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3)

[즉문즉설] 제400회 이라크전에 대해 (1)

Buddhastudy 2013. 5. 9. 22:12

출처 YouTube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또는 이 세상에서는 늘 두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가 명분, 하나가 파워. 힘이에요. 그러니까 실리주의라는 것은 주로 현실적인 파워를 중요시하고 그 다음에 원칙주의자들은 명분을 중요시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주로 옛날부터 전통이 실리보다는 명분이 더 중요했어요. ~ 소위 말하면 현실적인 힘이 어떠냐 하는 것보다는 그것이 과연 원칙에 맞느냐? 이런 것을 더 중요시했다. 이건 나쁜 건 아니에요. 우리가 정의라고 하는 것은 어떤 힘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것이 더 바람직하냐? 이런 문제죠.

 

그러고 역사는 짧게 보면 현실에서는 늘 힘이 우위를 점령하는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길게 보면 역시 정의에 따라서 흘러간다. 이렇게 볼 수 있어요. 그런데 그 기간을 어느 정도 볼 거냐? 1년을 볼 거냐? 십년을 볼 거냐? 백년을 볼 거냐? 이런 문제라고 볼 수가 있죠. 그래서 우리가 선택해야 할 것은 첫째는 원칙이 중요하죠. 그러나 그 원칙만 주장하고 현실을 무시하면, 즉 힘을 무시하면 하나의 비현실주의자가 됩니다. 그리고 원칙을 무시하고 오직 현재의 힘만 따라가면 실만 따라가면 더 크게 보면 큰 손실을 입는다. 이렇게 볼 수 있죠.

 

그래서 우리가 크게는 원칙을 지키되, 그러나 현실 속에선 늘 힘의 작용을 중요시해야 한다. 힘을 무시하면 안 된다는 거요. 그런데 우리가 주로 종교인들이나 이런 사람들은 현실의 힘을 무시하는 경우가 참 많아요. 주의주장만 있고 그 주의주장을 실천적으로 뒷받침할 힘을 갖고 있지 못하다. 이렇게 볼 수가 있죠. 그런데 이제 종교인들은 원칙만 갖고 살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관철은 못시키더라도 원칙을 주장하고 안 되면 개인이 자결을 하든지, 개인이 뭐~ 산으로 도망을 가든지, 세상을 외면하든지 이렇게 살 수 있죠.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한다고 해결되는 거는 아니에요. 그래서 현실에서는 그 원칙이 일정한 현실과 부딪치면서 현실 속에서 약간의 손실을 우리가 감안을 해야 된다. 그런데 이제 그 원칙이 어떠냐에 따라서 다르죠. 어떤 것을 갖고 우리가 일정하게 원칙에 손상을 입는 것도 감수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지금 패배하더라도 다음의 승리를 위해서 어때요? 그냥 원칙을 밀고 나가서 실패를 해버리는 거요. 그런데 그 실패가 실패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것이 실패함으로 해서 다음에 더 큰 승리를 가져올 수 있는 밑거름이 될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이차돈이 신라의 불교가 들어와서 불교가 민중들 사이에 퍼졌다. 이거야. 그런데 국가권력이나 그 귀족들은 전통사상에 집중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이게 명분은 전통사상과 외래사상의 대립이 되지마는, 현실은 어떠냐? 하면 기득권자와 소위 젊은 개혁세력과의 대립이란 말이오. 이랬을 때 결국은 기득권 권력이 불교를 믿지 마라. 외래사상이다. 외래사상이라고 평가를 하죠. 그런데 실제로 젊은이가 봤을 때는 이게 외래사상이냐? 전통사상이냐? 는 관점에서 사물을 안보고 이게 과연 인간을 이롭게 하느냐? 안 하느냐?는 측면에서 볼 때는 이 사상은 하나도 나무랄 때가 없다. 이 말이오. 그래서 그 사상을 신봉을 했다.

 

그러니까 자기 동료들과 친구들이 어울려서 신봉을 한거요. 그런데 거기에서 한발 더 나가서 그들이 신봉하는 불교사찰을, 그러니까 신앙의 상징물 아니겠어요? 그것을 흥륜사에다가 지으려고 했단 말이오. 그러다 그게 발각이 된 거요. 그러니까 그것이 발각이 되어서 조사를 해보니까 그중에 딴 사람도 아니고 왕궁에, 요즘 말하면 청와대의 비서실에 있는 비서관이 거기 관여가 됐다 이거야. 이렇게 될 때는 굉장히 곤란하지 않습니까? 그죠? 국가법을 집행하는데 그 핵심부에 있는 비록 지위는 낮지만 핵심부위에 있는 사람이 됐단 말이오.

