는, 전문경영인 시스템에 가까운 게 있어요. 요게 대동이구요. 중국은 주로 소강을 했어요. 고대의 동이족들이나 대동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주로 우리나라로치면 대기업들의 전문경영인들의 시스템은 대동의 가깝고 우리나라 대통령제도 소강보다는 대동에 가깝다는 건 아시겠죠? 그런데 대동은 아니에요. 왜냐하면 전문 경영인제도라고 대동이 아니고요. 그게 끝내주게 잘했을 때 대동이라고 하는 겁니다.
전문경영인이 더 위험한 게 있습니다. 한 나라를 기업을 맡았는데 자기 월급만 만약에 올리려고 하면 어떻게 할까요? 분식회계로 하고 해가지고 답이 안 나오죠. 대동은 그런 게 아니에요. 전문 경영인이라 하더라도. 보세요. 동양 정치론에서는 요 그림만 하나 잘 이해하시면 됩니다. 동양은 우리 민족의 알 사상이라는 건데. 모든 주변과 중심이 있죠. 모든 일에는. 인간도 그렇고 우리 마음도 그래요. 주변이 있고 중심이 있고. 중용 기억나시죠? 중심과 조화. 요게 동양철학의 핵심입니다. 중심이 확고하고 주변과 조화를 이루는데 동서남북 사방과 조화를 이룰 때 이걸 황극이라 합니다.
정조가 항상 이루고 싶었던 건데 임금으로서 꼭대기요. 동서남북에서 나를 본 따서 배우려고 하고 이 사람은 도덕적으로 완결성이 있어야 됩니다. 도덕적으로 훌륭해야 사방에서 이 사람을 배워요. 이런 리더입니다. 자~ 보세요. 그런데 이런 리더가 되려면 지금 우리나라도 똑같아요. 이런 리더가 다스리는 세상이 대동세상이고 맹자가 말하는 왕도, 왕의 길을 걷는 세상인데, 진정한 왕이라면 이 사람의 이해관계는 어때야 될까요? 주변과? 중심의 이해관계가 주변의 이해관계랑 같아야 되요. 백성이 좋아하는 걸 같이 좋아해주고 백성이 싫어하는 걸 같이 싫어할 때 이 사람은 리더의 자격이 있어요. 동양에서는.
그러니까 그런 사람이 자기 아들한테 안주고 또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한테 줬을 때 대동사회입니다. 소강은 이 사람이. 그러니까 역사적으로 대동이 아니면 차라리 소강이 나은 이유가요. 한 왕가라고하면 최소한 왕은 이 전체를 내 나라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거기까지 내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전문경영인보다 더 책임의식이 더 있어요. 지금 기업들이 전문경영인제도 한때 유행 불다가 잘 안 되는 이유가 전문경영인 줬더니 진짜 자기 이익만 챙기는 사람들도 많더라는 거에요. 오히려 사주가 경영을 하면 전체가 내 회사니까 한 번 더 봐요. 신경을 더 쓰고요. 예. 그러니까 역사적으로 군주제가 전 세계적으로 많이 나왔던 이유는 이것 때문에 그렇습니다.
한 왕조한테 너희가 너희 거라고 생각하라고 주는 거에요. 국민한테도 유리하니까 일어났던 일입니다. 옛날은 군주제인데 민주를 안 해서 옛날 거 역사는 볼 것도 없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안 된다는 겁니다. 역사적으로 아주 훌륭한 제도에요. 군주제도 하나의. 왕가한테 맡기고요. 그 왕가를 계속 신하들이 다그쳐가지고 엄한 길로 못 가게 만드는 방식입니다. 그러면 왕 될 사람이 정해졌기 때문에 쿠데타할 생각을 안 해요. 정권이 안정성을 갖게 됩니다. 만약에 누구나 왕이 된다면 청나라가 북방에 있을 땐 괜찮았는데 중국 먹고 나가지고 왕자들 중에 누구나 왕이 될 수가 있었잖아요. 왕자의 난이 끝도 없이 일어납니다. 형제간의 살육이. 태종 이방원 같은 일이 끝도 없이 일어납니다. 청나라에서.
왜냐하면 저도 될 수 있거든요. 그러니까 13왕자. 가만히 있다가 주변에서 또 부추겨요. 너도 할 수 있지 않느냐? 그러면 일이 왕자간의 난이 끝없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니까 한 왕조한테 맡기고 장자한테만 주겠다든가 이렇게 역사적으로 나오는 것도 다 그게 필요해서 나오는 겁니다. 이걸 좀 이해하셔야 되요. 그래서 동양이나 서양이나 똑같았어요. 다 군주로 이렇게 오다가 서양에서 먼저 사회계약론이 나오면서 임금이 계약을 안 지키면서 백성들이 몰아낼 수도 있지 않아? 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겁니다. 동양은 맹자 때 이미 이 얘기가 나온 겁니다. 그 예를 탕왕과 무왕을 들면서 ***면은.
이 임금의 역할은 전체의 이해관계를 자기의 이해관계로 삼아줘야 되잖아요. 그 얘기는 대게 우리 식으로 항상 얘기하면 양심적인 리더죠. 사단이 충만한 리더. 내가 당해서 싫은 건 남한테 안하는 리더. 백성이 한명이라도 그 유명한 중국의 제상이 한 말입니다. 은나라 때 제상이요. 백성이 한명이라고 굶고 있으면 내가 그 사람을 도랑에 밀어 넣은 것같이 느껴진다. 이 정도 감각이 발단된 사람들이 리더를 했어요. 그러니까 됐잖아요. 그런데 계약위반이 일어나요. 먹튀죠. 고객이 돈을 줬는데 서비스가 형편이 없고 연락도 안 돼요. 여러분 지금 당하시는 일입니다. 투표 날만 여러분 가서 사실은 행사하시지 투표 끝나면 연락 안 돼요.
막 와서 저희 제품을 써주시면 정말 뭐~ 하다가 그러면 그렇게 한번 해보든가. 하고 연락이 안 되네. 도장 찍고 나서 연락이 안 돼요. 지금 이걸 민주라고 생각하시면 미래가 없는 겁니다. 지금 민주가 제대로 안 되고 있어요. 전혀. 동양의 정치이론에서도 매울 건 배워야 된다는 겁니다. 이게 우리가 투표 하냐? 안하냐를 가지고 민주랑 군주를 나누지 마시고요. 더 크게 인간의 삶을 가지고 보시면 결국에는 훌륭한 정치는 언제 이루어지냐 하면 국민들이 투표를 하느냐 안 하느냐는 부수적인 문제에요. 이 리더가 국민의 이익을 자기 이익으로 생각해 주냐? 안 해주느냐? 이게 중요해요. 예.
