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지금 위급한 상황에 처해있다 할 때는 지금 어떻게 염불을 하려 해도 염불이 안 되고, 오직 마음이 어떻게든 기적이 일어나서 부처님의 가피력으로 이 위기를 극복했으면 좋겠다. 하는 이런 생각에만 자꾸 마음이 가게 됩니다. 이것은 이분만 그런 것이 아니라 누구나 다 그렇다. 저도 학생 때보면 좋은 부처님의 법을 배워도 이번 시험에 만약에 잘못되면 장학금을 못 받는다든지, 이번 시험에 만약에 잘못되면 등수가 좀 밀린다든지, 이렇게 될 때는 시험 칠 때는 내가 공부 안 한 거는 문제 안 삼고, 그저 법당에서 예불할 때 ‘아~ 제발 좀 시험 잘 보게 해주십시오.’ 이런 마음이 일어난다 이거야.
이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어나는 보편적 현상이다. 이것은 이해가 되고 인정이 된다. 그러나 시험 잘 보게 해달란다고 시험이 잘 봐 지느냐? 돈 벌리 게 해달라고 돈이 벌리느냐? 이거와는 별개다 이거요. 내가 오늘 대중들 한 700명 데리고 남산을 간다. 그럼 비가 안 왔으면 좋겠죠. 그런데 “비 온다.” 이러면 어때요? ‘아~ 몇 시까지만 좀 안 오면 좋지 않을까?’ 이런 마음이 든다. 이거야. 그래서 ‘비가 안 왔으면 좋겠는데. 부처님 비 좀 안 오게 해주세요.’ 이런 마음이 든다. 이거야. 그러나 내가 그런다고 비가 안 오느냐? 이 문제요. 이거하고 비 안 오는 거하고 얼마나 관계가 있겠느냐?
우리는 관계가 있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마침 비가 안 오면 야~ 내 기도가 들어졌다. 영험이 있다. 이렇게 생각하고. 안되면 아이고 부처님 믿어도 소용없네. 이렇게 된다. 이거야. 그러니까 부처님에 대해서 좋아함과 싫어함이, 부처님에 대한 믿음과 믿지 못함이 항상 이렇게 교체된다. 그런데 실제로는 관계가 없어요.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렇게 좋아하고 싫어하고, 믿고 믿지 못함이 일어난다. 관계가 없다면 부처님에 대한 어떤 그런 흥분된 마음으로 좋아함도, 부처님에 대한 실망도 다 없어진다.
그러니까 내 마음의 현실에서는 이렇게 일어나는 게 현실이오. 그러나 실제 세계에서는 어떠냐? 관계가 없다. 그런데 그 관계가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이거야. 그러면 우리가 불법이라고 하는 것은 그런 사실을 알라는 거야. 그 사실이 법이야. 법을 안다는 것은 사실을 사실대로 안다. 사실을 사실대로 알면 어떠냐? 내가 비가 왔으면 안 왔으면 하는 이런 생각을 내려놓게 된다. 비가 오면 오는 데로 오지 않으면 안 오는 데로 대처하게 된다. 비 오는 거 갖고 마음을 조마조마 하는 거는 사라지게 된다.
안 왔으면 좋지마는 오는 경우도 있고, 왔으면 좋지마는 안 오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기형편에 따라서 왔으면 좋겠다. 안 왔으면 좋겠다. 이런다고 비가 다 오고 안 오고 하면 뒤죽박죽이 될 거 아니오. 소풍 가는 사람은 안 왔으면 좋겠다고, 오늘 모종내는 사람은 왔으면 좋겠다 그러고.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 만약에 하느님이 오라 그런다고 비를 내려 보내 주고, 안 왔으면 좋겠다고 안 내려준다면, 이런 경우 하느님도 골치 아파. 해결 방법이 없어. 그런데도 이 세상이 돌아가는 이유는 뭐다? 사실은 관계가 없기 때문에 이 세상이 돌아가는 거요.
