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히 계십시오,’ 하고 끝내버리세요. 도저히 못사는 걸 어떻게 합니까? 도저히 못살겠다는데. 사람이 ** 뭐라도 한번 해봐야 된다? 지 맘대로 한번 하고 죽어야지 어떻게 이렇게 살겠습니까? 그런데 벌써 ‘안녕히 계십시오.’ 하고 끝내야 되는데 왜 나한테 물었을까? 말은 이래도 말은 이래도 살 수 있는 뭐 좋은 방법 좀 가르쳐주세요. 이 말이겠지. 왜냐하면 ‘안녕히 계십시오.’ 하면 나한테 물을 필요 없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남편이 완벽주의자 결벽주의자, 같네요. 모든 일을 세심하게 깔끔하게 하고 남한테 맡기면 잘 못 믿고.
이 정도가 어떤 일에 세상에 일에 적용이 되면 아주 좋은 사람이에요. 그런데 이게 사람한테 적용이 되면 사람 미치게 만드는 거요. 아까도 얘기했지만, 정반대네. 아까 질문하고 그죠? 아깐 자기가 어때요? 하나하나 따지고 옳고 그르고 따지고 남편이 적당하게 넘어가자였는데. 이번엔 거꾸로 여자는 적당하게 넘어가자는데 남편이 또 너무 하나하나 따지고 이래놓으니 숨 막혀서 못살겠다는 거요. 사실 이러면 숨 막혀서 못삽니다. 하나하나 다 시비하면 사람 미치는 거요.
그러니 살려면 안 살려면 ‘안녕히 계십시오.’ 하고 끝내고. 그런데 안 살더라도 남편이 잘못된 인간은 아니오. 남편이 친구를 잘 못 사귄다 하더라도 잘못된 사람은 아니오. 잘못됐다는 건 남의 물건을 훔치고, 남의 여자를 강간을 하고, 거짓말 하고, 사기치고 이게 잘못된 거요. 아시겠습니까? 이건 잘못된 거요. 그러나 이거는 누굴 헤치거나 죽이거나 때리거나 훔치거나 이런 건 아니에요. 이건 성격이 이런 거요. 성격이.
그러니까 이 성격이 안 맞기 때문에 “아이고 당신하고 못 살겠소.” 하는 건 괜찮나요. 그런데 상대를 미워해선 안 된다는 거요. 상대를 나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럼 나쁘지 않다면 서로 다른 거요. 나하고 성격이 차이가 난다는 거요. 이럴 때는 상대를 이해하는 게 필요하다. 얘기 들으니까 꼭 남자가 옛날에 저 비슷합니다. 저도 옛날에 어떤 일을 완벽하게 안 하면 못 견뎠어요. 그런데 그 성질 그대로 가지고 있었으면 원래 인연이 단명하다는데 아마 일찍이 죽었을 거요. 숨이 막혀가지고. 그렇게 안 한 사람들 보면 열이 받치거든요.
“방 청소하라.” 그러면 이게 걸레를 뭐요? 물에다 딱 씻어 딱 짜서 습기가 없도록 딱 해가지고 그렇게 싹 닦아야 되는데, 쉭~ 해서 대강해가지고 이래 닦고 나면 양말 밑에 물이 척척척 붙을 정도로 슬 갖다 문질러 놓고, 다 닦은 방에 보면 주스 물이나 떨어져가지고 이게 굳으면 한번 쓱 지나가도 안 닦이잖아. 그럼 한번 딱 보고 싹싹싹싹 닦아야 되잖아요. 그런데도 이렇게 지나가면 물도 방 닦았다는데 물방울이 여기저기 떨어져 있는 거요. 그런데 옆에서 보면 안보이거든요. 약간 옆에서 봐야 딱 보이지.