한 왕조가 경영하더라도 그렇게 경영하면 잘해요. 이 대표적인 인물이 세종입니다. 세종은 소강 쪽이죠? 대동 아니죠. 이씨왕조의 인물이었잖아요. 그러니까 내 나라라고 생각하니까 백성 전체를 내 사람이라고 생각한 거에요. 그러니까 측은지심이 백성전체까지 가니까요. 글자를 모르는 게 너무 안타까워서 글자를 만든 거에요. 자기가 아주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었다는 그 말을 듣는 분인데. 그렇게 아파가면서도 그 한글을 만들어가지고 줬다고요. 이해되시죠? 요런 게 가능합니다. 소강에서도 왕도를 할 수가 있고 대동에서도 왕도를 할 수 있어요. 대동과 소강의 차이는 아들한테 계속 이어지느냐? 유능한 사람한테 이어지느냐의 차이뿐입니다. 소강에서도 얼마든지 왕도정치가 나올 수 있어요.
그러니까 만약에 지금 기업이라 하더라도 경영자가 만약에 뛰어나면 자기 직원이나 고객을 내 식구처럼 생각하고 만약에 경영을 한다면 그 사람은 왕도를 할 수가 있어요. 소유자 경영이라 하더라도. 전문 경영이라 하더라도 자기연봉 올릴 생각만 하고 있다면 이거는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런 데 여기에 결정적인 차이가 있는 게 아니고, 지금처럼 백성이 투표를 하냐? 안하냐? 이거 문제가 아니에요. 실제로는. 그래서 동양에서 제가 이제 앞으로 여러분이 民主민주개념을 하면 서양식 민주개념은 뭐가 꼭 들어가죠? 백성에 의한 이라는 게 들어가죠. 백성이 실제로 뭔가 투표를 해야 된다.
동양은 이 개념이 별로 약했죠. 대신에 민주라는 거의 본질은 똑같다는 거에요. 투표를 하냐? 안하냐가 아니라 결국은요. 정치라는 것 본질은 민이 원하는 걸 해줘야 끝나요. 민을 만족시켜야 되는 서비스이기 때문에 민이 제일 주인이라는 거엔 똑같다는 거에요. 이해되십니까? 서양은 고객이 가가지고 도장을 한번 찍고 오는 거기까지 포함해서 민주라고 생각하는 거고. 동양은 더 역사적으로 거대한 민주죠. 그 서비스 업체가 고객을 진짜로 생각하는가? 그러면 왜 이 얘기를 제가 드리냐 하면 동양의 민주는 백성이 주체가 아니었다. 이런 말을 자꾸 해요. 서양의 민주는 백성이 주체인데.
선거 날 가서 한번 찍고 오는 게 주체입니까? 아니죠. 말에 속지 마시라고요. 실상은요. 이런 동양식 민주가 훨씬 더 민주일수 있다고요. 왜 그러냐 하면 보세요. 고객이 서비스를 맡겼는데. 자꾸 고객이 찾아가서 자꾸 난동을 부려야 그 민주라고 생각한다는 거 자체가 이미 서비스가 잘 안 이루어지고 있다는 걸 전제하죠. 서양식 이론은요. 서비스 업체는 어차피 날 강도라는걸 전제하고 시작한 겁니다. 그러니까 몇 년 만에 반드시 바꿔줘야 된다. 이해되십니까? 만약에 그 사람이 아주 그 어떤 전문경영인이 주주들한테 배당을 끝내주게 하면 그 경영인을 바꿀 필요가 없죠. 현대자본주의 기업들이 옛날 동양식으로 하고 있어요. 지금.
순임금이 몇십년 정치를 하고 요임금이 몇십년 정치를 하고 비민주적이네. 이렇게 이해하시면 안 돼요. 첨단자본기업들이 하는 식이에요. 배당만 잘해주면 그 경영인을 내려오라고 할 이유가 없어요. 2년 만에 3년 만에. 4년 만에 내려오라고 할 이유가 없어요. 왜냐? 주주들 손해니까요. 고객들 손해면 절대 그렇게 안합니다. 그러니까 몇십년 정치했냐가 문제가 아니에요. 그동안 실적이 고객들을 위해서 했느냐가 문제죠. 이런 식으로 좀 본질적으로 들어가 보세요. 지금 자본주의 기업들은 다 동양 옛날 고대식으로 하고 있으면서 무슨 이론만 가면 입에 달린 듯이 동양은 군주사회였고, 미개했고, 서양은 민주라서 서양의 민주가 나와 가지고 서양이 더 개발됐고. 이런 거 아닙니다.
이런 사회계약론 발상만 해도 맹자가 훨씬 몇천년 더 앞서서 얘기를 이미 다 했던 것들이고 동양에서는 핵심을 이렇게 본 거에요. 민이 투표 하고 안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이 서비스가 왕이 민심을 못 읽어내면 이미 자격이 없고 쫓아낼 수도 있고 얼마든지 이 사람은 왕으로서의 이미 자격을 잃게 된다는 거에요. 요즘보다 더 무서운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 한번 맹자를 읽으면서 제가 이렇게 한번 개론만 말씀드렸습니다. 이런 얘기를 하나하나 원문 보면서 다시 할게요. 그러니까 만약에 요즘 투표라고 하실 때 어떤 생각으로 어떤 리더를 뽑으셔야 되는지. 그리고 정당들도 이런 원리를 알고 진짜 민주주의를 하셔야 되요.
진짜 민주는 자꾸 와서 나 찍어달라고 하는 거는 자기 위한거지 민을 위한 게 아니죠. 이미. 여러분 이미 당하고 있다는 거에요. 민주라는 허울에 또 당해요. 내가 주인인양 처음에 얘기를 한다는 거죠. 도장 찍기 전까지만. 찍고 나면 연락이 안 된다는 겁니다. 서비스는 뭐~ 개판이 되고. 내려오라고 할 수도 없고. 왜냐? 이 계약은 대게 무서운 계약이에요. 동양이 왜 이렇게 연구를 했을까요? 역대 철인들이. 이런 군주나 이런 그 우리가 요즘 생각하는 민주개념을 초월해서 진짜 민주를 연구한 이유가 결국엔 리더가 국민들을 갖다가 자기 자신처럼 여겨주지 않으면 어떠한 형식이든지 정치는 개판되게 되게 되어 있어요. 이해되십니까? 예.