 

그러니까 임금이 아끼니까 불러다가 다시는 안 믿겠다고 그래라.” 이번 거는 안 믿겠다면 빼 주겠다 이거요. 그랬을 때 이차돈이 알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고개를 숙였으면 안 죽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이에요. 이럴 때 아무리 좋지마는 양보를 좀 할 수도 있지 않느냐 이거요. 그러면 다음에 이 기회를 조금 지나가지고 다음에 더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오지 않느냐? 이제 이런 측면에서 이 원칙을 양보를 하는 게 좋으냐? 안하는 게 좋으냐? 이런 문제란 말이오. 그런데 주위에 있는 사람이 다 만약에 이럴 경우에 권유를 한다면 어떻겠어요?

 

다 지금 잘못했다 그러고, 그러고 일을 중단시키고, 다음기회에 한 번 더 도전을 하자. 이렇게 볼 수가 있죠. 그런데 그거는 이것은 양보할 일이 아니라는 거요. 이것은 어떤 타협할 일의 성격이 아니라는 거요. 이것은 어떤 기득권에 매몰되어 있기 때문에 이 좋은 법을 알지 못해서 생긴 문제지, 이 좋은 법을 안다면 이거를 거부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이거야. 그래서 그거는 내가 잘못한 게 없다. 이거야.

 

그러니까 내가 잘못한 게 없기 때문에 내가 이거를 잘못했다 하고 용서를 빌 만한 일은 아니다. 그러면 네가 잘못했다고 안하면 법으로는 피해갈 수가 없다. 법적으로 처벌을 받아야 된다. 그러니까 본인이 저는 법적으로 기꺼이 처벌을 받겠다는 거요. 그러니까 처벌을 하는 왕이나 국법에 대해서 저항을 하거나 거기에 대해서 한을 품은 건 아니었어요. 그것을 처벌해야 할 현실을 인정한다. 이거야. 그러나 이것은 그 힘이 무서워가지고 그만둘 일은 아니라는 거요. 그러기 때문에 기꺼이 처벌을 감수한거요.

 

그래서 이게 나중에 기록은 자기가 자원해가지고 처벌을 받았다. 이런 식으로 왕을 변호하는 식으로 역사는 기록이 되어있지만, 그건 아니었어요. 그래서 그를 처형을 했어. 그런데 이게 여기 문제가 이 동료들이 생각할 때 이게 사형을 시킬만한 사안이냐 이거야. 이 사람이 도둑질 한 것도 아니고, 강도질 한 것도 아니고, 역적질 한 것도 아니고, 부도덕한 행위를 한 것도 아니란 말이오. 그렇다고 무슨 국익에 큰 훼손이 간 것도 아니고. 그런데 이게 사형을 시켜야할 만한 일이냐 이거야.

 

그러면 그런 경우에 이 사람이 원래 사람도 굉장히 착하고, 성실하고, 주위 친구들로부터 다 신임을 얻는 사람이고, 그리고 그의 죄목이 사람을 죽였다. 적과 내통했다. 도둑질 했다. 간음을 했다. 거짓말을 했다. 하는 것도 아니란 말이오. 그런데 그 아까운 내 친구를 죽였다는 거요. 국가법이. 그러니까 주의 친구들이 다 분개를 한거요. 그런 법이라면 지킬 필요가 없는 거다. 아무리 그것이 법이라 하더라도 어떻게 이런 경우에, 이런 사람을 죽일 수가 있느냐 이거요. 그냥 며칠 가둬놓는다든지 처벌을 하는 거 까지 이해가 되지만.

 

그러니까 여론이 순식간에 폭발해 버린 거요. 그러니까 그 여론이 폭발하니까 결국 왕이 여론을 수용하고 말은 거요. , 왕이 귀족들의 기득권 세력에 대한 주장을 물리치고 새로운 주장을 받아들였다. 그럼 여기서 왕도 완전히 기득권 세력과 일치되어 있었으면 그건 체제가 무너지든지 탄압을 하든지 둘 중에 하나일 텐데. 이 왕이라는 게 뭐냐 하면, 소위 신라의 귀족 시스템. 귀족제의 수장으로 되어 있었는데, 그 당시 사회의 변화는 어떠냐하면 그것이 절대 왕정으로 넘어가면 어때요? 어떤 그런 과도기적인 측면이 있었단 말이오.

