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3)

[즉문즉설] 제332회 둘째를 키울 여건이 안 돼서 유산을 했습니다.

Buddhastudy 2013. 3. 28. 04:13

출처 YouTube

     

. 지금 한 40, 50대 되시는 여성분들. 제가 잘은 모르지만은 아마 다수가 다 한 번씩 낙태를 한 경험이 있지 않겠나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왜 그러냐 하면 그 전 세대 60, 70대 되시는 세대 분들은 애기를 5, 6, 7 이렇게 다 낳았단 말이에요. 요즘 젊은 세대는 또 한 둘 밖에 안 낳는단 말이오. 요 중간에 애기 둘 낳기 운동, 피임. 뭐 이런 여러 가지 산아제한 운동을 하면서 좀 무리하게 그런 좀 강제적으로 그런 측면이 있었죠. 산아제한이.

 

그러다 보니까 심하신 분은 34번 이렇게 낙태 하신 경험들도 있고, 이런 과정을 우리 세대가 겪었습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살펴봐야 될까? 어떻게 이걸 봐야 되느냐? 첫째는 우리가 중생이다 하는 것을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태도가 아닐까. 다시 말씀 드리면 우리는 굉장히 자기가 선한 척, 착한 척, 바른 척, 이렇게 합니다. 그런데 우리 행동을 가만히 보면 나나, 너나 할 것 없이 바르다고 할 수가 없고 착하다고 할 수가 없어요.

 

자기 목숨은 천근 같이 여기고, 자기 손가락에 피나는 것만 해도 큰일이라도 생긴 척, 같이 하는 그런 우리들이 자기 이 혀끝에 좀 달콤하게 느껴지기 위한 그 한 가지 이유로 다른 생명을 죽여서 그걸 아주 맛있게 먹잖아요. 그냥 먹는 것도 아니고, 생 걸로 회 떠먹기도 하고, 불에 다 구워 먹기도 하고, 삶아먹기도 하고, 지져먹기도 하고, 온갖 방법으로 해가지고 남의 살코기를 먹지 않습니까? 그것도 부위별로 나눠가지고 맛을 논하면서.

 

만약에 입장을 바꾸어서 어떤 다른 큰 생명의 존재가 우리인간을 그렇게 한다고 한 번 생각해보세요. 내 자신을 그렇게 한다. 아니면 내 자식을 그렇게 한다. 내 형제를 그렇게 한다. 내 부모를 그렇게 한다고 한 번 생각해 보세요. 그냥 잡아먹는 것만 해도 억울한데, 날 걸로 떠 먹고, 불에 구워먹고, 삶아먹고, 지져먹고, 볶아먹고 그런다면. 그런데 우린 그런 생각 전혀 안 하죠.

 

내 입맛에 집착을 하면 그 다른 생명이 어떤 고통을 당하느냐 이거 전혀 생각 안 해요. 특히 자기가 아는 사람, 자기 부모나 형제나 누가 돌아가셨다고 울고불고하면서 그 돌아간 날 다른 생명은 죽여가지고 먹잖아요. 장례식 날 소를 한 마리 잡든, 돼지를 한 마리 잡아야 되잖아. 제삿날 닭이라도 한 마리 잡아야 되잖아. 왜 우리는 죽었다고 슬퍼하면서 인연이 다 돼서 죽은 것도 슬퍼하면서 살아있는 생명을 해치느냐 이거요. 또 자기 아들이 태어났다고 태어남을 기뻐하는 날 또 다른 생명은 죽이잖아요.

 

평소에는 그렇다 하더라도 적어도 내가 태어난 날, 또는 내 자식이 태어난 날, 태어났다고 기뻐하는 그 날 만큼은 적어도 다른 생명은 해치지 말아야 되겠다. 죽었다고 슬퍼하는 그 날만큼은 다른 생명은 해치지 말아야 되겠다. 이렇게 생각하는 게 상식적이지 않을까. 죽었다고 슬퍼하면서 다른 생명을 해치고, 태어났다고 기뻐하면서 다른 생명을 해친다면, 이 슬픔과 기쁨은 오직 자기식이다. 이거요.

 

그러기 때문에 우리도 또한 그렇게 생명이 해쳐질 수밖에 없다. 이것이 우리들이다. 이거요. 이런 우리가 고상한 척, 착한 척, 바른 척하는 게 과연 옳으냐? 이거야. 그럼 스님 까발려 놓고 아예 깡패처럼 나쁘게 살까요? 그게 아니라 우리가 아무리 착하게 산다 하더라도 그건 우리끼리 얘기지. 평균적으로 보면 착한 존재는 아니에요. 바른 척 하지만은 그건 자기 생각이지. 다른 존재까지 겸해서 보면 바른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인연과보에 따르면 우리는 과보를 받을 수밖에 없다. 이거야. 그러니까 여러분들 인생을 살아가면서 이런 저런 과보를 받더라도,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이런 일을 당해야 되느냐.” 이렇게 억울해 하거나 분해하지 말라 이런 얘기요. 자기 한 짓을 모르기 때문에 억울해하고 분해하지. 자기가 한 짓을 다 알면, 자기심보 쓴 걸 다 자기가 알면, 자기 말한 걸 자기가 다 기억하면, 어떤 일을 당해도 감사합니다. 아이고, 돌아 올 과보는 100인데 10밖에 나에게 책임을 묻지 않으니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고 받아야 돼.