그러니까 결국에 교육론이 대게 중요한 이유가 동양철학에서는 그런 리더를 길러낼 수 있는 방법이 있어야 되요. 나라 전체를 나로 여길 그런 사람 어떻게 길러낼 수 있을까요? 이게 답이 안 나오면 불가능한, 정치라는 건 언제고 개판일 거라는 걸 얘기하는 겁니다. 지금 나와서 이번에 선거해서도 얘기한 사람들이 다 얼굴론 얘기하지만 그 진심이라고 느껴지시나요? 정말 당신을 위해서 제가 나왔습니다. 고말이 말 안 해도 진심으로 느껴질 정도의 감동을 주면 그런 업체로 우리가 진짜 국민을 감동시킨 업체가 분명히 있다면 선거에서 이기겠죠. 그런 식으로.
그러니까 지금 정치하는 분들도 꼭 이걸 들어서 어떤 식으로 국민의 마음을 얻어야 되는지. 맹자는 한마디로 민심만 얻으면 그게 그 왕도정치를 하려면 민심을 얻어야 된다고 그래요. 그래서 백성의 마음을 읽어내야 되는데, 민심은 동양에서 천심이죠. 그러니까 동양에서는 이런 말을 요즘 국민이 투표해야 된다는 말, 동양에서는 저렇게 표현해요. 하늘이 천명을 내렸다. 그 임금한테. 그러면요. 요게 王權神授說왕권신수설같죠. 동양은 안 그래요. 동양 이론은 하늘이 그 사람한테 왕이 천자가 되라고 한다는 얘기를 다른 표현으로 ‘하느님이 천명을 내렸다.’ 그래요. 그 사람한테.
그런데 민심은 천심이라. 천명을 내렸단 증거는요 민심이 그 사람을 지지해줄 때 천명이 내렸다고 표현해요. 이해되십니까? 결국은 투표로 이겼을 때 요즘 식으로 하면 선거를 해가지고 그 사람이 가장 많은 표를 앞도적인 표를 얻었을 때 동양식으로 표현할 때는 천명을 얻었다라고 하는 겁니다. 하늘이 그 사람을 지지하고 있다. 천명을 읽을 길이 없으니까요. 민심이 천명의 그 baromete바로미터입니다. 민심이 좋아해주느냐? 진심으로. 여기선 진심입니다. 민심을 얻는다는 거는 백성의 양심, 아까 말씀드렸지만 백성 안에도 욕심이 있고 양심이 있잖아요. 뉴타운 해줄게 하고 얻은 게 아니고 그 양심까지도 포함해서 민심이 지지를 한 겁니다.
백성의 양심에 저 사람은 진짜같다라고 그 내면에서 딱 만족을 일으켰을 때. 저 사람은 정말 그 우리를 이해하는 사람이다. 라고 그 사람 마음을 진심으로 얻었을 때 천심을 얻었다고 보는 겁니다. 하늘도 그 사람을 지지했다. 여기에 동양의 정치이론입니다. 이게 근원이라는 거에요. 투표하고 안하고는 시대마다 또 제도는 바뀔 수 있어요. 앞으로 물질문명이 발달되면 이거는 물질문명의 발달되기 전에 힘들었던 겁니다. 요즘은 앞으로 전자투표도 점점 더 쉬워지겠죠. 그러면 앞으로 그런 투표문제는 별게 아니게 될 거에요. 투표의 방식이나 이런 제도는. 문제는 이겁니다. 여기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있는 정치가들이라야 백성을 하느님처럼 위하라는 얘기거든요.
백성을 화나게 하면 이런 얘깁니다. 제가 한마디를 해가지고 제가 대통령인데 한마디를 해서 국민들이 다 화가 났어요. 그럼 저는 천명을 잃어버린 거에요. 동양에서는요. 하느님이 화를 내고 있는 거에요. 민심은 천심인데 돈 준다고 했다 안줘서 화냈다. 이런 백성의 욕심부분만이 아니고 백성의 양심을 건드린 거에요. 백성들이 저건 아니지 하고 백성이 화가 났다는 거는 우리 사단으로 말하면 수호지심을 건드린 거잖아요. 양심 중에. ‘이건 아니지’ 하는 이걸 자꾸 건드리는 임금은 천명을 잃어버린 겁니다. 즉 그 임금은 그게 정도가 심해지면. 백성 중에 그 사람을 백성 중에 현명한 사람이여야 겠죠. 더 도덕적으로 완성된 사람이 그 사람을 끌어내도 할 말 없다는 걸 맹자는 전제하고 있습니다.
이해되십니까? 그래서 이건 아니 2300년 2400년 전 얘기인데 그 얘기랑 요즘 얘기를 섞어서 이해해 보시면 좀 도움 되실 거 같아요. 자~ 이 얘기를 맹자 얘기로 볼게요. 자~ 먼저 제가 아까 말씀드렸듯이 맹자가 이걸 잘하려면 사람이 군자 이런 임금 노릇할 수 있는 정도 사람을 군자라고 하는데, 군자를 길러내려면 방법이 있어야 되잖아요. 요걸 제가 우리 홍익학당에서 제가 늘 학당분들을 뵙는 분들한테 제가 강조 드리는 건데 存心(존심). 또 뭐죠? 요거 하나 적어두시죠. 한문으로 표현해서 죄송한데. 제가 우리말로 또 풀어드릴게요. 일단 쉽게 한눈에 보이시라고.
뭐냐 하면 요게 存心존심_깨어있으라는 거에요. 리더는 첫 번째로 깨어있을 수 있어야 됩니다. 자기 내면에. 보십시오. 에고의 마음이 있으면 에고의 내면에 있는 이 참나의 마음을 늘 접속할 수 있어야 되요. 요게 깨어있음이고 養氣(양기)_이거는 늘 에너지 충만, 기운 충만입니다. 맑은 에너지가 맑은 어떤 에너지가 흘러야만 이런 참나가 더 파워풀해지거든요. 그리고 窮理(궁리)_통찰이나 지혜입니다. 지혜를 지르셔야 되고. 力行(역행)_실천력이고. 弘益(홍익)_널리 자비를 베푸는 겁니다. 사랑. 요 얘기를 강조 드리는 게 제가 동서양 고전을 다 봤더니 우리가 사람이 인격적으로 성숙된다고 할 때 필요한 덕목들이 이렇게 나오더라는 거에요.
