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먹는다고 하는데 그냥 이렇게 봤을 때 목매서 너무 뚱뚱해서 병적이다 할 정도는 아니니까 그 정도는 먹어도 괜찮아요. 그게 뭐 큰 걱정이오. 그냥 저기 주말에 같이 먹을 때는 많이 먹고, 또 채하면 소화제 먹으면 되고, 또 체하면 손가락 넣어서 토해버리면 되고, 뭐 그게 큰 걱정이라고 그래요? 뭐 노력을 많이 해야 되요? 음식 먹고 싶으면 먹고 채하면 토해버리고 이튿날 또 먹고 싶으면 먹고 그러면 되지. 그거 뭐, 밥 먹고 똥 누고 밥 먹고 똥 누구도 그것도 얼마나 귀찮아요. 생각해 보면.
그것도 하는데 뭐, 어때요? 밥 먹고 똥 누나, 밥 먹고 배 너무 부르면 손가락 넣어 토해버리나, 위로 나오나 아래로 나오나 마찬가지에요. 그런 거는 뭐, 신체상황에 따라서 꼭 토하는 게 나쁜 것도 아니에요. 독성이 들었을 때나 할 때는 토해버리는 게 더 나을 때가 있으니까. 그리고 봐서 너무 많이 먹어가지고 이게 비만증이라서 치료를 요한다하는 수준이면 제가 얘기를 하겠는데, 그런 수준이 아니기 때문에 주말에 먹는다고 큰 문제도 안 돼. 도대체 뭘 기준으로 해서 자기 몸매를 지금 생각하는 거요? 20대 모델을 기준으로 해서 지금 자기 몸매 관리하려는 거요?
자기 벌써 답이 나오잖아. 먹는 습관은 자기가 가만 생각해 보니 자기가 적당하게 조절하면 될 거 같다 그랬잖아. 그죠? 그러면 남과 비교하는 것도 자기가 이렇게 봤자 나한테 아무 이익이 없다는 거, 자기 말로 했잖아. 그러면 비교를 좀 덜하면 되잖아. 조절하면 되잖아요. 적절하게. 그럼 조금 괴로워하면 되지 뭐. 아까 많이 먹고 토하듯이 많이 먹고 토하듯이 비교 안 해야 되는데 비교를 했으니까 과보로 뭐가 따른다? 괴로움이 따르니까 좀 괴로워하면 되는데, 지금 얘기하는 거 보면 이 괴로운 것이 견딜만 하는 거요? 못 견딜만 하다는 거요?
견딜만 하니까 계속 비교하는 거요. 이 괴로움이 못 견딜만 하면 비교하는 게 딱 끊어집니다. 비교했다가는 내가 죽겠다. 이러면 끊어지는데, 아직은 비교해도 과보가 견딜만 하니까 또 비교하고 또 비교하거든요. 그러니까 내가 왜 토해라 그러냐하면 먹고 체해도 또 먹는 거는 견딜만 하는 거요. 못견딜만하다는 거요? 견딜만 하다. 그러니까 손가락 넣어서 토해야 살 정도로 심각해지면 과식에 대해서 조금 조절할까? 안할까? 조절하겠죠. 그래서 내가 손가락 넣고 토하면 된다. 이렇게 얘기 하는 거요. 웃으려고 하는 얘기가 아니라.
그 정도로 과식을 하면 자기가 “이러다가 내 죽겠다.” 이래서 자기 조절을 하듯이, 그래서 자기가 괴로우면 비교를 안 하든지, 비교를 할 수 밖에 없으면 괴로움을 감수를 하든지. 둘 중에 자기가 선택을 해야 되요. 달리 길이 누구도 없어. 자기가 버리고 싶지 않는데 그게 어떻게 버려져요? 버리고 싶으면 안 비교하면 되지.^^ 그러니까 이 머리는 되는데, 이 가슴이 안 된다. 즉 마음이 안 된다. 이 말 아니오. 어릴 때부터 비교하는 습관을 해서 오래 살아왔기 때문에 그게 습관화 되었단 이 말이오. 습관화 되어서 자기도 모르게 보면 그냥 비교가 저절로 되는 거거든요.
그래서 앞에서도 얘기했잖아. 그 자기를 이기는 게 백만의 대군을 이기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까 그걸 그냥 가볍게 생각하면 안 되고, 아, 이건 뭐, 자기 습관을 자기가 바꾸기가 어려우니까 생긴 대로 살고, 적당하게 괴로워하면서 살자. 이렇게 생긴 대로 사는 쪽으로 방침을 정해도 되고, 이 괴로움이 너무 심하면 어때요? 아무리 생긴 대로지만 이거 좀 바꿔야 되요? 안 바꿔야 되요? 바꿔야 되요. 그러면 죽을 각오를 하고 바꾸는 거요. 자기 죽을 각오를 할 사람이 아니오. 내가 보니까.