 

그러니까 이 기득권 세력의 이해관계하고 왕의 이해관계가 100% 일치하는 거는 아니란 말이오. 그러니까 왕은 오히려 신진개혁세력의 의사를 수용함으로 해서 도리어 뭐가 됐어요? 왕권이 강화된 거요. 그러니까 이런 거 하고 결합해서 불교가 공인이 됐다. 그러니까 그러한 미묘한 어떤 시대적 변화와 그다음에 한 젊은이의 그런 어떤 원칙주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런 삶이 이게 딱 맞물려진 거란 말이오.

 

그런데 이차돈이 순결을 했다고 하더라도 왕이 당시의 어떤 절대 권력이 기득권 세력하고 완전히 일치되어 있는, 왕권과 이게 완전히 정면충돌을 하는 거라면 어떻겠어요? 그러니까 더 시간이 흘렀겠죠. 피비린내가 나든지 안 그러면 왕위가 혁명이 일어나 타도가 되든지 이렇게 됐는데. 그런데 그 시대적 상황이 소위 말해서 왕의 권력 강화에 이 새로운 개혁세력이 수용하는 게 장애가 안 되고, 오히려 왕도 기득권 세력에 불모로 잡혀있는 그런 시대였으니까

 

오히려 왕이 젊은 세력이 미미할 때는, 개혁세력을 왕이 편들고자 해도 개혁세력이 미묘할 때는 왕이 도리어 기득권 세력한테 밀려나지 않습니까? 그런데 기득권 세력이 이걸 계기로 해서 결집을 해서 밀어붙이니까 왕이 그쪽 편을 드니까 이게 공인이 된 거란 말이오. 이럴 때는 그 죽음이 어때요? 살아서 평생 한 노력보다 어때요? 더 한 효과를 발휘했다 할 수 있죠. 그럴 때는 그 원칙을 지키는 게 어때요? 타협하는 거 보다 훨씬 효과적이다. 이래 볼 수 있어요. 원칙을 지키면서 살았다. 이게 중요한 게 아니란 말이오.

 

그 원칙을 지키고 삶으로 해서 결국은 사회적 영향력을 어떻게 가져왔느냐? 이게 중요하다는 거요. 이런 측면에서 우리가 봐야 된다. 그런데 우리가 역사 속에서 보면 일제에 나라 뺏겼다고 어때요? 그냥 할복해서 죽은 사람 많이 있지 않습니까? 그죠? 이런 경우에 우리가 평가를 어떻게 할 거냐하면 그것이 그 시대의 상황에 한 사람의 죽음이 어떤 효율을 나타냈느냐? 아무런 효과가 없이 그냥 혼자서 죽어버렸다. 하면 그것은 수행적인 차원에서 보면 뭡니까? 어리석음의 소산이오.

 

자기가 자기 분을 못 이겨서 어때요? 그냥 죽는 거 밖에 아니란 말이오. 그러면 자손들이 다 안 좋아요. 자살을 하면 사실은 가계에 밑으로는 굉장히 나쁜 영향을 주거든요.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중도라고 하는 것은 그냥 원칙을 지키고 죽었다. 이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거요. 그 죽음이 개인의 어떤 에고에 의해서 개인의 어떤 편집증에 의해서 죽음이라는 것은 그거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그 죽음이 죽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게 아니에요. 그것이 잘한 게 아니란 말이오.

 

그러니까 우리가 누굽니까? 한나라 한신 있죠. 한신이 어릴 때 그 깡패들이 가랑이 밑을 지나가는 그런 게 있음으로 해서 더 큰 얻는 것은 그것을 가지고 우리가 비열하다. 이렇게 말할 수가 없다. ? 그 골목대장하고 싸워가지고 이긴다는 건 별로 의미가 없는 거요. 그런데 우리는 그런 상황에 대한 인식이 없이 그냥 접근을 하고 그런 비굴한 놈, 비열한 놈, 이렇게 생각을 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부패한 왕정에 충성을 했다. 옛날에는 왕권주의에서는 그게 굉장히 의미가 있었고 지조가 있는 거 같지마는 민중을 외면하고 부패한 왕에 충성을 한 게 뭐 그리 중요합니까? 그래서 우리가 명분과 현실이라는 문제를 잘 봐야 된다. 왜 제가 이런 얘기를 하느냐하면, 미국이 남의 나라를 국제적 여론에 반대해서 무력으로 침공하는 건 잘못됐죠. 그거는 원칙적으로 보면 잘못된 게 사실이오.