存心(존심)_명상의 영역이죠. 내면을 순수하게 하는 내면 우리 안의 본래순수한 자리를 늘 찾을 수 있는지. 내 안에 있는 신성과 하나 될 수 있는지. 그리고 養氣(양기)_늘 에너지가 충만할 수 있는지. 窮理(궁리)_선악을 분명히. 지혜는 선과 악을 갈라보는 힘이죠. 지금 제가 이 말을 하나 할 때도 요게 옳으냐? 그르냐? 판단이 서야 말이 나가거든요. 말을 할 때도 어디까지 말하고 끊을 거냐? 요 선악판단 문제가 지혜입니다. 力行(역행)_선하다고 판단한 걸 실제로 하는지. 악하다고 판단한 걸 실제로 안하는지. 실천력이고요. 弘益(홍익)_자비와 사랑은 그게 실제적으로 남한테 얼마나 도움이 됐는지에요. 네.
요거 잘하시면 여러분은 전 세계 어디가도 그분은 인격자입니다. 이걸 잘하시는 분. 전 세계에서 다루어지는 명상이나 이런 바이블이나 철학에 나오는 인격의 요소들을 이렇게 정리했는데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는 이유가 맹자가 이 얘기를 해요. 맹자가 이걸 다 얘기해요. 그래서 제가 말씀드린 겁니다. 그 맹자 1번 볼게요. 제가 이걸 지금 아시겠죠? 자~ 맹자께서 말씀하시길 맹자가 그냥 단순하게 정치나 얘기하고 이런 분으로 아시면 안 됩니다. 윤리도덕이나 얘기하고. 이런 명상의 힘에서 나오는 겁니다. 보세요. [맹자께서 말씀하시길 그 마음을 극진히 하면 본성을 알 수가 있다.] 요 부분이 이겁니다. 우리 에고가 우리 마음이죠. 마음을 극진히 하면 본성을 알 수가 있다. 내 마음을 초월하라는 얘깁니다.
요게 중용에서는 희로애락을 초월하라고 그랬죠. 여러분의 마음을 초월하면 여러분의 본성을 알 수가 있어요. 하느님이 어떻게 하라고 냈는지가 본성입니다. 그 性(성)은 우리 마음속에 살아있는 건데. 지금 그림 보이시면 인의예지신 있죠. 인의예지신이 동양에서는 본성입니다. 자~ 보세요. 저걸 이렇게 그려볼게요. 우리의 에고의 마음이 있고. 우리의 안에 들어갔더니 순수한 마음에 다섯 개의 인의예지신. 다섯 개의 정보가 있더라는 거죠. 동양은 오행이. 만물은 오행으로 이루어졌거든요. 우리 마음 안에 참나도, 참나 안에 보십시오. 요거는 이 자체는 맹자는 양심이라고 합니다. 그냥 마음보다 순수한 마음. 양심이라고 하는데. 본심이라고도 하고.
그런데 본성은 뭐냐 하면 여기 새겨져있는 정보들이에요. 동양에서 성 그러면. 이해되십니까? 자~ 한번 제가 본심과 만나게 해드릴게요. 이제 자동으로 지금 리셋트해진분 있을 텐데요. 리셋하세요. 이미 리셋 돼 버린 분도 계실테고. [모른다] 하십시오. 이름을 잠깐 내려놓으세요. 자~ 들이쉬고 내쉬고 호흡만 보시고요. 과거는 없습니다. 그죠? 과거는 없어요. 지나가서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고요. 지금 이 순간 찰나에 주목하십시오. 그러면서 이름을 내려놓으세요. 성함 모르십니다. 자신의 호흡만 보세요. 찰나찰나에 일어나는 호흡만 바라보시면서 이름에 대해서 [모른다]고 해보세요. 존재는 하시는데 생각은 없죠. (.....)
자~ 존재는 하시는데 생각이 없는 그 자리를 늘 느껴보세요. 이름 모르시죠? 자~ 보십시오. 고 자리는 우리 에고가 아니고 순수한 자아 참나자리입니다. 즉 거기를 동양에서는 양심이라고 그래요. 맹자는 양심이라는 말을 최초로 씁니다. 양심이라고 여러분 흔히 쓰시는데, 요 말을 맹자가 쓴 말이에요. 양심. 우리 안에 있는 아주 선량한 마음. 타고난 그대로의 선량한 마음. 오염되지 않은 마음. 방금 자~ 이름 모르시죠? 성함 모르시죠? 성함 모르시는 그 자리는 존재는 하시죠? 여기는 오염된 적이 없어요. 그게 양심이고요. 그 자리에는 인의예지 프로그램이 새겨져 있어요. 왜 그런지 제가 한번 보여드릴게요. 보세요.
지금 성함 모르시죠? 존재만 하시죠? 자~ 그 자리가 사람을 진짜 사랑하는지 알려면 그 자리에서 나와 남이 있나요? 성함도 모르시는데. 나와 남을 안 가르고 있기 때문에 그 자리에는 사랑의 원리가 있다는 겁니다. 자~ 정의가 있는지 볼게요. 양심에 부끄러운 게 있나요? 그 자리에? 그 자리엔 부끄러운 게 없어요. 정의의 원리가 거기에 있다는 얘깁니다. 새겨져있는 게 형체로 보이진 않지만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정의롭다는 걸. 지혜롭다는 걸 어떻게 아냐 하면 그 자리에 의심이 있나요? 찜찜한 거 있으신가요? 모른다고 계신데요. 선명합니다. 자명해요. 그 상태. 지혜. 지혜 원리가 있다는 게 그겁니다.