자기 그 바꾸려면 만약에 교회 다닌다면 예수님처럼 저 황야에 가서 40일간 금식하고 그렇게라도 바꾸겠다. 이런 지금 각오가 되어있어요? 안되어 있잖아. 부처님 같으면 6년 고행하면서 피골이 상접하도록 까지 해가면서 자기의 지난 생으로부터 지어온 모든 업식을 송두리째 뿌리 뽑았는데. 지금 자기 그런 각오는 없잖아. 그래요? 오케이. 그러면 두 가지 방법인데, 좀 천천히 가는 방법이 있고, 아주 그냥 단박에 뿌리 뽑아 버리는 방법이 있는데, 두 가지 처방을 다 드릴게요. 조금 천천히 어쨌든 극복하는 방법은 자기가 오늘도 아들 문제로 딴 애하고 비교해서 우리애가 성적이 좋으니 나쁘니.
실력은 절대적인 거지만 성적은 상대적이라는 거 아세요? 그러니까 전국에서 1등하는 애만 다 뽑아가지고 한 반을 형성해놓으면 그 가운데 꼴지 나올까? 안 나올까? 그럼 전국에서 꼴지하는 애만 모아 한 반을 만들어 놓으면 그 가운데서 1등이 나올까? 안 나올까? 나와요. 그래서 등수는 성적하고 꼭 관계있는 것은 아니에요. 이게 전부 상대적 비교인데.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1억을 가지고 있으면 천만 원 가지고 있는 동네에서 1억 가지고 살면 부자 소리 듣죠? 그런데 10억을 가지고 있어도 100억 가지고 있는 동네에서 하면 무슨 소리 듣는다? 가난하다는 소리 들어요.
그래서 가난하고 부자하고는 없어요. 본래. 그러니까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도 본래는 없어요. 비교해서 이렇게 생기는 거요. 그러니까 두 사람이 길을 가는데, 남편하고 아내가 길을 가는데, 남편이 앞서가고 아내가 뒤를 따라가요. 보통 보면 남자가 좀 앞에 가죠. 그럴 때 남자가 가다가 휙 돌아보면 뭐라고 생각해요? “아이고 왜 저리 꾸물대나? 빨리빨리 좀 오지.” 이렇게 생각해요. 그런데 뒤에 가는 아내는 또 종종걸음으로 가다가 앞을 쳐다보고 “뭐 그리 바쁜 일이 있어 저리 빨리 가노.” 이렇게 생각을 해요. 그러니까 기준이 누구다? 다 자기에요. 자기를 기준으로 해서 빠르다 더디다는 말이 있지, 걸음걸이에는 빠른 것도 없고 더딘 것도 없어요.
그 남편하고 나하고 걸어가면 또 그 남편은 또 더딘 사람이에요. 내가 좀 빠른 사람이에요. 나이 60이 넘어도 계단 올라올 때도 저는 그냥 천천히 못 올라가요. 다다다다닥 올라가는 사람이오. 다리가 부러지기 전까지는. 그러니까 이것은 비교해서 생기는 건데, 그 비교를 자기가 자꾸 해가지고 애를 1등 만들려면 꼴지하는 학교에다 보내면 되요. 우리나라에서 제일 평균성적이 나쁜 학교에다 애를 보내면 금방 1등이 될 거고, 또 애를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우리나라에서 제일 공부 잘하는 애들 보내면 꼴지가 될 거란 말이오. 이걸 갖고 논하는 거는 맞지가 않다.
이런 거를 자기가 조금 알게 된다면 이것이 결국은 자기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실제로 인생살이에 아무 도움이 안 되고, 늘 강박관념 갖고. 그러니까 조금 잘한다고 우월의식 갖고 조금 못한다고 열등의식 갖고 이렇게 한평생 인생을 살아야 할 괴로움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이걸 좀 내려놔야 되겠다. 그런데 우리가 비교를 안 할 수는 없어요. 부처님쯤 되면 몰라도. 예수님쯤 되면 몰라도. 아시겠어요? 보통사람 다 저도 하고 다 해요. 누구나 다 비교하니까 옛날부터 무슨 말이 있어요? “사촌 논 사면 뭐하다? 배 아프다. 이런 얘기 있잖아. 그러나 이게 심하면 인간 삶이 굉장히 피곤해지고 괴로워져요.
그렇다고 이걸 완전히 뿌리 뽑는다 그러면 그 뽑는 게 또 너무 힘들어요. 그래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거는 적절하게, 그러니까 비교하는 거를 아예 안할 정도로는 뿌리는 못 뽑더라도, 이치로는 뿌리 뽑을 수는 있어요. 이치로는 이거 아니다하면 금방 깨칠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이미 습관 들어진 거 이거는 쉽게 뿌리가 안 뽑아지니까 이거를 좀 덜해야 되요. 그래서 자기가 그 비교해서 애를 나무라거나 자기가 괴로워할 때는 자기가 자기한테 너, 이치적으로 안하면 좋다는데, 네가 약속을 해놓고 네가 한 거니까 벌을 주면 돼. 자기한테. 알았어요? “아, 내가 또 비교해서 내가 또 괴롭구나. 또 습관적으로 했구나.”
