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3)

[즉문즉설] 제263회 저처럼 아이들도 남매사이가 원만하지 못할까 걱정

Buddhastudy 2013. 1. 28. 04:23

출처 YouTube

  

지금 그런 걱정을 하면 그렇게 될 확률이 자꾸 높아져요. 그게 그러니까 내가 그런 경험을 했기 때문에 그런 걱정을 하잖아. 그죠? 그것 때문에 또 그대로 두 아이도 그 까르마를 받아서 그렇게 될 확률이 높아집니다. 내가 그런 경험을 했지마는 그 경험에 사로잡히지 말고 그 생각을 버리세요. 그러니까 걱정을 하지 말고. 그러면 첫 번째 부부 관계가 원만하도록. 아이 엄마로서는 항상 아빠를, 그러니까 아내로서 남편보다는 엄마로서 아이의 아빠를 이런 뜻이에요. 엄마로서 아이의 아빠를 하늘처럼 생각하는 게 필요하다. 남녀의 문제가 아니에요.

 

그렇게 마음을 내야 아이가 자긍심이 생깁니다. 그래서 부부 관계가 원만하면 아이들 관계도 원만하고 첫째. 그래서 그렇게 되지 못하는 거에 대해서 내가 늘 정진을 해야 됩니다. 실제로 살면 그리됩니까 안 됩니까? 안되죠. 그러니까 수행이 필요하다는 거 아니에요. ‘남편 이렇게 되게 해 주세요. 저렇게 되게 해주세요.’ 하는 거는 욕심이에요. 그건 수행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남편을 그렇게 바라보지 못하는 나를 보면서 나를 뉘우치고 내 마음이 그렇게 남편을 잘 공경하고 받들 수 있는 마음이 일어나도록 내가 계속 정진해 가는 게 수행이다. 이 말이오. 그러면 아이가 자긍심이 있어집니다.

 

그다음에 애들이라는 거는 싸우게 돼 있어요. 그런데 내가 동생하고 싸웠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애 둘이 싸우면 내가 그 과거의 상처 때문에 굉장히 야단을 치게 됩니다. 그 야단을 치면 어떠냐? 동생은 형 때문에 야단맞았다. 형은 동생 때문에 야단맞았다. 엄마가 야단을 치면 형보고는 뭐라 그러겠어요? “왜 어린 동생하고 싸웠냐? 형이 참지.” 이렇게 말하고. 동생한테는 또 뭐라 그래요? “왜 동생이 자꾸 형한테 대드나?” 이렇게 완전히 자기도 모르게 얘기하게 되죠.

 

그러면 동생은 늘 자기는 형 때문에 자기가 야단맞았다.’ 이런 생각이 들고. 형은 또 늘 동생 때문에 자기가 야단맞았다.’ 이렇게 억울한 심정이 생기니까 동생을 미워하게 되고, 동생은 형을 미워하게 되고. 그래서 지금 자기가 경험한 것을 고대로 두 아이가 격을 수 있도록 본인이 지금 한다. 이 말이오. 앞으로. 그래서 첫째 부부가 원만해야 되고. 두 번째는 내가 과거의 상처에서 해방돼야 됩니다.

 

그래서 내가 기도를 딱 하면서 ~ 그때 엄마가 나한테, ‘네가 누나니까 참아라.’ 하는 게 엄마의 사랑의 부족이 아니었구나. 엄마는 똑같이 사랑하는 데서 큰애보고는 크니까 참으라.’ 그러고, 작은 애 보고는 작으니까 따르라.’고 했구나. 그런데 내가 저쪽은 못 보고 내 입장만 생각해서 내가 엄마를 원망했구나. 그래서 동생을 미워했구나. 아이고, 어머니 죄송합니다. 내가 이제 애 키워 보니 알겠네요.” 이렇게 엄마를 이해하고 참회를 해서 상처를 씻고.

 

동생한테도 아이고 동생아 미안하다. 내가 그때 잘못 알아서 아무 죄 없는 너를 내가 미워했구나.” 이렇게 동생한테 참회해서 내 마음속에 있는 이 상처를 먼저 씻어야 됩니다. 그러면 이제 형제간에 싸우면 애들이라면 싸울 수 있죠? 그죠? 싸울 수 있다고 그냥 받아들여야 돼. 그걸 갖고 싸우면 안 된다.’ 이렇게 생각하면 야단을 많이 치거든요. 싸울 수 있다. 자라는 애들이 고만고만할 때 서로 갈등을 일으킬 수 있다.

