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0)

즉문즉설_법륜스님(제304회) 이혼한 시동생

Buddhastudy 2010. 6. 21.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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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선택을 할 거냐. 먼저 함 생각해 보세요. 따로 살고 싶다 이게 일단 제가 제일 첫 번째 선택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그죠? 그래서 남편에게 저는 이렇게 부모모시고 시동생 식구하고 같이 살기는 힘듦니다. 따로 삽시다 이렇게 먼저 얘기를 해 보면 되겠죠. 남편이 뭐라 그럴까요? 그렇게 하자 하면 따로 살면 되는 거고. 근데 왜 나는 시동생 쫓아낼 수 있는데 시부모 입장에서 볼 때 손자 둘 하고 아들인데 자기 자식을 어떻게 쫓아 내겠어요? 그러니까 물어 보는 거요. 그러니까 부모자식을 내가 갈라 놓으려고 하면 안되지. 그건 나쁜 짓이지요. 나하고 시동생만 생각하면 갈라서자 하는 게 가능한데. 나하고 남편하고 연결이 되어 있고, 남편은 부모하고 연결이 되어있고. 부모는 시동생하고 연결이 되어 있기 때문에 끊기가 어려워요.

 

길은 두 가지요. 다 같이 어울려 살든지. 연결 연결 연결 되어 있으니까 어디도 끊기가 어렵다 이거요. 그래서 한 가족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든지. 아니면 이혼을 하든지. 복잡하게 생각 할 필요가 없어요. 이혼하고 싶은 마음이 없으면. 그러면 나는 부모하고 떨어져 살고 싶지만 남편은 제 부모하고 떨어져 못살 거 아니오. 그러면 부모님은 또 자기 아들하고 못 떨어져 살 거 아니오. 시동생 하고. 또 시동생은 제 아이들하고 못 떨어져 살 거 아니오. 그러니까 자꾸 눈이 사과를 봤다. 야 저기 사과 있구나 하고 탁 발견했는데. 집어가기는 손이 집어가 버렸어. 눈이 볼 때 짜증날 일 아니오. 손이 사과를 깨끗하게 씻어 놓으니까 먹기는 입이 확 먹어 버렸단 말이오. 손이 볼 때 얼마나 짜증나겠어. 입이 죽어라 하고 찝어 놨더니 다 위가 가져가 버렸어. 위장이 소화를 시켰더니 진국은 다 혈관에서 빼가 버렸어. 이렇게 이게 연결 되어 있다 이 말이오.

 

나하고 남편이 연결 되어 있고. 나하고 남편하고 부모하고 연결되어 있고. 부모하고 자식하고 연결 되어 있고. 자식하고 또 그 자식하고 연결되어 있고. 나하고 그 조카하고 보면 거리가 멀지만은 그렇게 보면 이게 끊을 수 있을 거 같지만은 이렇게 연결이 되어 있기 때문에 어디에도 끊을 수가 없어. 끊는다면 나하고 남편을 끊어야 돼. 시부모가 내려다 볼 때 여기서 누가 바깥손님이야. 시부모 입장에서 볼 때 누가 바깥손님이야. 그럼 자기가 나가야지. 부모입장에서 볼 때는 이것도 내 자식이고 저것도 내 자식 아닙니까 그죠? 이쪽 내 자식은 그래도 며느리가 있고 애들 엄마가 있잖아요. 저쪽 내 자식은 아내도 없고 엄마도 없잖아 그죠? 그러면 시부모 입장에서는 이 집이 누구 집이냐 이런 게 더 중요한 게 아니라 누구한테 더 마음이 쓰이겠어요? 그건 내가 시어머니가 되도 똑 같은 입장이오. 인간의 인지상정이니까.

 

그러니까 이거는 한 집에 살 수 밖에 없다 이 말이야. 달리 방법이 없다. 그러면 한 집에 살 수 밖에 없다면 이렇게 화내고 짜증내고 미워하면서 사는 게 나한테 좋은지. 하나의 가족으로 대 가족으로 옛날 같으면 다 한 가족이잖아 그죠? 옛날 같으면 8촌까지 한 가정에 대가족을 이루고 살았으니까. 하나의 가족으로 생각하면서 사는 게 좋으냐? 안 살려면 내가 안녕히 계십시오 하고 나오면 되고. 살려면 이왕지 살려면 껴안고 사는 게 좋다. 요즘 애기 몇 명이오? 옛날 같으면 한 8명 낳아서 키워야 되잖아 그죠? 합해봐야 몇 명이요? 4명 밖에 안되잖아. 별거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내가 낳으려면 힘드는데 애가 4명이 생겼으니까 서로 돌보면 좋지. 거기에 내 자식 네 자식 구분할 필요가 없다 이거야.

