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카리브해 히스파니올라 섬에 있는 두 나라 국경의 모습으로
황량한 서쪽은 아이티이며,
초목이 무성한 동쪽은 도미니카 공화국입니다.
인구는 두 나라 모두 천만 명이 약간 넘는 수준으로 비슷하지만
영토는 도미니카 공화국이 1.75배 정도 크죠.
총 GDP는
아이티가 26억 달러
도미니카 공화국이 121억 달러 정도이며
1인당 GDP는
아이티가 2,000달러,
도미니카 공화국은 11,000달러 정도로
1인당 GDP 기준으로 본다면
5배 이상 도미니카 공화국이 높습니다.
소득 차이가 이렇게 나다 보니
아이티의 빈곤율 도미니카 공화국보다 3배 이상 높죠.
같은 섬에 있지만
도미니카는 빠르게 성장하는 개발도상국 중 하나인 반면
아이티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한 곳이라 볼 수 있습니다.
분명 같은 섬에 있는 두 나라인데
왜 이렇게 차이가 나게 되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아까 시작했을 때 보았던 국경 사진에서 시작할까요?
아이티 쪽이 훨씬 건조하고 황량해 보이는데요.
사실 이 섬에 많은 산이 있습니다.
굳이 비교를 하면
아이티 쪽이 전체 국토 대비 산은
더욱 많다 볼 수 있죠.
이렇게 지형도만 보아도 그 차이가 확연히 보이시죠?
동쪽의 도미니카 공화국은 평지가 상당 부분 있는 반면
아이티는 산맥의 비율이 굉장히 높습니다.
그만큼 아이티는 평지가 적다는 것이고
이는 여러 사회 인프라 구축에 불리하다는 걸 나타냈죠.
여러 산맥 중 중앙에 위치한 코르디예라 센트럴 산맥이 있는데요.
이 산맥으로 인해 동쪽에서 불어오는 습한 바람은 산맥에 막히게 되고
이로 인해 아이티 쪽은 더 적은 비가 내리게 되죠.
하지만 단순히 더 건조한 것만으로
이렇게 산 상태의 차이가 만들어진 것은 아니겠죠?
아이티가 황폐해진 추가적 이유는 잠시 후 말씀드릴게요.
이 섬의 또 다른 중요한 지리적 특징은
북미판과 카리브해 판이 만나는
단층선 위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이죠.
2010년에 일어난 아이티 대지진을 기억하실 겁니다.
바로 옆에 있는 도미니카 공화국에 비해
훨씬 큰 피해를 입은 이유는
진원지와 더 가까운 부분도 있었지만
건물들의 내진 안전조건이 훨씬 열악했고
재난 관리능력이나 비상 대응능력이
매우 낮았던 점도 영향을 주었죠.
하지만 이런 지리적 특성만으로
이 두 국가의 차이를 모두 설명하긴 어렵습니다.
많은 남미국가들이 그런 것처럼
식민지 역사가
두 나라에 끼친 영향 또한 매우 큽니다.
아메리카의 개척자 콜롬버스가
이 섬에 처음 상륙 한 1492년,
이때만 해도 이 섬엔 원주민이 80만 명 정도 있었는데요.
불과 22년 후, 32,000명 정도밖에 남지 않았죠.
그 주된 요인은
스페인 정복전쟁과 더불어
유럽 땅에서 들어온 세균들 때문이었습니다.
세균과 전쟁으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남은 생존자들마저도 노예가 됐죠.
이 섬의 새로운 주인 스페인은
이 섬을 산토 도밍고라 명명하고 정착지를 만들었지만
상당 기간 이 섬에 대한 관심도가 낮았는데요.
왜냐하면 1520년대 멕시코와 페루 근처에서
풍부한 금과 은이 발견되었고
노동력으로 활용가능한 더 많은 원주민들이 있었기에
멕시코를 비롯한 남미 쪽에 더욱 집중했습니다.
이 때문에 비교적 작게 보이는 이 산토 도밍고 섬엔
스페인이 많은 투자를 하진 않았죠.