 

장난감도 서로 가지려 그러고, 형은 형이라고 자기가 가지려고 그러고, 동생은 동생이라고 또 자기가 가지려고 하는 게 이해가 되야 됩니다. 그래 싸우는 걸 대수롭지 않게 받아 들여야 되. 그래야 나중에 싸우지 않습니다. 엄마가 자꾸 야단을 치면 서로가 자기들끼리 미워하게 되는 거요. 그다음에 애들을 낳았다고 애한테만 정신을 팔고 남편한테 자꾸 멀리하고, ‘애 보기도 바쁜데 뭐 당신한테자꾸 이러면 안 됩니다. 항상 결혼생활의 순번을 남편을 우선적으로. 일 번으로. 애는 저 팽개쳐 놓더라도 남편 일을 먼저.

 

애 젖 먹이다가도 남편이 뭐라 그러면 하고 놔놓고 가서 돌봐주고 와서 애를 먹이는 이런 식의 원칙 태도를 분명히 가져야 아이들이 잘 자랍니다. 그리고 어디를 가든지 밥도 그렇고 아빠 거를 항상 먼저 딱 주고. 먹고 남으면 애를 주던지. 같이 먹더라도 아빠 딱, 먼저 못 먹게 하고. 이렇게 가정에서 질서를 잡아줘야 이게 사회에 가서도 적응을 잘합니다. 만약에 나중에 어떻게 살림이 어려워서 방 하나짜리 갔다. 그러면 부부가 방을 딱~ 차지하고 애를 응접실에서 키워야 됩니다.

 

그런데 가끔 보면 자기들은 응접실에 자고 애들 방에 키우는 사람이 있어요. 그건 옳지 않습니다. 아이 교육에 안 좋다. 그리고 또 애를 위해서 부부가 헤어진다. 이것도 애 교육에 안 좋습니다. 부부 관계는 말할 것도 없고 아이 교육에 안 좋다. 이 말이오. 그래서 부부 관계를 우선시하고. 그다음에 남편을 공경하는 것. 남녀의 문제가 아니고 아이 아빠를 공경하는 태도를 가질 것. 그리고 아이들 싸우는 거는 있을 수 있는 일로. 그냥 편안하게 받아들일 것. 그렇게 해 나가면 지금 그런 걱정 안 하셔도 되요.

 

그런데 지금 하고 있는 그 까르마, 그런 근심은 왜 생겼느냐? 내가 상처가 있기 때문에 생기는 거요. 그 상처가 있는 한은 아이들에게 결과적으로 나는 그렇게 되고 싶지 않은데 결과는 그렇게 됩니다. 그래서 이게 지은 업이 무섭다는 거 아니오. 그래서 역시 수행하셔야 됩니다. 수행하라니까 어떻게 참선할까요? 그런 뜻을 말하는 게 아니라. 늘 지나간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온 마음의 상처를 내가 씻어 내고. 그다음에 남을 미워하거나 원망하는 것이 다 내가 짓는 거거든요.

 

그런데 아이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거는 부부 관계입니다. 그래서 항상 남편한테 내가 좋은 마음을 내는 게 첫째 나한테 좋고. 아이들한테 좋고. 남편에게도 좋다. 내가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야 되요. 남편을 미워하면 누가 괴롭습니까? 내가 괴롭지. 남편을 미워하면 아이들 교육에 안 좋죠? 가정도 화목이 안 좋지? 이게 손실이에요. 그렇게 사느니 안녕히 계십시오.’ 하고 혼자 사는 게 나아요.

 

혼자 살라는 게 내가 지금 얘기하는 초점이 아니에요. 갈등하면서 살면 혼자 사느니보다 못하다 이 얘기에요. 그래서 여러분이 주어진 삶을 아름답게 가꾸어 가는 게 필요하다. 그런 가르침이 원리를 내가 얘기를 하는데 원리를 얘기한다면. ‘남편이 훌륭한 사람이다. 우리 남편 좋은 사람이다.’ 이런 마음을 내라는 거는 사람은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 본래 없다. 지금 우리 남편이 나쁜 사람이다.’ ‘미워한다는 건 나쁜 사람이다.’ 이 얘기 아니에요. 그죠? ‘나쁜 사람이다.’ 이거는 내가 생각으로 지은 거요. 이게 상이에요. . 모양 상.

 

반야심경으로 하면 이게 색이란 말이오. 그러나 사실은 이것은 내가 생각으로 지은 거요. 본래는 어떠냐? 좋은 사람도 없고 나쁜 사람도 없다. 이게 공이에요. 이게 무상이란 말이요. 모양 없음이다. 말이오. 그러니까 모양을 짓기 때문에 미움이 생기는데 모양 없는 줄을 알면 미움이 사라진다 이거요. 그러면 모양 없는 줄만 알아서 안 돼요. 우리 마음은 늘 상을 짓거든요. 그러면 본래 모양 없는 가운데서 모양을 지을 바에야 아름답게 짓는 게 낫죠?