 

왜냐하면 현재의 국제적인 어떤 국제법상으로도 어느 나라를 한 나라가 그 내정간섭차원에서 침략을 할 수가 없어요. 그 안에서 독재를 하던 뭘 하든. 어떤 명분을 내걸어서 침략할 수가 없다는 거요. 그런데 역사 속에서는 이런 경우가 굉장히 많았어요. 수나라가 고구려를 침공할 때 내 건 목적이 뭐에요? 내건 주장이 뭐였어요? 연개소문이가 왕을 바꿨다 이거죠. 그죠? 어떻게 신하가 왕을 바꿀 수가 있느냐? 이건 도저히 말이 안 된다. 이렇게 해서 침공한 거요. 그럴 때 그렇게 명목을 갖고 침공을 했는데 그러한 것이 고구려 안에 분열이 됐다.

 

그랬으면 아마 망했을 거요. 그런데 그때는 그 독재 권력의 어떤 그런 리더십이라고 할 수도 있고, 또 반대로 왕이 바뀐 게 이미 그 안에서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니란 말이오. 그러니까 그거 막아냈죠. 그러나 당나라가 침입을 할 때는 어때요? 고구려가 분열을 했단 말이오. 그러니까 고구려의 연개소문의 맏이가 맏아들이 권력투쟁에서 져서 어디로 도망을 갔습니까? 당나라로 도망을 가가지고 그 전쟁에 맨 앞장서가지고 쳐들어 왔단 말이오. 가서 이놈들이 내 권력을 탈취했다.”하고 당나라에 가서 붙었단 말이오.

 

그래서 당나라가 쳐들어올 때는 자기가 쳐들어온 게 아니라 누구를 응원하려고? 고구려의 정당한 세력, 그 부당한 세력을 제압하기 위해서 그걸 응원하는 것처럼 들어왔다는 거요. 그것 때문에 결국은 망하는 거요. 그러니까 전쟁은 힘도 중요하지만, 수나라의 경우에는 힘은 막강했는데 뭐가 없었다? 명분이 너무 없었다. 왜 그러냐하면 수나라 쳐들어 온 수양제도 저그 아버지 밀어내고 왕이 됐지 않습니까? 그죠? 그러니까 그 명분이 없단 말이오. 천하가 다 들어도 웃을 일이라는 거요.

 

그런데 당나라가 쳐들어올 때는 그런 명분이 어느 정도 있었단 말이오. 국운이 너무 없었던 거요. 왜 그러냐하면 수나라 쳐들어 온 수양제도 저그 아버지 밀어내고 왕이 되지 않았습니까? 그죠? 그러니까 그 명분이 없단 말이오. 천하가 다 들어도 웃을 일이란 말이오. 그런데 당나라가 쳐들어 올 때는 그런 명분이 어느 정도 있었단 말이오. 그러니까 명분과 힘이 결합을 해야 내부의 분열이 일어나는 거요. 그런데 지금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는 것은 명분이 없죠. 그러니 미국이 만든 명분이 뭐에요?

 

이라크 사담후세인이 독재 정권한다. 이 독재정권하는 것은 오히려 숫제 독제정권이니까 갈아치워야 된다. 하는 명분을 내걸었으면 세계인의 지지를 더 받았을 거요. 그런데 거기에 대량살상 무기가 있다. 이걸 주로 내세웠는데 실제로는 대량살상무기가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쉽게 붕괴 된 건 뭐에요? 미국이 첫째 강력한 힘이에요. 이거는 옳고 그르든 워낙 힘이 세니까 이건 어떻게 해 볼 수가 없어. 그런데 그래도 그것이 저항다운 저항 없이 무너지는 것은 바로 독재권력 때문에 그래요.

 

그러니까 독재 권력은 권력이 살아있을 때는 굉장히 막강합니다. 그러나 마음으로부터 지지를 못 받는 권력은 그 권력의 두려움 때문에 훈련된 군대는 그 권력의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게 되면 오합지졸이 되어버리는 거요. 그러니까 이라크 국민들이 미국에 대해서도 반대하지만, 누구에 대해서도 반대한다? 후세인 독제권력에 대해서도 반대하는 거요. 이것이 앞으로 북한문제에서 우리가 잘 봐야 되요. 남한 사람이 생각하는 북한하고 북한사람이 생각하는 북한 권력하고 틀립니다.