그럼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내가 알면 어때요? 내가 이렇게 마음조릴 필요는 없어진다. 지금 부도위기에 처했다. 중생의 마음, 이 마음의 현실에서는 지금 조마조마하다. 어떻게든 막았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이 든다. 그런데 어떻게 어떻게든 기회가 넘어가면 “아이고, 부처님 감사합니다.” 하게 될 거고. 그런데 그게 틀리게 되면 “아이고 부처 믿어도 소용이 없네. 절에 30년이나 다니면서 그렇게 불공도 드리고 열심히 해도 부처님이 이런 것도 하나 기적으로 안돌 봐 주시고 말이야.” 이런 생각이 든다.
그러나 지금 내가 할 일은 일어났으면 좋겠다. 안 일어났으면 좋겠다. 이게 아니고. 내가 어떻게 바라느냐? 바라지 않느냐와 이 일은 관계가 없는 거다. 그러나 다만 나는 간절하게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다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는 거에 대한 간절한 마음을 쏟을 뿐이야. 그랬는데도 일어난다 해서 기도가 부족하다든지 가피가 없다든지 그런 게 아니다. 왜냐하면 안 일어났으면 좋겠다 하는 것은 중생의 마음이니까. 만약에 우리가 부처님 마음을 낸다면 부처님 마음을 낸다면 큰일 아니다. 이걸 알아야 돼.
첫째는 관계없는 일이고. 둘째는 설령 일어난다 해도 큰일 아니다. 어떤 사람이 돈을 1억 가지고 있다. 그걸 잃어버렸다. 굉장히 큰일이죠. 그 사람 입장에서는 굉장히 큰일이오. 그런데 돈이 없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어때요? 잃어버릴 것도 없는 사람도 잘 사는데 잃어버렸다는 건 뭐요? 가지고 있었다는 걸 말하는 거요. 사실은 큰일 아니오. 개인에게는 큰일이지 마는 객관적으로 보면 사실은 큰일은 아니오. 여러분들은 둘이 같이 살다 헤어지죠. 큰일이죠. 스님이 볼 때 큰일이오? 아니요? 큰일 아니지. 왜?
나는 본래부터 혼자 사는데 뭐. 혼자 사는 게 무슨 큰일이오. 아들이 있다 없다. 큰일이죠. 나는 본래 아들 없이도 살았는데 그게 뭐 큰일이오. 누가 골프채를 잃어버렸다. 죽는다고 나한테 얘기한다. 내가 볼 때 큰일이오? 아니요? 큰일 아니오. 나는 골프채 본래 없기 때문에. 누가 어떤 사람이 담배 없어가지고 담배를 못 피워가지고 짜증을 내고 성질을 내고 우왕좌왕해. 큰일이라고 그래. 내가 볼 때 큰일이오? 큰일 아니오? 큰일 아니오. 내가 볼 때는 야~ 그거 잘 잃어버렸다. 이런 생각이 들겠죠. 너 담배 없으면 담배 못 피우고, 못 피우면 너 건강에도 좋고, 잘 잃어버렸다. 이렇게 말 할 수 있다.
그래서 여러분이 굉장하다고 가져온 얘기를 내가 사실은 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속으로는 ‘잘됐다.’ 이런 경우가 굉장히 많다 이거야. 내가 비싼 술병을 사 놨는데 잃어버렸다. 내가 담배를 비싼 걸 한 보루 얻어놨는데 잃어버렸다. 이러면 스님이 볼 때는 어때요? 잘 잃어버렸다. 없을수록 좋다.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다. 사암 큰스님께서 원적사에 계실 때 외출을 했다 절로 돌아가는데 그 들어가는 입구에 마을 사람들이 우~ 모여서 난리더라는 거요. 웅성대고. 그래 스님이 가서 “웬일이오?” 하니까. “아이고 ,큰일 났습니다.” “그래 무슨 큰일이 났다?”
담배 농사를 짓는데 담배 건조실 있잖아. 담배 말리는, 건조실에 불이 나서 다 타버렸다는 거요. 그래가지고 당사자는 낙심을 해서 있고, 마을 사람들도 큰일 났다고. 그래 큰스님이 “잘됐다.” 이랬다는 거요. 그러니까 마음사람들이 “아니 남은 큰일이 나서 난리인데 뭐가 잘됐어요?” 그래 항의를 한 거요. 그래서 큰 스님이 물었어. “담배 그거 나중에 다 피울 거 아니오?” 그렇다는 거요. “그럼 이왕지 태울 거 그냥 확 질러버리면 되지, 그거를 잘게 썰어가 하나씩 하나씩 말아가지고 입으로 빨아서 그렇게 태우나? 왜 그렇게 힘들게 태우냐 이거야. 그냥 확 질러버리지.”
