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설앙~ 우리 낼 오디서 만날까?”
“광화문 오때?”
“광화문 오디?”
“광화문 세종대왕 앞에서 보자”
“구랫! 그런데 왠 광화문?”
“광화문이 바뀐대서”
“계속 변해왔는데 이번에 또 바뀐다고?”
“그동안 어떻게 변했는데?”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 동상사이에 이 광화문 광장
때로는 만남의 장소로, 때로는 시민의 목소리를 모으는 촛불의 장소로 그렇게 우리 곁에 친숙한 광화문인데
사실, 그동안 광화문 일대는 건립 이래 꾸준히 변화해 왔어.
광화문 4거리는 무려 조신시대부터 서울의 중심지였어.
지금 세종로로 불리는 이 거리는 6개의 주요 관하가 몰려있어서 6조 거리가 불렀데.
그런데 이 거리는 왕족이나 고관이 아니면 드나들기 어려웠고
따라서 일반 백성들은 뒷골목을 이용했는데,
그곳을 말을 피하는 골목이라 해서 피맛골
지금도 피맛골에 가면 국밥이나 막걸리를 파는 곳이 많잖아.
광화문은 그 뒤로 1592년 성조 때 방화로 소실되었다고
고종 때 흥선대원군에 의해 중건되었어.
그 뒤로 광화문은 큰 시련을 겪게 되는데 그 시작은 바로 1910년 일제강점기부터야.
6조 거리라는 이름은 있되 광화문통이라는 일본식 이름으로 바뀌어서 불렸데.
“뭐? 진짜 극혐이다.”
일본은 1916년 경복궁 숭례문과 행각을 헐고 조선총독부를 짓기 시작해
이 과정에서 광화문은 위치가 옮겨지게 되었는데 이 마저도 6.25전쟁 때 폭격으로 인해 불에 타서 윗부분이 모두 소실되고 석축만 남았지 뭐야.
1945년 8월 15일 드디어 광복!
하지만 광화문은 이렇게 구멍이 뻥 뚫린 석조문의 상태로 아주 오~~ 래, 아~~~~ 주 오~~~랫동안 그 자리에 머물렀는데, 1968년에야 재건을 시작했어.
그제야 지금 우리가 기억하는 광화문 세종로의 모습이 갖추어지고
1968년엔 이순신 장군이 세워졌지.
그런데 중요한 건 이때까지도 무려 광복 50주년이 다 되어서도 조선총독부가 광화문 뒤에 머물면서 국립중앙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었다는 거야.
“그게 말이 된다고?”
말이 안 되지.
그래서 드디어 놀란 끝에 광복 50주년 기념으로 1995년 8월 15일 조선총독부는 철거가 시작되었고,
광화문을 앞에서 바라보면 북한산이 훤히 보일 수 있게 다시 돌아온 거야.
그 뒤로 광화문 세종로는 2002년 월드컵 응원전을 시작으로 국민들이 뜻을 함께 하고 싶을 때마다 모이는 광장이 된 거야.
“으흠, 시민들과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공간이 된 거라고? 나도 자주 갔었지.”
“자주? 나 말고 누구..?”
“음...”
“누구? 왜 말을 못해..”
“아, 아니야,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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