 

남한사람이 생각하는 우익세력은 북한은 김정일이도 나쁜 놈이고, 북한은 무조건 나쁜 사람이오. 그런데 남한 사람의 반정평화운동을 하는 사람은 북한 민중과 북한 권력을 구분할 줄 몰라요. 사담후세인하고 이라크 사람을 구분할 줄 모르듯이. 북한민중하고 북한권력이 일치할거라고 생각합니다. 이게 오늘날 진보세력 좌파세력이 갖는 큰 오류에요. 만약에 북한도 어떤 이유든 권력이 무너졌다 그러면 순식간에 무너질 뿐만 아니라 민중이 환호할거요. 이게 북한민심이에요.

 

그러면 북한 권력이 반민중적인 요소를 갖고 있으니까 이것은 외부의 힘에 의해서 제거가 되어야 되느냐? 그렇지 않다는 거요. 그러니까 우리가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반대하는 이유는 비록 후세인이 독재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현재 국제법상의 명분으로는 남의 나라를 침공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미국은 이라크 침공의 명분이 없는 거요. 그런데서 반대하는 거요. 만약에 명분이 사라진다면 국제 협약이라는 게 아무 필요가 없잖아요. 사우디아라비아에 석유가 많다. 그럼 쳐들어가서 어때요? 먼저 장악하는 게 임자잖아.

 

러시아도 그러면 아예 그냥 가서 조그마한 나라들 쳐들어가서 그냥 유전 다 장악해 버리면 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는 거는 그와 같은 거란 말이오. 그러니까 이 명분이 없으니까 우리가 원칙적으로 반대를 해야 되는 거요. 그런데 만약에 이라크 국민들이 후세인 같은 권력이 아니고 이라크 국민들이 선출에 의한 권력이라면 어떻게 될까요? 아무리 막강한 화력이라 하더라도 어때요? 쉽사리 점령이 안 됩니다. 또 점령이 됐다 하더라도 어때요? 지금 곳곳에서 게릴라전이 전국방방곡곡에서 총 들고 게릴라전이 벌어지기 때문에 어렵죠.

 

그런 측면에서 우리가 봐야 된다. 우리가 생각하듯이 이라크 국민들이 공화국 수비대가 얼마나 있고 어쩌고 저쩌고 했는데도 저항이 없었던 것은 첫째는 그 막강한 화력이. 인간이 그래도 제일 두려운 건 뭐요? 목숨 아닙니까? 그죠? 그러니까 소수의 종교인이나 이념적인 사람들은 목숨을 두려워하지 않지마는, 그 목숨을 두려워하지 않고 저항하는 것도 자기가 목숨을 버릴 때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할 때 목숨이 아깝지 않는 거요. 그런데 그 목숨이라는 게 아무 값어치가 없이 버려진다 할 때는 누구도 목숨을 쉽게 버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국민의지지, 민주적인 정부라는 게 참~ 중요하단 말이오. 그런데서 이왕지 전쟁이 일어났다면 어떻겠어요? 여러분은 이렇게 생각해요. 이왕이 전쟁이 일어나서 이라크가 투쟁을 해줘서 전쟁을 좀 오래 끌어줬으면. 그거는 이제 여기서 장사하는 사람은 전쟁이 빨리 끝났으면. 또 반전했던 사람은 어때요? 이라크가 좀 오래 싸워줘 가지고 미국 놈이 오판했다는 걸 좀 절실히 느꼈으면 얼마나 좋겠냐? 기분이 좋겠냐?

 

이 두 가지 생각도 전쟁이 좀 빨리 끝났으면 그러니까 장사가 됐으면 이 사람이 생각하는 거나, 어쨌든 저 사람들 싸워져가지고 미국 놈도 좀 많이 죽고, 그래서 미국 놈이 판단을 잘못했다는 걸 좀 해줬으면 하는 것도 근본적으로 보면 동일한 생각 아닙니까? 거기 있는 사람들 죽는 거는 우리가 생각 안하지 않습니까? 그죠? 우리들이 자기가 내세웠던 이념 이론 원칙이 맞는다는 걸 좀 증명해 주기를 원하는 심리란 말이오.