그리고 1625년 프랑스 해적들이
섬의 서쪽 현지 아이티에 위치한 토르투가 섬을 점령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후 1697년 프랑스와 스페인 간 ‘라이스윅 조약’을 통해
현재의 아이티 지역이 공식적인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죠.
그리고 프랑스는 이곳을 산토 도밍고가 아닌
불어 형태인 ‘생도맹그’라고 불렀습니다.
프랑스는 이 섬에 관심도가 비교적 낮았던 스페인과는 달랐는데요.
이 섬의 농업 자원이 돈이 될 것이라 생각하고
값싼 노동력으로 돈이 되는 작물을 대규모로 생산하는
일명 플랜테이션이라 부르는
대규모 상업적 농업을 실시합니다.
적은 원주민을 대체하기 위해 프랑스는
아프리카에서 흑인들을 데려와 노예로 활용하고
백인은 지주나 감독관이 되어 섬의 자원을 확보하였죠.
가장 큰 산업은 설탕이었는데
이는 엄청난 부를 가져다주었고
한때 프랑스 전체 수입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을 정도로 생산력이 높았죠.
후에 아이티가 될 이 지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식민지 지역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 기반엔 흑인 노예들의 위험하고 고통스러운 노동 착취가 있었죠.
더 많은 수탈을 위해 아프리카 노예들을 계속 수입했으며
그렇다 보니 1788년 아이티 인구 조사에 따르면
프랑스 시민이 25,000명, 유색인 22,000명 정도였지만
흑인 노예는 무려 700,000명 정도나 되었죠.
비율로 따지면 90% 이상이 흑인 노예인 것입니다.
반면 스페인이 지배한 산토 도밍고 지역은
노예와 일반 시민들의 비율이 비슷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렇게 섬의 동쪽과 서쪽은 다른 길을 걷게 되는데요.
엄청난 부를 생산했지만
거의 모든 부가 지배 계층보다 10배 이상 많은 흑인 노예가 아닌 지배 계층
즉 프랑스에 돌아가는 불균형적인 상황이 오랜 기간 유지되던 중
1791년 아이티에서 노예 반란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 촉매제는 1789년 일어난 프랑스 대혁명이었죠.
“자유, 박애, 평등을 추구하는 프랑스 혁명이니
프랑스가 생도맹그 섬의 노예들에게도 똑같이 적용하여
평화롭게 독립시켜 주었습니다”라고 하고 싶지만
현실은 13년 동안의 잔혹한 전쟁으로 이루어낸
피와 희생을 바탕으로 얻은 독립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생도맹그 지역은 1804년 1월 1일
프랑스로부터 독립하고
지금 우리가 부르는 아이티가 되죠.
세계 최초로 노예들이 만든 성공적인 독립이었지만
당시 아이티의 상황은 좋지 않았습니다.
13년간의 독립 전쟁기간 동안
인구는 절반으로 줄었고, 사회 기반 시설은 망가졌죠.
거기에 더해 힘들게 독립까지 이루어 냈지만
유럽이나 미국 같은 강대국들은
독립된 아이티를 지지하지 않았죠.
노예들이 얻어낸 지구상의 유일한 국가가 아이티였는데
아이티가 국제사회에서 성공을 하게 되면
열강 국가들의 자국 내
혹은 식민지에 있는 노예들이 선동될 것이고
또 다른 노예들의 독립 움직임이 나타날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식민 지배국이었던 프랑스가
조금은 어이없는 요구를 하게 되는데요.
프랑스가 식민 지배 시절 아이티에 만들어 놓은 교육, 의료 인프라 등
여러 사회 기반 시스템들이 있으니
이를 얻는 대가로
아이티에게 엄청난 배상금을 요구한 것이죠.
식민지배 국가가 전쟁에서 패배하여
피지배국이 독립을 하는데
식민지 배상금을 주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돈을 달라고 한 것인데요.
근데 이 요구를 또 아이티는 받아들이게 되죠.
당시 세계는 아이티에게 우호적이지 않았고
그렇다 보니 기존에 있었던 무역이나 외국인 투자들이 끊긴 상황이었습니다.
한마디로 고립된 상황이었는데
농작물을 수출해서 돈을 벌어야 했던 아이티에겐
치명적인 것이었죠.