 

내가 엄마가되서 넷 다 돌보면 되고. 한방에 자는것만 아니지 시동생도 내가 남편처럼 돌봐야 될 하나의 남자, 남자다 그러면 여자가 있어야 되잖아 그죠? 빨래하고 뭐하고 해 줄 거 해 주고 돌봐야 되고. 부모가 볼 때는 며느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어 이걸 다 한 가족으로 생각하고 따뜻이 돌보기를 원하겠어요 니 살림 내 살림 구분하기를 원하겠어요? 본인이 지금 제 정신 아니게 지금 나쁜 마음을 먹고 있다 이거요. 헤어져서 엄마 없이 사는 애들은 길가는 아이들이라도 집에 데려다가 돌봐야 되는데 그것도 남도 아니고 내 조카들인데 따뜻이 돌보는 게 좋다. 그러니 생각을 바꾸셔야 된다. 이게 다 복이라고 생각하고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살면 오히려 다 복이 됩니다. 그런데 수녀님들이나 스님들 보면 제 조카도 아니고 제 자식도 아니고 사돈의 8촌도 아닌데 길거리에 버린 아이들 제 나라 아이도 아닌데 남의 나라에 가서 모아가지고 수십 명씩 돌보잫아요.

 

그렇게 생각하면 4명 돌보는 게 뭐가 어려워요? 그것도 내 조카들인데? 엄마 없는 애들은 얼마나 마음 아프겠어요? 그러니까 내 아이보다 더 게들한테 정성을 더 쏟고 더 보살펴 줘야 될 거 아니오. 그 입장에서 보면. 똑같이 해 줘도 아이들이 섭섭할거요. 우리엄마 아니라고 저러는구나. 똑같이 해 줘도. 왜냐하면 애를 똑같이 키워도 동생은 동생이라고 섭섭해하고 형은 형이라고 섭섭해 하잖아요. 엄마가 말할 때 때에 따라서 뭐 특별히 좋아하고 미워하는거 아니죠. 그냥 야단 칠 때 어떤 때는 어떻게 말합니까? 형이 참아라. 조그만 애하고 뭘 싸우나. 이렇게 말하고. 또 어떤 때는 동생이 참아라. 왜 조그마한게 형한테 대드노? 이럴 때 무슨 구분해서 그렇게 합니까? 그냥 그때 그때 상황 봐서 그렇게 말하는데.

 

동생은 기억에 뭐만 남습니까? 늘 형만 두둔하고 엄마는 나만 야단쳤다 이러고. 형은 나중에 크면 뭐라 그래요? 늘 엄마는 동생만 감싸고 무슨 일만 생기면 알아보지도 안하고 형이라고 무조건 야단쳤다. 이렇게 상처를 입는다 이 말이오. 같은 형제를 두고 엄마가 얘기를 해도. 그러니까 똑같이 대해도 조카들이 상처를 입어요. 우리 엄마가 아니라서 우리를 저렇게 괄시하구나. 그런데 하물며 더 차별했다면 지금 심보를 가지고는 아이들한테 안 좋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 내 아이들 보다도 더 정성을 기울여서 돌봐 줘야 됩니다. 내 아이들은 조금 소홀해도 상처가 적고. 의무적으로 의식 이렇게 하지 말고 진짜 마음을 내서. 아이고 엄마없이 애들이 얼마나 힘들겠나. 내가 엄마는 아니지만 너희 엄마 되 주겠다 이런 마음으로. 그렇게 돌보고.

 

시동생도 아내 없이 남의 집에서 빌 붙어 살면 어떻겠어요? 눈치 보일까 안보일까? 보이겠죠. 그러니까 아이고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다 한 엄마 밑에서 사니까 자기 집이라고 생각하고 편안히 사세요. 이렇게 오히려 형수가 격려해 주는 게 좋지. 확 눈쌀 찌푸리고 빨리 나가라 왜 안나가노 이러고. 그렇게 해서 나도 불편하고 눈치보고.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 은혜를 베풀어줘도 나중에 남는거는 은혜입었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고 괄시 받았다는 생각만 있기 때문에 나중에 원한을 사게 됩니다. 그러니까 도와주고 손해보고. 이런 두 가지 재앙을 초래한다. 그러니까 어머니 보고 애들 내보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있다면 어머니가 그 생각 하기 보다는 니가 나가라 하는 생각이 더 많을 거 아니겠냐?

 

내가 나갈 수 없다면 저 들도 내 보낼 수가 없는 거다. 그러니 이것은 한 집에 당분간 살 수 밖에 없다. 그러니 한 집에 안 살려면 이제 어떻게 해야 될까? 다니면서 이쁜 여자를 하나 구해가지고 시동생 재혼을 하도록 도와줘서 애들 잘 돌볼만한 여자가 있으면 그렇게 하면 또 모르겠지. 그러기 전까지는 한 집에 같이 살아야 되. 이거는 무슨 윤리도덕 법률로 따질 일이 아니야. 인륜으로 보면 다 내가 돌봐야 할 인연이다. 그런 인연이 됐을 때 기꺼이 돌보는 게 부처님의 가르침이고 그것이 나에게 큰 복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