 

그러니까 우리가 그런 건 버려야 되요. 지금 이렇게 된 판에서는 일단은 빨리 이라크의 뭐가 와야 된다? 평화가 정착하고 민중들의 삶이 복원이 돼야 되요. 그것이 어쨌든지 역사의 관점을 민중의 입장에서 봐야 됩니다. 그런데 민중은 꼭 민족주의라고 보시면 안 됩니다. 이라크의 2천만 민중이 결국은 우리가 민족주의를 주장하는 이유도 민족이 독립함으로 해서 민중에게 장기적으로 이익이 있다. 자기 나라를 외세에 뺏기게 되면 결국은 더 고통이다. 해서 우리가 민족주의를 주장하는 거지.

 

오늘날 이웃처럼, 결국은 우리가 민족주의를 버리고 한때 합하는 게 우리 모든 민중들에게 이익이 있다 하면 당연히 그렇게 하는 게 좋아요. 우리가 한일 간에 협력을 해서 국경을 거의 없애다 시피 하고 이렇게 함으로 해서 오늘 우리 민중들의 삶에 훨씬 더 여유가 있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그게 민중은 선택을 하는 거요. 그래서 이 인도에서의 간디와 암베드까르간의 큰 차이점이 그런 게 있잖아요. 일단 간디는 인도와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하기위해서는 내부의 계급투쟁을 좀 멈추고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는 걸 우선시 하는데 비해서 암베드까르의 주장은 암베드까르는 천민출신이지 않습니까?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된 그것이 계급제도가 상존하는 나라라면 천민에게 있어서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거요. 그러면 영국으로부터 지배받으나 브라만으로부터 지배받으나 어차피 마찬가지라는 거요. 그러니까 여기에는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이 바로 천민의 해방이라는 것이 전제 되어야 된다는 거요.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이게 적을 가지고 싸워야 되는데 내부에서 계급투쟁을 하니까 이게 다른 측면에서 보면 민족주의 측면에서 보면 뭐에요? 내부분열을 조장하는 사람처럼 되지 않습니까? 그죠? 그러나 그들의 입장에서 볼 때는 그런 거요.

 

그러기 때문에 오늘날 암베드까르가 인도 전체의 국민들로부터 지지는 간디보다 못하지마는 소위 말하면 천민계급의 있어서는 동네나 어디를 가보면 간디동산은 없어도 암베드까르 동산은 다 있는 거요. 그런데서 지금 전쟁이 끝나버렸는데 계속 전쟁반대만 하고 있으면 어떻게 할 거요? 그러니까 지금 중요한거는 이라크의 민주적인 정부를 들어서게 하는 것. 이라크 국민들의 생존권이 빨리 회복이 되고 이라크의 민주적인 정부가 들어서는 게 중요하다. 오히려 이렇게 봐야 되지 않냐? 그러니까 반전에 뭐랍니까? 고가.

 

전쟁이 끝났는데 계속 반전하고 있을 수가 없잖아요. 그러면 이런 모순이 생기죠. 명분론에서.

전쟁을 반대하다가 미국이 이겼다 이거에요. 그러면 결국은 이라크의 민주적인 정부를 들어서게 하는 거는 결국 전쟁을 해서 미국이 이겼으니까 민주적인 정부가 들어서는 거 아니오. 그죠? 결과적으로는 미국의 전쟁의 뭐하는 격이다? 결과론적으로 찬성하는 게 안 되냐? 이렇게 우리 명분에 이렇게 장애가 온단 말이오. 그러나 현실이 중요한거요. 현실은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현실이 아니라, 이미 전쟁은 스탑이 된 상태란 말이오.

 

그러면 이라크 국민이 총 들고 계속 싸워라. 전쟁이 여태까지 반전하다가 또 무슨 주장이 된다? 우리가 전쟁 주장이 되잖아. 전쟁하자는 주장이 된단 말이오. 이런 모순이 생겨요. 그래서 민중의 입장에서는 어떤 이유든 전쟁은 민중의 이익을 손해를 끼치죠. 그러니까 지금의 전쟁은 빨리 끝나야 되는 거요. 그러니까 후세인하고 미국하고 타협을 해서 끝나든지. 한편이 져서 끝나든지.

 

지금은 끝나고 주민들이 빨리 복귀를 하고 거기에서 나는 자원들이 이라크 국민들의 복지를 위해서 쓰여질 수 있도록. 우리가 그러니까 미국이 그것을 착취하고 그걸 뺏어가고 그렇게 하지 않도록. 다시 말하면 이번에 전쟁이 끝났으면 빨리. 저는 그걸 보면서 일제청산에 대해서 참 고민이 좀 생깁디다. 이라크가 지금 무질서한 상황이 됐는데 이라크의 질서를 빨리 손쉽게 잡으려면 결국은 그동안의 질서 유지하던 누구를 경찰을 제등명 해야 질서가 유지 될 거 아니오. 그죠?