예절도 그 자리엔 오만함이 있나요? 무례함이 있나요? 거기에? 없어요. 인의예지신에서 신은 거기에 불성실함이 있나요? 선량한 마음에는 인의예지신이 꽉 차있습니다. 그게 움직일 때 문제가 생겨요. 에고의 마음으로 그게 딱 작동을 할 때. 내 거. 나. 내 사랑이 지나치다가 문제가 생겨요. 인의예지를 다 어긋나요. 틀어지게 만듭니다. 그럴 때 다시 리셋을 하면 [몰라]하시면 다시 내 마음에는 본성이 활성화 된 상태에 들어가 버리겠죠. 하나님 마음과 둘이 아닙니다. 보세요. 동양에서 중용에서 성을 뭐라고 했죠? 천명이라고 했어요. 하느님의 명령 중에 제일 중요한 명령입니다.
하느님이 이 명령을 많이 내시겠지만 가장 핵심 명령이 인_사랑하라. 의_정의로워라. 예_겸손하라. 지_지혜로워라. 신_성실하라. 라는 명령을 우리 참나에다가 딱 프로그램을 새겨 놨는데. 에고 차원에서는 그게 활성화가 안 되지만 에고를 내려놓고 가만히 계시면 우리 안에서는 이미 활성화 돼 있는 마음이 있다는 걸 아실 거라는 겁니다. 그게 양심이에요. 양심에서는 조금도 불성실함이 없기 때문에 중용에서 이 자리를 (정성 誠성)자를 써서 정성 그 자체라고 합니다. 여기에는 조금도 오염된 게 없어요. 에고가 껴야 불성실해요. 저 상태로 살아가시면 여러분은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데 에고가 하나 껴요.
그래도 내 거. 하면 이게 탁~ 하나가 탁탁 걸립니다. 걸리다가 문제가 돼서 하나님하고 멀어집니다. 이해되시죠? 요게 우리 본질이라고 볼 때 마음을 극진히 하면 본성을 알 수가 있다. 내 마음을 초월하면 본성을 딱 알아요. 자~ 본성을 아는 사람은 뭘 알 수 있을까요? 하나님까지 알게 되요. 본성은 하나님이라고 하는 게 어떤 인격신을 상상하지 마시고 우주자연이 나한테 준거잖아요. 자연까지 알 수 있어요. 자연은 인의예지를 좋아하는구나. 알 수 있죠. 자연은 인의예지란 프로그램. 이 자연의 원래 프로그램이구나. 내 것이 아닌. 여러분도 지금 여러분이 내거라고 생각했다가 내거를 내려놓고 나니까 내 안에서 자연을 발견한 겁니다. 신을.
신은 이런 원리로 우주를 굴리는 구나. 내 경지를 넘어선 겁니다. 지금. 우주자체를 이해하신 거에요. 보세요. [마음을 극진히 하면 내 에고의 마음을 갖다가 극진히 하다보면 초월하게 되면 본성을 알 수 있고 본성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 수가 있다.] 하나님 아는 법은 간단합니다. 내가 내 마음속으로 들어가면 되요. 내 마음속으로 들어가다가 ‘나’라는 자아를 넘어서게 되면 하나님과 만나게 됩니다. 자~ 두 번째 방법은 틀려요. 자~ 보세요. 이게 첫 번째 공부는 보십시오. 첫 번째 공부는 맹자가 말하는 무조건 안으로 뚫고 들어가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 만나게 된다. 내 안으로 들어가게 되면. 이거는 5가지 공부 중에 존심에 해당되죠. 깨어나라. 이 순간 내 안에 있는 신성을 알아라.
자~ 유교에서 지금 지성이라고 했다는 거 아시겠습니까? 맹자가? 요게 불가의 견성에 해당 되요. 맹자는요. 이런 견성이나 이런 거에 달인이에요. 에고를 마음을 초월하면 그대로 본성을 알게 된다. 그러면 나아가서 하느님까지 알게 된다. 요 얘기를 맹자가 지금 2천 한 400년 전에 했다는 걸 보세요. 이게 서양에 나오는 어떤 영성의 그런 대가들이 하는 말보다 훨씬 지혜롭고 정확한 얘깁니다. 자~ 보세요. 이렇게 들어갔으면 이제 나와야죠. 하나님 만났으면 나와서 하나님 뜻대로 내 에고를 다스려야 겠죠. 하나님이 인의예지하라고 했으면 에고 차원에서도 에고차원에서는 인이 뭐로 발현되죠? 측은해 하는 마음. 예는 겸손한 마음, 사양하는 마음.
의는 부끄러움을 미워하는 마음. 지혜는 옳고 그름을 분명히 따지는 마음. 신은 전체적으로 이걸 성실하게 하고자 하는 마음. 에고 차원에서 이 사단의 마음이 성실까지 하면 5단이죠. 5가지 단서가 되는 마음. 왜 단서냐 하면 에고 차원에선 이건 파악이 됐는데 우리 안의 인의예지는 알기 어렵거든요. 측은지심이 일어난다는 이유로 우리는 우리 본성이 인이 있다는 걸 알 수가 있기 때문에 요걸 단서라고 합니다. 이것도 알기 쉬운 게 단서죠. 이거를 불쌍한, 피 흘리는 사람 길가다보면 아이쿠 안타까워요. 그러고 이게 뭐냐 하면 하나님이 나한테 사랑의 프로그램을 해놨구나 하는 걸 알 수 있는 단서죠. 이해되십니까?
4가지 단서. 즉 성실까지 하면 5가지 단서를 이해하시면 본성을 알 수가 있고 본성을 안사람은 결국은 늘 에고차원에서도 사단을 실천해야 되겠죠. 그 얘기를 합니다. [그 마음을 잘 챙겨라.] 즉 사단의 마음을 잘 챙기라는 겁니다. [그러면 본성을 배양할 수가 있다.] 즉 본성을 길러줄 수가 있다. 에고 차원에서요. 진짜 본성은 기를 수가 없죠. 우리 에고가 본성을 따를 때 본성을 기른다고 하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그거는. 자~ 맹자는 두 가지 얘기합니다. 이게 불가에서 말하면 돈오와 점수에요. 돈오. 그대로 들어라가라. 마음을 초월하라. 하나님을 알게 될 것이다. 마음을 잘 경영하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맹자는 딱 두 가지를 얘기했습니다.