방을 쓰는데도 빗자루를 약간 눕혀서 살살 쓸어야 되는데, 쉭쉭쉭 이렇게 쓸어가지고 다 공중에 날아가서 다 쓸고 나면 제자리에 떨어져 있다든지. 양말도 쫘악~ 짜가지고 비비틀리도록 나무에 줄에 걸쳐놓고 이러거든요. 딱 펴서 이렇게 걸쳐놓으면 될 텐데. 같이 사는데도 연탄불도 맨날 꺼트려요, 한두 번 꺼트려보면 왜 꺼트려질까? 연구를 해서 이렇게 딱딱한다든지 이렇게 안하고. 그래서 큰 것 때문에 못사는 게 아니라 이런 거 옆에 같이 있으면, 숨이 막혀서 못살아요. 이불도 이렇게 이왕지 갤 거 반듯하게 개어서 안 넣어놓고 두루륵 말아서 턱 처박아 놓고.
그러고 마루 같은 거 닦을 때도 결을 따라서 이렇게 닦아야 되는데, 옆으로 설설 닦아서 걸레가 전부 나무틈바귀에 끼도록 만든다든지. 이런 거 보면 숨이 막혀서 못살아요. 숨이 막혀가지고. 그래서 옆에서 딱 지키고 있든지. 안 그러면 아예 쫓아버리고 내가 하든지. 이래야 되요. 그런데 그거 처음에 모르면 한두 번 가르쳐주면 해야 되는데 이거 뭐 상관 안 해요. 소귀에 경 읽기요. 그런데 이렇게 하면 좋게 말하면 탁 고렇게 전부 그렇게 같이 살면 교육이 탁 돼서 살 수는 있어요. 그런데 산속에서 아무도 없는 데서 나 혼자 살든지, 거기 맞는 놈만 같이 살고, 아닌 건 무조건 두드려 패서 다 쫓아내버리고.
옛날에 설질 괴팍한 스님들 그런 경우 많았죠. 조금만 잘못하면 쫓아 보내버리잖아. 그러면 딱 들어와서 거기에 맞춰서 사람이 살게 되요. 그래도 질서가 잡힙니다. 그런데 사회에서 세상 활동하면서 이렇게 사니까 이렇게 해서는 이 사람 딴 거는 괜찮은데 그것만 그렇단 말이오. 그러니까 자연적 선택을 해야 되요. 성질대로 살든지. 안 그러면 다른 일을 하려면 성질은 죽이든지. 그래서 요즘 성질을 죽이고 사는 거요. 요즘은 안 봐요. 그냥. 청소하는 걸 안 봐요. 보면 성질나서 안 되니까. 지저분해도 안보고 하늘만 쳐다보고 다니면 되요.
그런데 계단 구석구석에 보면 스윽 닦고, 책상 밑도 딱 드러내고 안 닦고 스윽 닦고 가면, 세월이 흐르면 책상 드러내보면 이 쪽에 먼지가 가득 있지 않습니까? 구석으로. 자세히 들여다보면 안 닦는단 말이오. 그냥 슬슬슬슬 껍데기만 이래놓고 살지. 그런데 이제 결국 살다 보면 선택을 해야 된다는 거요. 선택을. 방석도 똑바로 개고 절도. 여기 방석 놓는 것도 그래요. 향로 촛대 놓는 것도 그래요. 부처님 정면에 대칭이 되게 똑바로 놓고 이래 안하고, 대강 쓱 갖다 온져 놓는 거요. 청소하라 그러면 적당하게 치우고 아무데나 던져 놓습니다. 아시겠어요?
촛대 하나는 이쯤 와있고. 하나는 저 끝에 가 있고. 이런 식으로. 그러니까 그런 거를 봐도 아무렇지도 않게 공부가 되든지. 둘 중에 하나 어떻게 하든지 안보든지. 왜냐하면 내가 안 봐도 이 세상이 돌아가거든요. 내가 안 봐도. 그래서 내가 크게 깨달은 거는 내가 너무 이렇게 성격이 콱 완벽주의자라서 다 놔버리고 준비 없이 그냥 가서 살라고 내가 봉암사 부목으로 들어갔단 말이오. 아무것도 안하고 그냥 시키면 시키는 데로 대충 한번 살아보려고. 그런데 이습관은 못 버립니다. 거기 가서 부목을 하는데도 대충대충 안 되는 거요. 장작도 죽기 살기고 패고 똑바로 하고 이러니까 땀을 막 이렇게 흘리면서 막 장작을 패고 있으니까 사암 큰스님께서 오시더니 나보고 이래요.