 

그런데 지금 1만년의 유물이. 5천년에서 1만 년간 보관되었던 유물이 지금 다 약탈을 당하고 이런 거는 아마 미국에 약간의 방관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 이유는 이것 봐라. 이거 가만 놔두면 이런 놈들이다.” 그러니까 미국에 대한 반대여론에서 이라크 국민의 문제점을 이렇게 후세인에 대한 반대를 지나치게 몇 백 명이 나와 가지고 동상 좀 때려 부순 걸 갖고 마치 전 국민이 일어난 것처럼 선전을 한다든지, 폭동이 일어나도록 한다든지, 약탈이 일어나도록 하는 것은 어쩌면 약간의 조장이 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그게 전쟁하는 사람들은 여론을 등에 업기 위해서니까.

 

그것은 우리가 해방 후에도 겪었던 일이거든요. 그런데 이러한 질서가 자경단에 의해서 소위말해서 여운형 선생이 한 게 그게 아닙니까? 자경단을 조직해서 일본군이 물러날 거에 대해서 정권의 인수를 어때요? 우리가 자체적으로 빨리 면단위부터 다 자치위원회를 구성해서 인수를 하려고 했지 않습니까? 우리가 현실로서는 생각하면 그분의 생각이 옳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우리가 명분론에 치우쳐서 그것은 일제권력과 결합하는 거냐? 그걸 순서대로 받아내는 거는 일제의 권력을 이정하는 거 아니냐? 받는다는 거 자체가 인정하는 거 아니오.

 

그런데서 결국은 북쪽도 남쪽도 다 밀려났지마는, 현실로 생각하면 그런 방식이 가장 바람직한 방식이다. 이건 앞으로 역사가 통일된 이후에 우리가 이 역사를 다시 평가해야 되는데, 여기도 자경단의 조직이 될 때 여기 지금 권력의 암투가 생기는 거 아니오. 외부에서 반대가 도망갔던 사람들은 국내에만 있었던 사람보다 명분도 앞서지 않습니까? 그죠? 그 사람들이 주도권을 잡으려고 그럴 거고. 국내에 있었던 사람들이 볼 때는 외국에 갔다는 거 빼놓고 네가 한 게 뭐가 있냐?” 이렇게 생각하는 거고.

 

이런 상태에서 지금 **** 갈등은 있지마는 같은 파 안 에서도 국외파 국내파 갈등이 있고, 그다음에 거기에서 국내 있었던 것은 다 후세인 권력에 순종한거라고 외부사람은 그렇게 평가할거고. 그 국내에 있는 사람은 외부 사람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자기가 국내에 있었던 사람의 명분이 섭니까? 미국앞잡이라고 해야 명분이 선단 말이오. 외세의 앞잡이라고 해야. 그러니까 그런 것이 명분을 내걸고 결국은 전후 갈등이 생기겠죠. 이런 갈등이 많이 일어나면 많이 일어날수록 결국 국제사회나 국내로부터 결국은 뭐가 없다?

 

자체의 능력이 없다. 그러니까 무슨 정부가 필요하다? 신탁통치가 필요하다. 우리도 그렇게 해서 신탁통치로 간 거 아니오. 혼란을 야기 시키고 신탁통치로 몰고 간 거란 말이오. 아무튼 그러한 이런 방식에서 진행이 되는데 거기서도 제가 보면서 이게 현실론인데. 경찰을 등용해서 질서를 잡을 거냐? 어떻게 할 거냐? 이런 측면에서 우리도 결국은 미국사람이 뭘 등용했습니까? 결국 친일 경찰, 친일 검사, 친일 판사, 친일 선생. 일제 시대 선생하는 선생 다 뺐버리고 선생을 구할 때가 없고, 일제 시대 때 경찰 다 빼버리고 경찰을 잡을 수가 없지 않습니까?

 

또 그 사람들도 새로운 권력에서 살아남아야 되고, 또 권력을 잡은 사람은 그 사람들만이 그 권력에 충성했던 사람, 친일 했던 사람의 친밀도 하고, 그러니까 결국 후세인의 독제 권력에 충성했던 사람만이 아주 소수를 제외하고는 누구한테 충성할 수 있다? 미국에 충성할 수 있죠. 왜냐하면 후세인에게 충성안하고 불이익을 받았던 사람은 후세인한테도 고개를 안숙이고 살았는데 미국 놈한테 고개를 숙일 이유가 뭐가 있어요. 그러니까 속성이 그렇다는 거요. 그러니까 반드시 질서를 잡으려면 또 그 경찰을 동원해야 되겠죠.