 

꿈을 꾸려면 좋은 꿈을 꾸는 게 나은 것처럼. 그래서 좋게 마음을 내면 내가 기쁘지는 거요. 그런 원리에 의해서 이미 미워진 상은 지워야 되기 때문에 참회해야 되고. 새롭게 상을 짓는 것은 아름답게 상을 짓는 게 좋다. 이 말이오. 그래서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내라. 그게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원리입니다. 이것이 내 삶 속에서 늘 작용해야 되요. 그런데 우리 실제로는 그렇게 잘 안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늘 이 법을 먼저 이해하고. 그 법에 원칙에 맞게 항상 깨어있어야 되는데. 그러지 못하기 때문에 내가 늘 나를 점검하고. 그렇지 못한 자기를 점검해서 내려놓고. 또 그렇게 바르게 가겠다고 원을 세우고. 그래서 대승 보살의 길은 참회 발원이란 말이에요. 허물은 뉘우치고 다시는 허물을 짓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고. 또 나도 모르게 허물을 짓고 또 그걸 알아차리고 뉘우치고. 다시 짓지 않겠다고 나아가고.

 

어린아이가 자전거를 타면 넘어지고 넘어지고 하면서 결국은 타지듯이. 이렇게 넘어지고 넘어지고 넘어지고 하면서 바르게 한발 한발 가게 된다. 그렇게 해서 여러분의 삶이 바뀌게 되면 여러분에게 행복이라고 하는. 행복하게 해 주세요 한다고 행복해지는 게 아니에요. 이렇게 되면 저절로 행복해진다. 그때 부처님의 가피, 법의 가피가 법의 가피를 내가 입었구나. 이걸 자기가 자각하게 된다 이거요.

 

그러면 부처님 소리만 들어도, 그림만 봐도, 형상만 봐도 부처님 감사합니다.’ 라고 하는 귀의. 부처님에 대한 귀의가 저절로 일어난다 이거야. ‘믿어야 되겠다. 믿어라.’ 얼마나 안 믿어지면 믿으라고 고함을 하겠어요. 그러니까 이렇게 우리가 공부를 해 나가면 돼요. 그러니까 안 믿어지는걸. 억지로 믿으려고도 하지도 말고. 이렇게 내 삶의 현실에서 이치게 맞게끔 한발한발 해 나가시면 여러분들의 운명이 바뀌게 됩니다.

 

운명이라는 게 이게 업식이거든요. 그러니까 업장이 녹는다. 이것이 바로 운명이 바뀌는 거란 말이오. 그래서 전생에 내가 무슨 죄를 지었나? 이런 얘기 그만하시고. 지금 내가 어떻게 할 거냐? 이 관점에 있어서 정진을 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오늘 주제가 초등학교 유치원 초등학교 다니는 자녀를 둔 엄마들의 고민이 원래 주제였는데. 요 때 아이들은 갓난아기들 유아는 무조건 보살펴야 되고. 요 때 아이들은 절반은 보살피고 절반은 모범을 보여 줘야 됩니다. 다음 시간에 할 사춘기 아이들에게는 시행착오를 겪을 기회를 줘야 된다. 그래서 지켜보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그렇게 해 나가시면 되지. 너무 엄마가 되는데 그런 기술적인 게 필요한 게 아니에요. 여러분이 무슨 애 키우는 기술교육이 부족해서 지금 애들이 제대로 안 크는 게 아니고 마음이 엄마 같지 못해. 마음이 그저 어린애처럼 왔다리 갔다리 왔다리 갔다리 하는 초조 불안 어쩔 줄을 몰라하고 이 말 하면 이쪽으로 쏠리고 저 말 하면 저쪽으로 쏠리고. 그래서 지금 엄마자격이 없는 거요.

 

옛날보다 배운 것도 많고, 생활 형편도 좋고, 옛날 엄마보다 나이도 많고, 엄마로서 부족한 게 하나도 없는데 딱 한 가지. 마음 자세가 안 됐다. 그러니까 이 병을 치료하려면 수행이 제일이다. 그러니까 부처님 법에 귀의하셔서 정진을 해야 된다. 종교문제를 넘어서요. 교회 다니든 그건 알아서 다니시고. 그러나 이 마음공부는 여러분이 하셔야 된다. 그럴 때 자신도 행복하고 애들 교육에도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