그럴 때는 자기가 하루에 천배를 하면 돼. 하루가 아니라, 그거 할 때마다 한번마다. 하루에 세 번하면 하루에 몇 배 해야 된다. 3천배 해야 된다. 그렇게 자기한테 좀 힘들게 벌을 줘야 되요. 그러면 그거 한번 비교하고 천배하려면 힘이 좀 들어요? 안 들어요? 그러면 절을 할 때 “에이 내 다시는 안해야지.” 이런 생각이 드는 거요. 그런데 나도 모르게 또 해요. 그럼 또 벌을 줘. 그러면 심리의 근저, 무의식 세계에서 비교하려는 마음이 일어날 때 제동을 걸어줘요. 너 또 비교하고 너 또 고생하려고? 이래서 탁~ 제동을 걸어서 비교하는 자기를 딱 알아차리게 되요. 비교하는 마음이 일어날 때, 한 5번 정도 이렇게 충격을 주면 딱 일어나요.
“오, 내가 또 시작이다.” 그러니까 전에는 나도 모르게 일어났는데 이제는 일어날 때 알아차림이 생겨요. 그러면 거기서 내려놓게 되요. 그렇게 하는 길이 하나 있고, 그런데 이거는 시행착오를 최소한도 30번은 해야 되요. 30번 하려면 벌을 몇 번 받아야 된다? 30번이니 3만 배는 해야 조금 알아차림 있을 거요. 그런데 그보다 더 짧은 시간 내에 도움을 대려면 전기 충격기를 저기 가서 하나 사서, 자기가 그럴 마다 자기한테 충격을 한번 줘버려요. 그러면 탁 까무러쳤다가 한 10분 있다가 깨요. 웃지 마세요. 죽기로 하겠다는 거잖아. 죽기로. 그런데 이건 죽는 거 아니잖아. 그죠?
이렇게 딱 하면 이거는 많아야 5번이고 3번만 하면 이 몸에서 이게 딱 비교하는 심리가 일어날 때 몸에서 무의식 세계에서 굉장한 역반응. 이게 가슴이 콱 막히거나 섬뜩하거나 이런 역반응이 확 일어나면서 올라오다가 그냥 쑥 내려가 버려요. 그거 한번 비교하고 한번 전기충격을 한번 받는다고 생각해 봐. 그러니까 제가 절을 하라는 거는 좀 어째든 자기 나름대로 노력을 하는 거고, 그게 도저히 자기가 안 된다면 외부적인 이런 방식으로라도 자기를 고치려면 그렇게 고치면 되요. 그래도 이 방법이 스님 너무 가혹하지 않습니다하지만 그래도 40일 금식하는 거 보다는 쉬워요? 안 쉬워요? 쉽고, 6년 고행하는 거 보다는 쉬워요.
이거 성인이 그렇게 가만 앉아서 된 게 아니에요. 그러니까 자기도 자기를 바꾸려면 그런 정도로 각오, 이걸 대결정심이라고 그래요. 죽을 각오, 각오를 딱~ 해야 이게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장막이 걷히는 거요. 안 그러면 늘 그 속에서 갇혀서 사는데, 그게 탁 걷혀야 이제 통찰력도 생기고, 하느님의 음성도 기독교식으로 표현하면 하느님의 음성도 들을 수 있고, 또 뭐요, 불교식으로 말하면 지혜의 눈이 열린다. 이렇게 표현은 각자 다르더라도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데, 우리는 다 항상 부처님 얘기 하면서 자기 생각을 해요. 내 원하는 데로 해주면 고맙다 그러고, 가피를 입었다 그러고, 지원하는 데로 안 되면 기도해봐야 아무 소용도 없더라. 이러고. 이건 자기 문제요. 그러니까 둘 중에 어느 거 먼저 해보시겠어요?
천배를 한다고 생각해서 겁나는 정도 갖고는 그거 안 고쳐져요. 천배를 한 30번은 해야 겁이 조금 날 거요. 어쨌든 그래도 시작해 보세요. 그렇게. 고치려면. 이건 자기 문제요. 그러니까 둘 중에 어느 거 먼저 해보시겠어요? 그것도 뭐 빨리하면 2시간 안에 할 수도 있고, 그다음에 빨리 하면. 빨빨빨빨리 하면 10분 만에 108배씩 한다면 할 수 있고, 천천히 하면 5시간도 걸리고 그러죠. 그러니까 뭐, 하루에 보통 우리 3천배 하거든요. 한 8시간 만에. 그러니까 자기가 그렇게 힘들면 안하면 되니까 비교 안하면 되니까 얼마나 쉬워요. 우린 절에 가면 무조건 3천배를 100일 하라 이러니까 어렵지.
자기야 뭐, 하기 싫으면 뭐만 안하면 된다? 비교만 안하면 되고, 그래도 비교가 되면 벌을 받아야 되고, 이렇게 하면 고쳐져요. 한번 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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