“자네 없을 때도 봉암사가 잘 있었네.” 하하하. 내가 하는 짓이 내가 없으면 봉암사가 안 될 거 같은 거요. 그렇게 막 열심히 하는 거요. 그 말이 얼마나 중요한 말이오. 자네가 없어도 자네 없을 때도 봉암사가 잘 있었다는 거요. 좋은 것도 집착이다. 이 말이오. 좋은것도. 그러니까 그런 걸 내려놓고 그래도 이제 가끔 성질이 그게 안 되죠. 한두 번 얘기했는데도 안 되면 성질이 탁 나온단 말이오. 어지간하면 첫째 안보기. 올라오더라도 피해야 되요. 그런데 그게 지나가버리면 또 괜찮아요. 아시겠습니다. 성질의 업식이 있다면 딱 그때 문제요. 그때 팍 올라오면 한마디 해줘야 되요.
그런데 그때를 나도 약간 지혜가 생기니까 그때 말 안하고 그냥 지나가버려. 지나가버리고 마음이 가라앉으면 눈에 안보여요. 그래서 이렇게 같이 살잖아. 안 그러면 같이 못살아요. 누군지 모르지마는 성질 나처럼 더럽다 이 말이오. 좋은 거 아니에요. 그런데 이제 상대가 볼 때는 그런데, 본인 입장에서 볼 때는 대강대강 하는 사람을 이해할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왜 이왕지 할 바에 똑바로 하지 왜 그러냐? 나도 옛날에 이해가 안됐어요. 이왕지 청소할 바에야 탁 털면 되고, 탁 빨아서 탁 널어놓으면 되지 뭣 때문에 이렇게 닦고서 구석에다 처박아 놓고 가버리고.
짜증이 나 미치는 거요. 도대체 왜 인생을 이따위로 사느냐 이 말이오. 이왕지사는 거. 어차피 다시 또 청소하려면 새로 빨아야 되잖아요. 그런데 물 쏟아 급할 때 가면 닦을 걸레가 없지 않습니까? 딱 빨아서 널어놨으면 가져와 닦을 수 있는데. 그렇게 안 한다는 거요. 그런데 살아보면 그렇게 안 하는 사람이 다수요. 그러니까 그렇게 않는 게 좋다는 거 아니오. 그렇게 하면 좋은데 세상은 그렇게 안되는 게 또한 현실이다. 이거야. 그러니까 우리가 그렇게 하려고 자꾸 이렇게 하는 건 좋지마는, 또 내가 그렇게 하는 건 좋지마는, 그걸 남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
그런데 반대로 이 경우에 반대로 이 질문하신 분은 그런 남편에 대해서 이해를 해서 자기도 좀 따라 배우려고하고, 맞추려 하고, ‘남편 참 깔끔하게 잘한다.’ 이렇게 생각을 좀 바꿔. 뭐 대강하면서 지가 잘났다고 잘하는 사람을 나무라고 그래. 안 그래? 아 이렇게 깔끔하게 잘하고 세심하게 하면 좋잖아. “아이고, 여보 죄송해. 내가 세심하지 못해서. 이렇게 좀 맞춰줘요. 맞춰줘야 누그러지지. 자기가 볼 때 어긋난 짓을 하는 부인이 계속 오히려 고치지도 안하고 따라 배우지도 안하고 고집 피우면 숨넘어간다니까. 정말이에요.
그래서 나도 옛날에 남하고 같이 못살겠다고. 지적을 해주면 고쳐야 되는데 안 고치고 도로 큰소리치고 “먼지 좀 있으면 어때요?” 이러면 사람 미치는 거요. 그럴 때는 부인이 “아이고 예. 제가 잘못했습니다. 아이고 예. 제가 또 틀렸네요.” 이렇게 좀 숙여주면 이런 성질이 죽습니다. 내 성질로 봐서. 내가 이해를 잘하는 거요. 하시겠어요? 상대가 잘못했다고 그러고 “아이고 죄송합니다,” 하고 이러면 야단을 칠 때뿐이지 성질이 확~ 할 때뿐이지 금방 죽어요. 뒤끝은 없거든요.