“그럼 우린 뭐 먹고 살아요?” “왜 꼭 담뱃잎을 해서 농사를 지어서 먹고 살라 그러냐? 그 밭에 감자도 심고 고구마도 심어서 먹고 살면 되지.” 여러분들 세계에서 제일 아편을 많이 재배하는 나라가 어느 나라요? 어디? 몰라? 아프가니스탄. 내가 거기 살았잖아요. 온 길거리 어디든지 아편 밭이야. 아편 밭. 양귀비 밭이야. 그런데 그 사람들 그 양귀비 키운다고 전 세계가 난리지 않습니까? 그죠? 그런데 그 사람들은 그 황무지에 잘되는 게 뭐 밖에 없다? 양귀비밖에 없는 거요.
그 사람들 보고 양귀비농사 짓지 말라는 얘기는 굶어 죽으라는 얘기요. 그런데 우리는 그 나라사람들이 아편 재배한다고 난리잖아요. 그런데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먹고 살 농사를 못 짓게 한다는 거요. 그래서 지금 남아메리카에도 볼리비아나 이런 나라도 마찬 가지오. 미국에서는 마약 재배를 못하게 하고, 미국에서는 마약이지 그 동네 사람들은 그게 뭐다? 농사에요. 맨날 농사짓는 사람도 중독이 안 되는데, 뭣 때문에 비싼 돈 주고 사서 중독이 되요. 그 놈들. 그죠? 이럴 때 누가 문제요? 그걸 마약으로 하는 놈이 문제요? 농사짓는 사람이 문제요? 그러니까 논쟁이 되는 거 아니오.
그러니까 미국 쪽에서는 너희가 자꾸 이걸 재배하기 때문에 우리 국민들이 병든다. 이렇게 얘기하고 이쪽 사람들은 안사면 될 거 아니냐? 이거요. 우린 이렇게 낳아놓고도 아무도 병든 사람 없는데. 그런데 대대로 이 농사를 지어서 먹고 살았는데 그럼 보상도 안 해주고 농사 못 짓게 하면 어떻게 하노? 담뱃잎도 마찬 가지오. 담배도 일종의 마약이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큰일은 나한테는 큰일이오. 그런데 다른 각도에서 보면 어때요? 이게 큰일이 아닐 수도 있어요. 지금 우리나라에도 그렇잖아요.
지금 노동자들이 직장에서 해고되는 거는 노동자 입장에서는 큰일이오? 아니요? 큰일이죠. 그런데 지금 보수주의자들은 노동자들을 해고를 못 시키기 때문에 뭐다? 회사가 제대로 안되기 때문에 다 회사를 어디로 가져간다? 외국으로 가져간다. 이게 노동의 경직성이라고 그럽니다. 기업하는 사람이 회사가 잘 안되면 해고했다가 잘되면 받아들였다가. 이거 마음대로 하게 노동의 유연성이다. 이걸 마음대로 하게 해줘야지. 이렇게 생각하지마는, 그 임금 받아 사는 노동자는 언제는 가라 그러고 언제는 오라 그러고. 불안해서 어떻게 살아. 애 공부도 시켜야지
아파트 사면 아파트 적금도 정기적으로 내야지. 그러니까 그 이해관계에 걸린 사람들은 죽기 살기로 신분을 보장해 달라. 그렇게 해서 노조를 만들어서 하나가 해고하려면 단체가 다 힘을 합해서 해고 안 당하려고 하는 거고. 회사는? 그것 때문에 회사 안 된다고 그러지. 그런데 여러분은 잘 모르니까 일없으면 해고해야지. 이렇게 생각하잖아. 그런데 그 당사자한테 가서 물어봐요. 그러고 우리 사회에서 퇴출, 이런 말 쓰죠? 그죠? 사양산업은 뭐해야 된다? 퇴출해야 된다. 경쟁력이 있는 놈만 키우고 나머지는 다 어떻게 해야 된다? 퇴출해야 된다. 이렇게 나오고.