 

그러니까 이런 데서 우리가 인간 삶의 현실을 바르게 이해하는 게 필요하다. 그런데서 우리가 전후 지금 해야 할 일은 이라크에 외세의 개입을 무조건 반대. 이렇게 주장을 한다해서 이게 현실성이 없는 거요. 가능하면 자주적인 민주정부의 성립. 그리고 그 이권에 대한 이라크 자원이 이라크 주민들에게 쓰여지도록 외부에서 얼마나 압력을 넣느냐? 미국이 눈치안보고 지금 밀고 가겠지마는, 이런 운동이 전환될 수밖에 없고, 이라크 주민들이 그러한 데서. 이라크 주민들의 의식은 두 가지에요.

 

미국에 대한 반대도 있고, 누구에 대한 반대도 있다? 후세인에 대한 반대도 있는데. 자기가 어디에 더 피해의식이 많으냐에 따라서 후세인에 대한 반대. 후세인 놈 깨진 걸 좋아하게 되면 미국에 대해 반대하더라도 미국의 반대는 현실로 드러나지를 않는 거요. 내가 이것은 우리가 여기서 볼 때는 아프가니스탄의 미국 놈이 폭격을 하고 탈레반정부 쫓아내고 했기 때문에 여러분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조금만 뭐하면 탈레반이 다시 붕괴하고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 민중 **할 것처럼 생각할지 모르죠.

 

내가 아프가니스탄에 가서 놀란 게 그거였어요. 탈레반이 아프간 사람들에게 저지른 **이 워낙 강하기 때문에 이 사람들을 아무도 친미세력은 아니에요. 그렇다고 해서 미국에 반대할 생각을 갖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유엔이라든지 외세가 들어와 있다. 여기에 지금 현실적으로 반대하는 사람 없어요. 다 그 전쟁 통에 집이 다 부러지고 다 고통을 겪는데 가보면 얼굴이 다 환해요. 전부 사람이 희망에 차있어. 그럴 때 우리가 쉽게 아프가니스탄이 이렇게 뒤집어질 거라고 생각하면 안 되는 거요.

 

그런데 전후 복구과정에서 결국은 탈레반은 없어지고 누구하고 마찰이 생길까요? 새로운 정부나 미국하고 마찰이 생기겠죠? 그러니까 현재에 미국에 대해서 제일 외세에 대해서 거부반응을 일으킨 사람들은 민중이 아니고, 국가 권력층입니다. 미국의 힘에 의해서 또는 유엔군에 의해서 북부 동맹사람들이 국가 권력을 장악했지 않습니까? 그랬는데 그 사람들은 자기 권력을 온전히 자기들이 행사하고 싶은데 그걸 누가 견제합니까? 유엔이 견제하잖아 그죠. 이 사람들 사이에 마찰이 생기는 거요.

 

그러니까 왜 그 반 세력을 탈레반에 대한 반대 세력의 권력을 딱 단독정부를 우선 안하고 소위 탈레반의 휘하에 있었던 많은 군부들까지 집어 넣어가지고 연합정부를 만들겠어요? 좋게 말하면 모든 힘을 균형을 한다고 하지만, 나쁘게 말하면 그 서로 생각이 다른 세력들을 한데 묶어놔야 조정자 역할을 미국이 할 수 있잖아. 그죠? 그래야 입김이 어때요? 외세의 입김이 커지죠. 그게 만약에 하나의 세력으로 묶여지면 외세가 개입할 일이 없단 말이오. 권하고 바로 다투게 된단 말이오.

 

그러니까 아마도 이라크 정부도 다시 말하면 친미세력을 중심으로 해서 다양한 세력들을 섞어가지고 하겠죠. 명분은 얼마나 좋습니까? 모든 세력을 다 합한다. 그러나 그 서로 다른 것들이 싸우는 것들이 안에 있어야 그 전체를 컨트롤하기가 용이해지죠. 그게 단일 세력이 되면 어떠냐하면 바로 권력 행사를. 서로 권력이라는 건 나눠가질 수가 없는 거 아니오? 그래서 옛날에도 아들하고 아버지가 왕위를 놓고 서로 죽이고 하는 거 아니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