그러니까 맞추어 줘요. 좀 맞추어 줘봐. 부인이. 별로 자기도 잘한 거 같지도 않은데. 의심하는 거는 못 미더워져요. 저도 일 맡겨놓으면 못 믿어요. 요즘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내버려둬요. 옛날엔 이걸 왜 이왕지 할 거 깔끔하게 완벽하게 깔끔하게 세심하게 안 하냐? 지금도 불만이 있어요. 아시겠어요? 우리 정토회에 대해서. 왜 일을 하면 깔끔하게 완벽하게 안하고 적당하게 하느냐? 이거야. 답사를 딱 가도 모든 걸 다 정황을 파악해서 이게 몇 명이 앉고 그늘이 어떻고 비가 오면 어떻고 이 모든 걸 고려하고 답사시키니까 휙 돌아보고 몇 가지 물어보면 “모르는데요.”
그런 거 까지 다 신경 쓰면 내가 못사는 거요. 그러니까 나도 살려니까 안 죽고 살려니까 어지간한 건 눈감고 그냥 지나가는 거요. 미리 얘기 몇 마디 얘기해줘도 안되도 그만이오. 할 수 없어요. 왜? 세상이 뜻대로 안되니까. 뜻대로. 그렇게 뜻대로 하려면 어떻게 살아야 된다? 혼자 살든지, 사람을 5명만 데리고 살든지. 그렇지 않으면 수가 많고 이러면 세상이 뜻대로 안 되는 거요. 그래서 서로 다른 사람을 용인하는 게 필요합니다. 그런데 아직도 저도 그런 성격이 있어가지고 이렇게 경상도 말로 좀 얍삽하게 구는 사람 있잖아. 그죠?
잘못할 수는 있는데 잘못하면 잘못했다고 그러면 되는데 적당하게 이렇게. 아직도 그런 사람 못 봐네요. 딱 그러면 그런 인간하고 상종하기 어렵단 말이오. 세상은 그런 사람 살아야 돼. 내 보기에 그렇지. 내 성질 같은 경우에 그걸 못 견뎌내지. 그 사람도 자기 친구가 많이 있어요? 없어요? 있어요. 그 사람도 그 사람 주위에 사람이 많이 있단 말이오. 그러니까 우리가 불법을 공부한다는 것은 깔끔한 것만 불법이 아니라 지저분한 것도 같이 봐내는 게 불법이다. 그래서 불구부정 아니에요.
그러니 깔끔한 남편을 못 견디겠다 하니까. 아까 남편이 너무 깔끔 안 해 아내가 두루뭉술해서 못 견디겠다. 이 집은 또 어때요? 남편이 너무 깔끔해서 못 견디겠다. 그래 이거 바꾸지. 이 사람하고. 이 둘이는 지금 바꾸면 아까 그 깔끔한 남편이 두루뭉술해서 못살겠다는 남자하고 같이 살면 어때요? 거꾸로 맨날 비판 받는 거요. 아시겠어요? 반대로 남편이 너무 깔끔해서 못살겠다는 이 여자분이 두루뭉술한 그 남자하고 살면 어때요? 그 남자로 부터도 또 비판 받아요. 그러니까 상대적이라는 거요. 상대적이다.
그러니까 이 분은 남편이 그렇게 얘기할 때 “당신이 성격이 문제다,” “뭐가 문제다.” 이러지 말고 “죄송합니다. 당신 깔끔하게 잘하시는데 제가 좀 지저분해서 죄송합니다. 세심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이렇게 좀 해야 돼. 저도 정토회 사람들 세심하게 안 한다고 비판을 하는데 이 저기 밑에서 “아이고, 스님은 너무 꼬장꼬장해서 문제다.:라고 자꾸 이러면 기분 좋겠어? 안 좋겠어? 더 기분 나쁘니. 에이 못 살겠다. 이렇게 되지. 그러니까 그렇게 조금 맞춰주세요. 세심한 것을 나쁘다고 생각하지 말고 “세심한 걸 내가 다 못 따라가서 미안합니다.”하는 마음을 내면 훨씬 좋아질 거요. 한번 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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