그런데 자기가 지금 하는 회사나 어떤 직업이 그 퇴출기업에 속하는 그 사람들이 볼 때는 어때요? 망하는 거지. 어쩌면 지금 질문하신 보살님의 그 회사는 우리 사회에서 앞으로 경쟁력이 없는 기업이거나, 그러니까 품목자체가 경쟁력이 없기 때문에 오늘 부도 안 나면 내일 나고, 내일 부도 안 나면 1년 후에 나고. 어차피 퇴출기업일 수도 있는 거요. 그러니까 이런건 언제 하는 게 좋다? 일찍 부도나는 게 좋습니다. 왜? 부도를 빨리 내면 빚이 덜 지고, 오래 끌면 어때요? 은행 돈만 딱 그냥 털어버리면 끝나는데, 이걸 끌면 어떻게 되요? 부모 돈 끌어오고 형제 돈 끌어오고, 사촌 돈 끌어오고, 육촌 돈 끌어오고, 다 끌어와 가지고 나도 망하고 너도 망하고 주위 다 망해버려요.
그래서 회사하는 사람은 태도가 분명해야 됩니다. 마치 노름하는 사람이 얼마를 딱 가져가서 딱 떨어지면 빚내서 하면 됩니까? 딱 털고 일어나야 됩니까? 딱 털고 일어나야 됩니다. 그것처럼 은행 융자를 받아 회사를 해서 안 되면 딱 털어버려야 되요. 그래야 주위사람을 피해를 안주는 거요. 그리고 내가 아무것도 안 가지고 털어버리면 죄가 안 됩니다. 그런데 개인 돈을 빌리면 죄가 되죠. 그런데 사람이 욕심이 그렇게 안 되잖아요. 그래서 지금 이게 부도가 탁 나버리는 게 좋은지, 이걸 그냥 한달 한달 끌어가는 게 좋은지 지금 몰라요.
그러니까 지금 “부처님 해 주세요. 해주세요.” 하는 게 더 큰 과보를 받을 수도 있단 말이오. 이런 걸 다 알면 마음이 막 졸여지는 거는 중생으로서 일어나는 일이지마는, 마음 졸인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고, 또 그렇게 해서 하루하루 더 가는 게 더 좋은지 안 좋은지도 알 수가 없어요. 국가적으로 볼 때는 사양산업이면 빨리빨리 퇴출하는 게 좋다 그러잖아요. 또 경영을 방만한 게 하는 거는 어떻게 합니까? 빨리빨리 정리를 하는 게 낫다고 그러잖아요.
그러니까 이쪽 편에서는 큰일인 게 이쪽 편에서 보면 당연한 흐름인 경우도 있다. 이 말이오. 그래서 이걸 갖고 안절부절 하지 마시고, 내가 안절부절 한다고 도움이 되면 안절부절 할 수도 있는데. 첫째는 안 되고, 두 번째는 크게 생각해 보면, 우리 어리석은 중생은 어떤 게 잘되는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인생은 새옹지마다. 이런 말 들어보셨어요? 어느 게 잘되는지 몰라요. 지금 불행이라는 게 사실은 한 꺼풀 벗겨놓고 보면 그게 다행이고. 지금 잘됐다는 게 한 꺼풀 벗겨놓고 보면 불행의 원인이 된다는 거요.
그래서 인생을 조금 느긋하게 보는 게 좋아요. 좀 돈이 있을 때는 좋은 옷도 입고 좋은 화장품도 쓰고 좋은 차도 좀 탔다. 그런데 거기에 집착하면 돈 없으면 죽는 줄 알아요. 돈 없으면 어때요? 없는 대로 또 살면 돼. 그런데 지혜로운 자는 돈이 없을 때도 어때요? 돈이 없어서 검소하게 가난하게 살지마는 돈이 있어도 어때요? 검소하게 살면 돈이 없을 때도 아무 문제가 안 되는 거요. 그래서 이게 지혜로운 사람이다. 이거야.
비가 오나 날이 맑으나 상관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이 있고, 꼭 날이 맑아야만 사는 사람이 있단 말이오. 날이 맑아야만 사는 사람은 비 오는 날 맨 날 울어야 한단 말이오. 이런 데서 “부처님, 관세음보살님,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부처님 은혜로 참 잘 살았습니다. 앞으로도 잘살 겁니다. 저는 아무 근심걱정이 없습니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기도를 해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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