이게 기독교적으로 또 놀라운 얘기죠. 성령과 만나라. 그게 하나님을 아는 거다. 성령대로 살아라. 욕정을 물리치고 성령대로 살아라. 그게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다. 즉 섬긴다는 건 현실에서 욕망과 소아적인 마음이 일어날 때 사단으로 그걸 제압하는 거 갖다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하라는 대로 하는 거에요. 욕망이 하라는 대로 하지 않고요. 자~ 지금 벌써 자기 마음 안에서 이런, 보세요. 아까 똑같죠. 중심을 가지고 중심에서 사방으로 우리 마음을 이렇게 경영한다는 거. 이거 할 수 있는 사람이 천하를 경영 잘하겠죠. 자기 마음도 못 경영하는 사람이 천하를 덥석 맡으면 되겠습니까? 경영이 안 돼요.
동양에선 너무 당연하게 보는 겁니다. 서양에선 플라톤이 진정한 철인이 아니면 정치 손대지 마라라고 하거든요. 철인이 아니고 플라톤을 이런 걸 이데아라고 봤습니다. 불변의 신의 진리를 모르는 사람이 정치에 손을 대면 국가론에 이르게 되면, 손을 될수록 더 망가진다라고 돼있습니다. 전혀 인간에 대해서 우주에 대해서 오해한 채로 경영을 한다면, 자기욕망을 통제 못한 체로 손을 댈수록 망가진다라고 합니다. 동양도 똑같죠. 요런 본성, 하나님이 우주를 어떻게? 우주 자연의 원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는 사람이 경영을 할 때 우주는 경영이 되고 그게 자연 하나님의 섬기는 거다. 자~ 그다음 말이 멋집니다.
[인간이 할 일은 이 두 가지 밖에 없다. 고로 나머지는 일은 오래 살고 짧게 사는 걸 둘로 보지 말고.] 수명이야 길든 짧든 간에 [오로지 자신을 닦으면서] 이 두 가지를 충실히 하면서 [하나님의 명령을 기다려라.] 이해되십니까? 죽을 날을 기다리면서 그러니까 죽기 전에 언제든 내가 이제 지상을 떠날 그 날까지 생명, 내가 오래 사네 짧게 사네 신경 쓰지 마시고. 요 두 가지만 열심히 하시는 게 인간의 길이라는 겁니다. 그것이야 말로 자신의 생명을 온전히 확립하는 길이다. 인간으로써 가장 잘 사는 길이다. 요 말에 다 들어있어요. 이해되십니까? 자~ 주자가 주를 냈는데 보세요.
[마음은 사람의 신명이니] 여기를 얘기합니다. 양심이요. [양심이 인간마음 중에 제일 신명] 신명은 하는님이에요. [하느님 자리이니. 모든 원리를 갖추고] 인의예지신을 동양에서는 모든 원리라고 합니다. 왜냐? 우주는 오행으로 이루어졌으니까. 오행의 원리가 딱 갖추고 있다가 [온갖 일에 대응을 한다.] 우주의 원리는 오행밖에 없으니까 인의예지신만 잘하시면 여러분이 인간관계에서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동안 겪는 모든 일에 대해서 정확한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요걸 주자가 얘기해놓은 거에요. 그리고 [하늘은 다른 게 아니라 그 원리가 나온 자리다.] 이 본성을 어디서 얻었을까요? 우주에서요. 우리는 우주의 일부니까요.
즉 그게 하나님자리다. 인격신이 아니고 온 우주를 주제하는 자리. 온 우주를 경영하는 그 자리이다. 자 이해되시죠? 여기까지? 맹자의 공부론 보시면 진심과 존심을 지금 구분했는데 여러분 또 괜히 제가 오해 일으키게 했네요. 이걸 존심이라고 충돌 나죠? 맹자는 이걸(존심) 진심이라고 하고 요 나머지(양기, 궁리, 역행, 홍익) 걸 다 존심이라고 했죠. 요런 차이가 왜 일어 나냐 하면 요거는 사단을 잘 보존한다는 의미고. 요거는 주자학에서 존심을 성리학자들이 존심을 지금 맹자는 진심이라고 한걸 주자학에는 존심이라고 표현을 해가지고 또 오해가 나실 수 있겠지만, 여기서 말하는 존심은 마음을 초월하라는 얘기죠. 깨어나시란 얘기고요.
요거는 사단의 마음을 잘 보존하라는 애깁니다. 좀 다릅니다. 늘 어디서든지 사단을 잘하라는 얘기고요. 저쪽은 모든 걸 내려놓고 그 초월해 보라는 얘기고요. 자~ 맹자의 공부론 식으로 얘기하면 진심_마음을 초월하는 거, 그다음 존심은 존심에서 맹자는 존심을 잘 알려면 요게 다 맞아야 되거든요. 맹자는 어떻게 표현했냐 하면 맹자의 언어입니다. 양기는 그대로 양기라고 했어요. 궁리는 궁리라는 말은 안 쓰고 (알 知지)자 써가지고 글로는 있습니다. 지언. 나는 남의 말을 정확히 잘 안다. 라고 했어요. 누가 어떤 사람이 말하든지 들으면 선악을 정확히 갈라본다. 요걸로 지혜를 얘기했고요.
역행에 대해선 뭐라고 했냐하면 集義집의 나는 날마다 의로움을 쌓아간다. 옳은 것을 계속 쌓아간다. 실천을 통해. 요게 남을 사랑하는 문제는 强恕강서라고 했서요. (강할 强강)자에 恕서. 자~ 유교 제가 그동안 강의한 걸 잘 들으신 분들은 恕서가 어떤 걸 의미하죠? 나하고 남은 똑같은 마음이다 해가지고 恕서는 내가 당해서 싫은 일은 남한테 안하는 걸 恕서라고 합니다. 공자님이 논어**에 유교에서는 서만 잘하면 끝나요. 보니까 훌륭한 리더는 사실은 恕서를 제일 잘하는 리더야 되요. 내가 당해서 싫은 일은 백성한테 절대 안하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반대로 앉혀 놓으면 백성은 죽겠죠. 계속 내가 당해서 싫었던 일만 백성들한테 만약에 원하면요.
자기가 당사자라면 절대 안했을 일을 자기가 자긴 아니다하고 막 남한테 권하는 리더는 최악의 리더고요. 그 반대의 리더가 최상의 리더잖아요. 그러니까 맹자한테 정치는 정말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하나님과 하나가 되고 하나님의 뜻대로 자기 에너지도 관리하고 선악도 분명히. 그거는 옳지 않은 일이라는 걸 알고, 정의롭게 살고, 남한테 피해 안주는 사람이요. 요 사람만 되면 되요. 자~ 보세요. 사단을 가지고 얘기하면 어떻게 될까요? 깨어있음은. 공부론만 조금 신경써주세요. 여기는 제가 맹자 7권짜리 맹자를 요약해서 설명 드리는 거에요. 맹자 나중에 이거 보신 뒤에 맹자를 보시면 아주 이해하기 쉬울 겁니다.