결국 국제사회에서 인정을 받기 위해
프랑스의 무리한 요구를 수용한 것입니다.
그리고 무려 1억 5천만 프랑을 프랑스에게 갚게 되는데요.
당시 돈이 없었던 아이티는
프랑스, 미국, 독일 등이 국가에게 돈을 빌렸고
이 부채를 갚는 데 무려 100년이 넘게 걸렸죠.
이런 상황에서 독립 후
아이티의 지도자들의 선택이 중요했는데
여기서 또 아쉬움이 남게 됩니다.
당시 주요 열강들의 태도가 적대적이었기에
지도자들은 아이티를 방어할 군사력 투자에 힘을 쏟게 되고
교육, 개혁, 토지 재분배, 참정권 등
민주적 가치나 사회 개발은 뒤로 밀려나게 됩니다.
그렇다면 그 돈은 어디서 올까요?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농작물 수출이었습니다.
과거 식민지 시기엔 프랑스 지배 계층 중심이었다면
이번에는 정부 중심의 플랜테이션으로 다시 부활시켰죠.
프랑스 지배 계급은
아이티의 엘리트 계층으로 대체되었고
노예였던 대다수의 사람들은
노예는 아니지만 거의 비슷한 강제 노동을 하게 된 것이죠.
노예가 가난한 소작농으로 바뀐 것이고
소득의 대부분은 군사력 확충과 배상금 부채를 갚는 데 상당 부분 쓰였으며
그렇기에 사회적 자본이나 교육 등에 대한 투자는 거의 일어나지 않았고
사회는 발전하지 못했죠.
그렇다 보니 계속해서 농업이 가장 큰 산업이었는데
이것이 또 문제가 됩니다.
독립 이후 아이티의 인구가 늘어나게 되었는데요.
뭐 좋게 볼 수도 있지만
이는 1인당 경작할 수 있는 땅이 줄어든다는 것도 의미하는 것이죠.
사실 프랑스 식민시절부터
대규모 플랜테이션과 삼림 벌채로
땅은 점점 황폐화되어 가고 있었는데
그 흐름이 독립 후에도 계속 이어졌다고 볼 수 있는 것이죠.
그 결과가 처음에 소개해 드린 현재 아이티와 도미니카 공화국 간
산림 모습의 차이로까지 이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황폐화가 되어 갈수록
단위 면적당 농작물 생산량이 낮아지니
군사 정부는 세금을 점점 더 걷기 어려워지게 되고
후엔 지배 계층의 착취와 부패로까지 이어지게 되었죠.
사람들의 불만은 높아지고
사회가 불안정한 데다
부패한 독재 정권인 경우가 많다 보니
주기적으로 쿠데타가 일어나게 됩니다.
아이티 독립 이후 100년간
아이티 지도자의 70%는 암살 당하거나 쿠데타로 물러났으며
나머지 30%마저도 불행한 결말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 사임하거나 임기 중 사망했습니다.
정리하면
독립 후 정치적 불안정, 민주주의와 사회 개발보다는
군사와 권위주의에 집중하는 정부
부패해 가는 엘리트 계층, 부채를 받아 가는 열강 국가들
점점 황폐화 가는 토양
그에 더해 지진의 위협이 늘 존재하는
지각층 위에 있다는 지리적 요소 등이
종합적으로 작용하여 빈곤이 지속된 것입니다.
불과 얼마 전 2021년에만도
대규모 지진 한 번과
아이티 대통령 조브넬 모이즈가 암살당하는
두 가지의 불행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저는 아이티 역사의 시작과
비교적 최근인 2021년의 사건을 전달했지만
그 사이에 무수한 많은 빈곤, 폭력, 부패 등
불행한 역사들이 있었겠죠.
이렇게 빈곤한 상황이기에
국제사회의 원조들도 들어갔지만
워낙 부패가 만연하다 보니
원조 받은 돈들이 제대로 쓰이지 못하고
상당 부분 기득권 엘리트층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죠.
이런 상황이다 보니
정부는 제 역할을 못 하고 있어
지금은 사실상 여러 지역 갱단이
아이티 운영에 크게 개입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도미니카 공화국은 어땠을까요?