 

이걸 더 적나라하게 알 수 있는, 내가 얼마나 내 중심적이냐 하는 것을 적나라하게 알 수 있는 게 제가 볼 때는 낙태라고 생각해요. 내 뱃속에 있는 내 자식도 내 눈에는 보입니까? 안보입니까? 안보이죠. 그죠? 내 눈에 안보이면, 그냥 아이고 우리 두 남녀는 결혼을 안 했으니까 이걸 알면 세상 사람들이 날 뭐라 그럴까? 자기체면 때문에 자기 자식도 죽여 버리잖아요. 아이고 애 둘인데 하나 더 낳을까? 그 이유로 남도 아니고 누구를? 자기 자식을 죽인단 말이오.

 

아직 낳기 멀었다는 이유로, 너무 늦었다는 이유로, 결혼 안 했다는 이유로, 아직 살림 형편이 안됐다는 이유로. 그러니까 두 남녀가 하룻밤 자면 애가 생길 위험은 있죠. 그죠? 그런데 그 쾌락은 즐기고 싶고, 애기가 생기면 책임은 안 지려고 그러고. 여러 가지 자기 입장이 곤란하면 없애버리려 그러고. 여기 무슨 애기가 원한을 갖는다. 이런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라. 우리들의 마음씀씀이가 어떠냐? 하는 거요. 그러니까 이런 마음을 갖고 우리가 사는데, 우리가 과연 복을 받을 수 있겠냐? 복 받겠다고 생각합니까?

 

그러니 우리는 우리가 마음 쓰고 우리가 말하고 우리가 행동하는 거를 전혀 고려 안하고 그저 좋은 일만 생기기를 원해요. 이건 잘못된 거요. 그래 될 수가 없어. 그래서 이러한 우리들의 이기적인 행위, 오직 자기밖에 모르고, 자기 이익밖에 모르는, 이런 우리들의 마음이 우리들의 인생을 고통에 빠뜨리고, 괴롭고, 이 나쁜 과보를 받을 수밖에 없게 만든다. 그러면 고기를 먹지 말아야 하느냐? 안 먹으면 좋고. 만약에 먹어야 한다면, 먹을 수밖에 없다면, 남의 살코기까지 먹고 그 힘으로 남을 때리거나 죽이지는 말아야 되겠지.

 

오히려 그 힘으로 죽어가는 생명을 살려줘야 되지 않냐? 이왕지 먹었거들랑 그 힘으로 남의 살코기까지 먹고 또 그 힘으로 또 때려죽이고. 그러면 이 참 문제죠. 먹더라도 그 에너지를 죽어가는 사람 살리는데 쓰고, 그 에너지를 남의 물건을 뺏거나 훔치는데 쓰지 말고 가난한 사람 도와주는데 쓰고, 그 에너지를 다른 여자나 남자를 성추행하고 성폭행하는데 쓰지 말고, 그 에너지를 거짓말 하고 욕설하는데 쓰지 말고, 그 에너지를 술 먹고 마약 해서 비틀비틀 대는데 쓰지 말고.

 

이왕지 먹었거들랑 그 에너지를 생명을 살리는데 어려운 사람을 돕는데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데 진실을 말하는데 그런데 써라. 이런 얘기요. 그래야 과보를 덜 받을 거 아니냐? 이왕지사 내 아이를 지웠거들랑 내 아이도 내가 한때 나의 여러 가지 어려운 조건 때문에 죽일 수밖에 없는 것이 나 라면, 저 인도나 북한이나 다른데 부모가 자식을 낳아놓고 그 자식을 못 키워가지고 제대로 먹이지도 안하고 제대로 공부도 안 시키고 버린 걸 두고 우리가 욕할 수 있겠냐 이거야.

 

그래도 그들은 죽이지는 않았잖아. 그런데 나는 죽이기까지 하지 않았느냐? 그러니 내가 이 죄보를 이 어리석음을 참회하는 방법은 이걸 갖고 후회하고 뉘우친다고 참회가 되는 게 아니다. 그러니 네가 한 아이를 버린 참회는 내가 다섯 아이를 키워야 되겠다. 죽어가는 다섯 아이를 키우므로 해서 오히려 한 아이의 죽음을 통해서 내가 다섯 아이를 살리는 일을 해야 되겠다. 이렇게 마음을 내는 게 뭐다? 진정한 참회다. 이거야.

 

이렇게 마음을 내면 우리가 잘못한 행동이 잘못으로 끝나는 게 아니고 잘못함으로 해서 더 이 세상이 좋아진다. 하나를 죽인 거는 내 몰므로 해서 우린 다섯 명을 살리는 쪽으로. 한번 잘못 함으로 해서 열 번 잘하는 쪽으로 우리 삶이 바뀌게 된다. 앉아서 운다고, 후회한다고, 요령 흔들고 뭘 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라. 바로 이런 도리를 안다면 그땐 내가 어리석어서 내 자식까지도 버릴 수밖에 없는 중생이었다면 이젠 내가 지혜로워져서 버려진 남의 자식을 데려다 키울 만큼 내가 지혜로워졌다.

 

이렇게 될 때 내 자식을 버린, 내 자식을 낙태시킨 것이 나쁜 과보로 나에게 돌아오는 게 아니라. 오히려 크게 깨닫고 뉘우침으로 해서 더 많은 생명을 살리고 더 많은 아이들을 돌보는 좋은 일을 하는 인연이 된다. 이거야. 그래서 좋은 과보가 돌아오도록 해라. 이것이 방생기도며 이것이 낙태에 대한 진정한 참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