이 존심은 사실은 지금 사단으로 치면 양심자체를 각성하는 거죠. 통으로 각성하는 겁니다. 요 나머지 이 실제로 우리 마음을 관리하는 문제에서 에너지는 맹자는 이걸 浩然之氣호연지기라고 했어요. 호연지기를 길러라. 산에 가서 야호 한다고 길러지는 게 아니고. 호연지기는 매일매일 정의로움이 쌓여갈 때 길러진다고 했습니다. 글을 다 읽을 건데 知言지언(궁리)은 사단 중에 어떤 건가요? 궁리는 是非之心시비지심이라는 거 아시겠습니까?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맹자 식으로 말하면 옳고 그름을 가르는 마음을 확충한 게 지혜에요. 그냥. 맹자는 인간은 누구나 옳은 거 그른 거를 알고 있다고 했어요. 그러시죠?
여러분 태어나서 지금까지 어떤 거를 옳다고 하고 어떤 걸 틀렸다라고 해라라고 배운 적이 없어요. 그냥 요거 파란색이라고 제가 얘기하면 찜찜하다. 라고 느끼세요. 이미. 그건 아닌데 라고 느끼실 겁니다. 지금 대낮입니다. 하면 거부해요. 애들한테 자꾸 그런 얘기하면 애들도 화내요. 요거 자꾸 파랗다고 우기면요. 그냥 알아요. 인간은 옳다. 그르다. 의심스럽다. 찜찜하다. 이걸 그냥 알아요. 뭐냐 하면 자기 경험한거랑 맞으면 맞다라고 생각하고 인간은. 경험이랑 안 맞으면 틀렸다라고 생각해요. 요거는 타고난 겁니다. 즉 是非之心시비지심을 확충해 주기만 하면 되요.
여러분은 본래 시비판단의 능력이 있기 때문에 요거를 배양만 해 주는 겁니다. 그러면 남의 말을 들었을 때 선악이 그냥 알아져요. 맹자처럼. 자~ 맹자는 의로움을 쌓으라고 했죠. 요게 뭐냐 하면 수호지심이에요. 양심에 걸리는 거 싫어서 양심을 늘 실천하는 거에요. 하나 더 보태면 辭讓之心사양지심이오. 늘 남한테 겸손하게 克己復禮극기복례니까요. 즉 이런 정의를 표현할 때는 예절에 맞게 해줘야 되니까. 이런 정의나 예절에 관련된 건 실천에 관계됩니다. 요놈들을 열심히 확충해 주는 겁니다. 즉 남한테 뭔가 겸손하게 표현을 하고 남한테 양심에 걸리는 걸 하기 싫어서 그건 안하고 양심에 맞는 것만 하는 이게 쌓여가는 걸 정의로움을 쌓아간다고 하는 거고요.
아까 恕(서)라고 했죠. 사랑을 베푸는 건 뭡니까? 惻隱之心측은지심을 확충하는 것뿐입니다. 남을 향한 참을 수 없는 마음이에요. 피 흘리는 사람을 봤을 때 여러분 참을 수 있어요? 이번에 수원에서 살인사건이 났다. 그거 듣고 좋으세요? 그 마치 내가 당한 것처럼 깜짝 놀라시죠? 살인사건얘기 들었을 때. 물에 빠져 죽었다. 뭐 어떻게 죽었든 사람이 상했단 소리 들으면 밥맛이 딱 사라져요. 내 일이 아닌데도 여러분은 惻隱之心측은지심이 다 있으셔서 그래요. 그거를 맹자는 간단합니다. 인간은 원래 이걸 다 할 수 있어요. 그래서 맹자는 이걸 뭐라고 그랬냐하면 良知良能양지양능이라고 합니다.
시비지심만은 아는 거니까 요넘은 良知양지. 인간이 안 배워도 아는 지적 능력이라고 하고요. 요 나머지 것들을 합쳐서 良能양능. 안 배워도 원래 할 수 있는 능력. 그래서 저걸 양지양능 다 해가지고 재능이에요. 인간이 갖고 있는 재능. 이건 요즘 어린애들 대상으로 실험해도 똑같아요. 다 알고 있어요. 그걸 어떻게 배양하느냐의 문제에요. 배양을 잘못하면 사이코패스도 되고 배양을 잘하면 아까 말한 천하를 다스리는 리더도 되요. 맹자는 그냥 이렇게 생각한 겁니다. 맹자의 性善說성선설이죠. 배우셨죠? 性善說성선설. 맹자는 性善說성선설이다. 맹자는 그냥 사람이 착하다고 본 게 아니에요. 사람은 악한데 고 안에 선의 저런 싹이 있다는 거에요. 재능은 있다는 거에요. 선을 할 수 있는.
맹자 말이 당연히 맞는 이유가 성이 악하다면 여러분 이런 공부 하실 필요도 없어요. 본성이 악한 거를 하늘이 악하게 본성을 줬는데 선하게 하려면 그게 역천 아닙니까? 그건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저는. 개한테 하늘을 날아보라고 막~ 절벽에서 던지는 거랑 같아요. 날수가 없는데요. 인간은 선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하라고 이런 얘기를 전개할 수가 있다는 게 성선설입니다. 본성에는 선한 부분이 있다. 고거를 어떻게든 자극을 줘서 키우면 확충시키면 우리는 천하를 다스릴 그런 리더도 될 수 있고, 내가 될 수도 있고, 그런 리더를 키워낼 수도 있다. 심플하죠?
자~ 2번, 그다음 볼게요. [맹자께서 이르시길 만물이 나에게 갖추어져있다.] 내 마음 안에 있는 인의예지리가 우주만물의 오행의 원리랑 똑같거든요. 우주의 프로그램이 내 마음에도 있다. 그러니까 자신을 돌이켜보아 정성스러운 경지에 도달하라. 뭐겠습니까? 정성, 그 자체가 되라고 아까 말씀드렸죠? 내가 내 자신을 바라보면서 하나님과 하나가 된 상태. 정성상태에 들어가면 즐거움이 이보다 더 클 수는 없다. 내 안에서 인의예지가 활성화 된 상태가 정성상태입니다. 지금 활성화 되셨나요? 자~ 보세요. 정성은 (말씀 言언. 이룰 成성.) 말이 이루어진 거죠. 즉 인의예지라는 프로그램. 하나의 말이에요. 정보에요.