이 지역은 1822년부터 아이티의 지배를 받았는데요.
이때 아이티는 자신들이 당했던 것처럼
도미니카 공화국 지역을 착취하게 되죠.
불만이 쌓여간 산토 도밍고 지역의 사람들은
독립전쟁을 일으키게 되고
승리하여 독립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도미니카 공화국이 수립되었죠.
이 역사 때문에
지금도 아이티와 도미니카 공화국의 사이는 좋다고 볼 수 없죠.
아무튼 이렇게 아이티와 도미니카 공화국은
각각 독립하며 2개의 국가로 나뉘어졌는데요.
아이티처럼 도미니카 공화국도
여러 번의 쿠데타와 반란
라파엘 트루히요 같은 악명 높은 독재자들로 나타났었죠.
두 나라 모두 민주주의와 거리는 멀었습니다.
하지만 도미니카 공화국은
아이티처럼 전쟁 배상금을 내진 않았죠.
또 식민지이기는 하였지만
아이티처럼 극심한 착취, 대규모 산림벌채, 땅의 황폐화까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 보니 우선 기초 산업인 농업이 충분히 가능한 환경이었기에
커피, 카카오, 설탕 등을 생산할 수 있었고
이를 주로 미국에 수출하여 돈을 벌 수 있었죠.
그리고 농업이 기반 산업이라면
점차적으로 향신료 산업
이후엔 면직물, 플라스틱, 전자제품 등을 생산하는 제조업과
금, 은 니켈을 생산하는 광업 산업으로 전환을 해냈죠.
또한 관광 산업도 성공했는데요.
이를 이해하기 위해 잠시 지리를 다시 볼까요?
이곳의 주요한 4개 산맥 중 코르디에라 중앙산맥은
카니브해에서 가장 높은 두아르테 봉우리를 가지고 있고
또 카리브해에서 가장 낮은 엘리키오 호수도 가지고 있습니다.
카리브해에서 가장 높은 곳과 낮은 곳 역시
모두 도미니카 공화국에 있죠.
또 이렇게 따뜻한 카리브해 국가이지만
동쪽의 콘스탄사는 가장 추운 지역으로 때때로 눈까지 내리기도 하죠.
이렇게 다양한 형태의 지리적 특성과 섬을 둘러싼 카리브해는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선물해 주었고
이는 관광산업에 있어 매우 유리한 조건이었죠.
여기 보이는 멋진 관광지를 가졌기도 하고
그에 더해 스페인의 식민지배국이었던 만큼
언어도 스페인어를 쓰다 보니
스페인인 혹은 스페인어권을 쓰는 수많은 국가들의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여행지가 되었죠.
현재는 카리브해에서 가장 큰 관광지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참고로 말씀드리면
도메리카 공화국과 스페인의 관계는 우호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때 스페인은 식민지배국이었지만
아이티의 프랑스처럼 악독한 지배자까지는 아니었다고 볼 수 있어서일까요?
물론 상대적이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도미니카 공화국과 스페인의 관계는 회복되었고
외교 관계를 발전시키며 현재는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과 교류를 하고 있죠.
도미니카 공화국은 아이티와 달리
산업 전환을 이루어 내어
이제는 광업, 관광, 제조업, 에너지, 부동산, 통신, 농업 등
여러 분야가 골고루 발달했고
지금은 라틴아메리카에서 일곱 번째
카리브해에서는 가장 큰 경제 규모를 가지며
빠르게 성장해 나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같은 섬에 있지만
같은 섬에 있다는 공통점 말고는
모든 게 다르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두 국가가 크게 달라진 이유를
역사적, 사회적, 지리적 요인들로 알아보았습니다.
아이티는 분명 불행한 역사를 가지고 있죠.
하지만 세계에서 유일하게
흑인 노예들이 식민 세력의 힘에 맞서
독립을 이루어낸 사실 자체가
그들의 저력을 반증하는 게 아닐까요?
아이티도 변화를 통해
이웃 나라만큼의 발전을 이루고
과거 그들이 얻고자 했던 진정한 자유를 얻길 바라봅니다.
시청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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