그 정보가 실현됐을 때 완벽하게 실현됐을 때 성입니다. 에고는 완벽하게 실현이 잘 안되실 거에요. 그러니까 에고 차원에서 정성은 더 어려워요. 1차적으로 뭐가 실현됩니까? 원래 실현되 있는 내 마음, 양심을 빨리 찾으세요. 모른다고 하세요. 그 자리엔 이미 인의예지가 이미 실현 되어 있어요. 자신을 돌이켜봐서 정성스러운 상태에 들어간다는 게 이겁니다. 그러시죠? 성함 모르시죠? 성함만 내려놓으시면 거긴 정성스러워요. 성함을 아시는 순간 “아이고 내 돈, 내 집, 내 새끼” 이게 붙으면 정성이 좀 깨져요. 이해되십니까?
자~ 맹자가 이렇게 친절하게 얘기를 했어요. 만물이 다 나에게 있다. 이런 말은 불가에서나 하는 말 같잖아요. 유교에 불교가 훨씬 들어오기 전에 유교에 이미 다 있던 말입니다. 만물은 다 나에게 있다. 내 안에 있다. 그러므로 내가 나를 돌이켜보아, 만물과 내가 만물이 본래 내 안에 있으니까 내가 날 돌이켜본다. 나는 우주랑 하나가 되어버리겠죠. 그 상태가 정성상태입니다. 그러게 되면 이거보다 더 즐거운 건 없다. 세로토닌이 막 샘솟겠죠? 이 상태에서는. 나랑 우주를 가르지 않은 상태에요. 자~ 이때는 아까 제가 말씀드린 [모른다] 상태에서 느껴지는 나와 남이 하나 된 상태인데요. 여기서 안주하면 유교가 아니죠.
혼자 기분 좋은 거로 유교가 아니거든요. 그다음에 뭔 얘기가 나올까요? 그다음에는 [서에 힘을 써라, 남을 나처럼 여기는데 힘을 써라. 사람을 구함이 이보다 더 가까울 수는 없다.] 아주 쉽다. 서은 내가 당해서 싫은 일, 남한테 안하는 겁니다. 그걸 열심히 노력하라는 겁니다. 그러면 그 사람 이미 그게 사랑을 실천하는 거다. 인을 실천하는 거다. 측은지심을 확충하는 겁니다. 여러분 측은지심 확충하고 싶으시면 불쌍한 사람 봤을 때 그 불쌍한 걸 꼭 표현하세요. 이게 서입니다. 표현하는 겁니다. 막지마시고요. 샘솟는 마음을 막지 마시고 표현해 보는 거에요.
의는 뭘까요? 사랑은 사람과 정의가 비슷하면서 살짝 달라요. 사랑은 남을 막~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는 겁니다. 그러면 그걸 막지마시고요. 정의는요? 이렇게 하면 남한테 피해가 되는데 하면 그거 진짜 하지마세요. 그러니까 적극적 소극적으로 나눌 수 있겠죠. 사랑은 막 해주고 싶은 거면 하세요. 의는 ‘이렇게 하면 안 될 텐데’ 하는데 하고 계시다면 딱 끊으세요. 사랑과 정의를 나눠서 얘기하는 겁니다. 사랑은 예수님이 말한 황금률이 사랑을 대표해요. 남한테 내가 받았으면 하는 걸 먼저 해줘라. 그럼 참지 마시고 해주세요. 실제로. 서는 오히려 정의쪽에 가까워요. 통용해서도 쓰는데.
내가 당해서 싫은 일을 남한테 하지마라. 하지마세요. 실제로. 그게 정의입니다. 피해 안 주는 게 정의고요. 정의는 소극적입니다. 피해안주는 게 정의고 사랑은 적극적이에요. 도움을 주는 겁니다. 그러면 어떤 원칙을 정하실 때 정의가 먼저입니다. 이해되시죠? 그런 말하잖아요. 흔히. 집에서 어머니가 애들한테.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깽판치지는 말고 나가라. 차라리 피해줄 바엔 나가라. 그게 도와주는 거라는 거에요. 이해되십니까? 그게 정의에요. 그것도 소극적인 사랑이에요. 사랑과 정의는 동전의 앞뒤라 거의 한 쌍인데. 굳이 나누자면 정의 쪽은 남한테 피해를 안주는 쪽이라 정의가 더 먼저에요.
피해를 안주는 게 먼저구요. 여력이 되는 만큼 도와주는 거라. 사랑은 끝이 없어요. 제가 지금 여러분한테 줄 수 있는 사랑은 제가 한계가 있어서 이 정도 드리지. 사실은 끝이 없죠. 더 잘해야 들여야 되는 것도 있죠. 그러니까 상상을 하면 끝이 없는 게 사랑이고요. 정의는 제가 최소한 피해를 안 드리는. 제가 이걸 위배하면 여러분이 바로 확~ 얼굴이 붉어지실 그런 일들 안하는 게 정의입니다. 사랑은 제가 역량이 되면 역량이 늘면 더 해드릴 수도 있고 덜해드릴 수도 있고. 기부도 기부하는 게 사랑이라면 내가 돈 잘 벌면 돈 더 내놓겠죠. 이렇게. 사랑은 늘 더 키워가는 거고, 정의는 늘 조심해야 되요. 그걸 어기며 욕이 날아와요.
어기면 비난을 받는 게 정의고 잘하면 칭찬을 받는 게 사랑입니다. 하면 할수록 칭찬받는 게 사랑이고요. 그걸 어기면 비난받는 게 정의입니다. 요렇게 좀 감각을 가지고. 그런데 결국은 두 개다 사랑이라는 거 아시겠죠? 남한테 피해 안 주자는 것도 내가 남이면 피해받기 싫잖아요. 측은지심에 다 기본을 둔겁니다. 요 정도 이해하시고. 강서는 측은지심을 확충하는 겁니다. 자~ 5분 쉬었다가 다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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